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은 소설의 철학적, 문학적 깊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향한 황제의 사색 —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를 읽고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고대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양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향해 쓴 회고의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이 편지는 사실상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노령의 황제가 자신의 생애를 천천히 정리하는 일종의 유서이자 철학적 고백이다. 제1권이 주로 그의 유년기, 제위에 오르기까지의 여정, 안티노우스와의 사랑 등 ‘삶의 성취와 상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제2권은 명확히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내적 여정이다.
이 글에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가 어떻게 황제의 죽음 인식과 인간 존재의 보편적 물음들을 통합시키며, 그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사유의 지평을 열어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병든 육체와 무너지는 제국의 감각
제2권에서 하드리아누스는 병약한 육신과의 싸움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는 신체적 고통을 낱낱이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철학적 태도를 견지한다. 특히 그가 언급하는 통증의 종류나 의학적 절차에 대한 서술은 놀라우리만큼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내 장기 하나하나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황제의 몸이라 하기엔 참으로 초라한 몰골이었다.”
그는 더 이상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중심축이 아니며, 하나의 고장난 부품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한다. 하지만 그 자각은 절망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죽음이라는 필연을 지혜롭게 준비하는 마음의 평화로 향한다. 그는 죽음을 적처럼 여기기보다, 오랜 동반자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의 세계관이 반영된 태도다.
2. 죽음에 대한 사색과 수용
『회상록 2』는 말하자면 ‘죽음을 준비하는 책’이다.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죽음을 단순한 종말로 보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음을 삶의 반대편이 아닌, 삶의 일부로 생각한다.”
이 구절은 유르스나르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핵심 명제를 함축하고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 안에서 공존하는 요소이며, 죽음을 직면할 때 비로소 삶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겸허해진다. 그는 더 이상 황제라는 권력의 무게를 등에 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 애증의 관계들, 삶의 덧없음까지도 고백한다. 그 고백 속에는 오만도, 후회도, 그리고 사랑도 담겨 있다.
3. 권력의 본질에 대한 회의
제2권에서는 하드리아누스가 권력에 대해 내리는 내밀한 판단들이 흥미롭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통치하는 자로서의 정의’에 천착했지만, 노년의 그는 ‘권력의 공허함’을 더 많이 체감한다.
그는 말한다:
“권력은 장엄하되,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고, 반란을 진압하며, 수많은 신전과 건축을 남겼지만, 정작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감정과 성정을 통제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권력’이 단순한 통치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무형의 힘임을 깨닫게 한다.
그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이렇게 적는다:
“내가 다스린 제국보다, 내가 다스리지 못한 내 마음이 더 혼란스러웠다.”
4. 기억과 망각: 안티노우스의 죽음을 넘어서
1권에서 중심 정서였던 안티노우스의 죽음은 2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통증으로 남아 있다. 하드리아누스는 그에 대한 신전과 조각을 세우고, 신격화하는 등 온갖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려 하지만, 죽음은 그 어떤 조형물로도 완전히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를 신으로 만들었지만,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안티노우스의 죽음은 단지 한 개인의 상실이 아니라, 하드리아누스에게 있어 인간 존재가 직면하는 ‘영원한 부재’의 체험이었다. 그는 죽은 자를 붙잡으려 했고, 기억을 통해 그를 되살리려 했지만, 결국 인간은 망각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정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깊은 공감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 기억하려는 고통스러운 시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오는 체념과 평화까지도.
5. 문학, 사유, 그리고 시간의 승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는 단지 개인적인 유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마주하는 법’에 대한 철학서이자, 죽음을 성찰하는 명상록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실존적 저술이다. 유르스나르가 이 소설을 위해 20여 년간 수많은 역사서, 철학서, 문헌들을 섭렵하며 다듬어낸 문장은 놀라우리만큼 정제되어 있으며, 동시에 생의 밀도를 품고 있다.
작품 전체는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품격을 지녔고, 인물의 감정은 격정보다는 통찰을 통해 드러난다. 마치 하나의 조용한 고대 비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간이 느끼는 슬픔, 후회, 사랑,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6. 오늘 우리에게 『회상록』이 던지는 질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
나는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내가 지금 누리는 힘과 성취는 진정한 가치인가?
-
사랑과 상실은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
기억은 구원인가, 아니면 또 다른 굴레인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대 로마의 황제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위의 질문을 던지는 행위이다. 우리는 하드리아누스를 통해 인간 존재의 취약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마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 삶을 품은 죽음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독자는 기이한 평온함과 사유의 여운 속에 남게 된다. 황제의 고백은 과장되지 않고, 죽음은 슬프지 않으며, 삶은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죽음 앞에서 삶을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시간의 끝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기도와도 같다.
유르스나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삶을 당신은 사랑할 수 있는가?”
추천 독서 팁
-
꼭 제1권을 읽고 이어서 제2권에 진입할 것. 내적 흐름이 중요함.
-
철학서(특히 스토아 철학, 플라톤 『파이돈』)를 함께 읽으면 더욱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
-
조용한 시간에,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읽을 것. 이 책은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 1903–1987)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20세기 작가이자, 섬세한 문체와 철학적 깊이를 지닌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기며, 프랑스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그녀의 생애와 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1. 생애 개요
-
본명: 마르그리트 앙투아네트 장 카르두(Marguerite Antoinette Jeanne Marie Ghislaine Cleenewerck de Crayencour)
-
필명: “Yourcenar”는 그녀의 성(Crayencur)을 거꾸로 쓴 것에서 유래함.
-
출생: 1903년 6월 8일, 벨기에 브뤼셀
-
사망: 1987년 12월 17일, 미국 메인주
-
국적: 프랑스
-
주요 활동 무대: 프랑스, 스위스, 미국
유르스나르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고전을 접하며 교육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사망했고, 아버지는 자유롭고 진보적인 교육을 통해 그녀를 지적으로 길렀습니다. 라틴어, 그리스어, 고전 문학, 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프랑스와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토대를 쌓았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유르스나르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평생의 동반자인 그레이스 프릭(Grace Frick)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2. 문학적 특징
① 역사와 철학의 융합
유르스나르의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되, 단순한 시대 재현을 넘어 철학적, 실존적 사유를 중심에 둡니다. 대표작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 존재와 삶, 죽음, 권력, 사랑,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펼쳐 보입니다.
② 고전주의적 문체와 냉정한 미학
그녀의 문장은 짧고 절제되어 있으며, 과장 없는 서술과 감정의 통제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특히 고전 문헌의 영향을 받은 문체는 ‘비극적인 품위’를 갖추고 있으며,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듭니다.
③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
유르스나르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여성으로서 독립적 삶을 살고, 문학사에 남을 업적을 세운 인물입니다. 특히 남성 중심의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1980년 최초의 여성 회원이 된 사건은 문단과 사회 전반에 커다란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3. 주요 작품
| 작품명 | 발표 연도 | 특징 |
|---|---|---|
| 『알렉시스 혹은 헛된 싸움』(Alexis ou le traité du vain combat) | 1929 | 동성애를 고백하는 한 남자의 독백 형식. 유르스나르의 데뷔작으로 자전적 색채가 강함. |
|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Mémoires d’Hadrien) | 1951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회고를 통해 존재와 죽음을 성찰. 대표작. |
| 『검은 제스처의 작품들』(Les œuvres noires) | 1979 |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죄악, 구원에 대한 탐구를 다룬 단편집. |
| 『동무라카 시리즈』(Le Labyrinthe du monde) | 1974~1988 | 자신의 가계사와 유럽의 정신사를 결합한 3부작 자전 소설. |
4. 프랑스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
1980년, 유르스나르는 프랑스 아카데미(L’Académie française)의 40명의 종신 회원 중 첫 번째 여성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635년 설립된 이 아카데미는 오랜 시간 동안 남성 중심의 지식 권위 기관이었기에, 이 사건은 프랑스 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자리에 오르면서도 스스로를 ‘문학인’이 아닌 ‘탐구자’로 여겼고, 문학이 인간의 삶과 윤리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 유르스나르의 유산
유르스나르는 현대 문학의 고전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며, 인간 내면의 윤리와 존재론적 질문을 문학 속에 고스란히 녹여낸 작가였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을 던지며, 시공간을 초월한 울림을 남깁니다.
그녀의 유산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
문학의 철학화: 이야기를 넘어선 사유와 성찰의 문학을 구축
-
역사 속 인간의 진실 탐구: 위대한 인물 뒤에 숨은 고독과 고민
-
여성 지식인의 롤모델: 창조적 지성과 진정성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