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9~20

로마서 3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을 적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3:9~20 (개역개정)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본문 요약 — 로마서 3:9–20 (개요와 핵심 메시지)

 

바울은 먼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월한가?”(3:9)라는 수사적 질문은 곧바로 답해집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 아래에 놓여 있음을 선언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기록된 바”라며 구약의 말씀들을 열거하는데(3:10–18), 그 말씀들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과 영적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 의인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으며, 말과 행위가 부패하여 평강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율법의 역할을 명확히 합니다(3:19–20). 율법은 사람들을 ‘정죄’하려는 데 말하고, 사람을 의롭다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요약하자면 이 본문은 “죄의 보편성(모든 사람이 죄인임)”과 “율법의 기능(구원 수단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는 거울)”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음을 보여 주고, 따라서 복음에 의한 구원이 필요함을 정당화하는 도입 구절입니다.


신학적 해석 (핵심 주제와 의미)

  1. 죄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Sin)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이방인)을 동시에 겨냥합니다. 특정 집단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소재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죄성)이 개인적·문화적 배경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작동함을 가리킵니다.
  2. ‘기록된 바’와 구약 인용의 목적
    바울은 구약의 언어들을 불러오며(시편·선지서 등), 청중과 공통의 권위를 지닌 성경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보강합니다. 이는 유대적 독자에게 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 “성경이 말한 바”라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3. 율법의 기능: 정죄의 칼인가, 거울인가?
    3:19–20에서 바울은 율법의 목적인 ‘사람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제거하거나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죄를 드러내고 사람의 입을 막아 모든 사람이 심판 아래 있음을 알게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율법은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죄를 계시하는 도구(거울)”라는 이해가 핵심입니다.
  4.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준비함
    이 본문은 곧 이어지는(3:21–26)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음’의 선언을 위한 전제로 기능합니다. 먼저 인간의 무능(율법으로는 의롭다 함 얻을 수 없음)을 확인해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가 더욱 극명해집니다.
  5. 언어의 비유와 도덕적 평가
    바울이 사용하는 표현들(“목구멍은 열린 무덤”, “혀로 속임”, “독사의 독”)은 구체적이면서도 극적입니다. 이런 묘사는 말(언어)과 행위의 악함을 동시에 드러내며, 죄는 단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생각까지 포함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참조: 마태 15:18–19).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신학적·목회적 함의

  • 겸손과 자복: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영적 교만을 깨뜨립니다. 자기 의(自義)를 포기하는 겸손이 복음의 문을 열어 줍니다.
  • 율법의 재위치: 율법을 믿음의 대체물로 삼는 모든 시도는 본문에 의해 부정됩니다. 율법은 윤리적 지침이자 하나님의 거룩성을 드러내는 반면,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의입니다.
  • 복음 선포의 긴급성: 모든 사람이 심판 아래 있다는 선언은 복음의 필요성을 촉구합니다. 이는 전도와 선교의 신학적 기반이 됩니다.
  • 말의 윤리: 바울이 말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오늘날의 말 문화, 소셜미디어, 험담 문화에 대한 성찰로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입과 혀를 돌아봐야 합니다(야고보서의 가르침과 연결).

관련 말씀 구절 (비교 · 묵상용 목록)

바울의 논맥과 신학적 연결고리

  • 로마서 1:18–32 —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초기 진술
  • 로마서 3:21–26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복음의 핵심 응답)
  • 로마서 5:12–21 — 아담과 그리스도를 통한 죄와 은혜의 대조
  • 갈라디아서 2:16 —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에베소서 2:8–9 —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구약의 병행·참조 (바울이 ‘기록된 바’로 인용한 전통과의 연계)

  • 시편 14편·53편 — “의인은 없다”의 선언과 유사한 진술
  • 시편 140편(특히 악인의 혀 묘사) — 혀와 말의 독성에 대한 묘사
  • 이사야 59장 — 불의와 거짓의 사회적 묘사(일부 구절과 정서적 연결)

실천적·윤리적 보완 구절

  • 야고보서 3장 — 혀의 힘과 책임
  • 마태복음 15:18–20 —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말과 행위
  • 시편 51편 — 죄의 고백과 회복의 기도 (죄를 자백하고 회복받는 모델)

(참고: 위 목록은 본문과 신학적·문학적으로 연결되는 대표 구절들입니다. 묵상 시 각 구절을 직접 읽으며 본문과 대조해 보시길 권합니다.)


깊이 있는 묵상 (개인적 적용을 위한 가이드)

  1. 텍스트를 마음에 새기기
    먼저 로마서 3:9–20을 천천히 여러 번 읽으십시오. 각 구절에서 ‘나’를 향해 질문하는 표현(“우리는 나으냐?”)과 ‘모두’라고 말하는 포괄성에 주목하세요. 어디에서 나는 변명하거나 자기정당화를 시도하는가?
  2. 내면의 거울로서 율법
    율법은 ‘행동의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마음의 거울’입니다. 내가 율법을 대할 때, 그것이 나를 정죄하는 경험으로 다가오는지, 아니면 나를 복음으로 이끄는 거울로 다가오는지를 살피세요. 율법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도움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있습니다.
  3. 말의 자리에 서서 반성하기
    바울이 특히 말(혀, 입)을 지적하는 것을 유심히 보십시오. 최근 일주일 동안 내 말이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속임수에 의해 이루어진 적은 없었는가? 내 대화가 은혜와 진리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파괴적이고 분열적인가?
  4. 공동체적 관점
    바울은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공동체적 상태를 지적합니다. 교회와 사회 가운데 정의와 평강이 사라졌다면, 그 원인 가운데 내 몫은 없었는지 성찰하십시오. 또한 교회가 죄를 드러내는 역할(율법의 기능)과 동시에 복음을 선포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묵상하세요.
  5. 복음으로의 초대
    마지막으로, 이 본문은 절망이 아닌 복음으로의 초대입니다. 죄의 보편적 진단은 은혜의 보편적 공급을 필요로 합니다. 로마서 3장 다음의 말씀들(3:21–26)을 읽으며 하나님의 의와 구속의 길을 붙들어 보십시오.

묵상 질문 (기도 독서 중 사용)

  • 나는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가?
  • 최근에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가?
  • 율법이 내게 ‘정죄’로서 작용할 때, 나는 어떤 반응(부인, 수치, 회피)을 보이는가?
  • 오늘 내가 드러내야 할 고백은 무엇인가?

기도문 (본문을 바탕으로 한 고백 · 간구)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 의롭고 거룩하심을 찬양합니다. 주는 참되신 심판자이시며 우리의 말과 생각과 길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주 앞에 서서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없습니다. 제 마음과 입술과 행위 가운데 주 뜻을 어긴 것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진리를 감추고, 때로는 다른 이의 약함을 이용하며, 때로는 제 이익을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뒤섞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 율법으로 저를 살릴 수 없음과 동시에 율법이 제 죄를 드러내는 거울임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연약함을 숨기지 못하게 하시고, 제 자랑과 변명들을 빼앗아 가소서. 진정한 회개를 주시고, 당신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롭게 하시고, 저를 하나님의 의로 옷 입히시며 정죄에서 건져 주십시오. 성령님, 제 혀를 다스리시고 제 생각을 새롭게 하셔서, 제 말이 생명을 빚고 평강을 이루게 하소서. 교회가 진실로 복음을 선포하며 비판적 판단 대신 자비로써 세상에 나아가게 하시고,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허물을 사랑으로 가려 주는 은혜를 주십시오.

저의 가정과 일터와 이웃 가운데 이 진리가 뿌리 내리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감을 잊지 않게 하소서. 또한 복음을 알지 못하여 심판 아래 서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제가 복음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로마서 3:1~8

로마서 3장 1절~8절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로마서 3:1~8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아직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로마서 3장 1절부터 8절을 바탕으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성경 말씀,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포함한 글을 준비했습니다.


로마서 3장 1~8절 말씀 묵상

1.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8절에서 바울은 먼저 유대인의 특권과 책임을 언급합니다. 유대인이 받은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2절). 그러나 유대인들 중 일부가 불신앙을 보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은 거짓되지만 하나님은 참되시며,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다는 것이 강조됩니다(4절).

또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복음을 곡해하여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하나님께서 왜 진노하시느냐?”,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라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주장들이 정죄받아 마땅하다고 단언합니다(8절). 즉, 하나님의 의로움은 인간의 불의로 인해 손상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선명히 드러나지만, 그것이 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2. 신학적 해석

(1) 유대인의 특권과 책임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2절)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구약 성경의 계시가 유대 민족에게 먼저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언약을 주시고, 말씀을 보존하고 전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정체성은 단순히 민족적 혈통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맡은 ‘책임적 소명’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간의 불성실함

3절에서 바울은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인간이 불신앙에 빠진다 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며, 인간의 배반으로 인해 그분의 성품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 언약의 절대성과 변함없음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3) 인간의 불의와 하나님의 의

바울은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말합니다(5절).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고 해서 인간의 불의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만약 불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고 해서 죄가 용납된다면, 하나님의 심판 자체가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선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는 절대 없습니다.

(4) 잘못된 신학적 왜곡에 대한 경고

8절에서 바울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는 식의 주장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자주 반복되는 유혹입니다. 목적이 좋다면 과정에서의 불의나 거짓도 괜찮다는 생각은 기독교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언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1.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2. 시편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 바울이 인용한 구절로, 인간의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의가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3.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4. 야고보서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하나님은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허락하시거나 악을 조장하지 않으십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로마서 3장 1~8절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말씀을 맡은 자의 책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으로 풍성히 누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더 이상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말씀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순종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말씀을 맡고도 불신앙으로 인해 책망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 성도도 말씀의 책임을 소홀히 하면 동일한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변치 않는 신실하심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수 있고, 인간의 불성실함은 자주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며,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구원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셋째, 죄의 정당화에 대한 경계입니다. 우리는 종종 ‘조금은 타협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악은 결코 선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불의와 타협 위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선을 이루기 위해 거짓이나 불법을 선택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길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의 앞에 선 인간의 죄입니다. 사람은 거짓되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4절). 이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도록 만듭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과 신실하심이 우리를 구원하는 기반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로마서 3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불성실함과 불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실하시고 참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을 맡기시고 복음을 알게 하신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삶으로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말씀을 단순히 아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불신앙에 빠질 때조차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음을 고백합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지만 주님은 언제나 참되시며,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져 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때로 목적이 선하다 하여 작은 죄를 정당화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 주셔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짓과 불의를 거부하고 주님의 거룩한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의와 신실하심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약함 속에서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의 불완전함 속에서 주님의 영광이 증거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로마서 2:17~29

로마서 2장 17절~29절 개역개정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2:17~29 (개역개정)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이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네가 가졌음이라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당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17–29(개요에 근거한 심층 묵상과 기도)

 


1) 본문 요약

로마서 2장 17–29절은 바울이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을 직접 겨냥하여 그들의 자기 확신과 위선을 호되게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의 가르침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한다고 스스로 여기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율법을 말로만 자랑하면서 실제로는 율법을 어기면, 오히려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 당하게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바울은 ‘할례’의 참된 의미를 재정의합니다. 외적인 혈육의 표식이나 문자적 율법 준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서 행해지는 ‘영적 할례’—즉 영과 양심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순종과 변화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2) 신학적 해석 (핵심 주제별 해설)

1. 율법과 자랑(17–24절) — 지식과 실천의 불일치

바울은 ‘율법을 가진 자’의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합니다. 하나는 지식의 우월감(“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지식을 가진 자”)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의 결여입니다(율법을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은 지키지 않음). 신학적으로 이는 ‘형식적 신앙’과 ‘실제적 경건성’의 분리 문제입니다. 바울의 논지는 강합니다: 종교적 지식이나 전통은 참된 의로움의 보증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지식을 가지고도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욕되게 된다는 것입니다(24절).

2. 판단과 공의(25–27절) — 율법의 목적과 결과

바울은 할례 문제를 통하여 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외적 표식(할례)이 율법 준수와 결합되어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표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표식과 일치하는 삶이 참된 효용을 가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표식은 있으나 그와 반대되는 삶—즉 율법 위반—이 있으면 그 표식은 오히려 무효화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율법의 내적 요구(순종)를 강조하며, 율법의 목적이 단순한 민족적 특권의 확인이 아니라 윤리적·영적 변화를 통한 하나님의 증거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냅니다.

3. 참된 유대인과 참된 할례(28–29절) — 내면성 강조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육체적 혈통으로만 유대인이라 칭함)과 ‘이면적 유대인’(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을 구별합니다. 참된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는 선언은 신약적 영성의 핵심입니다. 이는 바깥의 행위·의례보다 내적 개심과 성령에 의한 삶을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잣대입니다. 칭찬의 원천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밝힘으로써, 바울은 인간의 민족적·종교적 특권을 뛰어넘는 보편적 윤리·영성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4.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보편성

본문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적 메시지는 하나님의 공의는 편파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라고 하여 자동적으로 면책되는 것이 아니며, 이방인이라 해서 무조건 정죄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행위와 양심, 그리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는 로마서 전체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는 기조와 연결됩니다: 외적 특권은 책임을 키울 뿐 면제를 주지 않습니다.


3) 관련 말씀(주요 연관구절과 간단한 메모)

  • 로마서 1:18–32, 2:1–16 —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이방인의 양심 문제와 유대인의 위선 비판(직접적 전개).
  • 로마서 3:1–2, 3:9–20 — 유대인의 특권과 모든 사람의 죄성.
  • 신명기 10:16 / 신명기 30:6 — 마음의 할례(구약에서 이미 내면적 변화를 요구).
  • 예레미야 4:4 / 예레미야 9:25–26 — 외식적 종교를 경계함.
  • 갈라디아서 5:6, 빌립보서 3:3 — 할례의 참된 의미(믿음으로 역사하는 사랑과 영의 예배).
  • 고린도후서 3:6 — ‘문자’가 죽이고 ‘영’이 살게 한다는 대조(외적 준수와 영적 변화의 대조).

(각 구절은 본문을 해설하는데 도움되는 구절들이며, 묵상 시 함께 읽어보면 좋습니다.)


4) 깊이 있는 묵상(개인·공동체 적용을 위한 성찰 포인터)

  1. 자기 점검의 필요성
    • 나는 종교적 전통·지식·예식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 말로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 실제 삶에서 그것을 증거하지 못하는 부분은 없는가?
    • 내 삶이 오히려 다른 이들이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요소는 없는지 겸허히 살펴보십시오.
  2. 외적 표식과 내적 변화
    • 세례·예식·공동체 소속은 은혜의 표지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증거가 되려면 마음의 변화와 일치해야 합니다.
    • ‘형식’이 ‘실질’을 대체할 때 신앙은 병들고 증거는 무너집니다. 내면의 회복을 위한 기도와 실천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3. 겸손과 진정한 선행
    • 하나님의 명령을 가르치는 자일수록 자신의 삶이 그 가르침과 일치해야 할 책임이 큽니다.
    •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4. 보편적 심판과 하나님의 공의
    • 하나님은 외형이나 혈통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겸비해야 합니다.
    • 동시에 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외적 특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은혜가 있습니다.

5) 기도문 (예배·개인 묵상용)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의 허물과 위선을 드러내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말로는 주를 찬양하면서도 우리의 삶으로 주를 영광스럽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나의 입술의 고백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로 인해 주의 이름이 손가락질당하고 모독당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참된 회개를 주소서.

주님, 우리의 외형적 신앙과 의례가 참된 생명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겉치레를 벗겨 마음의 깊은 곳까지 치료하소서. 우리의 심장을 새롭게 하시고, 마음에 할례를 허락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변화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부분들을 밝혀 주시고,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지도자라면 말과 삶이 일치하게 하시고, 평신도라면 지도자들을 존중하되 그들의 삶이 말과 어긋날 때는 사랑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겸손과 진실함을 주소서. 우리의 신앙이 외적 표식에 머물지 않고, 사랑과 공의와 겸손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주님의 공의로 우리를 심판하시되, 긍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셔서 회복과 새 시작을 허락하소서. 우리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이 모독되지 않고, 오히려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며, 이방인들조차 주의 크신 사랑을 보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성령의 할례를 베푸사 겉이 아닌 속에서부터 참된 의가 자라게 하시고, 우리의 행위가 주를 증거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무리(권면)

로마서 2장 17–29절은 신앙의 외형과 내면, 특권과 책임, 지식과 실천의 일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며, 말뿐인 신앙을 버리고 마음의 할례—성령에 의한 내적 변화—를 구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권합니다.

로마서 2:1~16

로마서 2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을 드립니다:


로마서 2:1~16 (개역개정)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로마서 2장 1–16절 묵상: 공의와 인자, 그리고 양심 앞에서 서는 인간

1) 본문 요약

2:1–3 — 판단과 자기정죄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타인을 정죄하는 순간, 우리는 같은 죄를 짓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우월감이야말로 자기기만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시행됩니다.

2:4–5 — 인자하심의 목적과 회개
하나님의 인자(선하심), 용납(관용), 길이 참으심은 방종의 면허가 아니라 회개로 인도하기 위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고하면 그 인자하심의 때가 “진노의 날”을 향한 쌓임으로 변합니다. 인내의 시간은 구원의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책임의 시간입니다.

2:6–11 — 행한 대로 보응과 하나님의 공평성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선을 인내로 행하여 썩지 않을 것을 구하는 자는 영생을, 진리를 거부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가 임합니다. 이 원리는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십니다(편파 없음).

2:12–16 — 율법, 양심, 그리고 최후의 심판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받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라도 양심을 통해 본성적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수 있으며, 그 양심은 때로 고발하고 때로 변명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까지 심판하십니다. 심판의 보좌 한가운데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2) 신학적 해석

(1) 보편적 죄와 보편적 심판

로마서 1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노골적 불의(이방 세계)를 다루었고, 2장에서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자부하는 자(유대인, 혹은 도덕주의자)를 겨눕니다. 죄의 보편성은 “노골적 방탕”과 “정교한 도덕주의”를 모두 포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2:2) 시행되며, 외적 종교 표지나 도덕적 평판은 방패가 되지 못합니다.

(2) 인자하심의 목적: 회개

하나님의 인자, 용납, 오래 참음은 회개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자력입니다(2:4). 은혜는 죄에 대한 면허가 아니라 돌이킴을 촉진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그 인자하심을 “멸시”할 때, 은혜의 시간은 결국 심판의 무게로 되돌아옵니다(2:5). 은혜의 때는 길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그래서 지금이 회개의 날입니다.

(3) “행한 대로 보응”과 복음의 긴장·조화

바울은 분명히 행위에 따른 심판을 말합니다(2:6–10). 그러나 로마서 전체를 보면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3:21–28)을 확고히 선포합니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 칭의의 기준: 오직 그리스도의 의, 믿음을 통한 은혜.
  • 심판의 기준: 믿음이 실제로 낳은 삶의 열매(행위).
    구원은 근원적으로 은혜이고, 심판은 그 은혜가 삶 안에서 실제로 역사했는지를 드러냅니다(참고: 약 2장). 따라서 2:7의 “참고 선을 행함”은 자기 의의 축적이 아니라 은혜가 만들어낸 인내의 궤적입니다.

(4) 율법과 양심: 일반계시와 도덕 책임

율법의 소유 여부가 심판의 유무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가진 자는 그 율법으로, 율법이 없는 자는 양심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뜻으로 심판됩니다(2:14–15). 여기서 바울은 일반계시(창조와 양심)를 통해 모든 사람이 책임 아래 있음을 강조합니다. 양심은 완전한 계시는 아니지만, 도덕 질서의 흔적이며 심판을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5) 심판의 그리스도 중심성

최후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수행됩니다(2:16). 이는 복음의 중심과 심판의 주체가 동일한 분임을 밝힙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동시에 우리의 은밀한 것까지 공의롭게 판결하십니다. 복음은 싸구려 관용이 아니라 거룩한 자비이며, 그 결말에는 빛 앞에 모든 숨김이 드러나는 날이 있습니다.

(6) 공동체 영성: 판단 중지와 자기 성찰

타인을 단정하고 재단하는 영성은 복음과 상극입니다. 판단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기 정죄를 불러옵니다(2:1). 복음적 공동체는 회개로 이끄는 인자하심을 서로에게 나누고, 인내로 선을 행하는 습관을 격려합니다(2:7, 10).


3) 관련 말씀 구절

  • 마태복음 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타인의 티보다 자기 눈의 들보.
  • 로마서 1:18–32: 일반계시와 보편적 불의—2장의 도덕주의 고발과 맞물림.
  • 로마서 3:9–20, 23–24: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 죄 아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의롭다 하심.
  • 로마서 14:10–1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개인적 책임.
  • 요한복음 5:22, 27: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심—그리스도 중심 심판.
  • 고린도후서 5:10: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각 사람이 행한 것에 따라.
  • 베드로후서 3:9: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오래 참음의 목적.
  • 야고보서 2:13: 긍휼이 심판을 이기느니라—자비를 행하는 삶의 필요.
  • 시편 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은밀한 것을 드러내는 기도.
  • 미가 6:8: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의 궤적.

4) 깊이 있는 묵상

묵상 1 — “판단하는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평가합니까? 가족 안에서, 교회 안에서, 온라인 댓글 한 줄에서조차 우리는 재판관이 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판단의 칼은 손잡이 쪽이 나를 향해 있다고. 내가 남에게 적용한 잣대는 곧 내 양심에 부메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타인을 설명하기보다 자기 마음을 성찰하는 데 시간을 더 씁니다. “주님, 저 사람의 허물보다 내 들보를 먼저 보게 하소서.”

묵상 2 — 은혜의 시간은 회개의 시간

하나님이 지금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면허를 주시려는 게 아니라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2:4). 건강, 관계, 직장의 지속, 교회의 인내는 사실 회개로 이끄는 은총의 표지입니다. 은혜의 시간은 길지만 끝이 있습니다. 회개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입니다—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돌아서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묵상 3 — “행한 대로 보응”의 복음적 의미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행위는 무의미한가요? 아닙니다. 구원받기 위한 행위는 무력하지만, 구원받은 자의 행위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2:7은 인내로 선을 행함을 말합니다. 인내는 은혜의 열매요, 선행은 믿음의 호흡입니다. 직장에서의 정직, 가정에서의 헌신, 약자를 향한 실질적 돌봄이 바로 영생을 향한 마음이 드러나는 표지입니다.

묵상 4 — 양심의 훈련: 고발과 변명 사이

양심은 때로 우리를 고발하고 때로 변명합니다(2:15). 양심은 완전하지 않지만, 말씀으로 훈련될 때 더 민감하고 정직해집니다. 오늘 나의 양심은 무엇을 고발합니까? 또 무엇을 변명합니까? 말씀과 성령의 빛 앞으로 나아가, 변명의 소리를 줄이고 진리의 소리를 키우십시오. “주여, 내 양심을 깨끗하게 하소서.”

묵상 5 —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주 앞에서

하나님은 은밀한 것까지 심판하십니다(2:16). 동기는 결과만큼 중요합니다. 사람 앞에서는 선해 보이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영광의 추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와 침묵으로 동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은밀히 드리는 헌신, 아무도 모르게 행한 용서, 이름 없이 쌓은 섬김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늘의 장부는 사람의 박수보다 정직합니다.

묵상 6 — 특권의 책임, 선택의 무게

유대인은 율법을, 이방인은 양심을 받았습니다. 특권은 면죄부가 아니라 책임부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의 접근성, 신학교육, 교회 공동체, 온라인 말씀 콘텐츠는 더 큰 책임을 뜻합니다. 더 아는 만큼 더 사랑하고, 더 받은 만큼 더 나누어야 합니다.

삶을 향한 적용 질문

  1. 최근에 내가 속으로 판단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그 판단의 기준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어떤가?
  2. 하나님이 내 삶에서 오래 참으신 구체적 영역은 무엇인가? 오늘 나는 어떤 방향 전환을 선택할 것인가?
  3. 이번 주 “인내로 선을 행하는” 하나의 실천(시간·돈·재능)은 무엇인가?
  4. 내 양심이 자주 변명하는 습관은 무엇인가? 말씀으로 어떻게 훈련할 것인가?
  5.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은밀히 행할 선 한 가지를 정해보라.

5) 기도문

은혜와 진리의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오래 참으심으로 오늘도 저를 붙들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그 인자하심을 가벼이 여기며 방종의 면허로 사용하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지금 이 시간, 주 앞에서 마음과 길을 돌이켜 회개하게 하소서.

판단의 말과 시선으로 형제를 재단하던 교만을 용서하소서. 남을 정죄하면서 같은 죄를 짓는 이중성에서 구원하소서. 성령께서 제 눈의 들보를 보게 하시고, 자비와 온유로 이웃을 대하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정죄의 문화가 아니라 회개로 초대하는 인자하심의 문화가 되게 하소서.

주님,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씀 앞에서 떨며 서게 하시되, 두려움에 갇히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자유로 살게 하소서. 값없이 의롭다 하신 은혜가 제 안에서 인내로 선을 행하는 열매로 나타나게 하소서. 숨은 곳에서의 정직, 알려지지 않은 섬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주님을 증언하게 하소서.

양심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
제 안의 변명을 거두어 주시고 진리의 빛으로 비추소서. 은밀한 것까지 살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 앞에서 제 동기를 깨끗이 하소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늘의 상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섬기게 하소서.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러움보다 감사가 많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찬양이 넘치게 하소서. 오늘의 선택들이 영원을 향해 정돈되게 하시고, 제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평강을 향해 흐르게 하소서.

우리의 심판주이시며 구주시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로마서 2장 1–16절은 도덕적 자만을 무력화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회개로 해석하게 하며, 믿음이 낳는 삶의 열매를 엄중히 요구합니다. 오늘, 그 인자하심을 멸시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 시작되는 작고 충실한 선으로, 영원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십시오.

로마서 1:18~32

로마서 1장 18절~32절 (개역개정) 본문을 제공드립니다.


로마서 1:18~32 (개역개정)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하실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영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1:18–32 본문 요약·신학적 해석·관련 말씀·묵상과 기도

1) 본문 요약

바울은 복음의 필요성을 밝히기 위해(롬 1:16–17) 곧바로 인간의 보편적 죄 현실을 제시한다(18절). 하나님의 진노는 장차의 심판만이 아니라, 지금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 위에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하나님을 알 만한 흔적은 피조세계 안에 분명히 드러나 있어(19–20절) 누구도 핑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합당하게 영광 돌리거나 감사하지 않고,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졌다(21절). 그 결과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22절)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숭배한다(23절).

이 우상화의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사”(παραδίδωμι, 넘겨 주다)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게 하신다(24절). 그들은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고(25절), 하나님은 그들의 왜곡된 욕망이 스스로의 몸을 욕되게 만들도록 허용하셨다. 이어 바울은 당시 사회에 널리 존재하던 왜곡된 성적 행태를 예로 들며(26–27절), 인간의 욕망이 순리(창조 질서)에 역행하여 서로에게 상처와 보응을 낳는 과정을 묘사한다.

또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상실한 마음(분별력을 잃은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28절). 그 결과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악들이 목록처럼 쏟아져 나온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비방, 교만, 자랑, 악을 도모함, 부모를 거역함,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29–31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이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알고도, 자신만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옳다고까지 한다고 고발한다(32절). 즉, 죄는 행위찬동(정당화)의 층위 모두에서 퍼져 나간다.

핵심은 한 가지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으며(2–3장으로 이어짐) 스스로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므로, 오직 복음—하나님의 의—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결론을 준비한다.


2) 신학적 해석

2.1 하나님의 진노: 보복이 아닌 계시적 거부

여기서 **진노(ὀργή)**는 단순한 격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한 사랑으로 불의를 거절하시는 언약적·도덕적 반응이다. 특히 본문에서 진노는 현재적 차원을 가진다(“나타나나니”). 하나님이 악을 즉시 소멸하지 않으시는 대신, 그 악이 스스로의 결과를 낳도록 허용하심으로(“내버려 두사”) 심판이 역사 속에서도 드러난다.

2.2 일반계시의 책임성과 “핑계할 수 없음”

바울은 창조 세계에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인다고 말한다(20절). 이는 누구나 창조주에 대한 직관과 경외·감사의 응답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응답을 거부할 때 인간은 **지성(생각이 허망)**과 정서(감사 상실), 의지(영광 거부) 모두가 왜곡된다.

2.3 우상숭배: 교환(exchange)의 신학

본문은 죄를 **“교환”(exchange)**의 언어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피조물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진리거짓으로, 창조주피조물로 교환한다(23, 25절). 죄의 본질은 단순한 규범 위반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을 바꾸는 전적 전환이다. 그래서 바울에게 윤리의 출발점은 예배이며, 윤리의 붕괴는 예배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2.4 “내버려 두사”(παραδίδωμι): 방임이자 심판

하나님은 세 번이나 내버려 두셨다고 반복하신다(24, 26, 28절). 이것은 징벌적 허용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강제로가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길이 낳는 자기파괴적 결과를 경험하게 하신다. 이 방임은 동시에 회개로 부르시는 은혜다. 고통이 경종이 되어 복음을 향해 돌아서도록.

2.5 성(性)과 창조 질서

26–27절은 창조 질서(“순리”)에 역행하는 성적 혼란을 예로 든다. 바울의 의도는 특정 집단만을 겨냥한 비난이 아니라, 인간 욕망 전체의 왜곡을 보여 주는 데 있다. 본문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권력·쾌락·지배가 결합된 왜곡된 성문화의 전형을 들며, 죄가 관계를 붕괴시키고 을 상하게 하며 상당한 보응(내재적 결과)을 가져옴을 지적한다. 교회는 이 본문을 해석할 때 진리와 사랑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곧, 창조 신학에 근거한 거룩한 삶을 가르치되, 모든 죄인이 동일하게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복음적 겸손돌봄을 잃지 않아야 한다.

2.6 도덕 감각의 둔화와 사회적 죄의 확산

29–31절의 목록은 개인의 버릇을 넘어 공동체 붕괴를 낳는 죄의 생태계를 묘사한다. 시기–분쟁–사기–비방–배약–무정–무자비는 신뢰를 허물고 사회 자본을 소진한다. 32절은 더 나아가 정당화의 죄(악을 옳다 함)를 말한다. 악이 문화적 합의담론을 통해 정상화될 때, 죄는 구조화되어 개인을 더 강하게 포획한다.

2.7 복음으로의 추진

바울은 1:18–32에서 이방 세계의 죄를 그리지만, 곧바로 2장에서는 유대인 역시 예외가 아님을 말한다. 최종 진술은 3:9–26: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정죄의 목록이 아니라, 복음의 필요를 절감하게 만드는 구원의 서곡이다.


3) 관련 말씀 구절

  • 시편 19:1–4: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 — 일반계시의 근거.
  • 사 44:9–20: 우상의 허망함과 인간의 자기기만.
  • 예레미야 2:11–13: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웅덩이”를 판 백성 — 교환의 신학과 평행.
  • 사 6:3: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 하나님 영광의 본질.
  • 사 5:20: 악을 선하다 하는 자에게 화 — 32절의 정당화와 상응.
  • 사 53:6: 각기 제 길로 — “내버려 두심”의 인간 쪽 묘사.
  • 행 14:15–17; 17:24–31: 창조주 선포와 우상 비판, 회개 촉구.
  • 고전 1:18–25: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의 대조.
  • 엡 4:17–19: 허망한 생각·마음의 굳어짐 — 인식·정서·의지의 왜곡.
  • 딤후 3:2–5: 말세의 자아 중심적 악들의 목록 — 사회적 죄의 생태계.
  • 롬 3:23; 6: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며, 죄의 삯은 사망.
  • 고전 6:9–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 복음의 변혁.

4) 깊이 있는 묵상

  1. 나는 무엇을 ‘교환’하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성공·쾌락·이미지·이념·관계·돈을 위해, 하나님 영광과 진리를 교환하고 있지 않은가. 내 감사는 요즘 어디를 향하는가. 감사가 사라질 때, 마음은 어두워지고 판단은 흐려진다. 오늘 내가 의지하는 보이지 않는 우상은 무엇인가.
  2. 자유처럼 보이는 방임
    하나님이 “내버려 두사” 허용하시는 순간은 때로 자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곧 관계의 상처, 몸의 소진, 양심의 무감각이 따라온다. 하나님 없이 자율을 추구하는 자유는 결국 욕망의 감옥이 된다. 나는 최근에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함”을 보였는가.
  3. 윤리의 근원으로서 예배
    예배가 회복되면 윤리가 따라온다. 주일의 예배가 주중의 삶(말, 거래, 클릭, 관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 예배가 감사영광 돌림의 실천이라면, 나는 일터·가정에서 어떤 감사의 언어영광의 삶을 드러내고 있는가.
  4. 관계와 공동체의 성결
    본문의 죄 목록은 대부분 관계 파괴적이다. 오늘 나는 시기·비방·수군거림에서 자유한가. 타인의 실패에 기뻐하지 않고, 약자를 조롱하지 않으며, 다름을 무정·무자비로 대하지 않는가. 복음은 정죄의 손가락을 거두고, 회복의 손길을 내밀게 한다.
  5. 진리를 사랑하는 용기
    32절은 악을 옳다 하는 문화를 경계한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는 방식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진리를 말하되, 사람을 살리려는 눈물인내로 말하라. 교회는 분별력(진리)과 공감(사랑) 사이의 긴장을 피하지 말고 같이 붙든다.
  6. 복음의 자리를 비워 두지 말라
    이 본문은 우리를 2장3장으로 밀어 넣는다. 자기 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어야 한다. 내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상실한 마음을,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변혁받기 원한다. 오늘 나는 어떤 구체적 습관(말, 소비, 미디어, 관계) 한 가지를 복음 앞에 내려놓을 것인가.

실천 제안(한 주 루틴)

  • 매일 밤, 감사 3가지를 기록(1:21의 반대로 걷기).
  • 하루 한 번, 창조 묵상(하늘·나무·사람의 얼굴) 3분: “주께서 만드셨습니다.”
  • 그날 들은 소문/비방 한 건을 멈추고, 중보기도로 전환.
  • 주 1회, 양심 앞에서 ‘교환 리스트’ 쓰기: 내가 하나님과 바꿔치기한 것들.
  • 관계 속 ‘무정·무자비’를 친절·배려 한 행동으로 바로 상쇄하기.

5)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과 땅에 가득한 주의 영광을 보면서도, 저희는 종종 주께 영광 돌리기보다 피조물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감사해야 마땅하나, 불평과 자기연민으로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지혜롭다 하였으나 어리석었고,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저마다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주님, 저희를 내버려 두심이 은혜의 경종이 되게 하시고, 상실한 마음을 성령으로 새롭게 하소서. 욕망이 자유라 속이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참된 자유를 배우게 하소서. 우리 몸과 관계와 공동체를 거룩하게 지키는 힘을 주옵소서.

저희의 말과 생각과 습관에서 교환의 죄를 끊어 주시고, 예배에서 시작된 영광과 감사가 일상으로 흘러가게 하소서. 시기와 분쟁을 평화로, 비방과 수군거림을 중보와 축복으로, 무정·무자비를 친절과 선행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자랑하게 하시고, 율법의 행위가 아닌 주의 로 서게 하소서. 우리 스스로는 의롭지 않지만, 주의 피와 성령 안에서 씻김·거룩·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회개하고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무리

로마서 1:18–32는 인간의 보편적 타락을 날카롭게 드러내되, 그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복음의 빛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데 있습니다. 예배의 회복—감사의 회복—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길을 오늘 한 걸음부터 실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