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아모스 1:9~15 본문

두로와 에돔에 임하는 벌 1:9~12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10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12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몬에 임하는 벌 1:13~15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14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오리바람의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15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한 줄 묵상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고 분노와 탐욕으로 형제와 약자를 짓밟는 잔혹함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끝없는 분을 버리고 언약적 신실함과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본문 요약

 

하나님께서는 어제 다메섹과 가사에 이어, 이스라엘 국경을 둘러싼 세 이방 민족(두로, 에돔, 암몬)의 가득 찬 죄악을 고발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첫째로 해상 무역의 거점 두로는 과거 이스라엘과 맺었던 ‘형제의 계약’을 배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에돔의 노예 시장에 팔아넘겼기에, 그들의 성과 궁궐이 불타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9~10절). 둘째로 야곱의 형제 민족이었던 에돔은 긍휼을 완전히 내던진 채 칼을 들고 형제를 추적하며 영구히 꺼지지 않는 분노와 악의를 품었기에, 남쪽의 데만과 북쪽의 보스라의 요새 궁궐들이 불길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11~12절). 셋째로 롯의 후손인 암몬 자손은 오직 자기 국경을 넓히려는 탐욕 때문에 길르앗의 임신부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13절). 이에 하나님은 수도 랍바에 전쟁의 광풍과 소멸의 불을 내리실 것이며, 왕과 통치자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심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비참하게 끌어내리실 것입니다(14~15절).

 

신학적 해석

 

첫째, 언약적 신의(Loyalty)의 배신: ‘형제의 계약(베리트 아힘)’입니다.
9절의 ‘형제의 계약’은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절 두로 왕 히람과 맺었던 평화 우호 조약(삼하 5:11; 왕상 5:12)을 가리킵니다. 고대 사회에서 계약은 신들 앞에서 맺은 신성한 약속이었습니다. 두로는 오직 경제적 이익과 노예 무역의 수익을 위해 역사적 신의와 형제 관계를 가차 없이 내던졌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사이의 조약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맺어진 신뢰와 약속을 파기하고 약자를 상품화하는 경제적 배신 행위를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통제되지 않은 악의: ‘긍휼을 버리고 분을 끝없이 품은 에돔’입니다.
11절은 에돔의 죄악을 심리적·윤리적으로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에돔의 근본적 뿌리는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입니다. 혈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형제였음에도, 그들은 형제를 향해 칼을 겨누었고 “긍휼(라하밈,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자비)”을 스스로 내던졌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분노는 일시적 폭발에 그치지 않고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는” 지속적인 원한과 증오로 굳어졌습니다. 성경은 마음에 품은 증오와 무자비함 자체가 살인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악임을 고발합니다.

 

셋째, 탐욕이 낳은 극단적 잔혹성: ‘지경을 넓히고자 행한 반인륜적 학살’입니다.
13절의 암몬 자손이 저지른 만행(“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가장 끔찍한 전시 범죄 중 하나입니다. 그들이 태아와 산모를 학살한 동기는 국가 안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기 지경(영토)을 넓히고자” 하는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탐심이 극에 달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인 생명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야수로 전락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야만성과 생명 경시를 가장 엄중하게 다루십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오바댜 1:10, 12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 에베소서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골로새서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 마태복음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깊이 있는 묵상

 

오늘 아모스 선지자가 고발하는 세 나라의 모습은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두로는 ‘돈과 이익’ 때문에 형제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9절).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나 약속의 동역자로 보지 않고, 단지 내 주머니를 채워줄 상품으로 계산하는 순간 신의는 깨어집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익이 될 때는 웃으며 손을 잡다가도, 손해가 날 것 같으면 신뢰를 저버리고 등을 돌리는 세속의 계산법을 교회와 가정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는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손해가 나더라도 맺은 약속을 지키며, 사람의 가치를 물질의 잣대로 환산하지 않는 신실한 청지기여야 합니다.

 

에돔의 모습은 우리의 내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끝없는 분노와 원한’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11절).
과거의 서운함과 상처를 내려놓지 못한 채, 가슴속에 복수의 칼을 갈며 기회만 오면 형제를 해치려 했습니다.
“긍휼을 버리고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마음에 품은 미움과 증오는 독약과 같아서, 결국 형제를 찌르기 전에 내 영혼을 먼저 썩어 문드러지게 만듭니다. 분노를 방치하면 사탄에게 영적 틈을 내어주게 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고, 내 안의 긍휼을 회복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암몬은 ‘탐욕’에 눈이 멀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13절).
내 영역을 조금 더 넓히고, 내 영향력을 조금 더 과시하기 위해 약자의 눈물과 생명을 짓밟는 야만성을 보였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욕심은 가장 약하고 무력한 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폭력으로 치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불의를 결코 못 본 척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성도의 삶의 자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세상의 냉혹한 경쟁과 배신의 방식을 따르지 마십시오. 분노의 칼을 칼집에 꽂고, 십자가의 긍휼을 옷 입으십시오.
내 이익을 위해 약속을 파기하는 자가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신의를 지키고, 상처 입은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내미는 참된 성도로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문

 

온 세상의 역사를 감찰하시며 공의와 사랑으로 열방을 통치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린 두로와 분노를 품고 긍휼을 내던진 에돔, 탐욕에 눈멀어 생명을 짓밟은 암몬을 향해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일그러진 내면을 비추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물질의 유익과 내 편리함을 앞세워 사람과의 약속과 신의를 가볍게 여겼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사람을 이익의 도구로 계산하지 않게 하시고, 손해가 올지라도 신뢰를 지켜내며 사람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는 정직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원망과 쓴 뿌리를 성령의 불로 태워 주옵소서. 누군가를 향해 칼을 겨누듯 끝없이 품고 있던 분노와 미움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주께서 나 같은 죄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셨듯이 우리 안에도 메말라버린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내 지경을 넓히려는 세속의 헛된 탐욕에 사로잡혀 곁에 있는 연약한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힘과 권력의 논리가 지배하는 차가운 세상 한복판에서, 약한 자를 돌보며 긍휼의 다리를 놓는 온유한 그리스도의 향기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찌르는 원수들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고 영원한 화평의 언약을 완성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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