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에스겔 25장 1절에서 11절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을 향하고 그들에게 예언하라

3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4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 주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에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5 내가 랍바를 낙타의 우리로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을 양 떼가 눕는 곳으로 삼은즉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에 가득한 멸시로 즐거워하였나이다

7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뭇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8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모압과 세일이 이르기를 유다 족속은 모든 민족과 다름이 없다 하도다

9 그러므로 내가 모압의 한편 곧 그 나라 국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들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열고

10 암몬 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이 다시는 이방 민족 중에 기억되지 못하게 하리라

11 내가 모압 위에 심판을 베풀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한 줄 묵상

형제 공동체의 고난과 멸망을 보며 방관하는 것을 넘어 ‘아하 좋다’ 하며 조롱하고 즐거워하는 이기적인 악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본문 요약

에스겔 25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 선언(1~24장)이 끝난 후, 유다를 둘러싼 주변 이방 7개국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의 심판이 시작되는 전환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 첫 번째 대상인 ‘암몬’과 두 번째 대상인 ‘모압’을 향한 심판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얼굴을 암몬으로 향하고 예언하라고 명령하십니다(1~2절). 암몬의 죄는 하나님의 성소가 더럽혀지고 이스라엘 땅이 황폐해지며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갈 때, 슬퍼하기는커녕 “아하 좋다” 하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악한 멸시와 즐거움으로 조롱한 것입니다(3, 6절).

이에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암몬을 동방 사람(유목 민족)의 기업으로 넘겨주어 그들의 화려한 수도 랍바를 낙타의 우리와 양 떼가 눕는 황폐한 곳으로 만드실 것입니다(4~5절). 또한 유다의 파멸을 보며 “유다도 별수 없다, 다른 민족과 똑같다”라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차별성을 모독한 모압과 세일 역시 심판의 도마 위에 오릅니다(8절). 하나님은 모압의 국경 지역 성읍들을 열어젖히고 암몬과 함께 동방 사람에게 넘겨주어 철저히 패망하게 하실 것이며, 이 혹독한 보응을 통해 온 열방이 오직 여호와가 우주의 유일한 통치자이심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9~11절).

신학적 해석

에스겔 25장 1~11절은 신정통치 구조 안에서 선민의 심판 이후 열방의 심판이 가지는 구속사적 의미와, 타인의 고난을 대하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묵직한 신학적 주제를 다룹니다.

첫째, ‘사적 감정을 넘어선 공의와 타인의 고난에 대한 책무’입니다(3, 6절). 암몬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는 형제 관계에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의 파멸을 보며 “아하 좋다(Heach)”라고 외쳤습니다. 이 히브리어 감탄사는 상대의 파멸을 보며 터져 나오는 지독하고도 악의적인 쾌감을 뜻합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아래 있는 일이지만, 주변국이 그 고난을 보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6절)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별개의 죄악입니다. 자매 공동체의 아픔을 자신의 이익이나 즐거움의 기회로 삼는 죄(Schadenfreude)는, 인류의 연대성과 사랑의 이중 계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심각한 타락의 증거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예(성소)의 침해와 보응의 법칙’입니다(3~5절). 암몬이 기뻐한 핵심 중 하나는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였습니다. 유다의 바벨론 포로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이었으나, 이방 민족들의 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의 우상(마르두크 등)에게 패배하여 성소가 짓밟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즉, 암몬의 조롱은 유다라는 민족을 향한 비방을 넘어, 유다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과 명예를 모독한 신성모독적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암몬의 풍요롭던 농경지와 성읍들을 유목 민족인 “동방 사람”에게 넘기사 철저히 황폐화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을 열방 가운데 스스로 입증(Vindication)하십니다.

셋째, ‘모압의 죄와 신성한 차별성의 부인’입니다(8~9절). 모압과 세일(에돔)은 “유다 족속은 모든 민족과 다름이 없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이 선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인 ‘거룩(구별됨)’을 무너뜨리는 영적 공격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신 것은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셔서 징계하시는 언약적 과정이었으나, 모압은 이를 ‘하나님의 무능과 선민의 소멸’로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렸습니다. 세상이 교회의 연약함과 징계를 보며 “너희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고 하나님의 구별된 은혜를 조롱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모압의 영화로운 국경 성읍들을 열어 심판하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심으로,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종말론적으로 선포하십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잠언 17장 5절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 잠언 24장 17~18절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 오바댜 1장 12절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에스겔 36장 23절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깊이 있는 묵상

오늘 본문인 에스겔 25장은 우리의 신앙 인격과 삶의 태도를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곁에서 이 끔찍한 비극을 지켜보던 형제 나라 암몬과 모압은 마땅히 그들의 고통에 슬퍼하고 아파하며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서 터져 나온 것은 지독한 이기심과 조롱이었습니다. “아하 좋다! 저들이 드디어 망하는구나” 하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타인의 불행을 자신들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암몬의 악한 모습은 결코 먼 이방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도 은근히 고개를 드는 악한 본성 중 하나입니다. 내가 평소에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 혹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웃이나 동료가 큰 실패를 경험하거나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꼴좋다, 인과응보다”라며 은근한 기쁨과 안도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너희도 별수 없구나”라며 타인의 넘어짐을 내 우월감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이러한 태도를 단순한 감정의 문제를 넘어, 그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는 무서운 죄악이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죄에 대해서는 엄히 징계하시지만, 그 자녀들이 세상으로부터 조롱당하고 짓밟히는 것은 결코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이방 나라들이 유다의 파멸을 보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모독하고 “하나님도 별수 없다”라며 조롱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과 명예를 지키시기 위해 심판의 손을 열방 위에 펴셨습니다. 암몬의 자랑이던 화려한 성읍들을 낙타의 우리와 오물 더미로 바꾸심으로, 온 우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생생하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과 교회의 연약함을 바라볼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권면한 것처럼, 성도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영적 연대감을 지녀야 합니다. 누군가의 넘어짐을 보았을 때 조롱의 입술을 열기보다, “나 역시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언제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겸손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에 숨겨진 악한 멸시와 이기적인 조롱의 마음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못 박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교회의 허물을 보며 “너희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비방할 때, 우리 자신을 먼저 정결케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서의 삶을 회복합시다. 그리하여 내 주변의 상처받고 우는 이웃들을 진심으로 안아주고 위로하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마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는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을 공의와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말씀을 통해 타인의 고난과 아픔을 대하는 우리의 중심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뼈아프게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내 주변의 지체들이 넘어지거나 고통당할 때, 겉으로는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기뻐하며 “아하 좋다” 조롱했던 우리 안의 추악하고 이기적인 악한 본성을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한다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두게 하옵소서.

형제들의 아픔을 보고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멸시했던 암몬과 모압을 철저히 심판하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던 엄위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 땅의 교회가 연약하여 세상으로부터 “너희도 우리와 똑같다” 조롱을 당할 때, 우리가 먼저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의 무릎을 꿇게 하옵소서.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주님의 거룩한 이름과 명예를 스스로 높이시는 주님의 공의를 신뢰하오니, 우리를 다시 정결하게 하사 주님의 영광을 담는 거룩한 성소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이웃들의 슬픔과 눈물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자비의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나의 교만함과 우월감을 내려놓고, 오직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만을 겸손히 자랑하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으로 증거하는 복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유일한 재판장이시며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