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 목요일의 매일 큐티 본문 말씀은 나훔 1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나훔 1장 1절에서 8절
1절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책이라
2절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비를 품으시되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반대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절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받을 자를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폭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절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절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의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모든 자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절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절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짧은 한 줄 묵상
교만과 포악으로 열방을 압제하는 대적들을 거친 대자연의 권능과 공의의 진노로 완전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고 그 그늘 아래 피하는 자들에게 환난 날의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본문 요약
나훔 선지자는 당시 고대 근동을 잔인하게 지배하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하고 무거운 심판의 묵시를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 여호와의 성품은 자기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보복하시며 진노를 쏟으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신 분이지만, 죄를 고집하며 벌받을 자를 결코 심판 없이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주권과 위엄은 회오리바람과 폭풍을 부리시고 구름을 발의 티끌로 삼으실 만큼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꾸짖으시면 바다와 모든 강이 순식간에 말라붙고, 풍요롭기로 이름난 바산과 갈멜, 그리고 레바논의 화려한 꽃과 초목들마저 순식간에 시들어 버립니다. 그 위엄 앞에 거대한 산들이 진동하여 녹아내리고 온 세계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피조물이 격동하며 솟구칩니다. 창조주의 불타는 진노와 분노 앞에는 그 어떤 인간이나 권력도 능히 버텨낼 수 없으며, 그 진노의 불길은 단단한 바위들마저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공의의 심판 중에도 여호와께서는 본질적으로 선하신 분이며, 고통당하는 성도들이 환난을 맞이할 때 숨을 수 있는 무너지지 않는 산성이 되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그 품에 피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반면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범람하는 물과 같은 압도적인 심판으로 흔적도 없이 진멸하시고 영원한 흑암의 공포 속으로 쫓아내실 것입니다.
신학적 해석
나훔서 1장 1절에서 8절은 요나서와 밀접한 구속사적 대칭점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실현되는지를 선포하는 웅장한 선지학적 선언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선포했을 때 니느웨는 임시적인 국가적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재앙을 비껴갔으나, 약 100에서 15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다시금 포악함과 극도의 교만으로 회귀하여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잔인하게 압제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엘고스 사람 나훔을 통해 니느웨의 영원한 최종 파멸을 선언하십니다.
첫째로, 질투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신학입니다. 2절에서 나훔은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의 질투(카나)는 인간의 속 좁은 시기심이나 감정적 결함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의 언약 백성을 향한 불타는 정절과 독점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세상의 악한 압제자들로부터 보호하시고, 오직 여호와 한 분만을 예배하도록 요구하시는 거룩한 열정입니다. 또한 보복하신다는 표현 역시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온 우주의 왜곡된 도덕적 질서를 바로잡으시는 엄중한 사법적 공의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 즉 하나님의 통치권을 거부하고 성도들을 폭력으로 짓밟는 자들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역사 속에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인과응보적 공의를 신학적으로 확증합니다.
둘째로,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결코 사하지 아니하심의 신학적 조화입니다. 3절은 출애굽기 34장 6절의 전통적인 언약 사상을 계승하여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다고 말하는 동시에, 벌받을 자를 결코 사하지 아니하신다고 못 박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애와 공의가 결코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신다는 것은 아시리아 제국의 포악함이 극에 달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오랫동안 참으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죄에 대한 무감각이나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의 때가 차면, 권능이 크신 창조주께서는 죄를 고집하는 대적들을 향해 추호의 타협도 없이 공의의 칼을 빼 드십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방종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운 경외의 신학을 심어 줍니다.
셋째로, 우주적 현현과 신성한 통치권의 우주론적 서사입니다. 3절 하반절부터 6절까지는 자연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고 호령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현현(Theophany)이 웅장한 시적 언어로 묘사됩니다. 회오리바람과 폭풍은 하나님의 마차요, 구름은 그분의 발을 스치는 먼지에 불과합니다. 당대 고대 근동인들이 신성시하며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던 바산의 목초지, 갈멜의 숲, 레바논의 백향목과 꽃들이 하나님의 꾸짖음 한마디에 완전히 바스러지고 말라붙습니다. 산들이 진동하고 바위가 깨진다는 것은 인간이 이 땅에서 안전하다고 믿는 그 어떤 견고한 요새나 국가적 군사력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한낱 안개처럼 사라질 무력한 피조물일 뿐이라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역사와 자연의 주인이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심을 우주론적으로 선포하며 아시리아의 군사적 오만을 무력화시킵니다.
넷째로, 심판 기사 속에 나타난 남은 자의 구원론입니다. 본문의 신학적 대반전은 거대하고 두려운 우주적 심판의 뇌우 속에서 터져 나오는 7절의 자비의 선포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대적들에게는 소멸하는 불이시지만, 그분의 언약 백성들과 억압받는 남은 자들에게는 무너지지 않는 가장 안전한 요새가 되십니다. 아신다는 단어(야다)는 단순한 지식적 인지가 아니라, 깊은 인격적 관계 속에서 성도의 고통을 공감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언약적 보증입니다. 결국 나훔서의 서론은 악인에게는 타협 없는 어둠의 심판을, 의인에게는 신실한 산성의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중적 통치 원리를 명확히 규명하며 선교학적, 역사 신학적 위로를 완성하고 계십니다.
관련 말씀 구절
출애굽기 20장 5절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시편 9편 9절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날의 산성이시로다
이사야 10장 12절
그러므로 주께서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디모데후서 2장 19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히브리어 12장 29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깊이 있는 묵상
오늘 25일 목요일, 우리는 두란노 생명의 삶 매일 큐티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나훔서라는 매우 단호하고 엄위한 심판의 메시지 앞에 마주 서게 됩니다. 나훔이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 혹은 위로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로의 선지자가 던지는 첫 마디는 니느웨라는 아시리아의 거대 제국을 향한 중한 경고이자 묵시의 심판이었습니다. 원수의 철저한 파멸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가장 완벽하고 위대한 위로가 된다는 복음의 역설이 나훔서의 시작점입니다.
우리는 아시리아 제국과 니느웨의 역사를 역사적 거울로 삼아 오늘 우리의 영적 상태를 두려움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니느웨는 한때 요나 선지자의 거친 외침을 듣고 왕복을 벗으며 재 위에 앉아 짐승까지 금식시키며 철저하게 눈물로 회개했던 은혜의 체험이 있던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식어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망각한 채, 과거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포악한 정복 전쟁을 일삼았고, 급기야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북이스라엘을 처참하게 짓밟아 역사 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한때 큰 은혜를 경험했고 구원의 감격을 맛보았다 할지라도, 날마다 깨어 말씀 앞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지 않는다면 인간의 본성은 언제든지 과거의 죄악과 완악함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니느웨의 배교는 뼈아프게 경고합니다. 오늘 나의 신앙은 안전합니까? 과거에 받았던 은혜의 훈장만을 자랑하면서, 오늘 내 일상의 삶에서는 다시금 탐욕과 시기, 교만과 이기주의라는 포악한 니느웨의 성벽을 쌓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를 향해 돌이키는 삶을 멈출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두려운 공의의 저울이 다가옵니다.
나훔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상실해 버린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복원시켜 줍니다. 현대의 지상 교회는 하나님을 지나치게 값싼 위로와 무조건적인 용서만을 남발하시는 나약한 할아버지처럼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선언합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고 진노를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보시며 격노하시고 대적들을 향해 보복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죄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거룩함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오랫동안 더디하시며 기회를 주시지만, 끝까지 주님의 통치권을 거부하고 죄악을 고집하는 자들을 결코 심판 없이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한번 진노의 발걸음을 떼시면 온 우주의 바다가 마르고, 거대한 레바논의 숲이 시들며, 단단한 바위산들이 초콜릿처럼 녹아내립니다. 이 위대한 창조주 앞에서 감히 내 힘과 권력을 자랑하며 교만하게 목을 곧게 세울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세상의 물질, 권력, 건강이라는 요새는 하나님의 꾸짖음 한마디에 먼지처럼 날아갈 가벼운 것들입니다. 땅의 견고한 것들을 의지하려던 모든 영적 오만을 십자가 앞에 겸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공의의 뇌우와 불길 속에서 신령한 오아시스처럼 터져 나오는 7절의 은혜의 선언에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세상이 뒤집어지고 대적들이 범람하는 물처럼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과 환난의 날에,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그 품으로 뛰어드는 연약한 성도들에게 주님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의 요새는 무너져도 하나님의 요새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더욱 가슴 벅찬 진리는 주님이 그 산성 안으로 피하는 자들을 정확하게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의 눈물을 아시며, 우리가 겪는 압제와 억울함의 무게를 정확하게 인격적으로 알고 계십니다. 내가 비록 세상에서 미천하고 연약하여 외톨이처럼 느껴질지라도, 주님의 산성 그늘 아래 엎드려 부르짖을 때 주님은 내 영혼의 피난처가 되시어 나를 품으시고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완벽하게 보존하십니다.
오늘 목요일, 치열한 영적 전쟁이 가득한 일상의 삶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의 태도를 명확히 결단합시다. 세상의 악한 힘과 교만한 지배자들의 위세에 눌려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악독함과 불의함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저울 위에서 범람하는 물처럼 진멸당하고 흑암 속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십니다. 오만했던 니느웨의 길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겸손히 피합시다. 환난 날에 나의 유일한 산성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꼭 붙잡고, 공의를 행하며 인자 성품을 닮아감으로 세상 속에서 진정한 하늘의 위로와 평강을 누리는 복된 사명자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위대한 주관자가 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25일 목요일 새롭게 시작되는 나훔서의 장엄한 말씀을 통해, 교만하고 포악한 대적들을 향해 단호하게 쏟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진노와, 그 두려운 심판 중에도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자들을 아시고 산성이 되어 주시는 위대한 자비의 복음을 묵상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과거에 받았던 은혜의 추억만을 훈장처럼 자랑하면서 실제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잊어버리고 교만과 탐욕, 정욕과 포악함의 성벽을 쌓아갔던 니느웨와 같은 우리의 완악함을 이 시간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우리를 비추어 영적으로 깨어 연단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값싼 방종의 기회로 삼지 않는 두렵고 떨리는 거룩한 경외심을 우리 마음에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대자연을 호령하시고 바위산을 깨뜨리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내 작은 소유와 무력한 지혜를 자랑하려 했던 모든 영적 교만함을 십자가 앞에 내던지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정결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거센 풍파가 몰아치고 사탄의 대적들이 범람하는 물처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극심한 환난 날에, 세상의 썩어질 권력이나 물질의 요새를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선하시며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산성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품 안으로 믿음으로 뛰어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산성 그늘 아래 엎드려 부르짖는 우리의 연약함과 눈물을 주님께서 정확히 인격적으로 아신다 하셨사오니, 그 위대한 사랑의 음성을 붙잡고 세상 속에서 당당히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억울함을 신원하시고 마침내 공의로 승리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사명의 자리를 지키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목요일의 모든 일터와 가정과 관계의 걸음걸이를 성령님의 권능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합니다. 세상의 불의함과 완악함 앞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역사의 유일한 심판관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의 흑암에서 건져내시고 영원한 요새가 되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