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시편 74편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개역개정 기준):


시편 74:1-11

  1.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나이까? 주의 분노가 어찌하여 주의 목장의 양에게 흘렀나이까?
  2. 주께서 옛적에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거하신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3.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기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나이다.
  5.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
  6. 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촉으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었나이다.
  7. 그들이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처소를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 그들의 마음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것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9. 우리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고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래될는지 아는 자도 없나이다.
  10.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

이 시편은 성전의 파괴와 이스라엘의 고난 가운데 드리는 탄식과 간구의 기도입니다.

다음은 시편 74편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깊이 있는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포함한 글입니다.


시편 74편 1-11절: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의 탄식과 간구

1. 본문 요약

시편 74편 1절부터 11절까지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깊은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곧 목장의 양떼인 이스라엘을 어찌하여 영원히 버리셨느냐고 묻습니다(1절). 과거에 구속하시고 기업으로 삼으신 백성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하며,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렀던 시온 산과 성소가 파괴된 현실을 고통스럽게 고백합니다(2-3절).

적들은 성소에 들어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처소를 더럽히고, 도끼와 철촉으로 조각된 모든 성물들을 부수고, 불태웠습니다(4-7절).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 전역의 회당을 불살라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려 하였습니다(8절). 그러나 시인은 표적도 보이지 않고, 선지자도 없으며, 이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다시 한번 “언제까지입니까?”라고 묻습니다(9-10절).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오른손, 곧 능력의 손을 들어 원수들을 멸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합니다(11절).

2. 신학적 해석

시편 74편은 공동체의 고난 속에서의 신앙 고백과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절규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탄식 시편입니다. 특히 이 시는 성전 파괴라는 역사적 배경, 즉 **바벨론의 침공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주전 586년)**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2-1. 하나님의 침묵과 심판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나이까?”(1절)라는 절규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깊은 신학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이는 단지 인간의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공동체가 하나님의 정의와 신실하심을 믿기에 품게 되는 당혹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고, 성전은 그 언약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언약의 상징인 성전이 무너졌고,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이 모순적인 현실 속에서 시인은 심판의 의미, 하나님의 주권, 속죄와 회복이라는 주제를 내포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합니다.

2-2. 성전과 하나님의 임재

시인은 “주의 이름이 계신 처소”(7절)가 더럽혀졌다고 탄식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건물의 파괴를 넘어, 하나님의 임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무는 장소로 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의 파괴는 곧 하나님의 떠나심, 은혜의 중단, 그리고 심판의 현실화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2-3. 예언자의 부재와 종말적 긴박함

“선지자도 더 이상 없고… 아는 자도 없나이다”(9절)라는 표현은 공동체의 영적 지도력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백성을 인도할 예언자의 침묵은 하나님의 인도와 뜻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암시하며, 이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의 절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재는 단지 절망이 아니라, 메시아적 희망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부각시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종종 더 큰 구속과 회복의 서막이 되며, 시인은 그런 희망의 가능성을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3. 깊이 있는 묵상: 하나님, 왜 지금 침묵하십니까?

시편 74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묵상의 기회를 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침묵 앞에 서게 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신실하게 살아가려 해도 현실은 더욱 어두워지고, 교회와 공동체는 외적으로 무너져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도끼로 성소를 부수듯,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믿는 자들을 향해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이때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질문하게 됩니다.

  •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나이까?”

  • “언제까지입니까?”

  • “왜 오른손을 거두고 계십니까?”

그러나 이 질문들 자체가 바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지 않으면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말씀의 간극에 괴로워하며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단지 탄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이며,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찾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더불어 이 시편은 우리에게 다음을 가르칩니다.

  1.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뜻을 이루는 도구일 수 있다.
  2. 성전이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무너지지 않는다.
  3. 신자의 질문과 고통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

4. 기도문

“오 주님, 침묵 속에서도 주를 신뢰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오늘도 시편 기자처럼 묻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나이까?”
주님의 얼굴이 가려진 것만 같고,
우리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 같습니다.

주님, 주의 백성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교회는 공격을 받고, 신자는 조롱을 받으며,
주님의 이름이 있는 처소가 더럽혀지는 것 같은 이 시대 속에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기억하소서.
주의 피로 구속하신 우리를 기억하소서.
옛적에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도들을 생각하시고,
지금의 혼란과 파괴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주의 표적이 보이지 않고,
주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며,
우리를 인도할 지도자조차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 시절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오른손을 기다립니다.

주여, 이제 주의 팔을 드소서.
주의 권능을 다시 한 번 나타내소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님을,
주의 언약은 영원함을,
주의 성실하심은 새 아침마다 변하지 않음을
이 땅에서 다시금 드러내주소서.

주님, 침묵 가운데서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가 듣지 못해도 주께서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무너진 성소 위에 다시 말씀을 세우시고,
더럽혀진 처소 위에 거룩함을 회복하시며,
낙심한 백성 안에 부활의 소망을 심어주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이 시편은 단순한 역사적 회상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절박한 현실하나님을 향한 궁극적 소망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지금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며, 반드시 회복의 날을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