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에스겔 17장 11절부터 24절까지(개정개역 성경) 본문입니다:
에스겔 17:11–24 (개정개역)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너는 반역하는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
13 그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거늘
15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16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17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18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2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24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에스겔 17장 11–24절 묵상: 무너진 언약 위에 심으시는 한 가지
1) 본문 요약
에스겔 17장 11–24절은 앞부분(1–10절)의 독수리와 백향목 비유를 직접 해석하고, 심판의 결론 위에 새 소망을 심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반역하는 족속”에게 비유의 뜻을 알리라고 하십니다(11–12절). 역사적 상황은 분명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왕과 귀족을 사로잡아 가고(여호야긴 포로), 유다 왕족 중 하나(시드기야)를 세워 언약과 맹세를 맺게 했습니다(13–14절). 이 언약은 유다를 “낮추어” 스스로 강대국이 되려는 야망을 접고, 맹세를 지키며 나라를 보존하게 하려는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애굽에 사절단을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하여 바벨론을 배반합니다(15절). 하나님은 이를 “언약 배반”, 곧 자신을 향한 반역으로 규정하시고, 그 결과가 피할 수 없는 심판임을 선포하십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에서 죽을 것이며(16절), 애굽은 거대한 군대로도 유다를 구하지 못하고(17절), 언약을 업신여긴 죄는 그 머리로 돌아갑니다(18–19절). 하나님은 그물을 치고 올무에 걸리게 하셔서(20절), 군대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실 것이라 하십니다(21절).
그러나 심판의 끝에서 전혀 다른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 하나를 꺾어다가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심겠다”(22–23절). 하나님이 친히 연한 가지를 택해 심으시고, 그 나무는 장차 무성하여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어 각종 새들이 깃들일 큰 그늘을 이룹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선언하십니다. “나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한다. 나 여호와는 말했고 또한 이룬다”(24절). 요약하자면, 인간 왕의 배신과 정치적 술수는 철저히 무너지고,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함과 창조적 주권이 ‘새 가지’의 소망으로 열립니다.
2) 신학적 해석
(1) 언약과 맹세: 정치적 계약이 아닌 신학적 사건
본문은 시드기야의 외교적 선택을 단순한 국제관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과의 맹세를 “내 맹세”, “내 언약”이라 부르십니다(18–19절). 인간 사이의 약속도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졌다면 신성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깨뜨리는 일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 백성의 윤리는 ‘유리하게 보이면 지키고 불리하면 버리는’ 실용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faithfulness)입니다. 언약 백성의 정체성은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을 닮는 데 있습니다.
(2) 주권의 신비: 하나님은 열국의 역사 속에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힘을 사용하여 유다를 징계하시되, 그 과정 전체를 자신의 주권 아래 두십니다.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20절). 심지어 애굽의 거대한 군대조차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무력합니다(17절). 이는 운명론이 아니라, 역사의 실타래가 혼란스러울수록 하나님의 손길은 더 또렷이 드러난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믿음은 상황의 유리함에 근거하지 않고, 보이지 않으나 변함없는 주권에 기대어 서는 태도입니다.
(3) 인간 농사 vs. 하나님의 농사
시드기야는 외교로, 군사력으로 나라를 “키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스스로 “서지 못하게”(14절) 만드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백향목 꼭대기의 연한 가지”라는 거의 보잘것없는 출발을 잡아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시고, 그 가지를 무성하게 하십니다(22–23절). 인간의 농사는 당장의 비대함과 과시를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농사는 뿌리가 깊고 그늘이 넓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느리고 낮아 보일지라도, 오래가고 널리 품습니다.
(4) 뒤집기의 하나님: 낮은 나무를 높이며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24절은 하나님 나라의 역설을 압축합니다. 하나님은 높고 푸른 나무(겉으로 번성해 보이는 권력)를 마르게 하시고, 낮고 마른 나무(버림받은 왕조와 포로 백성)를 높이고 무성하게 하십니다. 이 전복적 은혜는 교만을 꺾고 겸손한 자를 세우십니다. ‘성공’이 곧 축복의 표지가 아니며, ‘쇠퇴’가 곧 저주의 증거가 아니라는 신학적 균형을 일깨웁니다.
(5) “연한 가지”의 메시아적 소망
백향목의 꼭대기에서 꺾은 연한 가지는 다윗 왕조의 남은 싹을 상징합니다. 이는 이사야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사 11:1), 예레미야의 “의로운 가지”(렘 23:5)와 상응하며, 에스겔 자신이 선포하는 “한 목자, 내 종 다윗”(겔 34:23–24)의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언약 위에 새 언약의 현실을 심으십니다. 그 나무 그늘에 “각종 새”가 깃든다는 말은 이방까지 품는 보편성의 지평을 열며, 예수께서 겨자씨 비유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과도 공명합니다(참조: 마 13:31–32).
(6) 윤리적 명료성: 약속을 지키는 공동체
시드기야의 비극은 단지 외교적 오판이 아니라, 신앙의 기본 윤리를 저버린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말’이 아니라 ‘맺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삶’으로 검증됩니다. 억울할 만큼 손해가 나는 순간에도 약속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시 15편의 정신). 신앙 공동체의 신뢰는 약속의 신실함 위에서만 세워집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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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4–25장, 대하 36장: 여호야긴 포로와 시드기야의 통치, 예루살렘 함락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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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7장, 37장: 바벨론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경고, 애굽 동맹의 무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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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7:1–10: 독수리와 가지의 비유(본문의 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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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11:1–10: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 열방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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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3:5–6: 의로운 가지,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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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4:23–24: 한 목자, 내 종 다윗을 세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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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5:4: “그는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약속의 신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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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31–32: 겨자씨 비유—작지만 만국을 품는 나무 그늘.
4) 깊이 있는 묵상
(1) 나의 ‘애굽’은 무엇인가
궁지에 몰릴수록 우리는 더 큰 보호막을 찾습니다. 그때 마음이 향하는 첫 장소가 곧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위기 때 즉각 떠올리는 나의 애굽(돈, 인맥, 이미지, 능력)은 무엇입니까? 시드기야는 애굽을 향해 사절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그 길을 막으셨습니다. 신앙은 문제 해결의 속도가 아니라, 해결의 주권을 누구에게 드리는가의 문제입니다.
(2) 약속을 지키는 데서 드러나는 경건
“내 맹세, 내 언약”을 업신여기는 죄는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도 반복됩니다. 계약서에 서명하고도, 사소한 말로 얼버무리며 책임을 회피하진 않았습니까? 가족, 공동체, 직장의 작은 약속을 가볍게 대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요, 그분의 백성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고통은 단기 손실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신뢰라는 영적 자산을 축적합니다. 신뢰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한 가장 넓은 길을 여는 토양입니다.
(3) 낮아짐을 통해 커지는 그늘
하나님은 낮은 나무를 높이시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십니다. 내 삶이 한동안 말라 보일 때,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뿌리를 깊게 하시는 중일 수 있습니다. 타인의 그늘이 되려면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높아진 가지는 잘 꺾입니다. 그러나 낮아진 가지는 바람을 견딥니다. 교회가 사회 속에서 ‘큰 그늘’이 되려면, 성공을 과시하기보다 낮은 자들의 피난처가 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각종 새들이 깃드는 공동체—다름을 환대하고 상처 입은 자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그늘—그것이 하나님이 심으시는 나무입니다.
(4) 하나님이 심으시는 한 가지: 시작은 작아도 결말은 크다
하나님은 연한 가지 하나로 시작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도 종종 왜소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으신다면 충분합니다. 작은 순종을 매일 심읍시다. 10분의 기도, 한 사람을 위한 경청, 지켜진 약속 하나.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덮는 큰 그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조용하지만 결정적입니다.
(5) 공동체적 적용: 신뢰의 질서를 세우라
교회와 리더십은 언약의 백성답게 투명함과 신실함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비전의 크기보다 약속의 신실함이 우선입니다. 재정, 사역 약속, 목양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말한 것은 지키는’ 문화를 세우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공동체를 통해 낮은 나무를 높이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6) 개인적 결단: “내 그물을 치며”라는 경고 앞에서
하나님은 반역하는 자를 향해 “내 그물을 치며”라고 경고하십니다(20절). 이 경고는 파괴의 쾌감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는 은총입니다. 회개는 늦을수록 고통이 커집니다. 지금 돌아서십시오. 끊어야 할 관계, 내려놓아야 할 욕망, 끝내야 할 불의의 관행을 결단합시다. 하나님의 그물에 걸리기 전에, 우리는 그분의 품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5) 기도문
주 여호와 하나님,
시드기야의 이야기를 통해,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완고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당신을 찾기보다 애굽을 향해 급히 사절을 보냈습니다. 체면과 이해타산, 두려움과 조급함이 우리의 신앙을 잠식했습니다. 주여, 긍휼을 베푸소서.
“내 맹세, 내 언약”을 업신여긴 죄에서 돌이킵니다. 우리가 맺은 모든 약속—가정에서의 언약, 일터의 계약, 공동체의 서약—을 당신 앞에 다시 올려드립니다. 손해가 따를지라도 거룩하게 지키게 하소서. 약속을 지키는 고통을 통해, 신실하신 당신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애굽 의존을 끊어 주옵소서. 사람의 팔, 돈의 힘, 이미지의 방패에 기대었던 마음을 거두어, 주의 주권에 온전히 의탁하게 하소서. 역사와 열국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시는 권능 앞에 겸손히 엎드립니다. 우리를 당신의 길로 인도하소서.
낮은 나무를 높이시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그 나무로 빚어 주옵소서. 성공을 과시하는 높고 푸른 가지를 말리시고, 은밀히 섬기는 낮은 가지를 들어 올리소서. 우리 교회가 각종 새들이 깃드는 그늘이 되게 하시고, 상처 입은 자들이 쉬어 가는 피난처가 되게 하소서. 배제 대신 환대, 판단 대신 자비, 소문 대신 복음이 흐르게 하옵소서.
주님, “연한 가지” 하나를 꺾어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신 듯, 우리 가운데도 작은 순종 하나를 심으소서. 매일의 기도, 성실한 노동, 정직한 말, 끝까지 지키는 약속—이 작은 씨앗들이 모여 당신 나라의 숲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계산이 아니라 당신의 신실함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권력과 두려움에 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맺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담대함을 주소서. 결정의 순간마다 애굽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백성의 안위를 위해 겸손히 섬기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신뢰를 축적하는 사람들 되게 하소서.
마침내, 주께서 친히 심으신 나무가 무성하여 세계가 그 그늘에 쉬게 하소서. 열방이 그 가지 아래 모여 창조주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새 언약이 완성되게 하옵소서.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신 말씀을 오늘 우리의 역사 속에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무리
에스겔 17장 11–24절은 무너진 약속의 폐허 위에서 하나님이 새 가지를 심으시는 장면입니다. 인간의 배반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작은 신실함이 하나님의 큰 신실함과 맞닿을 때, 낮은 나무는 높아지고 마른 가지는 다시 푸르러집니다. 그리고 그늘은 넓어져, 각종 새들이 깃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길이며, 우리가 걸어야 할 약속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