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4~26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26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9:14-26 (개역개정)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이 본문은 금식에 대한 논쟁새 포도주 비유, 그리고 혈루증 여인의 치유관리의 딸을 살리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금식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하여, 열두 해를 앓던 여인의 치유, 그리고 죽은 소녀를 살리시는 기적으로 이어지며 믿음과 회복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본문 요약: 옛 관습을 넘어선 생명의 역사

본문은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금식 논쟁과 새 포도주 비유입니다(14-17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을 혼인집 신랑에 비유하시며,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잔치의 때이지 슬퍼할 때가 아님을 선포하십니다. 이어지는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비유는 복음의 역동성이 유대교의 낡은 형식에 갇힐 수 없음을 강조하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둘째, 혈루증 여인의 치유입니다(20-22절). 한 관리의 집으로 가시던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집니다. 그녀는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간절한 믿음을 가졌고,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며 즉각적인 치유와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셋째,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입니다(18-19, 23-26절). 한 관리가 죽은 딸을 살려달라며 예수님께 절합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무리들을 뒤로하고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며, 소녀의 손을 잡으심으로 그녀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질병뿐 아니라 죽음까지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2. 신학적 해석: 복음의 역동성과 하나님의 나라

새 시대의 도래와 메시아적 잔치

예수님이 자신을 신랑으로 묘사하신 것은 구약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적 잔치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대교의 금식은 애통과 회개의 상징이었으나,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의 삶은 기쁨과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도덕적 규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을 통한 기쁨의 삶임을 시사합니다.

낡은 부대와 새 부대

낡은 부대는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매몰된 유대교의 전통을 상징합니다. 반면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파되는 복음의 생명력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행위나 전통적인 틀 안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며, 우리가 과거의 습관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 성령의 역동적인 인도를 따라야 함을 교훈합니다.

믿음과 접촉의 신학

혈루증 여인과 관리는 모두 예수님과의 접촉을 갈망했습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혈루증 환자나 시신을 만지는 것은 부정해지는 일이었으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손을 대심으로 부정을 거룩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거룩함이 세상의 어떤 부정함보다 강력하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그 거룩함과 생명이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연결된 성경의 진리

  • 누가복음 5:37-38: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공관복음의 평행 구절)

  •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4. 깊이 있는 묵상: 우리 삶의 새 부대는 준비되었는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변화를 촉구합니다.

금식보다 중요한 신랑과의 동행

우리는 때때로 신앙의 형식을 지키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놓치곤 합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신앙생활에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습니까? 만약 신앙이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진다면, 당신은 혹시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정한 인생을 만지시는 예수님

혈루증 여인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부정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댔을 때, 예수님은 그녀를 꾸짖지 않으시고 딸아라고 부르시며 가족의 관계로 영접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죄로 인해 부정하고 세상의 시선으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 삶의 모든 부정을 씻어내십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선포되는 잠

사람들은 소녀의 죽음을 보고 통곡하며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끝이라고 말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은 희망과 생명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삶에서 이미 죽어버린 것 같은 소망, 끊어진 관계, 포기한 꿈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손이 닿으면 그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절망을 으로 규정하시고 우리를 깨워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5. 기도문: 생명의 주님을 향한 고백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새 시대의 소망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낡은 가죽 부대와 같은 옛 습관에 머물지 않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새로운 생명력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참된 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혈루증 여인처럼 연약하고 부정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더 깊은 상처만 남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그 간절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를 향해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삶의 죽어 있는 영역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사람들이 비웃고 끝났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 주님 찾아와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며,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회복된 삶이 온 땅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중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9:1~13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9:1-13 (개역개정)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를 부르시다

  1.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2.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3.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5.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와 사역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의 권세, 소외된 자를 부르시는 은혜, 그리고 종교적 형식주의를 넘어선 하나님의 긍휼을 마주하게 됩니다.


1. 본문의 구조적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며 죄 사함의 권세를 선포하신 사건(1-8절)이고, 두 번째는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사역의 목적을 밝히신 사건(9-13절)입니다.

중풍병자의 치유와 죄 사함 (1-8절)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신체적 고통보다 먼저 그의 영혼에 주목하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에 서기관들은 신성모독이라며 반발하지만, 예수님은 병자를 일으켜 걷게 하심으로써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음을 증명하십니다.

마태의 부름과 죄인의 친구 (9-13절)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받던 세리를 제자로 삼으신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이어지는 마태의 집 잔치에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이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자는 병든 자임을 천명하시고 긍휼의 제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권위와 긍휼의 교차점

죄 사함의 권세와 메시아적 자기 계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선포하신 죄 사함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유대 전통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선언은 자신이 곧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적 성격을 갖습니다. 중풍병의 치유는 그 영적인 권세가 가시적인 세계에서도 실재함을 확증하는 표적입니다.

세관에서 제자로: 부르심의 전권

마태를 부르신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 없는 자에게 임한다는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를 보여줍니다.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간주되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혈통이나 율법적 의로움에 갇혀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근거함을 시사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의 재해석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이는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결여된 형식적 종교 행위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율법은 정죄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실천하는 생명의 법으로 완성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연결되는 성경 구절들입니다.

  •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예수님이 직접 인용한 구절의 원문입니다.)

  •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치유와 죄 사함의 근거를 예언합니다.)

  •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사랑을 요약합니다.)

  • 히브리서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체휼하시는 주님을 나타냅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침상에서 일어나 잔치로

믿음의 연대와 중보의 힘

본문 2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병자 본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그를 침상째 메고 온 동료들의 간절함과 사랑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공동체의 믿음,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주님께 데려가는 통로가 되는 삶의 중요성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죄

예수님은 병자의 다리보다 그의 마음속 응어리진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치유되어도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지만, 죄 사함을 받은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결핍과 고통 속에 살아가지만, 그 근저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선언이 우리의 진정한 자유와 회복의 시작입니다.

세관이라는 삶의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순종

마태는 인생의 가장 세속적인 현장인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거룩한 성전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직장, 주방, 교실 등 가장 일상적인 자리에서 들려옵니다. 마태의 즉각적인 순종은 예수님의 권위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그리고 마태의 심령이 얼마나 주님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한 복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거룩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들을 혐오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를 건강한 자라고 착각하는 이들보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인정하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복음의 역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 안에서 바리새인처럼 타인을 정죄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 없는 건강한 자라는 교만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5. 결론 및 적용

마태복음 9장 1-13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며 정죄의 자리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며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할 것인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제사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오는 긍휼을 기대하시는 분입니다. 중풍병자를 침상에서 일으키신 그 권능이 오늘 우리의 무너진 삶을 일으키길 원하시며, 마태를 부르신 그 음성이 오늘 우리의 지친 일상에 소망이 되길 원하십니다.


6. 마무리를 위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긍휼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무거운 짐에 눌려 침상에 누운 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며 우리 영혼의 근원적인 고통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죄책감과 정죄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주님의 권능으로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또한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평범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우리의 삶의 자리로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와 물질에 매여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 않게 하시고,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마태와 같이 기쁨으로 순종하며 일어나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며 남을 판단하는 바리새인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의사가 필요한 환자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이 베푸신 그 긍휼을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와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