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 12절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거대한 신학적 논증(특히 15장의 부활 교리)을 마무리한 후, 복음의 실제적인 삶과 선교적 협력, 그리고 구체적인 사역 계획을 나누는 실제적인 권면의 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 12절 성경 본문 및 심층 강해

키워드: 고린도전서 16장, 매주 첫날, 연보의 원리,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사도 바울의 사역 계획, 디모데와 아볼로, 성경 묵상, 신학적 해석, 기독교 윤리

한 줄 묵상

위대한 부활의 신앙은 이 땅의 지극히 평범하고 실제적인 이웃 사랑의 실천과 선교적 동역을 통해 비로소 온전하게 증명됩니다.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연보(헌금)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얼마를 모아두어, 바울이 갈 때에 급하게 준비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 방문하여 얼마간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계획을 밝히며, 에베소에 큰 문이 열렸으나 대적자가 많아 당분간 에베소에 머물 것이라 말합니다. 또한 젊은 동역자 디모데가 고린도에 든다면 두려움 없이 머물 수 있도록 대접하고 존중해 줄 것을 부탁하며, 아볼로 형제에게도 방문을 권했으나 지금은 갈 뜻이 없으며 기회가 있으면 갈 것이라고 전합니다.

개역개정 성경 본문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절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본문에 대한 신학적 해설 및 심층 분석

1절에서 2절 해설: 성도를 위하는 연보의 성경적 원리와 실행 법칙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장엄한 우주적 진리를 선포한 후, 곧바로 16장 1절에서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재정적인 문제로 대화를 전환합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이 공상적 이상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 속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지체들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번역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보는 당시 극심한 기근과 박해로 인해 경제적 생존 위기에 처해 있던 예루살렘 모교회의 성도들을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연보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구제 사역이 고린도 교회에만 국한된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이방인 교회 전체가 유대인 기독교인들과의 영적, 물질적 유대감을 공고히 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시행되던 조직적 사역이었음을 시사합니다.

2절에서 바울은 기독교 재정 윤리의 매우 중요한 원칙들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정기성입니다. 매주 첫날에라는 표현은 안식일 다음 날,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요일을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연보가 예배와 주일 성수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였음을 보여줍니다. 충동적이거나 우발적인 헌금이 아니라, 정기적인 예배의 공적 행위로서 재정을 구별해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보편성과 개인적 책임입니다. 너희 각 사람이 주체적인 참여를 요구받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교회의 직분자든 평신도든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이 물질적 헌신에 동참해야 합니다.

셋째는 비례성과 계획성입니다.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라는 구절은 자신의 경제적 형편과 분수에 맞는 합리적이고 정직한 헌금을 의미합니다.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거나, 인색함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적 축복의 분량에 비례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덧붙인 이유는, 사도가 방문했을 때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연보를 거두는 현상을 방지하고, 성도들이 평소에 자발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재정을 준비하도록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절에서 4절 해설: 재정 관리의 투명성과 신뢰의 공동체성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연보를 수집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극도로 강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재정이라 할지라도 결코 독단적으로 처리하거나 혼자서 운반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은혜(카리스)라는 단어가 연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헌금은 인간의 공로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신뢰하고 검증하여 추천한 인물들을 세워 그 재정을 운반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는 교회 재정의 집행과 관리에 있어 일말의 도덕적 의혹이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차단하는 지혜로운 목회적 조치였습니다.

4절의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는 표현은 바울이 연보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자신의 동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연보가 풍성하게 모이고, 바울의 동행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의 화해와 연합에 큰 유익을 줄 수 있다면 함께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역의 목표가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유대인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확인하는 영적 연합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5절에서 9절 해설: 사도 바울의 사역 계획과 주권적 섭리에 대한 순종

5절부터 7절에서 바울은 향후 자신의 여정과 방문 계획을 공유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정이 아니라, 그들과 깊이 소통하고 양육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를 원했습니다.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라는 표현은 당시 겨울철에 지중해의 항해가 전면 중단되던 자연적 조건을 고려한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는 문장은 단순히 배웅을 받는 수준을 넘어,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다음 선교 여정을 위해 재정적, 물질적, 그리고 영적인 후원(파송)을 담당해 줄 것을 기대하는 선교적 요청이었습니다. 바울은 기획 단계에서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함께 머물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도의 모든 발걸음과 선교 기획이 자신의 야망이나 편리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아래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8절과 9절에서 바울은 현재 사역지인 에베소에서의 상황을 보고합니다.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고자 하는 이유는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복음이 강력하게 전파되고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사탄의 강력한 저항과 대적자들의 박해가 공존합니다.

바울은 문이 열렸기 때문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었고, 대적자가 많다고 해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적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이 영적 전쟁의 최전방이며 복음의 능력이 시급하게 필요한 곳임을 방증하기에, 바울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사역을 완수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환경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떠나 영적 기회에 집중하는 사도의 위대한 선교적 야성을 보여줍니다.

10절에서 12절 해설: 동역자들을 향한 배려와 존중의 목회론

10절과 11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이자 젊은 동역자인 디모데의 고린도 방문을 앞두고 목회적 권면을 전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당파 싸움과 교만함, 그리고 영적 은사에 대한 과시로 인해 영적으로 매우 거칠고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이 혈기 왕성하고 분파적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품이 유순하고 나이가 젊은 디모데를 가볍게 여기거나 기를 죽일까 봐 염려했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조심하라는 것은 영적인 경계심을 갖고 젊은 사역자를 대하라는 명령입니다. 디모데가 위축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도록 심리적, 영적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그 근거로 바울은 그는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고 선언합니다. 사역자의 권위는 그의 나이나 외모, 세상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맡은 주의 일, 즉 복음의 엄위함에서 나옵니다.

11절의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는 말씀은 교회가 세워진 목회자와 동역자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을 제시합니다. 영적 지도자를 멸시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주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들은 사역자가 평안함 가운데 사역하고 복귀할 수 있도록 존중과 사랑으로 환대해야 합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아볼로 형제에 대해 언급합니다. 아볼로는 수사학과 구약 성경에 능통한 학자로서 고린도 교회 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인물이며, 심지어 고린도 교회의 분파 중 하나인 아볼로파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아볼로에게 고린도를 방문하라고 많이 권유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정치적이고 속좁은 지도자였다면,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아볼로를 고린도 교회 근처에 가지도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유익만을 바라보았기에 아볼로의 사역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권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볼로는 지금은 갈 뜻이 절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고 답했습니다. 아볼로 역시 자신이 고린도에 갈 경우, 자신을 맹종하는 아볼로파 성도들로 인해 교회의 분열이 더 심화될 것을 우려하여 지혜롭게 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를 신뢰했고, 각자의 사역적 자율성과 주권적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이는 사역자들이 인간적인 시기심을 버리고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동역의 질서를 세워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모범입니다.

본문과 관련된 상호 참조 성경 구절

고린도후서 8장 1절에서 4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린도후서 9장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도행전 11장 29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로마서 15장 25절에서 26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디모데전서 4장 12절

누구든지 네 연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사도행전 19장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깊이 있는 삶의 묵상 및 영적 적용

첫 번째 묵상: 물질의 청지기 정신과 균형 잡힌 신앙의 생활화

사도 바울은 부활의 대각성을 외친 직후에 성도를 돕는 돈 이야기, 즉 연보의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흔히 영적인 일과 물질적인 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도는 영적이고 거룩하지만, 돈을 관리하고 연보를 작정하는 것은 세속적이고 낮은 차원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영과 육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진짜 영적인 사람은 자신의 물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스리고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제시한 매주 첫날, 수입에 따라, 미리 준비하는 연보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물질을 드릴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남는 돈이 있으면 드리고 없으면 주저하는 태도입니까, 아니면 내 모든 수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매주 첫날 가장 먼저 구별하여 계획성 있게 드리는 청지기적 태도입니까? 또한 나의 헌금이 교회 장벽을 넘어 고통받는 이웃과 세계 열방의 굶주린 성도들을 향한 유기적인 사랑의 끈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재정의 훈련은 신앙 성숙의 척도입니다. 인색함과 억지스러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자발적인 물질의 헌신이 일상화될 때 우리의 믿음은 비로소 세상 가운데 실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두 번째 묵상: 선교적 계획과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 사이의 겸손

바울은 치밀한 선교적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 가고, 그곳에서 겨울을 나며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었습니다. 사역자에게는 이와 같은 지혜로운 계획과 기획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절대화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모든 계획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 뜻과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두고, 하나님은 단지 그 계획에 사인하고 축복해 주셔야 하는 조력자로 전락시킬 때가 많습니다.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쉽게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의 삶은 나의 최선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사이의 거룩한 긴장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계획하고 준비하되, 하나님께서 그 발걸음을 막으시거나 다른 길로 인도하실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내 뜻을 꺾을 수 있는 유연함과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는 만큼만 가고, 주께서 멈추라 하시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사역의 길입니다.

세 번째 묵상: 영적 전쟁의 역설, 광대하고 유효한 문과 대적자들

바울은 에베소에 큰 복음의 문이 열렸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문이 열린 증거가 바로 대적하는 자가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적자가 많고 환경이 험악해지면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평탄하고 형통한 길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죽어 있는 교회나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복음이 강력하게 전파되어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어둠의 진영이 무너지는 곳에 사탄은 자신의 하수인들을 총동원하여 대적하고 박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삶에, 혹은 공동체에 영적인 저항과 시련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 올바른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곳에 광대하고 유효한 문을 열어두셨다는 강력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여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대적자가 많을수록 복음의 능력이 더 찬란하게 드러날 기회임을 믿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며 사명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야 합니다.

네 번째 묵상: 동역자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성숙한 교회의 질서

고린도 교회를 향해 디모데를 두려움 없이 영접하고 멸시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바울의 목회적 당부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 내의 관계성을 비추어보게 만듭니다. 교회는 영적인 지도자나 동역자들을 대할 때 인간적인 기준(나이, 스펙, 외모, 경력)으로 평가하고 멸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직분자가 주의 일을 힘쓰는 자라면, 교회는 그가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담대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평안하고 안전한 영적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사역자를 향한 성도들의 존중과 사랑은 사역자가 마음껏 영적 역량을 발휘하게 만드는 마중물이 됩니다.

또한 바울과 아볼로의 관계는 사역자 간의 아름다운 동역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볼로의 사역을 적극 권장했고, 아볼로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유보하며 지혜롭게 처신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봉사와 사역은 내 이름이나 내 부서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동역자의 유익을 위해 나를 낮출 수 있는 아볼로와 바울의 성숙함이 우리 가운데 회복될 때, 교회는 분열을 극복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거룩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하늘의 비밀을 아는 영광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과 시간과 건강이 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합니다. 내 주머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오니, 우리에게 물질의 정직한 청지기 정신을 부어 주시옵소서. 매주 첫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량과 수입에 따라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훈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보가 단순히 교회의 제도를 유지하는 비용이 아니라, 이 땅의 소외되고 가난한 지체들을 먹이고 살리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온 우주적으로 연합시키는 거룩한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물질 관리의 투명함과 정직함을 우리에게 더하사, 세상 가운데서도 도덕적 흠결 없이 신뢰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계획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울 사도가 자신의 선교 여정을 치밀하게 기획하면서도 오직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겸손함으로 주님의 주권을 인정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태도 또한 그러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미래와 진로, 가정과 사업의 수많은 계획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내 고집과 내 야망으로 앞서 나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세밀한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문을 여시면 담대히 나아가고, 주님이 멈추라 하시면 미련 없이 멈추어 서는 온전한 순종의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사역의 현장 가운데 광대하고 유효한 문을 열어주시는 주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곳에는 언제나 대적하는 자와 사탄의 강력한 저항이 있음을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우리 인생 여정 가운데 믿음으로 살려 할 때 만나는 수많은 장애물과 핍박, 환경의 척박함 앞에서 우리가 낙심하여 도망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옵소서. 대적자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곳에 주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임을 믿고, 도리어 영적 야성과 담대함을 가지고 기도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낙심의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또한 간절히 기도하옵기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세우신 영적 지도자들과 수많은 동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숙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수종 드는 자들을 외모나 나이나 인간적인 조건으로 멸시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이 오직 두려움 없이 평안함 가운데 생명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도록 교회가 거룩하고 따뜻한 영적 울타리가 되게 하옵소서. 사역자들과 봉사자들 간에 사탄이 심어주는 시기심과 질투, 비교의식을 예수의 이름으로 묶어 주시고, 바울과 아볼로가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신뢰와 존중의 질서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강 같이 흐르게 하옵소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유익만을 구하는 거룩한 이타심이 우리 모두의 성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주의 일을 힘쓰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