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8~17

 

로마서 1장 8절부터 17절까지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아래에 적어드립니다.


로마서 1:8~17 (개역개정)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8절~17절 말씀을 중심으로,
① 본문 요약, ② 신학적 해석, ③ 관련 성경 구절, ④ 깊이 있는 묵상, ⑤ 기도문을 포함하여 정리했습니다.


1. 본문 요약

로마서 1장 8절부터 17절은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중요한 신앙적 고백과 선포를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먼저 바울은 로마 교회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음을 감사하며(8절),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음을 밝힙니다(10절). 그는 로마 교회를 직접 방문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며, 그 이유는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서로 믿음을 격려하고 견고하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11절).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차례 길이 막혀 로마에 가지 못했음을 토로하면서도, 로마 교회에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와 같이 복음의 열매를 맺기를 소망합니다(13절).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인,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에게 빚진 자라 고백하며(14절), 그러므로 로마에 있는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강조합니다(15절). 이어서 그는 복음의 본질을 선포하는데,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은혜라고 선언합니다(16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복음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복음의 핵심을 요약합니다(17절).

즉, 이 본문은 바울의 감사, 기도의 열정, 복음을 향한 사명, 그리고 복음의 본질과 능력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신학적 해석

2-1. 바울의 감사와 기도 (8~10절)

바울은 로마 교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는 믿음이 단순히 개인적 영역을 넘어,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 증거로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은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복음 사역자가 가지는 중요한 자세인 중보기도의 본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 공동체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그 믿음이 더욱 견고히 세워진다는 진리를 발견합니다.

2-2. 신령한 은사와 믿음의 교제

(11~12절)

바울이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르치고 지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는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고자 했으며, 동시에 서로의 믿음을 나눔으로써 “피차 안위함”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성도와 성도가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믿음을 나누며 격려하는 상호적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은사를 독점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눔과 교제가 살아 있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3. 보편적인 빚진 자로서의 사명

(13~15절)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 모두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복음을 맡은 자의 의무와 사명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를 빚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빚을 갚지 않는 것과 같다는 긴박감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 고백은 복음이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보편적 성격을 드러냅니다.

2-4.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

(16~17절)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세상의 눈에 어리석음과 수치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실제로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보편적 구원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구절은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의입니다. 바울은 하박국 2: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인간의 구원은 오직 믿음에 근거한다는 복음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하박국 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이 인용한 말씀으로,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강조합니다.

  •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구원의 능력임을 증거합니다.

  • 갈라디아서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의를 다시금 강조합니다.

  •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선물임을 증거합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로마서 1:8~17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본질과 방향성을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먼저, 믿음의 증거가 세상 가운데 드러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 사회 속에서 증거 되어야 합니다.

둘째, 기도와 교제의 중요성을 묵상하게 합니다. 바울은 끊임없이 로마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서로의 믿음을 나누어 피차 위로받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강화된 시대 속에서,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로 붙드는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셋째,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사명을 묵상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을 받은 자로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입니다. 복음 전파는 선택적 의무가 아니라, 반드시 감당해야 할 빚과 같은 책임입니다.

넷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때로는 조롱과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 앞에서 복음을 당당히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사는 삶의 본질을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믿음은 단순히 과거의 결단이 아니라, 매일매일 삶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지속적인 여정입니다.


5.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로마서 1장 8절부터 17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다시 세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바울이 로마 교회의 믿음을 인하여 감사했듯이, 저희의 믿음도 세상 가운데 증거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복음의 향기가 되어, 가정과 직장, 사회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또한 바울처럼 기도의 사람, 중보의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나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교회와 형제자매, 복음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로 늘 깨어 있게 하시고, 서로 믿음을 나누며 격려하는 공동체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도 복음의 빚진 자임을 고백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값없이 받았으니, 이제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조롱과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의는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부터 오는 줄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로마서 1:1~7

로마서 1장 1절부터 7절까지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로마서 1:1~7 (개역개정)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1–7 본문 묵상 — 복음의 기원, 그리스도의 신분, 그리고 ‘믿어 순종’의 소명

본문 요약

로마서의 서두(1:1–7)는 편지 전체의 신학을 농축한 서론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된 자로 소개합니다(1절). 이 복음은 즉흥적인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된 것으로, 구약의 약속과 연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입니다(2절). 복음의 중심은 “그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입니다. 예수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참사람이시며(3절), 동시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참하나님입니다(4절). 바울과 동역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고, 그 목적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5절). 로마의 성도들 역시 그 부르심 안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6절)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7절). 바울은 마지막으로 사도적 축복—“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선언하며 인사합니다(7절).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울은 구약에 약속된 복음, 곧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부름받았고, 그 복음을 통해 모든 민족 가운데 ‘믿어 순종’이 일어나도록 로마의 성도들을 격려하며 축복한다—입니다.

신학적 해석

1) 바울의 정체성: 종(δοῦλος)과 사도(ἀπόστολος)

바울은 첫머리에서 ‘종’과 ‘사도’라는 두 축을 함께 놓습니다. ‘종’은 전적 소속과 복종을, ‘사도’는 파송과 권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권위 이전에 소속이 분명하고, 사명 이전에 주인의 뜻에 복종합니다. 이 역설—낮아짐이 곧 권위의 근거가 됨—은 바울 신학의 윤리적 토대를 이룹니다. 또한 “택정”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발을 강조합니다(갈 1:15의 ‘모태로부터 택하심’과 상응).

2) 복음의 기원: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오래된 새 소식

복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뉴스가 아니라, 선지자들의 예언(사 7:14; 9:6–7; 11:1; 렘 31:31–34; 겔 36:26–27)과 다윗 언약(삼하 7장)에 박힌 씨가 때가 차매 싹튼 결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신앙은 구약의 이야기와 단절된 새 종교가 아니라, 약속-성취의 드라마를 잇는 연속성의 신앙입니다. 바울은 이 연속성을 통해 로마의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를 한 복음 안에 묶어냅니다. “성경에”라는 말은 복음의 객관적 기준과 공적 검증 가능성을 함의합니다. 개인 체험은 복음을 증명하지 않고, 성경이 복음을 증언합니다.

3) 그리스도의 두 본성: 다윗의 씨와 부활로 선포된 하나님의 아들

3–4절은 기독론의 정점입니다. 3절은 예수의 인성—역사 속 혈통, 다윗의 계보, 약속된 메시아성—을, 4절은 예수의 신성—부활로 ‘능력으로’ 공시된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성령의 사역을 지시하며, 부활 사건이 그리스도의 정체를 만천하에 확증하는 결정적 계시였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양극단을 피합니다. 예수는 ‘단지 위대한 인간’도, ‘겉보기만 인간’인 신도 아닙니다. 참사람이신 동시에 참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은 그분의 아들 되심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본질의 변화가 아님), 공적으로 ‘선포’(ἀποδεικνύς/ὁρίζω의 뉘앙스)한 계시적 사건입니다.

4) 은혜와 직분: 목적은 ‘믿어 순종’

5절은 바울의 사역론을 응축합니다. 사도직은 특권이 아니라 ‘은혜’이며, 목표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하나님 중심성, 그리고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라는 선교적 지평입니다. “믿어 순종”(ὑπακοὴ πίστεως)은 믿음과 순종을 분리하지 않는 바울적 표현입니다. 믿음은 내면의 동의에서 그치지 않고, 주권적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삶의 방향을 재배치합니다. 복음은 정보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5) 교회의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6–7절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세 가지 표지를 부여합니다. (1) 그리스도의 소유(“예수 그리스도의 것”), (2) 하나님의 사랑(“사랑하심을 받고”), (3) 성도의 소명(“성도로 부르심”). 교회는 자기 소유가 아닙니다. 소유권이 그리스도께 있으므로, 정체성의 근거도 성취의 동력도 주님께 있습니다. ‘성도’는 도덕적 완벽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된 자라는 소명적 호칭입니다. 초대 로마 교회는 황제 숭배의 한복판에 있으나, 바울은 그들을 ‘카이사르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라 부릅니다. 이 명명 자체가 저항입니다.

6) 사도적 축복: 은혜가 평강을 낳는다

마지막 인사에서 “은혜와 평강”의 순서는 신학적입니다. 은혜(하나님의 선행적 호의)가 평강(샬롬—하나님과의 화목, 관계의 회복, 존재의 온전함)을 산출합니다. 우리는 종종 평강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려 하지만, 복음은 은혜가 먼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두 위격의 공동 주권 아래서 흘러옵니다. 바울의 고백은 삼위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예비적으로 비춥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사무엘하 7:12–16: 다윗 언약—“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예수의 다윗적 메시아성의 기원.
  •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메시아의 영적 권능.
  • 시편 2:7: “너는 내 아들이라”—왕-아들의 칭호가 메시아에게 응집.
  • 시편 110:1: “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메시아의 주권과 승귀.
  •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역사적 뿌리.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성육신의 신비.
  • 로마서 1:16–17: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서론의 연장선.
  • 고린도전서 15:3–4: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약속-성취 구조.
  • 빌립보서 2:6–11: 낮아지심과 높아지심—그리스도의 겸손과 승귀.
  • 사도행전 9장: 바울의 소명—은혜로 부름받은 사도의 원형.
  • 에베소서 2:8–10: 은혜로 구원, 선한 일로 보이는 순종—‘믿어 순종’의 전개.
  • 베드로전서 2:9: 선택과 소명—“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 디모데후서 2:8: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를 기억하라—핵심 복음의 요약.

깊이 있는 묵상

1) ‘종’의 자유, ‘사도’의 담대함

세상은 ‘자기 결정’이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 됨에서 참자유를 배웁니다. 주인을 바꾸면 사슬이 풀립니다. 주님께 속할 때 사람의 평판, 시대의 조류, 내면의 변덕에서 자유해집니다. 오늘 나는 누구의 시선 아래 살고 있는가? 내 선택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뜻인가, 나의 자아 강화인가—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사도’의 담대함은 ‘종’의 복종에서 나옵니다. 무릎 꿇는 자리에서만 일어설 힘이 생깁니다.

2) 새것이지만 낯설지 않은 복음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복음은 새로우나 낯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말씀하셨고,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경험의 신비화’가 아니라 ‘말씀의 내면화’에서 자랍니다. 감정의 파도보다 약속의 닻을 깊이 내릴 때, 우리의 믿음은 사계절을 견딥니다. 오늘 내 믿음의 닻은 어디에 내려져 있는가? 위로와 확신이 흔들릴 때, 말씀의 연속성에 기대어 다시 중심을 잡읍시다.

3) 다윗의 씨—구체성, 부활의 주—확실성

예수의 정체성은 신학적 추상이 아니라 역사적 구체성(다윗의 혈통)과 구속사적 확실성(부활의 공적 선포)이 만나는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신앙은 막연한 종교심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 개입하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기독교는 ‘느낌의 종교’가 아니라 ‘사건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간증도 “내가 이렇게 느꼈다”를 넘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행하셨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4) ‘믿어 순종’: 믿음과 삶의 재배치

바울은 믿음과 순종을 한 몸처럼 묶습니다. 믿음은 생각의 동의서가 아니라, 왕권 아래로 들어가는 전역지(轉役紙)입니다. 주인이 바뀌면 시간표, 지출, 관계, 말습관이 재배치됩니다. 내 삶에서 복음이 옮겨 앉은 자리는 어디인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안식과 집중), 돈을 쓰는 방식(관대함과 정직), 말을 하는 방식(진실과 온유)에서 복음의 주권이 보이는가? ‘믿어 순종’은 작은 습관들 속에서 증명됩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가장 큰 위로

로마의 성도들은 제국의 심장부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 부릅니다. 이 호칭은 정체성의 문패이자 안전장치입니다. 우리는 성취와 실패, 칭찬과 오해 사이를 오가지만, 소유권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수증에 찍힌 도장은 십자가와 빈 무덤입니다. 오늘 나의 자기 호칭을 바꾸어 보십시오. “나는 피곤한 직장인/부모/사역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때 성도의 일상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 됩니다.

6) 은혜가 먼저, 그래서 평강이 가능

평강을 얻기 위해 더 애쓰라는 메시지는 종교가 주는 무거움입니다.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은혜가 먼저이므로 평강이 가능합니다. 용납이 먼저이므로 변화가 뒤따릅니다. 선행적 은혜가 우리의 존재를 붙들 때, 내적 긴장은 완화되고, 타인에 대한 방어는 낮아집니다. 오늘 스스로를 다그치며 평강을 짜내려 했다면, 다시 은혜의 샘으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이 먼저 하셨고, 지금도 하십니다.

7) 공적 복음, 공적 순종

“모든 이방인 중에서”라는 표현은 복음의 공적 지평을 강조합니다. 복음은 사적인 위안만이 아니라, 도시와 문화와 직장 속에서 모습을 갖춥니다. 우리는 진실, 정의, 자비를 실천함으로 ‘왕의 통치’를 가시화합니다. 직업윤리, 약자 보호, 정직한 세무, 깨끗한 언어, 화해의 중재—이 모든 작은 공적 순종이 복음의 향기를 퍼뜨립니다. 로마 한복판에서도 가능한 일이 오늘 우리의 도시에서도 가능합니다.

8) 부르심의 위계: 소명은 성과보다 앞선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일의 성과보다 먼저 사람을 부르십니다. 소명은 성취의 전제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성과가 있어야 소명이 증명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소명이 있기에 성실히 걷는다’고 말합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 성실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도 불확실한 결과 앞에서 소명에 충실합시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내가 실제로 의지하고 두려워하는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종 됨이 나의 결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습니까?
  2. 말씀의 연속성(약속-성취) 위에 믿음을 세우기 위해, 이번 주에 어떤 본문을 깊이 읽고 암송하겠습니까?
  3. ‘믿어 순종’이 내 시간/돈/말/관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한 가지 습관은 무엇입니까? 오늘 어떤 작은 실행을 시작하겠습니까?
  4. 나의 자기 호칭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꾼다면, 어떤 염려가 덜어지고 어떤 용기가 생기겠습니까?
  5. 평강을 구하기 전에 은혜를 다시 믿기 위해, 매일의 기도에 어떤 복음 진술을 덧붙이겠습니까?

기도문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로마서의 서두를 통해 복음의 중심을 다시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 부른 것처럼, 저도 오늘 나의 주권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이 나의 기준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이 나의 동력이 되게 하소서.

주님,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복음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시대와 임금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약속 위에 제 믿음의 닻을 굳게 내리게 하소서. 감정의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말씀의 반석 위에 다시 서게 하시고,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는 사람 되게 하소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참사람 예수님,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 있게 선포되신 참하나님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성령이여, 그 부활의 권능으로 오늘 내 안에 죽은 것들을 일으켜 주옵소서—식은 사랑, 굳은 마음, 무기력한 순종을 살려 주소서.

주님,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주신 목적이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는 데 있음을 기억합니다. 내 믿음이 말로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시간과 돈과 관계에서 주님의 통치가 보이게 하소서. 작은 순종이 모여 큰 영광을 이루게 하소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주셨던 정체성을 제게도 새겨 주옵소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 이름으로 오늘을 살게 하시고, 이 이름으로 시험을 이기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제 마음과 가정과 공동체에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은혜가 평강을 낳는 복음의 질서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 평강으로 세상을 섬기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에스겔 24:15~27

에스겔 24장 15절부터 27절까지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전해드립니다.


에스겔 24:15~27 (개역개정)

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순간에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며

17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사람의 장례를 위하여 애곡하지 말며 네 머리 장식을 동이고 네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18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명령 받은 대로 행하매

19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하는 일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성소를 더럽히리니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의 아낌이 된 것이며 너희 아들딸을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22 그 때에 너희가 에스겔이 행한 것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우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23 너희 머리 장식을 동이고 너희 발에 신을 신고 슬퍼하여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서 쇠패하여 피차 바라볼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24 이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징조가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르면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25 인자야 내가 그들의 견고한 성소를 빼앗을 때 곧 그들의 세력의 영광이요 그들의 눈의 기쁨이며 그들의 마음의 아낌이며 또한 그들의 아들딸을 빼앗을 때에

26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와서 네 귀에 그 소식을 전하리라

27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벙어리 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말하고 그들에게 징조가 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스겔 24장 15절~27절을 바탕으로, 본문 요약 → 신학적 해석 → 관련 말씀 구절 → 깊이 있는 묵상 → 기도문 순서로 글을 정리했습니다.


에스겔 24장 15절~27절 말씀 묵상

1. 본문 요약

에스겔 24장 15절부터 27절은 선지자 에스겔의 삶에서 가장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 중 하나를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네 눈의 기쁨”이라고 표현되는 아내를 갑자기 빼앗겠다고 말씀하십니다(16절).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곡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슬픔의 표현인 울음, 통곡, 애도의 의식을 금하시고, 오히려 머리에 장식을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며 애도할 때 먹는 위로의 음식도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17절).

실제로 에스겔은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날 저녁에 그의 아내가 죽습니다. 그는 아침에 명령받은 대로 행동합니다(18절). 이를 본 백성은 큰 의문을 품고, 그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묻습니다(19절).

이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눈의 기쁨”이요, “영광의 세력”이며, “마음의 아낌”이던 성소를 더럽히시고 무너뜨리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또한 그들의 아들과 딸들도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경고하십니다(21절).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은 에스겔처럼 애통할 여유도 없이 멸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죄악 가운데 쇠잔하며 슬퍼할 힘조차 잃게 될 것입니다(23절).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의 죽음과 그에 대한 애곡 금지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징조를 보이십니다. 에스겔이 입을 닫고 있다가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도망자가 전하는 날에 그의 입이 다시 열리며 백성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27절).


2. 신학적 해석

1) 선지자의 삶이 곧 메시지가 됨

에스겔은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삶과 고통까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개인적 비극조차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상징하는 “징조”로 사용됩니다. 선지자의 삶이 하나님의 계시의 무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이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 성소의 상실과 영적 황폐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너희 눈의 기쁨”, “세력의 영광”, “마음의 아낌”이라고 표현하십니다(21절). 이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체성, 희망, 그리고 신앙적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소조차 우상 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해 무너질 운명에 처했습니다. 백성들은 성소가 파괴되는 날, 애통할 겨를도 없이 절망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진정한 중심이 아니라, 성소라는 형식과 제도가 그들의 자랑이 되어버린 결과입니다.

3) 슬픔의 부재와 죄의 결과

에스겔에게 애곡을 금지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이 맞이할 멸망이 너무나 철저하여 울 힘조차, 장례를 치를 여력조차 없을 것을 상징합니다. 죄로 인해 맞게 되는 심판은 눈물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올 수조차 없는 철저한 황폐로 이끕니다.

4)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의 목적

에스겔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입니다(24절, 27절).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하는 도구입니다. 아내의 죽음을 통해, 성소의 파괴를 통해, 자녀들의 상실을 통해 이스라엘은 마침내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1. 레위기 26:31 – “내가 너희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하리니 내가 너희의 향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 에스겔의 말씀처럼, 성소는 불순종 가운데 버려지고 황폐하게 될 것을 이미 경고하셨음.
  2. 예레미야 7:4 – “이는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 성소 자체에 집착하는 신앙의 허상을 지적. 하나님과의 관계 없는 성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
  3. 시편 137:1 –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예루살렘 멸망 후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할 깊은 슬픔을 보여줌.
  4. 누가복음 19:41-44 –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며, 장차 멸망할 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심.
    → 에스겔 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도시의 종말을 보여줌.

4. 깊이 있는 묵상

에스겔 24장 15절~27절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매우 도전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종은 자신의 삶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스겔의 아내의 죽음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조차 사용하셔서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삶의 기쁨과 고통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위해 “말씀”은 드릴 수 있어도, “삶”을 드리기는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자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쁨과 고통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신앙의 중심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성소를 자랑했지만, 성소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의 외형이나 제도, 건물, 전통에 집착하고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다면, 그것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회 건물, 프로그램, 전통, 직분 등이 하나님보다 더 중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의 허상을 무너뜨리실 수 있습니다.

셋째, 죄는 눈물조차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슬퍼할 힘조차 남지 않을 정도의 황폐함은 죄의 종착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회개할 수 있을 때 회개하라, 울 수 있을 때 울라,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키라. 멸망의 순간에는 눈물조차 사치가 됩니다.

넷째, 하나님의 심판조차 목적은 회복과 깨달음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스겔은 반복해서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라는 선언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끝내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심판은 파괴가 아니라 구원으로 이끄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말씀 속에서도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오늘 에스겔의 삶 속에 나타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깊은 뜻을 묵상합니다.

주님, 에스겔이 가장 사랑하던 아내를 잃는 고통조차 주님의 메시지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며, 제 삶의 모든 영역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 기쁨도, 제 눈물도, 제 상실도,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이스라엘이 성소를 자랑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었듯이, 저 역시 신앙의 외형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교회의 건물이나 전통, 직분이나 사역이 제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 한 분만이 제 믿음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죄가 우리를 황폐하게 만들고, 울 힘조차 빼앗아 간다는 말씀을 깊이 붙듭니다. 아직 회개할 수 있는 이 시간에 제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고, 눈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무너지는 성소와 사라지는 기쁨 속에서도, 결국 주님은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말씀하십니다. 제 인생의 모든 일들을 통해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24:1~14

에스겔 24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4:1~14 (개역개정)

  1. 제9년 열째 달 열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 날 곧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온 바로 이 날을 기록하라
  3. 너는 이 반역하는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솥을 걸라, 솥을 걸고 물을 붓고
  4. 양 떼에서 고기를 하나하나 골라 잡아 좋은 양 뼈를 그 안에 모아 넣으며
  5. 고른 것을 가져다가 그 솥에 채우고 뼈로 국물을 끓이라’ 하셨다 하고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화 있을진저 피 흘린 성읍이여 그 솥 곧 녹이 그 속에 있고 그 녹을 벗기지 아니하였도다 제비 뽑지 말고 그 고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라
  7. 그 성 중에 피를 흘렸음이여 그것을 땅 위에 쏟고 티끌로 덮지도 아니하였도다
  8. 내가 그 피를 성 위에 쌓아 두어 진노하게 하며 보응하게 하였노니
  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화 있을진저 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큰 불무기를 쌓아 올리리라
  10.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고기를 삶아 국물을 진하게 하고 뼈를 태우고
  11. 빈 솥을 숯불 위에 놓아 달아 오르게 하며 그 속에 있는 녹을 녹게 하며 그 녹이 소멸되게 하라
  12. 그러나 그 많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 두터운 녹은 벗겨지지 아니하고 불에 그 녹이 없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네 더러운 음행이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가 깨끗하게 되려 하지 아니하므로 네 더러움이 이제 다시는 네게서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내 분노를 네게 발하여 네가 평안하였을 때까지 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루어지고 내가 행하리니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아니하리라 네 행위대로 네게 심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24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구절, 깊이 있는 묵상, 그리고 기도문입니다.

1) 본문 요약

에스겔은 포로지에서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며(24: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날은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에워싼 날입니다(24:2).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피 흘린 성읍”으로 규정하시고, 솥과 고기의 비유를 명하십니다(24:3-5). 큰 솥을 걸고 물을 붓고, 양 떼 가운데서 좋은 고기, 좋은 뼈를 골라 넣어 끓이게 하시는데, 이는 성읍과 그 안에 사는 지도층과 백성을 상징합니다. 이어 하나님은 “제비 뽑지 말고 고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라”(24:6) 하시니, 차별 없이 심판이 미칠 것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은 피를 흘렸고 그 피를 땅에 쏟아 흙으로 덮지도 않았으므로(24:7) 하나님은 그 피를 성 위에 드러내어 진노와 보응을 일으키십니다(24:8).
하나님은 “큰 불무기를 쌓아 올리라”(24:9-10) 하시며 고기를 삶고 뼈까지 태우라 하십니다. 그리고 빈 솥을 숯불 위에 올려 달아오르게 하여 솥 안의 두터운 녹(부식, 때)을 태워 없애라 하시지만(24:11), “그 많은 수고에도” 녹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24:12). 이는 예루살렘의 뿌리 깊은 죄악과 오염이 쉽게 정화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네 더러운 음행” 때문에 정결케 하려 하였으나 너희가 거부하였으므로(24:13) 아끼지도, 돌이키지도, 뉘우치지도 아니하시고(24:14)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1) 날짜 표기: 역사 속에서 검증 가능한 계시

본문은 “제9년 열째 달 열째 날”이라는 구체적 날짜로 시작합니다(24:1). 성경의 계시는 신화적 시간 밖에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예언의 진실성과 검증 가능성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심판이 막연한 협박이 아니라 언약 위반의 실재적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2) 솥과 고기: 공동체 전체가 끓는 심판의 열기 속에

솥은 예루살렘을, 고기와 뼈는 그 안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24:3-5). 과거 일부 거짓 선지자들은 “이 성은 솥, 우리는 고기”라며(참조: 겔 11:3) 성읍의 견고함 속에서 안전을 주장했지만, 하나님은 그 비유를 반전시키십니다. 솥은 안전의 상징이 아니라 심판의 가마솥이 되고, 그 안에서 모든 신분과 계층(“좋은 고기”, “좋은 뼈”)이 끓는 열기에 노출됩니다. 제비를 뽑지 말라는 명령(24:6)은 심판의 선택이 임의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보편적·포괄적으로 미칠 것임을 나타냅니다.

(3) 피 흘린 성읍: 공개적 죄와 덮지 않은 피

예루살렘은 피를 흘리고도 “티끌로 덮지도 않았다”(24:7)고 고발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피를 땅에 쏟을 때 그것을 흙으로 덮는 규례(레 17장 맥락)가 있었는데, 이는 생명의 존귀함과 죄책의 가리움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죄를 저지른 뒤 숨기거나 회개하지도 않았고, 되레 죄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입니다(“성 위에 피를 쌓아 두어”, 24:8). 하나님은 그 피를 그대로 증거물로 삼아 심판하십니다. 죄책을 가볍게 여기고 공적 정의를 유린한 결과입니다.

(4) 불무기와 빈 솥: 정화의 의도, 그러나 고집스러운 불순

하나님은 솥을 달구어 **녹(때, 부식)**을 태워 없애라 하십니다(24:11). 이는 심판이 단지 파괴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정화와 정결의 목적을 지닌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수고에도” 녹이 벗겨지지 않는 현실(24:12)은, 공동체의 죄가 구조적이고 만성적이며 표면 치료로 해결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여러 차례 경고와 징계를 통해 정결케 하려 하셨지만(24:13), 백성은 깨끗해지기를 원치 않았다고 진술됩니다. 심판의 불이 정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완악함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변함없는 의지: 자비의 시한이 끝날 때

“돌이키지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아니하리라”(24:14)는 선언은 냉혹함의 과장이 아니라, 오랜 인내 끝에 내린 공의의 집행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오래 참으시는 분으로 증언하지만, 동시에 언약의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증언합니다. 자비의 창이 닫히는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의 모순이 아니라, 거룩과 사랑, 공의와 인내가 하나님의 한 인격 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네 행위대로”(24:14)는 보응의 원리를 밝히며, 심판이 임의적 분노가 아니라 공정한 심판임을 천명합니다.

(6) 언약소송(covenant lawsuit)의 정점

에스겔서 전반에 흐르는 언약소송의 논리가 여기서 절정에 이릅니다. 예루살렘의 피 흘림(사회적 불의), 음행(우상 숭배), 회개 거부(완악함)는 신명기적 언약의 저주(신 28장)의 집행 사유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언약의 진지함을, 그리고 남은 자를 통해 자비의 통로를 보존하십니다. 본문은 회복의 약속(겔 36장)을 당장 말하지 않지만, 불로 달구는 빈 솥의 이미지는 언젠가 정말로 벗겨질 녹을 예고합니다. 그 길은 강제된 평안이 아니라, 회개로 응답한 순종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겔 11:2-12 — “이 성은 솥, 우리는 고기”라는 왜곡된 안전 신화를 꾸짖으시는 말씀.
  • 렘 1:13-15 — “북방으로부터 끓는 가마” 환상: 심판이 북쪽에서 임함.
  • 사 1:21-26 — 피 흘린 성읍이 된 예루살렘과, 순수한 은을 다시 제련하시겠다는 약속.
  • 신 28장 — 언약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복과 저주).
  • 잠 1:24-31 — 권고를 멸시한 자에게 닫히는 지혜의 문.
  • 롬 2:5-6 — 완고함으로 진노를 쌓는 사람,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 말 3:2-3 — 정금같이 연단하시는 정화의 불.
  • 벧전 1:6-7 — 불로 연단되어 정금보다 귀한 믿음의 시련.
  • 애 1–2장 — 피 흘린 성읍이 겪는 역사적 파괴의 현장(심판의 결과에 대한 탄식).

4) 깊이 있는 묵상

① ‘정확한 날짜’의 말씀 앞에 서기
하나님이 날짜까지 기록하게 하신 것은, 말씀이 추상적 교훈이 아니라 현실에 박힌 진실임을 뜻합니다. 우리는 영적 경고를 “언젠가”의 문제로 미루며 오늘을 허비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실 때, 나는 즉시 회개와 순종으로 응답하는가? 이번 주 내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시 95:7-8)의 태도로 살 결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② ‘피를 덮지 않음’과 공개된 죄
예루살렘은 피를 흘리고도 덮지 않았습니다. 죄를 회개로 덮는가, 아니면 합리화와 뻔뻔함으로 드러내는가가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을 가릅니다. 우리의 말, 글, 클릭, 결재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생명과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지 점검합시다. 특히 공적 책임(가정, 직장, 교회, 사회)을 가진 자일수록 피 흘림의 구조에 동조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③ 솥의 열기: 불편함을 피하려는 안전 신화의 붕괴
“이 성은 솥, 우리는 고기”라는 거짓 안전은 하나님의 열기 앞에 무너집니다. 신앙을 불편함 회피의 장치로 사용하는 순간, 복음은 나를 보호하는 ‘뚜껑’이 아니라, 나를 정화하는 불로 임합니다. 예배와 말씀, 징계와 훈련이 나를 달구어 녹을 벗겨내는 과정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가?

④ 빈 솥의 정화: 형식과 구조의 갱신
하나님은 고기를 다 꺼낸 뒤 빈 솥 자체를 달굽니다. 사람만 바뀐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도, 문화, 습관, 시스템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달궈져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규칙, 교회의 운영 문화, 직장의 관행, 온라인 사용 습관은 복음 앞에서 재정렬되고 있는가? “빈 솥을 달군다”는 명령은 관성의 구조까지 복음의 불로 재조형하라는 초대입니다.

⑤ ‘그 많은 수고에도’ 벗겨지지 않는 녹
우리의 자기계발과 종교적 열심이 있어도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 힘으로 벗겨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정화는 인간의 기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로 일어납니다. 은혜의 불길에 자신을 오래 머물게 하는 인내(말씀 묵상, 숨김없는 고백, 지속적 순종)가 필요합니다.

⑥ ‘돌이키지 않으심’과 복음의 긴박함
하나님의 인내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자비의 문이 닫히기 전에, 우리는 오늘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문이 닫히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절망 대신 복음의 길을 봅니다. 그 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열렸고, 십자가에서 피가 흘려지고 덮였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24장의 공의는 십자가에서 충족되고, 성령의 불이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회개는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을 품고 나아가는 길입니다.

⑦ 개인 묵상을 위한 질문들

  • 나는 최근에 어떤 죄를 “덮지 않고” 공개적으로 합리화했는가? 지금 회개와 복원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가?
  • 내 삶의 어떤 ‘솥’(관계, 시스템, 문화)이 달궈져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세울 것인가?
  •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동안, 나는 그 은혜를 어떻게 남용했는가 혹은 성화로 연결했는가?
  • 정화의 불을 견디기 위해, 이번 주에 실천할 작은 순종 하나는 무엇인가?

5) 기도문

주 여호와 하나님,
역사 한복판에서 날짜를 새기며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오늘 제 마음판에도 새겨 주옵소서. 에스겔이 기록한 그날처럼, 오늘 제게 임하시는 성령의 경고를 미루지 않고 겸손히 받게 하소서.

주님, 저는 종종 안전을 구실로 불편함을 회피해 왔습니다. 예배의 솥 안에 숨으며, 말씀의 열기를 적당히 식히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달구시는 정화의 불 앞에 제 마음을 내어놓습니다. 제 안의 두터운 녹, 뿌리 깊은 교만과 자기의, 그리고 타인을 향한 냉정함과 방치의 죄를 불로 태워 주소서.

피를 흘리고도 덮지 않았던 예루살렘처럼, 제가 저질렀거나 방조한 피 흘림의 구조를 보게 하시고, 침묵과 합리화로 덮어 온 죄를 회개로 덮게 하소서. 고백과 책임, 그리고 가능한 범위의 회복의 실천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며, 피해와 상처 앞에 지체하지 않고 움직이게 하옵소서.

주님, 사람만 바뀌면 나아질 것이라 믿었던 저의 단순함을 버립니다. 제 가정과 교회와 일터의 빈 솥을 달구어 주소서. 습관과 제도와 문화의 녹을 벗겨 주시고, 복음의 질서와 성령의 열기로 새 틀을 빚어 주소서. 제가 먼저 그 불을 견디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본이 되게 하옵소서.

“많은 수고에도” 벗겨지지 않는 녹을 보며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불이,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식으로 정결케 하심을 믿습니다. 제가 할 일은 주의 음성에 즉시 순종하고, 은혜에 오래 머무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말씀과 기도, 성도의 교제와 섬김 속에서 성령의 불이 식지 않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주님의 공의 앞에서 떨며, 십자가의 자비 앞에서 안식합니다.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는 엄중한 선언이 제 영혼을 각성케 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열어 놓으신 은혜의 문으로 달려가게 하소서. 오늘, 지금, 여기서 회개와 순종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23:36~49

에스겔 23장 36절~49절 개역개정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3:36~49 (개역개정)

36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심판하겠느냐 그런즉 그들에게 그들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라

37 그들이 행음하였음이라 그들의 손에 피가 있으며 또 그 우상들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위하여 그 우상에게로 지나 불 가운데로 들여보냈으며

38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그들이 같은 날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39 그들이 자녀를 그 우상들에게 도살한 그 날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히되 내 집 가운데서 그렇게 하였도다

40 또 사절을 먼 곳에 보내 사람을 불러오되 그들이 와서 네게 위하여 목욕하고 눈을 그리며 스스로 꾸미고

41 화려한 자리에 앉아 앞에 상을 차리고 내 향과 내 기름을 그 위에 놓고

42 그 무리와 함께 즐기며 그 무리 중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며 또 광대들을 청하여 광야에서 온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팔찌를 주며 아름다운 왕관을 그 머리에 씌웠도다

43 내가 말하되 늙은 창녀가 그래도 행음하리라 하였더니

44 사람이 창녀에게 들어가듯 하였은즉 그들이 오홀라와 오홀리바 음란한 여인에게 들어갔음이라

45 의로운 사람들이 음란한 여자들을 심판하듯 그들을 심판하리니 이는 그들이 간음한 여자이며 그들의 손에 피가 있음이라

4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들을 회중을 불러 모아 두렵게 하고 노략하게 하라

47 회중이 돌로 그들을 치며 칼로 찍어 죽이고 그 자녀를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48 이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하여 모든 여인이 스스로 경계하여 너희 음란을 본받지 않게 하리니

49 그들이 너희 음란의 죄를 너희에게 보응할지라 너희가 너희 우상의 죄를 담당할지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에스겔 23장 36–49절 본문 요약·신학적 해석·관련 말씀·묵상·기도문

1) 본문 배경과 맥락

에스겔 23장은 상징적 인물 오홀라(사마리아, 북이스라엘)와 오홀리바(예루살렘, 남유다)를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과 피 흘림을 고발합니다(23:4). 두 이름은 각각 “자기 장막(her own tent)”과 “내 장막이 그 안에 있다(my tent is in her)”를 뜻하여, 특히 예루살렘은 성전(여호와의 장막)을 가진 도시로서 더 큰 책임을 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36–49절은 앞서의 고발을 정리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이유와 목적을 선언합니다.

2) 본문 요약 (23:36–49)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심판하라고 명하시며, 그들의 가증한 일을 밝히라고 하십니다(36절). 핵심 죄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적·윤리적 음행—우상들과의 간음으로 표현된 언약 배반(37, 44절).
둘째, 피 흘림—“그들의 손에 피가 있다”(37, 45절). 특히 자녀들을 우상에게 바치는 어린 생명 살해가 포함됩니다(37, 39절).

그들의 죄의 모순은 극명합니다. 같은 날 우상에게 자녀를 바치고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와 성소를 더럽히고 안식일을 범했습니다(38–39절). 또한 그들은 원방의 사람들을 불러 화장하고(눈을 그리며) 스스로 꾸미고, 화려한 자리에 앉아 잔치와 방탕을 즐깁니다(40–42절). 이는 외교적 밀월과 향락으로 표현된 이방 의존·동맹의 유혹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처럼 그들을 심문하시고(45절), 회중을 불러 돌로 치고 칼로 벌하며 집들을 불사르는 엄중한 심판을 선포하십니다(46–47절). 심판의 목적은 파괴 그 자체가 아니라,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하여 모든 이가 경계하게 하려는 교육적·정화적 목적입니다(48절). 결국 그들은 자기 우상의 죄를 담당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성취됩니다(49절).

3) 신학적 해석

(1) 언약 배반으로서의 ‘음행’

‘음행’은 단지 성적 일탈의 은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과 결합한 상태를 뜻합니다(호 2장 참조). 예루살렘은 “내 장막이 그 안에 있다”는 이름처럼 특별한 임재의 특권을 받았지만, 그 특권을 면죄부로 오해하고 더 깊은 배교로 나아갔습니다.

(2) 종교와 윤리의 분리 비판

같은 날 자녀를 우상에게 바치고도 성소에 들어온 모순(38–39절)은 **의식(예배)**과 **윤리(정의·생명 존중)**를 분리하는 위선을 폭로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생명 보존과 정의의 실천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사 1:13–17).

(3) ‘안식일’의 사회·영적 의미

안식일을 범한 죄는 단지 휴식 규정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구속 질서 전체를 무시한 행위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 주권과 백성의 신분(해방된 자)**을 기념하는 날입니다(출 20:8–11; 신 5:12–15). 우상 숭배와 피 흘림이 안식일 모독과 결합될 때, 공동체의 근간이 무너집니다.

(4) 어린 생명 살해의 신학적 중대성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는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극악한 죄입니다(레 18:21; 20:2–5). 하나님은 약자, 특히 어린 생명에 대한 폭력을 공동체 붕괴의 핵심 신호로 보십니다.

(5) 이방 동맹과 영적 정체성 상실

사절을 보내 원방의 사람들을 불러 꾸미고 잔치하는 장면(40–42절)은 안전 보장을 이방 동맹·권세에 맡기는 정치-신앙적 혼합주의를 상징합니다. 이는 은혜의 언약 대신 가시적 힘과 쾌락에 기대려는 마음의 방향을 드러냅니다.

(6) 심판의 목적: 공의와 정화, 그리고 하나님 알기

돌·칼·불의 심판은 언약의 저주(신 28장)의 법정적 집행으로서, 공동체적 책임을 동반합니다(45–47절). 최종 목적은 파멸이 아니라 음란을 그치게 하고(48절), “여호와를 알게” 하는 구원사적 결말입니다(49절). 심판조차 하나님 지식으로 이끄는 은혜의 수단이 됩니다.

4) 관련 말씀 구절

  • 레 18:21; 20:2–5 – 몰렉에게 자녀를 드리는 가증함 금지.

  • 겔 16:20–21; 20:13, 20:25–26 – 자녀 제물과 안식일 모독의 반복 고발.

  • 예레미야 7:31; 32:35 – 힌놈의 골짜기에서 자녀를 불사른 죄.

  • 이사야 1:13–17 – 불의와 결합한 제사·절기의 무가치함.

  • 호세아 2:5–8, 19–20 – 우상 음행과 언약 갱신 약속.

  • 출 20:8–11; 신 5:12–15 – 안식일의 근거와 의미.

  • 미가 6:6–8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정의, 인애, 겸손.

  • 마태복음 23장 – 종교적 위선에 대한 예수의 고발.

  • 로마서 12:1–2 – 삶 전체를 산 제사로 드리는 참된 예배.

5) 깊이 있는 묵상과 적용

(1) “같은 날의 모순”을 돌아보기

우리는 예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같은 날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찌르고 구조적 불의에 침묵할 때가 많습니다. 예배-윤리의 일치가 오늘 우리의 가장 절실한 회개 지점입니다.

(2) 현대적 우상과 ‘보이지 않는 제사’

오늘의 우상은 성공, 이미지, 안전, 쾌락, 민족주의, 관계 의존 등으로 형태를 바꿉니다. 우리는 자녀와 공동체의 미래, 시간을 우상에게 “지나가게” 하며 과도한 성취 압박, 경쟁, 비교어린 영혼을 소모시키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야 합니다.

(3) 안식의 파괴와 인간의 소모

안식일의 파괴는 쉼의 상실인간의 소모품화로 나타납니다. ‘더 빨리, 더 많이’의 우상이 지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리듬을 잃고 타인을 성과 단위로만 봅니다. 신자는 의도적 쉼과 경배로 하나님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4) 동맹의 유혹과 믿음의 경제학

불안할수록 우리는 더 큰 권력, 더 견고한 네트워크와 손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 의존을 먼저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지혜로운 계획은 필요하지만, 두려움에 기반한 타협은 신앙 정체성을 갉아먹습니다.

(5) 공동체적 책무: 사랑으로 행하는 권면

본문의 ‘회중’은 공동체의 공적 책임을 상기시킵니다. 신약의 교회는 징계를 복음적 회복을 위한 사랑의 행위로 수행합니다(갈 6:1). 방관과 조롱 사이가 아니라, 눈물의 권면으로 서로를 살려야 합니다.

(6) 성소 모독의 오늘: 거룩의 재발견

우리는 성령의 전(고전 3:16; 6:19)입니다. 몸과 언어, 시간표와 소비, 클릭과 계약서가 성소의 영역입니다. 예배당에서는 거룩을 말하고 일터·플랫폼에서는 거룩을 잊는 이중 장면을 끊어야 합니다.

(7) 심판의 은혜: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의 징계는 폐기가 아니라 회복을 겨냥합니다(히 12:5–11). 우리 삶의 고난을 단순 보복으로 읽지 말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라는 초대로 해석할 지혜를 구합시다.

6) 적용을 위한 질문

  1. 내 삶에서 예배와 윤리가 분리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2. 내가 의존하는 현대적 우상은 무엇이며, 그것이 자녀/약자/동료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가?

  3. 안식의 실천을 위해 이번 주 구체적으로 끊거나 줄일 것은 무엇인가?

  4. 불안할 때 내가 먼저 찾는 **동맹(힘, 인맥, 돈)**은 무엇이며, 하나님께 어떻게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5.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권면을 실천해야 할 대상/방식은 무엇인가?

7) 기도문

주 여호와 하나님,
주님의 말씀 앞에 서니 우리의 이중성우상 숭배가 드러납니다. 같은 날, 같은 입술로 찬송하고도 이웃을 상하게 하며, 예배하고도 약자를 돌보지 못한 우리의 모순을 용서하소서.
우리의 마음에 둔 현대의 몰렉—성공과 이미지, 안전과 쾌락—을 깨뜨려 주옵소서. 우리가 자녀와 동료의 영혼을 성과의 불에 지나가게 하지 않게 하시고, 안식의 복음으로 가족과 공동체를 숨 쉬게 하소서.
두려움 때문에 손쉽게 맺는 타협의 동맹을 거절할 믿음의 용기를 주시고, 지혜로운 계획 위에 하나님 의존을 기초 삼게 하소서.
우리의 몸과 시간, 계약과 스크린, 말과 소비가 성소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예배당에서의 고백이 월요일의 선택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징계 중에도 자비의 목적을 보게 하시고, 일상의 어둠 속에서도 “여호와를 알게 하려 함”이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교회가 공동체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눈물로 권면하고 사랑으로 회복하는 거룩한 회중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우상으로 인한 죄를 스스로 담당하게 하시되, 그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욱 선명해지게 하시고, 성령의 위로로 새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맺음말

에스겔 23:36–49절은 예배-윤리의 통합, 생명 존중, 거룩의 회복, 공동체적 책임, 그리고 징계의 은혜라는 주제를 밀도 있게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삶 전체로 흘러가도록, 그리고 어린 생명과 약자가 보호받는 공동체를 세우도록, 말씀 앞에서 구체적 결단을 세워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