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시험, 선 줄로 생각하는 자, 감당할 시험, 피할 길
오늘의 개역개정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1절에서 13절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8 그들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짧은 한 줄 묵상
과거의 영적 체험과 지식에 자만하지 말고 날마다 겸손히 깨어 있어야 하며, 시험이 올 때 피할 길을 내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출애굽 시절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은 영적 은혜와 실패를 거울삼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구름과 바다를 지나며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음식과 반석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을 즐겨 하며 우상 숭배, 음행, 주를 시험함, 원망을 일삼다가 광야에서 비참하게 멸망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한 본보기이자 경고임을 천명하며,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성도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고, 시험당할 때 반드시 피할 길을 내어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위로합니다.
신학적 해석
본문은 성례전적 자만주의에 대한 강력한 신학적 비판과 함께 종말론적 윤리의식을 일깨우는 구속사적 대논증입니다. 바울은 구약의 출애굽 사 사건을 신약의 성례전인 세례와 성찬의 모형으로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세례요, 만나와 반석의 물을 마신 것은 성찬의 참여입니다. 특히 바울은 그들을 따르던 광야의 반석이 곧 그리스도시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신약 시대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구약 구속사의 현장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영적 생명을 공급하시던 영원한 주권자이심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논증은 이스라엘이 누린 엄청난 특권이 곧 그들의 도덕적 성결이나 구원의 완성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비극적 사실로 이어집니다. 그들의 다수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았고 광야에서 쓰러졌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패 원인을 악을 즐겨함으로 규정하며, 우상 숭배, 음행, 시험, 원망이라는 네 가지 구체적인 죄악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영적 질병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울은 구약의 역사가 단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말세를 만난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배치하신 티포스, 즉 본보기이자 예표라고 설명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선언은 신학적 지식과 은사적 체험을 근거로 도덕적 방종을 정당화하던 고린도인들의 영적 교만을 부수는 망치입니다. 마지막으로 13절의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선언은 시험의 목적이 성도의 파멸이 아닌 연단에 있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신실하심이 시험의 경계선과 피할 길을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위로의 신학입니다.
관련 말씀 구절
출애굽기 32장 6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민수기 25장 9절: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로마서 15장 4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깊이 있는 묵상
1. 특권과 책임: 광야의 은혜와 성례전적 자만의 위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간절히 사모하는 특별한 영적 체험이나 뜨거운 은혜의 순간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느끼며, 예배 가운데 깊은 감격을 누릴 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대단히 견고하며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처한 영적 위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방언과 예언을 비롯한 온갖 영적 은사들을 풍부하게 소유하고 있었고, 지식과 구변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았고 성찬에 참여하고 있다는 외적인 종교적 예식과 영적 지식을 근거로, 자신들은 어떠한 유혹에도 안전하며 도덕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영혼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는 영적 독선과 자만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위험천만한 영적 안일함을 깨뜨리기 위해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를 무대 위로 끌어올립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바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영적 특권이 신약의 고린도 교인들이 누리는 은혜와 정확히 일치하며, 오히려 더 직접적이고 웅장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불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았고, 바다가 갈라지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것은 모세라는 중보자에게 속하여 전 민족이 함께 경험한 거대한 집단적 세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척박한 땅에서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오는 초자연적인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먹었습니다. 목이 말라 죽어갈 때는 단단한 바위가 터져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따르던 신령한 반석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셨다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약의 성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광야의 삶 한복판에서 부활하시고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분으로부터 직접 생명의 양식과 생수를 공급받는 놀라운 성찬의 은혜를 실질적으로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5절의 말씀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영적 반전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으며 그리스도와 동행했던 자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 전체가 약속의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거친 광야의 모래바람 속에 뼈를 묻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보고 성례전적 은혜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구원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거나, 그들의 죄악을 면제해 주는 보증수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은혜가 크면 책임도 큽니다. 종교적인 형식과 과거의 뜨거웠던 은혜의 추억 뒤에 숨어 오늘 나의 삶의 거룩함을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가장 어리석은 영적 교만입니다.
2. 역사의 거울: 말세를 만난 성도를 향한 네 가지 경고
바울은 이스라엘의 광야 사건이 단지 먼지 쌓인 과거의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비추는 영적인 거울이자 예표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께서 구약의 역사를 성경에 꼼꼼히 기록해 두신 궁극적인 목적은, 말세를 만난 신약의 성도들이 앞선 세대의 비참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영적인 경고등을 켜주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무너졌던 네 가지 치명적인 죄악의 목록을 제시하며, 고린도 교회의 거울 앞에 들이댑니다.
첫째는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인용한 출애굽기 32장의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라 부르며 축제를 벌였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들은 우상의 제단 앞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후 무질서하고 광란적인 종교적 춤을 추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지식을 자랑하며 우상의 신전에 앉아 고기를 먹고 마시며 이방의 축제 문화에 동화되어 가던 모습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합니다. 우상 숭배는 단순히 돌이나 나무 앞에 절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세속적인 문화와 쾌락 속에서 삶의 기쁨과 안정을 찾으려는 모든 시도가 곧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만드는 우상 숭배입니다.
둘째는 음행의 죄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이 사건은 민수기 25장에 기록된 바알브올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음행을 저지르고 우상의 제사에 참여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임한 염병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한 역사입니다. 성적 방종과 도덕적 타락은 언제나 영적인 간음인 우상 숭배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움직입니다. 고린도 시에 가득했던 성적 타락의 공기가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을 때, 바울은 광야에서 시체가 되어 뒹굴던 이만 삼천 명의 무덤을 바라보라고 외치며 육체의 거룩함을 지키라고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셋째는 주를 시험하는 죄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걷다가 길이 험하고 먹을 것이 박하다는 이유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불평하며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의심하며 하나님이 정말 우리 중에 계시는가 시험했습니다. 그 결과 불뱀들이 나타나 그들을 물어 죽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악용하여 어디까지 죄를 지어도 괜찮은지 하나님의 인내를 테스트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가증한 범죄입니다.
넷째는 원망의 죄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후 이스라엘 온 회중은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차라리 애굽에서 죽거나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겠다고 절망했습니다. 원망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전면으로 부인하는 불신앙의 극치입니다. 사탄은 성도의 마음에 원망의 씨앗을 뿌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려 합니다. 광야의 조상들이 이 네 가지 죄악 때문에 축복의 문턱에서 멸망당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오늘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서 원망과 우상 숭배를 제하고 두려움으로 거룩을 수호해야 합니다.
3. 선 줄로 생각하는 자의 위기와 겸손의 영성
사도 바울은 광야의 역사적 교훈을 마무리하며,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날카롭고 두려운 경구 중 하나를 성도들의 심장에 박아 넣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말씀은 자신의 신앙적 상태에 대해 스스로 안심하고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강력한 영적 경종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영적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 고통받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은혜를 많이 받았으며, 스스로 믿음이 견고하다고 느끼는 선 줄로 생각하는 그때가 영적으로 가장 취약하고 위험한 순간입니다. 내가 굳건히 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무릎이 사라지고 자만심과 방심이 고개를 들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은 지식이 풍부했고 영적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은 결코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존재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만이 그들을 우상의 신전과 음행의 자리에 무감각하게 앉아 있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도덕적 파선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방심과 교만이라는 균열을 통해 서서히 진행되다가 한순간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적 거인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범죄의 늪에 빠진 것은, 그가 치열한 전쟁터를 누비며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왕권이 안정되고 온 나라가 평안하여 궁궐 지붕 위를 한가로이 거닐며 선 줄로 생각했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자신의 믿음을 과시했던 수제자 베드로가 단 몇 시간 만에 어린 여종 앞에서 예수를 저주하며 부인했던 이유 역시,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과신하며 선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날마다 내 연약함을 인정하는 겸손의 영성입니다. 나는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와 성령님의 붙드심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내 믿음을 지킬 수 없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자만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제의 영적 승리가 오늘 승리를 보장하지 않으며, 과거의 놀라운 체험이 오늘 나의 거룩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며,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붙드심 위에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히 주님의 손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4. 미쁘신 하나님과 시험의 경계선
바울은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성도들을 두려움 속에 몰아넣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도리어 유혹과 시련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격렬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위대하고 장엄한 위로와 소망의 선언을 선포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저히 내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유혹이나, 내 영혼을 짓누르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고통을 마주하곤 합니다. 이 말씀에서 시험으로 번역된 헬라어 페이라스모스는 성도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유혹과, 성도의 믿음을 단련하여 정금같이 만드시는 하나님의 시련과 테스트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합니다. 어떤 형태의 시험이 찾아오든, 바울은 성도가 가장 먼저 바라보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가리킵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미쁘시다는 말은 신실하시다, 신뢰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흔들리고 유혹은 거세며 우리의 의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을지라도,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변치 않으시며 신실하십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시험의 주권과 경계선을 쥐고 계십니다. 사탄이 우리를 흔들고 유혹하려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성도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욥기에서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는 한계를 정해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영적 분량과 믿음의 크기를 정확히 아시고 우리가 능히 이겨내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시험의 파도를 허락하십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 아무리 가혹해 보일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감당할 만한 시험입니다.
5. 피할 길을 내시는 구원의 손길과 감당의 은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의 한복판에 홀로 던져두고 멀리서 방관하시는 차가운 관조자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시험을 당해 고통스러워하고 비틀거릴 때,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구원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여기서 피할 길은 단순히 고난과 유혹의 현장으로부터 도망쳐 도피하는 소극적인 도망의 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적인 뉘앙스는 사방이 절벽으로 가로막힌 험난한 협곡 속에서 대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 사령관이 극적으로 찾아내어 열어주는 승리와 탈출의 좁은 통로를 뜻합니다. 내 힘과 내 지혜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강력한 조명하심과 말씀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유혹을 끊어내고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 거룩한 돌파구를 친히 만들어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이 내시는 피할 길은 유혹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단호한 용기일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쳤던 것처럼, 죄악의 자리에서 물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장 확실한 피할 길입니다. 또 어떤 때는 환경의 변화나 믿음의 동역자들을 통한 위로와 권면이 피할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피할 길은, 시련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시선이 문제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영적인 눈의 열림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시험을 아예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피할 길을 통해 우리는 시험을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넉넉히 밟고 통과하며 우리의 믿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단련시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시험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성숙하게 만드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6. 결론: 말세를 이기는 깨어 있음과 신뢰의 신앙
고린도전서 10장 전반부의 말씀은 영적 자만과 세상의 유혹 사이에서 위태롭게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모두를 향한 거룩한 나침반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엄청난 기적과 특권이 그들의 거 거룩을 보장해 주지 못했음을 기억합시다. 과거의 신앙적 훈장이나 직분, 지식을 앞세워 오늘 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와 거룩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며 타인의 연약함을 비판하고 도덕적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의 거센 유혹과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무게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해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미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다시 일어납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죄악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도록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임한 모든 시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제 아래 있으며, 주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가장 완벽하고 거룩한 피할 길을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합시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깨어 구하며, 어떤 시험 속에서도 피할 길을 내사 능히 이기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과거에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누렸던 놀라운 은혜의 역사들을 거울삼아, 말세를 살아가는 저희들의 어두운 영혼을 깨워주시고 경고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과거에 받았던 영적 체험이나 직분, 성례전적인 형식 뒤에 숨어서 오늘 우리의 삶의 거룩함을 소홀히 했던 영적 자만과 안일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지식과 믿음이 견고하다고 자부하며 스스로 선 줄로 생각했던 교만을 꺾어주시고,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아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옵소서. 광야의 조상들이 범했던 우상 숭배와 음행, 주를 시험함과 원망의 죄악들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로 우리의 생각을 정결하게 지켜주옵소서.
세상의 거센 유혹과 사방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한 시련의 한복판에서 고통당하는 주의 자녀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환경과 감정은 날마다 흔들릴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오직 미쁘시고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시험이 몰려오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친히 새 일을 행하사 거룩한 피할 길을 내시고 승리의 통로를 열어주시는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원망과 불평을 멈추고,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용맹하게 싸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증거되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복된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광야의 반석이 되시며 우리의 영원한 피할 길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