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시편 113편 1절에서 9절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완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한 줄 묵상
가장 높은 보좌에 계시면서도 스스로를 낮추사 먼지와 거름 더미의 소외된 자들을 구원하시고 높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성품을 전심으로 영원히 찬양해야 합니다.
본문 요약
시편 113편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비롯한 주요 절기마다 불렀던 위대한 찬양시인 ‘할렐 시편(113~118편)’의 첫 장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종들을 향해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리고 해 돋는 동방에서부터 해 지는 서방에 이르기까지 온 우주적 공간과 영원한 시간 속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합니다(1~3절).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민족과 나라보다 뛰어나시며, 그분의 영광은 영원한 하늘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계십니다(4절).
그러나 이 위대하신 하나님은 범접할 수 없는 초월성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습니다. 비길 데 없이 높은 보좌에 앉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낮추사” 온 천지를 세밀하게 살피십니다(5~6절). 특히 하나님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 속에서 절망하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친히 일으키셔서 존귀한 백성의 지도자들과 같은 반열에 세우십니다(7~8절). 또한 당대 여인들에게 가장 큰 수치이자 영적 사망 선언과도 같았던 ‘임신하지 못함’의 고통 속에 있던 여인을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기르며 즐거워하는 복된 어머니로 변화시키십니다. 시인은 이 놀라운 영적 반전과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며 “할렐루야”라는 우렁찬 찬양으로 본문을 매듭짓습니다(9절).
신학적 해석
시편 113편은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e)’과 ‘하나님의 내재성(Immanence)’이 어떻게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복음의 핵심으로 연결되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텍스트입니다.
첫째, ‘여호와의 이름(Shem)이 가진 우주적 주권’입니다(1~3절). 시인은 찬양의 대상을 단순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경계에 가두지 않습니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라는 표현은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공간의 확장을 의미하며, “이제부터 영원까지”는 인간의 유한한 역사를 뛰어넘는 종말론적 시간의 확장을 뜻합니다.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며, 그분의 이름은 온 피조 세계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이는 열방의 헛된 우상들과 구별되는 유일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우주적인 주권을 확증하는 신학적 선포입니다.
둘째, ‘자발적 비하(Condescension)의 신학’입니다(5~6절). 5절과 6절은 구약 신학의 거대한 반전을 이룹니다.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우주 만물보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돌보시기 위해 자신의 시선을 아래로 향하시는 행동 자체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스스로 낮추사(Mashpili)’의 히브리어적 의미는 겸손히 자신을 굽히고 내려다보신다는 뜻입니다. 이 구약의 신학적 통찰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카네이션(Incarnation, 성육신)을 통해 온전히 완성됩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인간의 몸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품이 이미 시편 113편 안에 생생하게 예표되어 있는 것입니다.
셋째, ‘먼지 더미에서 보좌로의 구속사적 대역전’입니다(7~9절). 하나님이 아래를 살피시며 하시는 구체적인 행동은 뒤집기(Inversion)입니다. 먼지와 거름 더미(오물 더미)는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되어 생존 능력과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빈민들의 상태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단지 동정하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수렁에서 건져내어 왕의 궁정에 있는 ‘지도자들’의 자리에 앉히십니다. 또한 자녀가 없어 생명력과 소망을 잃었던 여인에게 ‘즐거운 어머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십니다. 이 본문은 사무엘상 2장의 한나의 기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신약의 누가복음 1장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의 원형이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역전의 드라마이며, 복음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관련 말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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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장 8절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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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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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 52~53절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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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1장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 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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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27~2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깊이 있는 묵상
세상은 힘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은 더 높은 곳을 갈망하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견고히 하려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먼지와 거름 더미는 한 번 빠지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수렁이며, 사회적으로 아무런 존재감도 가지지 못한 실패자들의 종착지처럼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에만 환호하고, 소외되고 아파하는 자들의 신음 소리에는 쉽게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113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금 일깨우며 우리 내면의 가치관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시고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지만, 그 권세를 가지고 인간을 억압하거나 군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가장 귀하고 높은 보좌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시며, 이 세상의 가장 깊은 그늘진 곳, 먼지와 오물 더미 속에 주저앉아 눈물 흘리는 ‘가난하고 궁핍한 영혼들’을 향해 자신의 시선과 마음을 고정하십니다.
본문 속 ‘가난한 자’와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의 모습은 사실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하여 죄의 먼지 더미 속에서 유리방황하던 우리 모두의 영적 자화상입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고, 거룩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비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소망 없이 죽어가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말구유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이 스스로 낮아지시는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선택하셨기에, 먼지 더미 같던 우리의 인생이 주님의 자녀라는 존귀한 신분으로 뒤바뀌는 영적 대역전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방식 역시 마땅히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우리의 눈과 마음은 늘 세상의 높은 곳, 화려한 성공만을 좇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주변의 약하고 소외된 자들, 영적으로 마음이 상하고 가난해진 이들을 향한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의 시선도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올리사 존귀하게 세워주셨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교만을 버리고 이웃을 향해 겸손히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삶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고 궁핍한가”, “왜 내 삶에는 풍성한 열매가 없는가” 낙심하며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높은 보좌에 가만히 앉아 계시지 않고, 지금 당신이 주저앉아 있는 그 거름 더미의 자리로 내려와 계십니다. 당신의 모든 눈물과 아픔을 살피시며, 마침내 주님의 때에 가장 존귀한 자리로 들어 올리사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 역전의 하나님, 스스로 낮추사 우리를 살리신 은혜의 여호와를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의 중심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전심으로 높여 드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하늘보다 높으시며 온 우주 만물 위에 뛰어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 영원까지,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오직 주님의 거룩한 이름만을 온 맘 다해 송축하며 찬양합니다. 인간의 유한한 생각으로는 다 측량할 수 없는 높고 위대한 영광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고 완악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시선을 아래로 향하사 스스로 낮추어 우리를 살피시는 그 무한한 사랑과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죄와 허물로 가득하여 영적으로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 속에 주저앉아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가던 비참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친히 건져내어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자 자녀라는 존귀한 왕의 자리에 함께 세워주신 영적 대역전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내 힘과 의로는 도저히 맺을 수 없었던 생명의 풍성한 열매들을 삶 속에 허락하여 주시고, 메마른 마음에 주님의 기쁨을 가득 채워주셨음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향해 낮아지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오늘 우리의 시선과 발걸음도 주님이 바라보시는 세상의 낮고 소외된 곳으로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 눈앞의 화려한 성공과 세상의 높은 자리를 탐하기보다, 상하고 가난한 이웃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사랑과 복음의 빛을 흘려보내는 신실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도 삶의 억울함과 결핍 속에서 고통받는 주의 백성들이 있다면,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일어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 삶의 유일한 자랑이 되시며 최종 승리를 주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