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청하신 마태복음 13장 18절에서 30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이 구간은 예수님께서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를 설명하신 후, 이어서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 마태복음 13:18-30 (개역개정)

[네 가지 마음밭 비유의 해석]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알곡과 가라지 비유]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어디서 가라지가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묵상을 돕는 포인트

이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 18~23절: 말씀이 우리 마음의 상태(밭)에 따라 어떻게 결실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깨닫는 것’이 결실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2. 24~30절: 세상 속에서 악(가라지)과 선(알곡)이 공존하는 현실을 설명합니다.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알곡(성도)을 보호하시려는 주인의 자비로운 마음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8절에서 30절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 장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비유인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과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인간의 마음에 어떻게 수용되는지,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악의 존재와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심오하게 다룹니다.


1. 본문 요약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단락(18-23절)은 앞서 선포된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강해입니다. 여기서 씨는 천국 말씀이며, 네 가지 땅은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상징합니다. 결실의 여부는 말씀의 생명력 문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 밭의 준비 상태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단락(24-30절)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이는 천국이 이 땅에서 전파될 때 나타나는 혼합된 현실을 설명합니다. 좋은 씨를 뿌린 주인의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는 사건을 통해, 세상 끝날까지 의인과 악인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최종적인 심판의 확실성을 선포합니다.


2. 신학적 해석: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종말론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 마음의 책임성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를 네 가지로 분류하십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영적 무관심과 완악함으로 인해 사탄에게 말씀을 빼앗기는 상태입니다. 돌밭은 감정적인 반응은 빠르나 고난이라는 시험대 위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는 얕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가시떨기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현실적 압박에 눌려 성장이 멈춘 상태입니다. 반면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이며, 여기서 깨달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 삶의 변화와 순종으로 이어지는 전인격적 수용을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구원의 서정에서 성도의 견인과 열매 맺는 삶의 필연성을 강조합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 하나님의 인내와 심판

이 비유는 신정론(Theodicy)적인 질문, 즉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당장 뽑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가라지를 뽑다가 귀한 알곡까지 다칠까 염려하는 주인의 자비 때문입니다. 즉, 심판의 지연은 악에 대한 방관이 아니라 알곡을 끝까지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입니다. 그러나 이 인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추수 때라는 종말론적 시점이 반드시 오며, 그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엄격히 분리되어 각각 곳간과 불못이라는 영원한 운명으로 나뉘게 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성경적 연결고리)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신구약의 관련 구절들을 함께 묵상하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 이사야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말씀의 역동성)

  •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마음 밭의 변화)

  •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결실의 원리)

  •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심판 지연의 이유)


4. 깊이 있는 묵상: 우리 삶의 자리에 던지는 질문

내 마음의 토양은 오늘 어떠한가

우리는 흔히 자신을 좋은 땅이라고 가정하고 성경을 읽곤 합니다. 하지만 삶의 파고가 닥칠 때 우리는 돌밭처럼 쉽게 낙심하며, 통장 잔고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 때 가시떨기처럼 말씀의 기운이 막히기도 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일회적인 결단을 넘어, 매일의 삶에서 마음의 잡초를 뽑아내고 돌을 골라내는 영적 기경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결실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라는 풍성한 양으로 나타나지만,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씨앗인 말씀을 진지하게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가라지를 견뎌내는 성도의 자세

교회 안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안에도 여전히 가라지는 존재합니다. 때로 우리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라지를 즉시 제거하고 싶어 하는 조급함에 빠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심판주의 자리에 앉으려는 교만을 경계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이 혹시 누군가에게 가라지 같은 존재는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가라지를 정죄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주인이 기뻐하시는 알곡으로 무르익어 가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종말의 분리는 오직 주님의 권한임을 인정할 때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이 임합니다.


5. 적용을 위한 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분주함에 짓눌려 딱딱한 길가가 되지 않게 하시고, 얄팍한 감정에 취해 고난 앞에 뿌리째 흔들리는 돌밭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날마다 우리를 엄습하는 생활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워 주셔서, 오직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는 좋은 땅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세상의 악함과 부조리를 보며 낙심할 때, 알곡을 아끼시는 주님의 인내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심판은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며, 우리는 오직 사랑과 선행으로 끝까지 견디는 신실한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마침내 다가올 추수의 때에, 주님의 곳간에 기쁨으로 들어가는 정결한 알곡으로 발견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참고] 마태복음 13장 비유의 시각적 이해

이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가 단순히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씨 뿌리는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되,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영적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의 가르침을 통해 당신의 삶에 30배, 60배, 100배의 거룩한 열매가 맺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