여호수아 1:1~9

다음은 여호수아 1장 1절부터 9절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1~9 (개역개정)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해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여호수아 1장 1절~9절 묵상


1. 본문 요약

여호수아 1장 1절부터 9절은 모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명령과 약속의 말씀이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시며, 여호수아에게 세 번이나 반복하여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본문은 단순히 리더십의 계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이다. 모세에게 주신 약속,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여호수아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시점이 바로 이 장면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그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율법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행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형통할 것이라 약속하셨다. 즉, 성공의 비결은 전략이나 군사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리더십의 전환기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통해, 신앙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드러낸다.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중단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셨고, 그 중심에 여호수아를 세우셨다.

신학적으로 볼 때,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호수아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예호슈아’인데, 이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며, 신약의 ‘예수’(예슈아)와 같은 어근을 가진다. 모세가 율법을 대표한다면, 여호수아는 약속의 성취를 상징한다. 모세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냈다면, 여호수아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다. 이 흐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지는 구원의 완성을 예표하는 것이다.

또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심리적 격려가 아니다. 이는 신앙적 결단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한 담대함이다. 인간의 용기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담대함의 근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사명은 막대한 책임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뒤를 잇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자격이나 능력보다 ‘함께하심’의 약속을 먼저 주셨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리더십의 출발점이 인간의 역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경건생활의 권장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기준을 확립하라는 뜻이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질 때 백성은 길을 잃는다. 여호수아의 형통은 말씀 순종의 결과였으며, 이는 오늘날 신앙인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말씀을 떠나지 않는 삶, 그것이 진정한 형통의 길이다.


3. 묵상과 적용

우리의 인생에도 여호수아가 직면한 순간과 같은 전환점이 있다. 익숙한 과거가 끝나고, 새로운 책임과 미지의 길이 눈앞에 놓일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정말로 두려웠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움을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신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하셨다. 즉, 담대함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믿음의 선택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한 도전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 없이 인생의 요단강을 건널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이 약속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여호수아가 의지했던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묵상하라고 명령하신다. 현대 사회는 정보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진리보다 소리를 크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것을 삶 속에 적용할 때, 우리는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신앙의 성공은 외적인 조건보다 내적인 순종에 달려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취를 기준으로 성공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형통이라 부르신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전략이 아니라 순종의 결과였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가정, 사역의 자리에서 두려움과 불확실함이 앞을 가로막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4.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새 힘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 두려움 속에 서 있던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도 낯선 사명과 어려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인생에도 요단강과 같은 장벽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주저앉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게 하소서.
우리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그 뜻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소서.
순종의 걸음마다 주의 형통함을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길이 주님 안에서 평탄하게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잊지 않게 하소서.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본문은 신앙인의 모든 출발점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에 있음을 보여준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이다.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하고 담대하라. 그 약속의 하나님이 오늘도 당신과 함께하신다.

디모데후서 4:9~22

다음은 디모데후서 4장 9절부터 22절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디모데후서 4:9~22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대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하게 하시매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라 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라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유블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구절은 바울의 마지막 인사와 유언적인 권면으로, 그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동시에 끝까지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매우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9~22절 묵상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문 믿음의 여정”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4장 9절부터 22절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 담긴 단락이다. 그는 로마 감옥에서 사형을 앞둔 상태에서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바울은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고 말하며 디모데의 방문을 간절히 바란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신앙의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곁에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다른 지역으로 갔다. 오직 누가만이 바울 곁을 지켰다.

그는 또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다. 이전에 마가는 선교 사역 중 바울과의 의견 충돌로 잠시 멀어졌던 인물이었지만, 이제 바울은 그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부르며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보인다.

또한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고, 디모데에게 드로아의 가보 집에 두고 온 겉옷과 책,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당부한다. 그는 육체의 추위를 느끼면서도 영적인 양식을 끝까지 탐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14절 이후에는 바울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바울을 대적했음을 언급하며, 디모데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첫 재판 때 자신을 변호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주께서 자신 곁에 서 계셨다고 고백한다.

그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지막이 죽음이 아니라 영광의 완성임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의 집, 여러 동역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인사를 나눈 뒤,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축도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단락은 바울의 사역의 완성믿음의 지속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달려갈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다(4:7절). 이제는 외롭고, 많은 동역자들이 떠났지만, 바울의 신앙은 변함없이 견고하다.

먼저, 바울의 태도는 복음 사역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는 디모데, 마가, 누가, 두기고 등 여러 인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복음의 사명은 개인의 고립된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적 순종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알렉산더의 대적과 동역자들의 외면에도 그는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라고 고백한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하신 말씀과 맞닿아 있다.

셋째, 바울의 신앙의 중심에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하게 하시매”라는 고백은 그의 현실적 외로움 속에서도 주님의 동행을 확신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사람은 떠날 수 있지만 주님은 끝까지 함께하신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그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며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노래한다. 바울의 시선은 이 땅의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향해 있었다.


3. 묵상

이 본문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종종 바울처럼 외로움과 오해 속에 사역하거나, 신앙의 길에서 동역자들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바울의 고백처럼 “주께서 내 곁에 서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바울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세상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유로웠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진정한 자유이다.

또한 바울이 마가를 다시 받아들이는 장면은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보여준다. 한때 사역의 실패자였던 마가가 다시 복음의 유익한 동역자로 회복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한계를 넘어 역사한다는 증거다. 우리도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버리지 않고, 회복의 가능성을 믿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 순간에도 책과 가죽종이를 찾았다. 이는 그가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 열정을 상징한다. 신앙은 단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성장하고자 하는 갈망을 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으나 주께서 내 곁에 서셨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만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는다.


4.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완성을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떠나가고, 외로움이 밀려올 때에도 주님께서 곁에 서 계심을 믿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 주님의 임재가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며, 주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 바울처럼 용서하게 하시고,
마가를 다시 품었던 그의 마음처럼, 우리도 회복과 화해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사역 중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께서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도 바울처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이 땅의 끝자락에서조차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눈을 허락하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께 드려진 믿음의 향기로 마무리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론

디모데후서 4장 9절부터 22절은 바울의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따뜻한 유언이자, 믿음의 승리 선언이다. 그는 버려졌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고, 감옥에 있었지만 자유로웠으며, 죽음을 앞두었지만 영생을 확신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기를 바란다.
삶의 끝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하게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이미 하나님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무는 믿음, 그것이 진정한 승리의 삶이다.


 

디모데후서 4:1~8

 

디모데후서 4:1~8 (개역개정)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유언처럼 디모데에게 남긴 말씀으로, 복음 사역자의 자세와 신앙의 완주를 강조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 – 디모데후서 4장 1~8절 묵상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4장 1절부터 8절은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남긴 마지막 권면이자 유언과 같은 말씀이다.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곧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 앞에서 엄숙히 명령한다. 그 명령의 핵심은 단 하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그는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하며,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권면하라고 말한다.
이는 복음 사역자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진리를 전해야 함을 뜻한다.

이어 바울은 장차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기 싫어하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 귀가 가려워 스승을 많이 두며, 진리를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을 경고한다.
그런 시대가 올수록, 디모데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감내하고, 전도자의 일을 하며, 맡은 직무를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제물로 여기며,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태도이다.
그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그 면류관은 바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질 상이라 밝힌다.

결국 이 본문은 복음의 마지막 세대 속에서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며, 끝까지 믿음을 붙드는 삶의 소명을 일깨워준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복음 선포의 사명이다.
1~2절에서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표현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적절한 때와 부적절한 때가 따로 없음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눈으로 판단되는 타이밍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언제나 진리를 말해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바울은 말씀 선포를 단순한 직업이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명령’으로 제시한다.
이는 교회의 본질이 곧 말씀에 있다는 신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둘째, 진리와 거짓의 대조이다.
3~4절에서 바울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자기 욕망에 맞는 가르침만을 찾아다니는 시대를 예언한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타락이 아니라 ‘진리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더 신뢰할 때, 그 신앙은 이미 중심을 잃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 경고는 유효하다.
교회 안에서도 진리보다 인기 있는 말, 편안한 설교, 성공을 약속하는 메시지가 더 환영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불편한 진리를 말하며,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한다.

셋째, 믿음의 완주와 상급이다.
6~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전제처럼 부어진 삶’으로 비유한다.
‘전제(奠祭)’는 구약의 제사에서 포도주를 제단에 붓는 의식으로, 생명을 헌신의 상징으로 드리는 행위였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복음의 제물로 드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다.
그의 삶은 고난과 박해의 연속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그는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이 상급은 단순히 순교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즉,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는 동일한 상을 받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공로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에 근거한 약속이다.


3. 묵상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오늘날의 신앙인에게 깊은 도전을 준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후회나 두려움이 아닌 ‘완주의 기쁨’을 고백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는 바울이 경고한 그대로, 진리를 떠나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만을 찾는 풍조가 만연하다.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위로와 축복만을 얻고자 하며, 십자가의 고난과 순종의 삶은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고 명령했다.
그 말은 세상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복음의 본질을 붙들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도 ‘선한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가치와 싸우며 진리 안에 서는 결단이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의의 면류관’을 보았다.
그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또한 완벽한 신앙을 가질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않는 신앙을 가질 수는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세상이 흔들어도 주님을 붙드는 자가 바로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라는 구절은 믿음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참된 신앙은 과거의 영광이나 현재의 만족이 아니라, 장차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데 있다.
우리가 그날을 사모하며 살 때, 세상의 유혹이나 고난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바울처럼 주님 앞에 설 날을 기대하며 매일의 삶을 제물로 드리는 태도가 신앙의 완성이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느냐? 달려갈 길을 포기하지 않았느냐? 믿음을 지키고 있느냐?”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우리는 매일의 선택 속에서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바로 의의 면류관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4. 기도문

사랑의 주님,
바울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주님을 찬양한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복음을 붙드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진리를 거부하고, 귀가 가려워 허탄한 말을 따르는 시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말씀을 전파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환경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으로 굳건히 서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전제처럼 주님께 부어지게 하시고,
작은 일에서도 신실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맡은 직무를 다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인생의 끝에 이르러 바울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
그날에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시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 말씀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눈을 주님의 재림에 고정하게 하시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로 날마다 살게 하소서.
세상의 가치보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도 말씀 안에서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바울의 마지막 서신이자, 신앙의 완주를 향한 하나님의 초대이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 주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디모데후서 3:10~17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개역개정)

10 그러나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 받음과 고난, 곧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같은 것을 잘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에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말씀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사람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3장 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말세의 타락한 세상과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경고했다. 그러나 10절부터는 그 어둠 속에서도 빛처럼 살아가야 할 참된 신자의 삶을 보여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잘 따랐으며.”
디모데는 단순히 바울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본 사람이다. 그는 바울의 신앙, 고난, 인내, 그리고 복음을 위한 헌신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바울은 자신이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등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그 모든 고난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건지셨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르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참된 신앙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세상의 저항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결국 승리의 길로 나아간다.

반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해져서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자신도 속는 길을 간다. 그들은 점점 진리에서 멀어지고,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의 믿음은 단지 지적 동의가 아니라, 실제적인 확신과 삶의 중심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왔음을 상기시킨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단지 도덕적 교훈서가 아니라,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계시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성경의 본질을 강력히 선포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인간의 생각이나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말씀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결국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오직 말씀 위에 서 있을 것을 명한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한다.
먼저, 신앙은 단순한 교리적 동의나 의식적 습관이 아니라 삶의 본질적 방향성이다. 바울이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인내를 따랐다”고 한 것은, 신앙이 단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전인적 삶의 모범임을 의미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 고난이 오히려 신앙의 진정성을 증명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세상에서 신앙인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의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확신을 심어주는 말씀이다.
세상이 교회를 대적할 때, 그것은 오히려 교회의 본질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신학적으로 매우 핵심적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선언은 성경의 영감설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 아래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경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그 어떤 시대적 사상이나 이념도 성경 위에 설 수 없다.

또한 바울은 성경의 목적을 네 가지로 제시한다.

  • 교훈: 진리를 가르쳐 옳은 길로 인도함

  • 책망: 잘못된 길을 꾸짖어 돌이키게 함

  • 바르게 함: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음

  • 의로 교육함: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게 함

이 네 가지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인격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뜻한다. 결국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우는 도구이다.


3. 묵상

바울의 이 메시지는 오늘날 교회를 향한 가장 절실한 요청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말씀의 권위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성경보다 자기 경험, 감정, 혹은 사회적 가치에 더 의존한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의 지혜를 주는 유일한 근거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 한 구절은 오늘날 신앙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명령이다. 믿음은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확신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또한 바울이 말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신앙의 본질이 세상과의 대립 속에서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신앙이 편안함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를 경험하게 된다. 디모데는 바울의 삶을 통해 그것을 직접 보았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앙인은 세상 속에서 조롱받을 수 있고, 외면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4. 오늘의 적용

  1. 말씀으로 뿌리내리라
    매일의 삶 속에서 성경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라. 말씀을 통해 내 생각과 감정이 새로워진다.

  2. 신앙의 스승을 따르라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 신앙에는 본받을 만한 믿음의 선배가 필요하다. 믿음의 모범을 따르는 것은 신앙의 성장에 큰 힘이 된다.

  3.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세상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난은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 믿음의 증거다.

  4. 성경의 권위를 지키라
    시대의 사상과 여론이 아무리 변해도, 성경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절대적 기준이다.

  5. 말씀으로 온전케 되라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유일한 도구다. 매일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5.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거짓과 혼란 속에서도 말씀 위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소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듯이,
우리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굳게 거하게 하시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진리를 붙잡게 하소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박해할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리라 믿습니다.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을 보게 하소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시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빚어 주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실이 주님의 뜻을 드러내게 하시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시며,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디모데후서 3장 10절부터 17절은 신앙의 본질을 정리한 선언과도 같다.
세상은 악해지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으로 온전케 된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바울이 남긴 이 마지막 권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울린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 믿음 위에 설 때, 우리는 어떤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


 

디모데후서 3:1~9

아래는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9절(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9 (개역개정)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인들을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인들은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를 알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 얀네와 얌브레의 그 일과 같으니라.


이 본문은 말세의 징조와 거짓 신앙인들의 특징을 경고하며,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경건의 능력을 붙잡고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9절

말세의 혼란 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붙드는 믿음


1.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의 말을 전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는 선언으로 본문은 시작된다. 바울이 말하는 ‘말세’란 단순히 세상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이 전파된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이어지는 시대 전체를 가리킨다. 이 기간 동안 세상은 점점 더 어둡고 혼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인간의 마음은 자기중심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당시 사회와 교회 안에 드러날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사람들의 관계가 무너지고 감정이 메말라 무정하며, 화해하지 못하고, 험담과 모함이 가득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싫어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들은 배신하고, 조급하며, 자만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명한다. 진리를 가장한 거짓 신앙, 신앙의 이름을 빌린 자기합리화, 그리고 종교적 외식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경계한다. 그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죄에 눌리고 욕심에 끌린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배우지만,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들을 모세를 대적했던 애굽의 마술사 얀네와 얌브레에 비유하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부패함이 결국 드러나 멸망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단지 바울 시대의 도덕적 타락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비추는 영적 거울이다. “자기를 사랑하며”라는 표현에서 시작되는 죄의 목록은 인간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 중심의 교만이 자리 잡은 상태를 의미한다.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경건의 모양’은 외적인 종교 행위, 즉 예배나 봉사, 헌신의 형식을 말한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성령 안에서 죄를 이기고, 사랑과 절제, 겸손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내적인 힘을 뜻한다. 교회는 언제나 이 두 가지 사이의 긴장 속에 서 있다. 형식적 경건은 외형적으로는 신앙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사라져 있다.

바울이 말하는 거짓 교사들은 단순한 도덕적 타락자가 아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도 그 위에 서지 못한 자들이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를 알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단지 지식의 축적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성경을 공부하고 교리를 논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 있지 않으면 그 모든 지식은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얀네와 얌브레는 출애굽기 7장에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애굽의 마술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처음에는 모세의 기적을 흉내 냈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무력해졌다. 바울은 이를 통해 거짓된 영적 세력들이 일시적으로 세력을 얻을 수 있으나, 결국 진리 앞에서 그들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진리를 결코 패배하게 두지 않으신다.


3. 묵상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직접적인 도전을 준다. 우리는 과연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경건의 능력 안에 살아가는 사람인가. 겉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이미 바울이 경고한 말세의 인간상 안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 시대는 기술과 정보의 발전으로 ‘항상 배우는’ 세상이다. 하지만 진리를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되 순종하지 않고, 듣되 실천하지 않으며, 알되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울이 말한 ‘끝내 진리를 알 수 없는 상태’와 같다.

경건의 능력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나타나는 열매이다. 성령은 우리의 욕망을 제어하고, 사랑과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충성, 온유, 절제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외적 행위보다 내적 관계를 더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서 벗어나라고 명한다. 오늘날의 거짓 교훈은 단지 교리적 오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계발’, ‘성공신앙’, ‘긍정의 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메시지들이 실제로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부활의 영광만을 말하는 신앙은 온전한 복음이 아니다.

이 본문은 결국 디모데와 모든 신자에게 “진리 위에 서라”는 초대이다. 세상의 도덕적 혼란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4. 오늘의 적용

  1. 경건의 모양보다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라
    신앙의 형식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 예배, 헌신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살아 있어야 한다.

  2.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라
    세상의 풍조는 점점 더 인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가르침을 분별해야 한다.

  3. 항상 배우되, 순종으로 마무리하라
    성경 공부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들은 말씀을 실천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다.

  4. 진리의 승리를 믿으라
    얀네와 얌브레의 예처럼, 거짓된 세력은 잠시 번성할 수 있으나 끝내 드러나 멸망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진리를 높이신다.


5.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경고하신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의 혼란과 유혹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겉모습의 경건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참된 믿음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 쾌락 사랑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항상 배우되 끝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배운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거짓 교훈과 세속적 가치가 교회를 흔드는 이때에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시며,
그 어떤 유혹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형식이 아닌 본질, 종교가 아닌 관계, 외적 신앙이 아닌 내적 경건을 추구하도록 이끕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9절은 말세의 경고이지만 동시에 소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진리가 여전히 능력 있으며, 경건의 사람은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