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진 역사적 사실성과 그것이 무너졌을 때 도미노처럼 파괴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가치를 엄중하게 선포하는 고린도전서 15장 12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묵상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
오늘의 키워드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의 유일성, 죄 사함의 영수증, 복음의 참된 증인, 영원한 내세관, 세상이 감당 못 할 소망
짧은 한 줄 묵상
그리스도의 역사적 육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신앙적 수고와 고백은 헛된 종교적 신기루에 불과하며, 성도는 오직 영원한 부활의 산 소망 위에서만 참된 존재 가치를 획득합니다.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서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고 회의론에 빠진 자들을 향해 강력한 논리적 정면 돌파를 시도합니다. 만약 죽은 자의 보편적 부활이 불가능하다면, 그 연쇄적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일어날 수 없는 거짓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사도들이 목숨 걸고 전파하는 복음과 성도들의 신앙은 아무런 영적 효력이 없는 완전한 공허함에 직면하게 되며, 사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속인 우주적인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구원의 법정적 확증이 사라지기에 성도들은 여전히 죄의 저주와 정죄 아래 놓여 있고, 이미 잠든 신앙의 선배들도 영원한 파멸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소망의 지평이 이 세상의 삶에만 국한된다면, 다가올 영원한 영광을 위해 현세의 안락을 포기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불쌍한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신학적 해석
1. 헬라 철학적 이원론에 대한 정면 논박과 부활의 연쇄적 필연성
사도 바울이 12절에서 직시한 고린도 교회의 본질적인 신학적 위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복음이 명확히 선포되고 기초가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부의 어떤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며 육체 부활의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고 나선 현상이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을 지배하던 영적 사조는 영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거룩하며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자 열등하고 악한 물질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주의적 내지는 영지주의적 이원론이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젖어 있던 고린도 지성인들은 영혼의 불멸은 환영했을지언정, 더럽고 부패할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성경적 부활 교리를 저급하고 불합리한 신화로 취급하며 기독교 복음을 자신들의 철학적 구미에 맞게 가공하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논리적 연쇄 법칙을 사용하여 그들의 철학적 타협이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영적 자살 행위임을 논증합니다. 바울은 13절과 16절에서 만일 죽은 자의 보편적 부활이라는 명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셨던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원천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성경적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의 부활은 단지 한 종교적 영웅이 보여준 기이한 예외적 이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우주적 사건이며, 장차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이 입게 될 육체 부활의 첫 열매이자 보증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부활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순간, 도미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대전제마저 무너져 내린다는 신학적 필연성을 선포한 것입니다.
2. 케리그마의 공허성과 사도적 권위의 파산
14절과 1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 속에서 부인될 때 다가오는 복음 사역과 증언의 전면적인 파산을 선언합니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명시합니다. 여기서 전파하는 것으로 번역된 케리그마는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로마 제국 전역을 누비며 외쳤던 초대 교회 복음 선포의 핵심 알맹이입니다. 부활이 삭제된 기독교는 십자가라는 비극적 처형 사건에만 매몰되어, 결국 한 의로운 청년의 억울한 죽음이나 도덕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무력한 윤리 종교로 전락하게 됩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 구원자는 인간을 구원할 영적 능력이 없기에, 그를 신뢰하는 성도들의 신앙 역시 아무런 구원적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심리적 위안이자 가짜 약을 먹고 느끼는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신학적으로 심각한 영적 범죄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도들이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폭로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은 개인의 주관적인 명상이나 종교적 환상을 유포한 사상가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온 천하에 대고 외친 역사적 사실의 목격자들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도들은 단지 착각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하나님이 행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셨다고 온 인류를 속인 우주적인 사기꾼이자 신성모독자가 되고 맙니다. 기독교 신앙의 진위 여부는 인간의 내면적 평안이나 종교적 유익이라는 실용주의적 기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2천 년 전 예루살렘 무덤이 실제로 비어 있었고 그분이 육체로 살아나셨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줍니다.
3. 법정적 대속의 무효화와 죄 사함의 영수증 부재
17절은 부활이 없을 때 인간의 영혼이 직면해야 하는 가장 치명적이고 공포스러운 영적 현실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는 선언은, 기독교 구속사에서 부활이 차지하는 법정적 지위를 명확히 규정해 줍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와 신약의 십자가 신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형벌 대속적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분의 죽으심이 인류의 죄 값을 완벽하게 지불했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켰다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승인과 영수증이 바로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의롭게 받으시고 그 분을 무덤의 결박에서 일으키심으로, 온 우주 재판정 앞에 이 예수를 믿는 자는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그 분의 죽음이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했는지 증명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죄의 최종적인 권세와 결과는 사망입니다. 예수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지 못하고 여전히 무덤의 흙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죄의 권세가 메시아보다 더 강력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성도들 역시 죄의 저주와 정죄, 그리고 다가올 하나님의 맹렬한 심판으로부터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죄의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나아가 18절에 언급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 즉 부활의 약속을 믿고 순교했거나 믿음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거룩한 선배들조차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영적 파멸과 지옥의 심판에 이르렀다는 끔찍한 신학적 귀결을 낳습니다. 부활의 부재는 온 인류를 영원한 절망의 지옥 불 속으로 밀어 넣는 영적 파멸입니다.
4. 현세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일침과 종말론적 소망의 이정표
19절은 본 단락의 신학적 결론이자 기독교 종말론을 관통하는 거대한 나침반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선언은 고린도 교회 내부에서 부활이라는 복잡한 내세 교리를 빼버린 채, 그저 이 땅에서 예수의 고결한 가르침을 실천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도덕적인 품격을 높이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종교적인 위로와 복을 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세속적이고 현세주의적인 신앙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강력한 신학적 직격탄입니다.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성도들은 부활과 내세의 영광이 확실한 역사적 실제였기 때문에,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유대 사회적 기득권, 로마의 시민적 권리, 안락함과 성공을 미련 없이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매를 맞고, 줄이며, 감옥에 갇히고, 검투사들의 밥이 되는 비참한 고난의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갔습니다. 만약 이 모든 눈물과 피 흘림 끝에 도달할 영원한 육체의 부활과 하늘 나라의 찬란한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주는 육체적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내세의 영광도 얻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속았으며 가련하고 비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바울이 던지는 이 불쌍한 자의 역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이 땅에서의 웰빙이나 마음 수양, 혹은 현세적 복락을 받아내는 세속 종교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신령한 육체의 부활을 바라보며 오늘의 삶을 역류해 나가는 치열한 종말론적 투쟁임을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관련 말씀 구절
1. 로마서 4장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본문 17절에서 바울이 엄중하게 경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죄 사함의 상관관계를 구속사적으로 확증해 주는 핵심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 죄에 대한 법정적 형벌의 대가 지불이었다면, 그 분의 부활은 그 대가 지불이 완벽하게 완료되어 우리를 합법적으로 의인이라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 인장입니다. 부활이 있어야만 우리의 죄책이 완전히 도말됨을 보여줍니다.
2. 고린도전서 15장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오늘 본문(12~19절)이 제시한 모든 절망적이고 암울한 가정들을 단숨에 타파하는 바로 다음 절의 영광스러운 선포입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을 때의 비참함을 논리적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준 후, 그러나 이제라는 역사적 반전의 접속사를 통해 그리스도가 실제로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으며, 그로 인해 성도들의 부활 역시 거역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미래의 사실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3. 베드로전서 1장 3절 – 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본문 19절이 지적하는 이 세상의 삶에만 갇힌 허무한 종교성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부활로 인해 성도들이 소유하게 된 내세의 자산이 무엇인지를 찬란하게 증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 땅의 썩어질 가치가 아니라, 하늘에 간직된 결코 쇠하지 않는 종말론적 산 소망을 선물해 주셨음을 확증합니다.
깊이 있는 묵상
1. 실용주의적 위안을 넘어 역사적 진리 위에 서는 신앙
오늘날 현대 교회를 다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기준을 보면, 그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인가 혹은 우주적 진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보다는,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가, 내 마음의 상처를 얼마나 따뜻하게 치유해 주는가, 내 가정을 얼마나 축복해 주는가라는 철저한 실용주의적이고 심리적인 유익에 치우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행하신 구속사적 대사건보다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 자녀를 잘 키우는 법,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법 등 현세적인 웰빙의 언어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그러한 주관적 유익과 감정적 위안 위에 두는 행위가 얼마나 사상누각처럼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를 고발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한 무덤 속에서 일어난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면, 우리가 매주 모여 드리는 장엄한 예배와 뜨거운 찬양, 헌신적인 봉사와 헌금은 그저 거대한 종교적 집단 착각이자 허무한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부활이 배제된 복음은 아무리 도덕적이고 감동적인 미사여구로 포장할지라도 인간의 영혼을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건져낼 영적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내 신앙의 주춧돌을 어디에 짓고 있습니까? 단순히 마음의 평안과 현세의 복을 얻기 위한 종교적 취미 생활입니까, 아니면 죽음의 빗장을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서슬 푸른 역사적 사실 위에 내 전 생애와 영원을 걸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허무한 허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날마다 내 감정의 변화와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부활의 진리 위에 신앙의 닻을 깊이 내려야 합니다.
2. 부활의 영수증을 소유한 자의 거룩한 해방과 자유
17절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는 말씀은 뒤집어 묵상하면, 그리스도가 진짜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더 이상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죄의 권세가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는 영광스러운 해방 선언이 됩니다. 예수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더 이상 정죄하거나 옭아매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공인된 판결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영적 패배자처럼 죄의 노예로 살아가곤 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악과 허물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은밀한 죄의 유혹과 습관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으며, 세상의 불의한 가치관 앞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 타협의 길을 걷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능력을 단지 머릿속의 교리로만 인정할 뿐, 실제 삶 속에서는 믿지 못하는 영적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을 열고 나오심으로 우리를 묶고 있던 죄의 사슬은 이미 산산조각 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권세에 비굴하게 종노릇 할 이유가 없는 완벽한 자유인입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는 죄의 소욕이 아무리 강렬할지라도, 사망을 삼키고 승리하신 부활의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심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죄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나 자신을 의의 변기로 주님께 내어드리는 실제적인 부활의 삶을 오늘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3. 가장 불쌍한 자가 아닌, 하늘의 가장 부유한 자의 자부심
바울은 만약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소망이 오직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온 세상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일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이 고백 속에는 바울과 초기 제자들이 복음과 부활의 진리를 위해 치렀던 희생과 대가가 얼마나 처절하고 거대했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했고 장차 올 내세의 영광을 확실히 알았기에, 이 땅에서 부귀영화와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아낌없이 배설물처럼 던져버릴 수 있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돌에 맞고, 파선하며, 감옥에 갇히고, 마침내 순교의 제단에 목숨을 내놓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들의 영혼이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차 입게 될 영원한 부활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지평과 시선은 과연 어디를 향해 열려 있습니까? 혹시 우리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들이 오직 이 세상의 삶, 즉 더 넓은 평수의 집, 더 높은 사회적 지위, 더 많은 재물, 자녀들의 세상적 성공에만 100% 함몰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우리의 소망이 세상의 불신자들과 똑같이 이 땅의 썩어질 가치들에만 갇혀 있다면, 우리는 입술로는 천국을 말하지만 삶의 태도로는 이 땅이 전부라고 외치는 가장 모순되고 불쌍한 존재일 뿐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자들이 아니라, 잠시 거쳐 가는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물질이 내게 없을지라도, 내게는 영원히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기업과 신령한 부활의 몸이 보장되어 있다는 영적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가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소유한 자다운 하늘의 부유함과 담대함으로 오늘의 고난과 핍박을 넉넉히 돌파하는 성숙한 종말론적 신앙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4. 거짓 증인의 위선을 벗고, 역사적 부활의 참된 증인으로
사도 바울은 만약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이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대입해 보면 매우 무겁고 엄중한 영적 훈계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간다고 전도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죽음의 위협 앞에 벌벌 떨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염려를 쏟아낸다면, 우리의 그러한 삶의 태도는 세상 가운데 부활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거짓 증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유창한 입술의 고백이나 거룩한 종교적 외형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우리가 인생의 극심한 위기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할 때 온몸으로 보여주는 삶의 실천적 태도를 주목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사별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재정적 파산이 찾아왔을 때, 내 육체에 불치의 질병이 찾아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 부활 신앙을 가진 진짜 성도는 세상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평안과 초연한 소망을 드러내야 합니다. 죽음이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찬란한 영원함으로 들어가는 쉼표임을 알기에 절망 속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님을 확신하기에 내 손에 쥔 소중한 자산을 기꺼이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낭비하듯 내어줄 수 있는 삶, 그것이 바로 세상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를 보여주는 진짜 참된 증인의 삶입니다. 나의 하루하루의 일상이 복음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거짓 증인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가 진정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음을 온 세상에 증명하는 강력한 부활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문
인류를 묶고 있던 사망과 음부의 맹렬한 권세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시고 역사 속에서 실제로 다시 살아나사 우리의 산 소망이 되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통해 부활의 진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절대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본질적인 주춧돌인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그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우리의 시선과 소망을 오직 이 세상의 삶에만 둔 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더 많은 물질과 성공, 안락함만을 구했던 현세 중심적이고 기복적인 어린아이 같은 신앙인이었음을 이 시간 정직하게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만약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라는 사도의 엄중한 책망을 우리 마음에 생생히 새기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썩어질 가치와 유한한 안락함에 목숨을 걸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장차 우리가 입게 될 찬란한 육체의 부활을 바라보며, 오늘의 고난과 결핍을 넉넉히 이겨내는 장성한 분량의 종말론적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간이 고안해 낸 신화나 환상이 아니라, 역사 속 무덤을 깨뜨리고 일어난 명백한 객관적 사실임을 믿음의 안목으로 확증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단순히 마음의 위안이나 심리적 위로를 얻기 위한 종교적 취미 생활로 전락하지 않게 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의 실존 위에 내 전 생애와 가치관을 통째로 던지는 믿음의 결단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의 대가가 완전히 지불되었고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었음을 확실히 믿사오니, 더 이상 과거의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은밀한 죄의 유혹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는 죄의 종노릇을 단호히 거부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능력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죄를 이기고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승리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세상 가운데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증인의 자리에 서지 않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입술로는 천국과 부활을 노래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비굴해지는 위선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극심한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부활의 산 소망 때문에 하늘의 평안을 유지하게 하시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당당함과 영적 부유함을 삶의 실천으로 보여주어, 우리를 지켜보는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이 진짜임을 인정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내가 서 있는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호흡하며, 영원한 가치를 위해 오늘을 심고 거두는 신실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