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성경의 빌레몬서에 대해 작성한 글입니다.


용서와 중보의 서신, 빌레몬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시 보는 한 사람의 변화와 화해

성경에는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들도 있지만, 단 1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서신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겉보기에 짧고 간단한 이 편지는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용서, 화해, 그리고 _중보_라는 깊은 신앙적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바울이 사랑으로 써내려간 이 짧은 서신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묵상하고, 오늘날 우리 신앙 여정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배경: 바울, 빌레몬, 그리고 오네시모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골로새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자, 당시 사회에서 흔했던 종들을 거느린 주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빌레몬을 그리스도께 인도한 것으로 보이며, 빌레몬은 그 지역 교회를 자기 집에서 섬길 만큼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그의 종 오네시모가 도망치며 시작됩니다. 당시 종이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큰 범죄였고, 법적으로는 매우 심각한 처벌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도망쳐 로마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기적처럼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회심하게 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아들이라 부를 만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그냥 곁에 두고 싶었지만 결국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종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존재로서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이라는 간곡한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읽는 빌레몬서입니다.


2. 중보의 서신: 바울의 영적 지도력

바울은 이 짧은 편지에서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사랑으로 간청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을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빌 1:8-9)

이 구절은 바울의 영적 리더십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사도로서 권위를 가졌지만, 그것을 앞세우기보다 오히려 사랑과 온유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합니다. 오네시모의 회심과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를 다시 보내는 바울의 마음엔 깊은 믿음과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중보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거나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책임지는 깊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자신의 명예와 관계를 걸었고, 그를 대신해 어떠한 손해든지 감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게로 계산하라.” (빌 1:18)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것처럼, 오네시모의 짐을 지려 합니다. 이 중보적 사랑은 우리도 타인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깊은 도전을 줍니다.


3. 용서와 화해의 능력

빌레몬서는 용서에 관한 책입니다. 그것도 말로만 하는 용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받아들이는 사랑, 관계를 회복시키는 용서입니다.

오네시모는 한때 쓸모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회심 이후 그는 유익한 자가 되었고,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빌 1:11)

이 말씀은 은혜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쓸모없는 존재에서 유익한 존재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보면서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실수를 했든지 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현재와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빌레몬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단순한 종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가족, 신앙의 형제입니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빌 1:16)

바울은 빌레몬에게 인간적인 질서, 사회적 위계, 법적인 권리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를 살아가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적 용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향한 변화와 회복의 요구입니다.


4.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빌레몬서는 짧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오네시모와 같았고, 누군가의 중보와 기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바울처럼 누군가의 삶에 중보자가 되어야 하고, 또 때로는 빌레몬처럼 용서를 선택해야 합니다.

① 내가 받아들여야 할 오네시모는 누구인가?

우리의 삶 속에도 오네시모처럼 한때 상처를 주고, 도망쳤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쳤던 가족, 친구, 혹은 동료들. 그들을 향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복음이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복음은 단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화해의 능력입니다.

② 나는 누군가의 오네시모인가?

반대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을 저지른 오네시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회심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돌아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용기 있는 신앙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③ 나는 바울과 같은 중보자인가?

우리 주변에는 회심한 새신자들이 있고, 여전히 과거의 실수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바울처럼 나서서 사랑으로 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비난과 심판의 공동체가 아니라, 회복과 화해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복음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다

빌레몬서는 단지 한 사람의 귀환을 다룬 짧은 서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관계를 변화시키고, 회복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오네시모였고, 누군가의 바울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사람의 바울이 되어야 하며, 때로는 빌레몬이 되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고, 용서는 감동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 결단을 할 수 있는 힘과 이유를 줍니다.


주님,
오늘도 누군가를 용서할 용기를 주시고,
잃어버린 관계를 다시 회복할 믿음을 주소서.
그리고 나를 누군가의 삶을 중보할 수 있는
사랑의 도구로 써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 포인트

  • 나는 최근에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가?

  • 내 삶 속에서 다시 돌아와야 할 오네시모는 누구인가?

  • 바울처럼 사랑으로 중보하고 있는 대상이 있는가?

빌레몬서의 짧은 문장들이, 오늘 우리의 깊은 마음을 두드리기를 소망합니다.
그 안에서 회복과 화해, 그리고 사랑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