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14-22 (개역개정)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나를 따르라 하시다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치유 권능과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따르는 단호한 결단우선순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에 이르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의 본질과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제자도의 무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육체적 회복을 넘어, 영적인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깊은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1. 본문 요약: 고치시는 손길과 부르시는 음성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14-17절)은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한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손을 만지시는 인격적인 접촉과 말씀의 권능으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적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여 인류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시는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 부분(18-22절)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과의 대화입니다. 한 서기관의 호기로운 결단에 예수님은 인자가 겪어야 할 고난과 비천함을 일깨우셨고, 아버지를 장사 지낸 후 따르겠다는 제자에게는 세속적인 도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시급성이 우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2. 신학적 해석: 질병을 짊어지신 분과 길 위의 메시아

질병과 연약함의 대속 (마태복음 8:17)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해석하며 이사야 53장 4절을 인용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대속적 치유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것은 단순히 신기한 능력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에서 담당하실 인류의 고통과 죄의 결과를 미리 짊어지시는 예표적 행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속으로 직접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인자의 머리 둘 곳 없음 (마태복음 8:20)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십니다. 이는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는 영광스러운 통치자의 이미지와 동시에, 이 땅에서 거처조차 없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서기관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아마도 영광스러운 왕이었을 것이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자기 부인과 낮아짐의 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 (마태복음 8:22)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은 유교적 전통이나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핵심은 효도를 부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그 어떤 세상의 관습이나 의무보다도 우선한다는 절대적 시급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누가복음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4. 깊이 있는 묵상: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손을 만지시는 긍휼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당시 열병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나, 주님은 사랑의 접촉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삶에 숨기고 싶은 질병이나 상처, 수치심이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 그곳에 손을 얹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만지시면 회복과 수종의 삶이 시작됩니다. 열병이 떠나간 후 여인이 즉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들었던 것처럼, 진정한 치유는 사명으로의 복귀로 이어져야 합니다.

안락함에 대한 경계

서기관은 어디든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안락한 보금자리가 보장되지 않음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의 평안과 성공이라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 앞에 멈춰 서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상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존재를 내던지는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가치와 산 소망

죽은 자를 장사하는 일은 산 자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행하는 세상의 의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혹시 아직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미련이나 세상적인 도리라는 핑계 뒤에 숨어 부르심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단호하게 명하십니다.


5. 기도문

사랑과 권능의 주님,

오늘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시어 고통받는 자들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그 크신 은혜를 묵상합니다. 우리 영혼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죄의 그늘 아래 눌려 있는 우리를 주의 손으로 만지사 참된 자유를 얻게 하옵소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안락함과 머리 둘 곳을 찾았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치와 가족의 도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선시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단순히 치유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어서서 주님을 섬기는 수종 드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죽은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생명의 길로 전진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