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3:22~35

에스겔 23장 22절부터 35절까지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3:22~35 (개역개정)

22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네가 미워하던 자들을 너를 대적하여 일으켜 북에서 데리고 오리니
23 곧 바벨론 사람과 갈대아 모든 무리와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과 그들과 함께한 모든 아시리아 사람 곧 준수한 청년, 다스리는 자와 관원과 귀인과 유명한 자와 말을 타는 자들이라.
24 그들이 무기와 병거와 수레와 여러 백성과 방패와 투구를 갖추고 치러 오리니 내가 그들의 앞에 재판을 맡기리라. 그들이 그들의 법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25 내가 너를 향한 분노를 벌이리니 그들이 분노하므로 네 코와 네 귀를 베어 버리고 네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아들딸들을 빼앗고 네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26 또 네 옷을 벗기며 네 아름다운 보물을 빼앗을지라.
27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네 눈을 그들에게서 돌리지 못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리라.
28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를 미워하는 자와 네 마음을 싫어하는 자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
29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네게 행하여 네 모든 수고한 것을 빼앗고 너를 벌거벗은 몸으로 두어 네 음행의 하체가 드러나며 네 음란과 네 음행이 드러날 것이라.
30 내가 이 모든 일을 당함은 네가 이방을 따라 행음하고 그들의 우상들로 더러워졌음이라.
31 네가 네 형의 길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의 잔을 네 손에 주리라.
3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네 형의 잔을 마시리라 크고 깊은 잔이라. 네가 조롱과 멸시를 당하리라.
33 네가 네 형 사마리아의 잔 곧 황폐와 멸망의 잔에 가득 차리라.
34 네가 그것을 마시고 삼키며 그 잔 조각까지 씹어 삼키고 네 유방을 찢으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5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나를 잊고 내게 등을 돌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에스겔 23:22–35 본문 요약·신학적 해석·관련 말씀·묵상·기도문

1) 본문 요약

에스겔은 유다(오홀리바, 곧 예루살렘)의 영적 간음을 고발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사모하던’ 이방 세력(바벨론과 그 동맹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을 선포한다(22–24절). 그들은 병거와 무기로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하나님은 그들 앞에 재판을 맡기신다. 그 재판은 잔혹하고 모욕적이다(25–29절): 코와 귀를 베는 형벌, 자녀들을 빼앗기고 남은 자들은 불로 사르는 전쟁의 참화, 의복과 보물이 탈취되고 수치가 드러나는 수난이 이어진다. 그 이유는 오랜 기간 애굽으로 향했던 음란—우상 숭배와 이방 의존—때문이다(27, 30절). 유다는 북왕국 사마리아(오홀라)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으므로, 사마리아가 마셨던 “황폐와 멸망의 잔”을 자신들도 마시게 된다(31–34절). 결론부에서 하나님은 유다가 하나님을 잊고 등을 돌렸기에, 그들의 음행의 죄를 스스로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35절).


2) 신학적 해석

(1) 언약의 법정: “그들의 법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하나님은 언약의 주권자로서 심판의 법정을 여신다(24절). 역설적으로 이방 군대가 재판관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심판을 ‘위탁’하셨기 때문이다. 유다가 가던 길—이방 권력에 기대는 길—이 결국 그 권력의 법정에 서게 만든다. 이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8)의 원리를 역사 속 정치·군사적 현실로 보여준다.

(2) 충격적 이미지의 목적: 수치의 공개와 우상의 실체 폭로

코와 귀를 베는 형벌(25절), 벌거벗김과 하체의 노출(29절)은 문자적 묘사라기보다, 언약 불륜의 결과로 드러나는 공개적 수치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은밀한 우상 숭배가 얼마나 파괴적이며 수치스러운지를 공동체가 ‘보게’ 하신다. 영광을 주던 의복과 보물(정체성·명예·안전망)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황폐뿐임이 드러난다.

(3) “애굽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리라”: 종속적 의존의 근절

27절은 애굽 회귀의 욕망을 끊어버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낸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옛 중독과 같다. 위기가 오면 신뢰의 방향을 하나님이 아니라 익숙한 강대국(정치·경제적 안전장치)으로 돌린다. 하나님은 아프지만 필요한 외과수술처럼, 그 의존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신다.

(4) “형의 길”: 악의 전승과 죄의 관성

“네가 네 형의 길로 행하였으므로”(31절).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사마리아의 실패를 경고로 보지 않고 그대로 답습했다. 성경은 죄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세대적 관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왕하 17장 참조). 같은 길을 가면 같은 잔을 마신다.

(5) 심판의 잔: 황폐와 멸망, 조롱과 멸시

32–34절의 “잔” 이미지는 예언서에 흔한 심판 은유다(렘 25장, 사 51:17 참조). 잔은 피할 수 없는 몫이며, 끝까지 마시게 되는 결과를 뜻한다. “잔 조각까지 씹어 삼키고”(34절)는 표현은, 고통이 부분적·관념적이 아니라 전면적이고 체화된 현실이 됨을 강조한다.

(6) 근본 죄: 하나님을 잊음과 등 돌림

35절은 본문의 핵심 진단을 제시한다. 우상 숭배는 결국 “하나님 망각”의 열매다(신 8:11). 하나님을 잊으면, 무엇인가를 대신 기억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 대체물(권력·부·성취·관계·이념)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재판한다.

(7) 심판의 유익: 정결을 위한 해체

하나님은 파괴 자체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다. 심판은 우상을 걷어내어 언약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급진적 정화다(27절). 그래서 에스겔 전체 맥락에는 ‘새 마음·새 영’(겔 36장)과 ‘새 성전’(겔 40–48장)의 소망이 깔려 있다. 본문은 소망의 서곡을 위한 고통의 전주곡이다.


3) 관련 말씀 구절

  • 출애굽기 20:3–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신명기 8:1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 예레미야 2:13: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악”과 “터진 웅덩이”의 비유.

  • 호세아 2:13–20: 영적 간음과 언약 회복의 약속.

  • 이사야 51:17: “여호와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예레미야 25:15–17: 열국이 마실 진노의 잔.

  • 갈라디아서 6:7–8: 심는 대로 거두는 원리.

  • 시편 106:34–39: 이방과 뒤섞여 우상에게 더럽혀짐.

  • 요엘 2:12–13: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 요한계시록 17–18장: 바벨론적 체제와 영적 음행의 종말.


4) 깊이 있는 묵상과 적용

(1) ‘하나님 망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유다는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억 상실의 결과로 붕괴했다. 신앙의 일상적 습관—감사, 말씀 기억, 예배의 중심성—이 느슨해질 때, 우리는 위기 시 즉각적으로 다른 힘에 기댄다. 나의 기본 반사는 어디를 향하는가? 문제를 만나면 먼저 하나님께 묻는가, 아니면 익숙한 해결사(사람·돈·기술·연줄)에게 전화하는가?

(2) “애굽의 매력”을 해부하기

애굽은 과거의 성공 경험, 계산 가능한 질서, 눈에 보이는 병거와 말(군사력)을 상징한다. 안정감을 주지만, 영적 자유를 담보로 잡는다. 오늘의 애굽은 무엇인가? 직장의 네트워크, 대출과 자산, 명예, 팔로워 수, 혹은 특정 이념일 수 있다. 그것들이 죄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에 “마음의 의자”를 내어주면, 곧 주인이 된다.

(3) 수치의 공개: 숨김이 드러나는 은혜

“벌거벗김”(29절)은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은혜일 수 있다. 숨긴 우상이 드러나지 않으면 회개는 불가능하다. 공동체의 명예가 위태로운 순간에라도, 하나님은 진실을 빛으로 꺼내신다. 이는 파멸의 신호가 아니라 정결의 시작일 수 있다.

(4) ‘형의 길’에서 내려오기

선례의 힘은 강력하다. 가정·교회·민족이 축적해온 죄의 패턴이 있다. 그러나 복음은 관성을 복음의 역관성으로 깨뜨린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욜 2:13): 애통은 패턴을 끊는 첫걸음이다. 우리 공동체가 반복하는 익숙한 타협은 무엇인가? 성과를 위해 영성을 거래하고 있지 않은가?

(5) 심판의 잔과 십자가의 잔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은 본래 “황폐와 멸망의 잔”(33절)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시며, 우리를 대신해 잔을 마셨다. 에스겔의 심판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고, 부활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에겐 심판의 잔이 구원의 성찬잔으로 바뀐다(마 26:27–28).

(6) 오늘을 위한 실천 루틴

  • 기억 훈련: 하루의 시작과 마감에 ‘감사의 3가지’를 기록하여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기억한다.

  • 의존 점검: 한 주에 한 번, ‘마음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적고, 그 의존을 내려놓는 기도를 드린다.

  • 언약 갱신: 주일예배 전, 짧은 고백문을 써서 하나님께 드리며, 성찬(가능하다면) 때 내 잔—그분의 잔을 깊이 묵상한다.

  • 관계의 회복: 숨겨진 부정직·관계의 균열을 빛으로 꺼내어 작은 사과와 보상으로 시작한다.

  • 공동체의 경계: 리더십은 성과보다 거룩의 기준을 앞세우고, 외적 성공으로 영적 타협을 합리화하지 않도록 서로 경책한다.

(7) 자문을 위한 질문

  1. 내가 위기를 만날 때 가장 먼저 찾는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2. 내 삶에서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습관은 무엇이며, 그것을 대체할 신앙 습관은 무엇인가?

  3. 우리 공동체가 반복하는 ‘형의 길’—익숙하지만 하나님 없는 방법—은 무엇인가?

  4. 최근에 빛으로 드러난 수치가 있다면, 그것을 정결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5. 예수께서 대신 마신 잔을 믿는 나는, 오늘 어떤 감사와 순종으로 살 것인가?


5) 기도문

1) 회개의 기도
주 여호와여, 저희가 주를 잊고 등을 돌렸음을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힘을 더 신뢰하고, 익숙한 애굽을 그리워하며, 마음의 의자에 우상을 앉혔습니다. 주의 성령으로 우리의 망각을 흔들어 깨우시고, 숨김을 빛 가운데 드러내어 주옵소서.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애통을 허락하시고, 거짓 안전망을 끊어내는 용기를 주소서.

2) 정결과 회복의 기도
주님,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수술을 행하시는 선한 의사이신 주님을 신뢰합니다. 우리의 음란을 그치게 하시고(27절), 애굽의 향수를 잊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우리를 씻기시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 거룩한 갈망으로 채우소서. 우리의 명예가 아니라 주의 이름의 영광이 회복되게 하소서.

3) 공동체를 위한 중보
교회와 가정을 긍휼히 여기사, 성과와 수치의 압박 속에서 타협하지 않게 하소서. 리더들이 이방의 병거와 말을 부러워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길을 묻는 언약의 파수꾼이 되게 하소서. 반복되는 ‘형의 길’을 끊고, 진리와 사랑으로 서로를 견책하며 세우게 하소서.

4) 복음의 감사
주 예수여, 우리가 마셔야 할 황폐와 멸망의 잔을 주께서 대신 마셔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심판의 잔이 아닌 구원의 잔을 들게 하셨사오니,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이 은혜의 기억이 우리의 매일을 지배하게 하시고, 오늘의 선택을 거룩으로 이끄소서.

5) 파송의 기도
성령님, 우리가 사는 자리에서 애굽을 거절하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선택하게 하소서. 명예가 아닌 진실, 효율이 아닌 순종,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택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으로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이 보이게 하시고,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 같은 이웃에게 복음의 소망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맺음말

에스겔 23:22–35는 거칠고 불편한 텍스트이지만, 그 불편함만큼 우리의 심장을 정확히 찌릅니다. 하나님을 잊는 순간 시작되는 모든 타협을 멈추게 하는 거룩한 경고이며, 동시에 우상을 걷어내어 언약의 친밀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의 신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씀은 이것입니다: “네가 나를 잊고 내게 등을 돌렸은즉…”(35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분을 기억할 때, 잔은 바뀌고 길이 바뀝니다. 오늘 우리의 길도, 우리의 잔도 주님께로 바뀌게 하소서.

에스겔 23:1~21

에스겔 23장 1절부터 21절까지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3:1~21 (개역개정)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두 여자가 있었으니 한 어머니의 딸이라
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거기서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들의 처녀 가슴이 어루만져졌느니라
4 그들의 이름은 큰 자는 오홀라요 그의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 것이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5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정욕이 왕성한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모하였나니
6 그는 모두 아름다운 청년이요 말 타는 고관들이라
7 그가 그들에게 음행을 베풀어서 그는 그가 연모하는 그들의 모든 우상들로 더럽혔으며
8 그가 애굽 사람과 행음하던 그 습성을 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젊었을 때에 그들과 동침하여 그의 처녀 가슴을 어루만지고 그의 음탕을 음행하였음이라
9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의 연모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넘겼더니
10 그들이 그의 하체를 드러내고 그의 아들딸을 빼앗고 칼로 그를 죽여 여인들 가운데에 이름을 날리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판을 행하였음이라
11 그의 아우 오홀리바가 그것을 보고도 그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보다 음행을 더하므로
12 그가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모하였나니 그는 화려하게 옷을 입은 고관과 장교며 말 타는 군인들이 다 준수한 자들이라
13 그 두 여인이 한 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럽혀졌느니라
14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붉은 색으로 칠한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15 그 형상은 허리에 띠를 띠며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쓴 자의 형상이라 다 고관 모양의 갈대아 본국 사람 같았느니라
16 그가 보고 곧 연모하여 사자들을 갈대아에게로 보내매
17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사랑의 침상에 올라 음탕으로 그와 행음하매 그는 그들로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의 몸이 그들을 싫어하였느니라
18 그가 그 음행을 드러내고 그의 하체를 나타냄으로 내 마음이 그를 싫어한 것이 그 형을 싫어한 것 같았느니라
19 그러나 그가 그의 음행을 더하여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행음하던 때를 생각하고
20 그가 그곳에서 그의 연인 곧 나귀같이 발정하며 말같이 정수하는 육체를 연모하였도다
21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땅에서 네 가슴이 어루만져지며 네 유방이 눌리던 일을 다시 생각하도다


 

에스겔 23장 1절~21절을 바탕으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성경 말씀,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정리했습니다.


에스겔 23장 1~21절 묵상과 해설

1. 본문 요약

에스겔 23장은 두 자매의 비유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오홀라(사마리아)”와 “오홀리바(예루살렘)”**라는 두 여인의 음행을 고발하십니다. 두 여인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매로, 어린 시절부터 애굽에서 음행을 배우고 자랐습니다(3절). 오홀라는 북이스라엘, 오홀리바는 남유다를 상징합니다.

  • 오홀라(사마리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도 앗수르를 연모하고, 그들의 우상과 관습을 받아들여 음행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앗수르의 손에 넘기셨고, 그들은 수치를 당하며 심판을 받았습니다(5~10절).

  • 오홀리바(예루살렘): 오홀라가 징계를 받는 것을 보고도 교훈을 얻지 않고, 오히려 더 음욕을 따르며 앗수르와 바벨론을 탐했습니다. 그녀는 갈대아의 화려한 모습에 매혹되어 사자를 보내고, 그들과 음행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바벨론에게도 버림받고, 그 음행이 드러나 수치를 당했습니다(11~18절).

  • 그녀는 어린 시절 애굽에서 배운 음행을 여전히 마음에 품고, 나귀와 말에 비유된 음욕을 기억하며 다시금 애굽으로 향하려 했습니다(19~21절).

즉, 본문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 대신 이방 민족과 그들의 우상을 의지한 불신앙의 역사를 음행의 비유로 강하게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2. 신학적 해석

(1) 언약적 배신으로서의 음행

본문의 음행은 단순히 성적 타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와 외교적 동맹을 통해 하나님을 버린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마치 신랑이 아내를 맞이하듯 택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른 나라와 그들의 신들을 의지하여 언약을 배반했습니다.

(2) 반복되는 죄의 역사

에스겔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같은 죄를 반복했다고 고발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와 결탁하다가 멸망했고, 남유다는 그것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하게 음행하여 바벨론을 의지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완악함을 보여줍니다.

(3) 화려함에 속은 눈, 탐욕에 이끌린 마음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벽에 그려진 갈대아 사람의 화려한 형상을 보고 매혹되었습니다(14~16절). 이는 인간이 외적인 화려함과 권세, 힘을 좇아 하나님을 버리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보이는 것에 끌려 영적인 본질을 잃는 인간의 연약함을 고발하는 대목입니다.

(4)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하나님은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선택한 대로 그들의 연모 대상에게 넘기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던 이방 나라에게 수치를 당하고 버림받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그들이 죄의 대가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호세아 2:19-2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음행하는 아내로 보셨으나, 끝내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 예레미야 3:6-8
    “배역한 이스라엘이 가늠한 것을 네가 보았느냐 … 그 언니 이스라엘이 모든 음행을 행하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 예레미야도 동일한 주제를 다루며, 음행을 영적 배신으로 규정합니다.

  • 야고보서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 신약에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영적 음행임을 경고합니다.

  • 에스겔 16:30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하냐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되 … 참으로 부끄러운 음녀의 행위를 하였도다.”
    → 에스겔 전체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좇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1) 나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가?

이스라엘과 유다는 눈에 보이는 강대국과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세상의 권력, 부, 화려한 문화, 인간적 안정에 더 큰 신뢰를 두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세상을 의지하는가?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2) 반복되는 죄의 악순환

사마리아의 멸망을 보면서도 예루살렘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배우기보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경고와 교훈을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3) 화려한 형상에 매혹된 영혼

예루살렘은 벽화 속 갈대아 사람들의 화려함을 보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형과 세속적 매력에 사로잡혀 영적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벽에 그려진 형상”이 있습니다. 돈, 명예, 인기, 권세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4) 하나님의 질투와 사랑

본문은 하나님의 질투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질투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통해 돌이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5) 오늘의 적용

  • 나는 내 삶에서 어떤 “앗수르”와 “바벨론”을 의지하고 있는가?

  • 다른 사람의 실패와 역사의 교훈에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 나는 하나님의 질투하시는 사랑 앞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5. 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의 연약함을 돌아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을 의지한 것처럼,
저 또한 눈에 보이는 힘과 세상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의 영혼이 세상의 “벽화”에 매혹되지 않게 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저의 신뢰가 돈과 사람과 권력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게 하시며,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게 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가 저를 정결하게 하시고,
주님의 심판이 저를 돌이켜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저의 삶이 영적 음행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는 순결한 신부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22:17~31

에스겔 22장 17절부터 31절까지 개역개정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2:17~31 (개역개정)

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리가 되었나니, 그들은 다 풀무 속의 놋, 주석, 철, 납 같으니라, 그들이 은의 찌꺼기가 되었느니라.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리라.

20 사람의 은, 놋, 철, 납, 주석을 풀무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와 분노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22 은이 풀무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하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이 우는 사자처럼 찢는 사자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였으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서 많게 하였도다.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됨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함을 사람이 분간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눈을 가려 내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였으며,

28 그 선지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여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하나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9 이 땅 백성은 포학을 행하여 강탈을 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22장 17절~31절 말씀을 중심으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정리했습니다.


에스겔 22:17~31 말씀 묵상

“정결하지 못한 땅과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1. 본문 요약

에스겔 22장 17절부터 31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을 “은을 제련할 때 남는 찌꺼기”에 비유하시며, 그들의 부패와 타락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놋, 주석, 철, 납과 같은 불순물처럼 은의 찌꺼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진노와 분노의 불로 그들을 풀무불에 넣어 녹이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17~22절).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정결하게 하려는 정화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죄악에 대한 무서운 응징이기도 합니다.

23절 이후에서는 이스라엘 사회 전체의 총체적 부패가 드러납니다. 땅은 정결하지 못하고 비를 얻지 못했으며(24절), 선지자들은 우는 사자처럼 백성을 삼키고 재산을 탈취했으며(25절),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고 거룩함과 속됨, 정함과 부정을 구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26절). 또한 고관들은 늑대처럼 탐욕으로 사람을 삼키며(27절), 선지자들은 거짓된 이상과 허망한 계시를 내세워 백성을 미혹했습니다(28절). 백성들까지도 포학을 행하며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학대했습니다(29절).

하나님은 이 땅을 위해 무너진 성을 막을 사람, 즉 중보자를 찾으셨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다(30절).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며, 진노의 불로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십니다(31절).

즉, 본문은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타락한 사회의 전면적 부패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2. 신학적 해석

(1) 불순물과 하나님의 심판 (17~22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은 제련 과정의 찌꺼기에 비유하십니다. 본래 은은 귀하고 정결해야 하지만, 불순물이 섞이면 쓸모없는 찌꺼기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었지만,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거룩함을 잃고 무가치한 찌꺼기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파괴가 아니라, 정화(Refining)와 분리(Purging)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은을 순결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불순물을 태워 버립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과 동시에 정화의 기능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난과 징계는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2) 지도자들의 부패 (23~29절)

본문은 이스라엘 사회 각 계층의 타락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 선지자들(25, 28절):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백성의 영혼을 삼키고, 거짓 계시를 선포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은 실제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거짓이었습니다.

  • 제사장들(26절): 율법을 범하고 거룩함과 속됨, 정결과 부정을 구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는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로, 하나님의 거룩을 백성 앞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더럽히는 행위였습니다.

  • 고관들(27절):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사람들을 삼키는 ‘늑대’가 되었습니다.

  • 백성들(29절): 강탈, 압제, 학대 등 불법과 폭력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지도자의 타락은 결국 백성의 삶 전체를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죄의 총체적 부패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타락은 백성을 미혹하게 하고, 사회 전반에 불의와 포학이 만연하게 됩니다.


(3) 중보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30절)

하나님은 이 땅을 멸하지 않도록 성을 쌓고 무너진 틈을 막을 사람, 즉 중보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베풀길 원하셨지만, 참된 중보자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훗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중보자가 되셔서 죄인의 틈을 막아 주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딤전 2:5).


(4)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31절)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며, 분노의 불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임의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한 공의로운 결과입니다.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의로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말라기 3:2-3
    “그가 금을 연단하는 자 같이 앉아서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되,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여 금, 은 같이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리게 할 것이라.”
    →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정결하게 하십니다.

  • 이사야 1: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보상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 에스겔 본문처럼 지도자들의 부패를 고발합니다.

  •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에스겔이 찾지 못한 중보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 에스겔 22:31의 말씀과 동일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본문은 오늘날 교회와 사회를 향한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공동체조차도 불순종과 부패에 빠지면 은의 찌꺼기처럼 무가치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않고, 세속적 욕망과 이익을 추구할 때, 그 공동체는 결국 빛을 잃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제사장이 거룩과 속됨, 정함과 부정을 구별하지 못하듯, 오늘의 성도들도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면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사회의 고관들, 정치적 지도자들이 탐욕과 불의에 빠지면, 약자들은 압제당하고 정의는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본문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불의를 고발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특히 30절의 말씀은 큰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중보자를 찾으십니다. 무너진 성벽을 막고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의 무너진 틈을 막는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 경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약자를 돌보고, 정의를 세우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의 모습을 비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이스라엘 백성이 은의 찌꺼기처럼 부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저희의 마음도 죄와 불순종으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불 같은 심판 앞에서 감출 것이 없고, 오직 은혜만이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주님,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거룩과 속됨, 정함과 부정을 구별하지 못하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희가 다시금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무너진 성벽을 막을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저희를 그 자리에 세워 주옵소서. 기도의 중보자가 되게 하시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서게 하시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중보자를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저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날마다 서며,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무너진 곳을 세우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단과 정화의 과정을 통해 주님께 합당한 은으로 빚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22:1~16

에스겔 22장 1절부터 16절까지 개역개정 본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2:1~16 (개역개정)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 사람아 네가 심판하려느냐, 이 피 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런즉 그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에게 알리라

3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 가운데서 피를 흘려 벌 받을 날이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자기에게 부정하게 하여

4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으면,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으니, 네 날이 가까이 이르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열국의 능욕거리와 만국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5 네가 가까운 자나 먼 자에게서 능욕을 받을 것이니, 네가 더럽고 큰 요란 가운데 있음이라

6 이스라엘 모든 두령은 각기 권세대로 네 가운데 있어 피를 흘렸도다

7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8 너는 나의 성물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도다

9 네 가운데 피 흘리기를 두고 참소하는 자도 있도다. 그들이 산 위에서 잔치를 벌였으며, 네 가운데서 음탕한 일을 행하였도다

10 네 가운데 그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과 동침하는 자도 있었으며

11 어떤 사람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 며느리를 더럽히며, 어떤 사람은 그 자매, 곧 자기 아버지의 딸을 욕되게 하였으며

12 네 가운데는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고리와 이자를 받아 네 이웃을 학대하고, 네가 나를 잊어버렸느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그런즉 내가 네 부정한 이익을 얻은 것과 네가 네 가운데서 흘린 피를 쳐서 내 손뼉을 쳤나니

14 내가 어찌 네 마음이 견디겠으며,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내가 너를 당할 자가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5 내가 너를 열국 중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흩어 버리고 네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서 없어지게 한즉

16 네가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스스로 더럽힘을 인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22장 1–16절 본문 요약·신학적 해석·관련 구절·묵상·기도문

1) 본문 요약

에스겔 22장 1–16절은 예루살렘을 “피 흘린 성읍”으로 규정하고, 그 죄목을 조목조목 열거한 뒤 임박한 심판과 흩으심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기소장입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이 성읍을 심판하라고 명하시며 그들의 가증한 일을 알리라고 하십니다. 3–5절은 우상숭배와 피 흘림으로 스스로 부정하게 된 예루살렘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 결과로 열국의 능욕과 만국의 조롱이 임할 것이라 경고합니다. 6–12절은 구체적인 죄목 목록입니다. 지도자들이 권세로 피를 흘리고(6절), 부모를 업신여기며, 나그네와 고아·과부를 학대하고(7절), 성물을 업신여기고 안식일을 더럽히며(8절), 중상모략과 산당 잔치, 음행과 각종 성적 범죄(9–11절), 뇌물과 고리대, 이웃 착취(12절)가 가득함을 밝힙니다. 핵심 결론은 “네가 나를 잊어버렸다”(12절)입니다. 13–14절에서 주님은 그들의 부정한 이익과 유혈에 분노하여 “내 손뼉을 치셨다” 하시며, 심판의 날에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15–16절은 최종 판결로 흩으심과 수치를 선포하지만, 그 목적은 징벌 그 자체가 아니라 “너희가 이방인의 목전에서 자신을 더럽히는 중에,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라는 인식의 회복입니다.

문학적 관찰

  • “네 가운데”(7회 이상)라는 반복은 죄의 내재성과 체계성을 강조합니다.

  • 목록은 예배/가정/사회/경제의 전 영역을 포괄해, 죄가 사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 “열국의 능욕/만국의 조롱”(4–5절) ↔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16절)의 대조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그분 백성의 거룩과 공의를 통해 드러난다는 성경적 원리를 재확인합니다.


2) 신학적 해석

(1) 거룩과 공의는 하나

예루살렘의 죄는 단지 의식적 부정이 아니라 사회적 불의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성물을 업신여김(8절)과 약자 학대(7절), 안식일 훼손(8절)과 경제적 착취(12절)가 같은 장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은, 예배와 윤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제단 앞의 경건만이 아니라 시장, 가정, 재판정의 정의를 동시에 요구하십니다.

(2) 지도자의 책임과 공동체의 공범성

“이스라엘 모든 두령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렸다”(6절). 지도층의 타락은 공동체 구조 속에 폭력과 착취를 제도화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네 가운데”라는 표현을 반복함으로, 지도자를 변명 삼아 공동체가 면죄부를 받지 못함을 밝힙니다. 죄는 구조적이면서도 개인적입니다.

(3) 우상숭배는 ‘하나님 망각’

12절의 결론 “네가 나를 잊어버렸다”는 우상의 본질을 찌릅니다. 우상숭배는 특정 형상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삶의 중심 기억에서 밀어내는 모든 질서입니다. 하나님 망각은 곧 인간과 이웃의 경계 붕괴로 이어집니다(부모 경멸, 근친상간, 이웃 착취).

(4) 심판의 목적: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스겔서의 후렴구는 심판조차 계시적 목적—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함—을 위해 허락됩니다(16절). 흩으심은 파괴가 아니라, 더러움을 제거하고(15절)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려는 정화의 도구입니다.

(5) 안식일과 사회 리듬

안식일 모독(8절)은 달력의 죄입니다. 시간의 거룩을 파괴하면 인간과 토지, 약자를 위한 쉼의 질서가 붕괴합니다. 안식일은 예배의 날이면서, 경제적 탐욕을 제한하는 사회장치였습니다. 안식일을 더럽힌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고리대와 뇌물(12절)로 치닫습니다.

(6) 성 윤리의 붕괴와 공동체 해체

9–11절의 성적 죄목은 레위기 18장의 금령을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성 윤리의 붕괴는 가정과 씨족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여파는 사회적 폭력성 증가로 이어집니다.

(7) 그리스도론적 지평

예루살렘은 “피 흘린 성읍”이었으나, 복음서는 “피를 흘리심으로” 화평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엡 2:14 참조). 예수는 안식일의 주(막 2:28)로서 안식의 참의미—생명 살림—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며(마 21:12–13), 십자가에서 우리 부정과 수치를 담당하셨습니다. 심판의 목적이 인식 회복이듯,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누구신지를 최종적으로 드러낸 계시였습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1:15–17: 예배와 정의가 결합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예배를 거부하심.

  • 미가 6:8: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

  • 아모스 5:21–24: 공의가 물 같이,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라는 선포.

  • 레위기 19:33–34: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명령(에스겔 22:7의 학대와 대조).

  • 출애굽기 20:8–11: 안식일 규례의 창조적·사회적 토대.

  • 레위기 18장: 근친상간 등 성 윤리 금령(9–11절 배경).

  • 잠언 17:23: 뇌물의 폐해(12절과 연결).

  • 예레미야 7:1–11: 성전 신앙의 착각을 깨뜨리는 “이곳이 도적의 소굴이 되었느냐.”

  • 시편 106:37–38: 무죄한 피 흘림의 죄성.

  • 마태복음 23:23: 율법의 더 중한 바—정의와 긍휼과 믿음.

  • 야고보서 1:27: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경건.

  • 에스겔 36:22–23: 이름의 거룩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22:16과 공명).

  • 에베소서 2:14–16: 그리스도의 피로 원수 된 것을 허무심.


4) 깊이 있는 묵상

(1) 오늘의 “피 흘린 성읍”은 어디인가

물리적 살인만이 아닙니다. 명예를 살해하는 언어, 온라인에서의 마녀사냥, 구조적 불평등과 제도적 폭력이 낳는 보이지 않는 피흘림도 포함됩니다. 나 또한 “네 가운데”에 서 있지는 않은가요? 내가 속한 가정/직장/교회/도시에서 어떤 형태의 폭력에 침묵하거나 이익을 누리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합니다.

(2) 하나님 망각의 징후

하나님을 “잊는다”(12절)는 것은 주일만 잊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변수에서 제외하는 습관입니다. 일정표와 예산표에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질 때, 우상은 이미 우리의 시간을, 돈을, 욕망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내 캘린더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리듬(말씀·안식·나눔·돌봄)을 구체적으로 회복해 봅시다.

(3) 약자 보호의 구체성

고아·과부·나그네(7절)는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 누구인가요? 미등록 이주민, 돌봄 사각지대의 노인과 아동, 플랫폼 노동자, 파산 직전의 채무자일 수 있습니다. ‘동정’에서 멈추지 말고, 제도 개선을 위한 작은 연대(서명, 기부, 봉사, 정책 제안)에 한 걸음 나아가 봅시다.

(4) 안식의 회복 없이 정의는 없다

쉼의 결핍은 탐욕을 정당화합니다. 안식일은 수입을 최대화하려는 충동을 거절하는 신앙 행위였습니다. 내 소비·업무·콘텐츠 사용 습관에서 ‘그치기’(Sabbath stop)의 표지를 세웁시다. 예: 주1회 구매 중단일, 디지털 금식, 가족·이웃 식탁 공동체.

(5) 성적 순결과 공동체의 건강

에스겔이 열거한 성적 죄악은 개인의 은밀한 일로 치부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공동체의 신뢰와 약자 보호를 붕괴시킵니다. 나의 시선과 상상, 클릭과 대화에서 타인을 대상화하는 습관을 회개하고, 관계를 살리는 존중의 언어·경계·상담을 세웁시다.

(6) 경제 윤리의 재정렬

뇌물과 고리대(12절)는 오늘의 회색지대 관행,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이익, 약자를 상대로 한 미세 수수료 착취로 변주됩니다. “정직의 비용”을 지불할 용의를 구체화합시다. 예: 투명한 견적서, 이해상충 공개, 빚진 이웃을 향한 관대한 채무조정, 정기적 자선과 구조적 변화에 대한 후원.

(7) 공동체적 회개

본문은 개인 경건을 넘어 공동체의 회개를 요구합니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창구가 되고 있는가? 예배의 아름다움이 정의의 하수처럼 흐르고 있는가? 정기적으로 교회/팀/가정 단위의 ‘양심 점검표’를 만들고 실행하도록 합의합시다.

(8) 심판을 넘어 계시로

하나님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하십니다(16절). 심판의 메시지에서 주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죄책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자리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징계 속에서도 이름을 드러내시는 주님의 성품(거룩·공의·인자)을 묵상하며 소망을 붙듭시다.

1주 적용 플랜(샘플)

  • : 에스겔 22:1–16 정독 + 죄목 목록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보기.

  • : 재정·직무 윤리 점검표 작성(뇌물·회색지대·이자·수수료·갑질).

  • : 약자 돌봄 행동 1건 실천(기부·봉사·연대 메일).

  • : 디지털 금식 3시간(안식 훈련) + 가족/공동체 식탁.

  • : 언어 절제 훈련(비방·과장 0, 칭찬·감사 3회).

  • : 성 윤리 경계 재설정(상담 예약/필터/동반자 점검).

  • 주일: 공예배 전후 “정의의 하수”가 흐르도록 교회 사역/기금 제안서 초안 작성.


5) 기도문

거룩과 공의의 주 하나님,
오늘 에스겔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배당 안에서만 거룩을 말하고, 시장과 가정과 거리에서는 세상의 규칙을 따랐습니다. 주여, “네가 나를 잊어버렸다” 하신 그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의사결정의 자리에서, 시간표와 예산표에서 당신을 밀어낸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 가운데 쌓인 피의 문화—언어의 돌, 키보드의 창, 구조의 폭력을 보게 하소서. 약자를 향한 냉소와 무관심,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이용하거나 방치한 죄를 용서하소서. 성물을 업신여기고 안식일을 더럽힌 삶, 예배와 일상의 이중성을 회개합니다. 뇌물과 고리, 정보의 우위를 이용한 이익, 편의를 위한 거짓과 왜곡을 버리게 하소서. 우리의 시선과 욕망을 정결케 하시어, 가정과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모든 음란과 착취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심판의 날에 누가 설 수 있으리이까? 그러나 주님, 당신의 심판은 우리를 멸하려 함이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이신 주를 알게 하려 함”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흩어지는 수치가 아니라, 정결케 되는 은혜로 이끄소서. 성령님, 우리의 깊은 습관과 구조를 뒤흔들어 새 질서를 세우소서. 안식의 리듬을 회복하게 하시고, 공의가 물 같이 흐르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흘리신 피로 “피 흘린 성읍”의 죄를 덮으소서. 우리 가운데 원수 된 담을 허무시고, 평강의 길을 여소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손을 강하게 하소서. 정직의 비용을 기쁨으로 지불하게 하시고, 약자 보호와 정의 실천을 우리의 예배로 받으소서.

오늘 우리는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달력과 예산을 만들겠습니다. 언어를 정결케 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안식의 표지를 세우겠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조롱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비추는 등대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돌이킴을 통해 도시의 공기가 바뀌고, 아이들과 노인과 나그네가 안전을 느끼게 하소서.

주여, 우리의 회개를 긍휼로 받으시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그 약속을 오늘 우리 가운데 성취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에스겔 22:1–16은 단지 과거 도시의 기소장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와 도시를 향한 영적 청문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파괴가 아니라 정화이며,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 인식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으로만 머물지 말고, 회개와 재구성의 용기로 응답합시다. 우리의 예배가 정의로, 우리의 시간표가 안식으로, 우리의 경제가 긍휼로 재배열될 때, 하나님은 이방의 목전에서 친히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에스겔 21:18~32

에스겔 21장 18절~32절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에스겔 21:18~32 (개역개정)

1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인자야 너는 두 길을 표시하되 칼이 올 길을 한 땅에서 나오게 하라. 네가 성읍으로 가는 길 어귀에다가 그것을 표시하되
20 한 길은 바벨론 왕의 칼이 암몬 자손의 라빠에 이르게 하고 한 길은 유다에 속한 견고한 예루살렘에 이르게 하라.
21 바벨론 왕이 길머리 곧 두 길 어귀에 서서 점을 치되 화살로 점을 치며 드라빔을 흔들며 희생의 간을 살펴서
22 그의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가 나와서 군대를 두어 살육하게 하고 전쟁의 소리를 높여 성문을 치게 하고 산성을 쌓게 하고 토성을 쌓게 하리니
23 전에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이 있으므로 그것이 거짓 점으로 보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2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너희 죄악을 기억나게 하여 너희 모든 죄가 드러나게 되었나니 너희 모든 행위가 너희 죄를 드러내었은즉 너희가 잡히리라.
25 너 도살당할 자여 악한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네 죄악의 끝날이라.
2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벗으며 면류관을 벗을지어다 그것이 다시는 그러하지 아니하리라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리라.
27 내가 폐망, 폐망, 폐망케 하리니 이것이 다시는 없으리라. 때가 이르면 내가 그것을 주리라.
28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과 그 비방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칼이 빼어졌도다. 살육하라고 빛나게 하였도다. 멸절케 하려고 번쩍이게 하였도다.
29 네가 거짓 환상을 보며 거짓 점괘를 받았도다. 너를 도살당할 악인의 목 위에 두리라. 그들의 날 곧 죄악의 끝날이 이르렀음이니라.
30 칼을 그 칼집에 꽂으라. 내가 너의 지은 곳, 너의 생장의 땅에서 너를 심판하리로다.
31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불사르며 잔혹한 자 곧 멸망시키는 자의 손에 네게 넘기리로다.
32 네가 불의 밥이 되고 네 피가 네 땅 가운데 있으리니 다시는 기억함이 되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에스겔 21장 18절~32절 말씀을 바탕으로 을 정리했습니다.


에스겔 21장 18~32절 말씀 묵상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앞에 서는 우리의 모습”


1. 본문 요약

에스겔 21장 18절부터 32절은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유다와 암몬에게 임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길을 표시하게 하시는데, 하나는 암몬 자손의 수도 라빠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19~20절).

바벨론 왕은 두 길의 길목에서 점을 치며 어느 쪽을 칠지 결정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점괘를 통해 예루살렘을 치도록 허락하십니다(21절). 사람들은 이전의 맹약을 기억하며 그 점괘가 거짓이라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게 하시고 심판을 이루십니다(23절).

특히 25절에서는 “도살당할 자여, 악한 이스라엘 왕아”라는 강한 표현으로 당시 시드기야 왕의 운명을 선포합니다. 그는 관과 면류관을 잃고(26절),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지는 심판의 역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세 번이나 “폐망”을 선언하시며(27절), 반드시 이루어질 파멸을 선포하십니다.

이어지는 28~32절에서는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그들의 칼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칼이 되고, 거짓 환상과 점괘를 따라가던 그들의 죄는 심판을 불러옵니다. 결국 암몬은 불의 밥이 되고 피 흘림 가운데 기억되지 못할 민족이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1)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의 주인

본문은 바벨론 왕이 점을 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 모든 결정 뒤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있습니다. 인간이 우상 숭배적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심지어 그 과정조차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이는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2) 죄의 기억과 심판

하나님께서는 “너희 죄악을 기억나게 하여… 드러나게 하셨다”(24절)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종종 과거의 죄를 잊고 넘어가려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 없는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죄가 드러나고,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3) 악한 지도자의 몰락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정치적 줄타기를 하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왕이었지만, 끝내 “도살당할 자”로 불리며 심판받게 됩니다(25절). 이는 지도자의 불순종과 악함이 결국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교훈을 줍니다.

(4) 심판 속에 드러나는 구속사적 약속

하나님은 “폐망, 폐망, 폐망케 하리니”(27절)라고 선언하시면서도, “때가 이르면 내가 그것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결국 메시아를 통해 새로운 왕국이 세워질 것임을 예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잠언 21:1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여 마치 본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 역사의 권력자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죄의 결과가 심판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 마태복음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26절 말씀과 연결되는 신약적 원리입니다.

  • 요한계시록 20:12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가 기억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에스겔 21장의 말씀은 매우 무겁고 두려운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나는 혹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삶을 내 힘과 방식으로만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내 죄를 회개하지 않고 덮으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 지도자들뿐 아니라 나 역시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정직하고 순결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가?

  • 하나님의 심판을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 감추어진 새 언약과 회복의 약속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심판 뒤에 임하는 구원의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심판의 칼은 피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칼을 대신 맞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며 살아가야 합니다.


5. 기도문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때때로 저는 제 삶의 길을 제 마음대로 선택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바벨론 왕이 점을 치며 길을 택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던 것처럼, 제 인생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저의 죄악을 감추지 않고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께서 드러내시는 죄를 회개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정결케 하소서.

또한 이 땅의 지도자들과 교회의 리더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서게 하시고,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 시드기야 왕처럼 악하고 불순종하는 길을 걷지 않게 하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겸손히 섬기게 하소서.

주님,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주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새 언약을 붙들며, 심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됨을 믿고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