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3:21~33 – 예루살렘 함락, 도피한 자의 소식, 듣고도 행하지 않는 백성, 음악처럼 듣는 말씀, 실천하는 순종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에스겔 33장 21절에서 33절

2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22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때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침묵하지 아니하였노라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이 이스라엘의 황폐한 땅에 거주하는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많으니 더욱 이 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25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고기를 피째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26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27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넘겨 먹히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게 하리라

28 내가 그 땅이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끝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폐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29 내가 그들이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그 땅을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면 그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라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그들 가운데에 있었던 줄을 알리라

 

한 줄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감미로운 음악처럼 즐겁게 듣기만 하고 삶의 현장에서 행동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자만과 이기심일 뿐이므로, 주님의 엄중한 경고 앞에 온전히 삶을 고치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요약

본문은 포로로 잡혀간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 최종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도망쳐 온 자를 통해 에스겔에게 전달되는 역사적 순간을 다루는 에스겔 33장 21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기 전날 저녁, 여호와의 손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에스겔 3장 이후 길게 이어졌던 입의 닫힘(침묵)이 풀리고 회복과 소망의 말씀을 자유롭게 선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21~22절).

그러나 황폐해진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아브라함은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얻었으니 인구가 많은 우리는 더욱 이 땅의 주인이다”라며 착각과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어겨 피째 고기를 먹고, 우상을 숭배하며, 칼을 믿고 가증한 일을 행하는 그들에게 절대로 그 땅이 기업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하십니다. 칼과 들짐승, 전염병으로 그 황무지의 자들을 심판하사 그 땅을 완전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실 것입니다(23~29절).

또한 바벨론 포로지 백성들의 영적 실상도 고발됩니다. 그들은 담곁과 문 앞에서 선지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씀 들으러 모여들고, 에스겔 앞에 정중히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척하지만 삶으로는 전혀 행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나 마음으로는 탐욕과 이익을 좇았고, 선지자의 말씀을 감미로운 음악이나 아름다운 노래처럼 감상하고 즐기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선포한 심판과 회개의 말씀이 실제로 응할 때, 비로소 자신들 가운데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30~33절).

신학적 해석

에스겔 33장 21~33절은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구체적 도달과 함께, 말씀을 대하는 인간의 도덕적 착각 및 지적·감상적 타락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신학적 정수를 보여줍니다.

첫째, ‘선지자 침묵의 해제와 구속사적 전환’입니다(21~22절). 에스겔 3장 26절에서 선지자의 입이 닫히며 이스라엘을 향해 대언할 수 없었던 침묵의 기간이, 예루살렘 함락 소식이 포로지에 도착함과 동시에 끝납니다. 심판의 경고가 사실로 입증된 이 순간부터 에스겔의 입은 열리고, 34장 이하에서 선포될 메시아적 회복, 새 언약, 새 성전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가 비로소 힘 있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반드시 사실로 성취되며, 심판의 끝은 곧 구원의 재시작임을 나타냅니다.

둘째, ‘언약적 혈통주의에 대한 신학적 착각’의 폭로입니다(24~26절). 황폐한 예루살렘 땅에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수적 우위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신분을 근거로 “이 땅은 우리의 기업”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는 신앙적 기득권에 안주하는 영적 자만입니다. 성경 신학에서 약속의 땅은 단순한 혈통적 세습이나 머릿수로 유지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준수하고 공의를 행할 때 누리는 ‘언약적 선물’입니다. 피를 먹고 우상을 숭배하며 폭력을 행사하면서 아브라함의 복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모독하는 망상에 불과함을 드러냅니다.

셋째, ‘말씀의 미학적 소비와 가짜 경청(Aesthetic Consumption of Word)’의 고발입니다(30~32절). 바벨론에 끌려온 백성들은 에스겔에게 모여들어 겉으로는 매우 경건하게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내면을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다”라고 폭로하십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하나님의 경고나 삶의 지침으로 받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영적 위안을 얻는 ‘문화적·감성적 소비재’로 다루었습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나 중심에는 사리사욕과 이익을 좇는 이중적 신앙은, 행동 없는 들음이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한 우상숭배적 타락인지를 극명하게 규명합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야고보서 1장 22~25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이사야 29장 13절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 마태복음 3장 9절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요한1서 3장 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깊이 있는 묵상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성도들의 내면과 삶의 태도를 뼛속 깊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룩한 영적 거울입니다.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선지자 에스겔의 입이 마침내 자유롭게 열리고, 그토록 예언했던 예루살렘 성의 함락이라는 충격적인 비극의 소식이 현실이 되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는 공허한 소리가 아니었으며, 역사의 현장 속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엄중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심판의 현장 속에서도 인간의 타락한 죄성과 교만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황폐해진 폐허 속에 남아 있던 자들은, 자신들이 지은 악독한 죄악(우상 숭배, 피째 고기를 먹음, 이웃의 아내를 더럽힘)은 전혀 돌아보지 않은 채,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도 이 땅을 주셨는데, 수가 많은 우리는 당연히 이 땅의 주인이다”라며 허망한 신앙적 기득권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삶은 내팽개친 채, 그저 과거의 영광과 기득권만 움켜쥐면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참담한 무지와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백성들의 위선적인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담곁과 집 문에 모여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임하는가 들어보자”라며 열성적으로 선지자에게 나아왔습니다. 선지자 앞에 경건하게 앉아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 중심의 추악함을 정확하게 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고백하면서도 속으로는 오직 세상의 이익과 탐욕만을 좇았습니다. 선지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엄중한 생명의 말씀을, 그저 감미로운 음성으로 부르는 아름다운 음악이나 유쾌한 공연처럼 감상하고 즐겼을 뿐,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순종의 결단은 단 하나도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백성들의 위선적인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매주 주일에, 그리고 매일의 큐티와 성경 통독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수없이 접하며 살아갑니다. 설교를 들으며 감동을 받고 “아멘”으로 확답하며, 깊은 신학적 지식을 쌓아가고 아름다운 찬양과 말씀의 전율을 즐깁니다. 그러나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말씀의 거울에 비친 내 삶의 허물을 고치려는 결단도, 내 불의한 이익과 탐욕을 내려놓으려는 십자가의 순종도 없이 여전히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듣고 감상했느냐, 얼마나 영적인 지식을 쌓았느냐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성도는 말씀을 감상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들은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피 흘리기까지 실천해 내는 ‘순종자’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영적 자만에 불과하며, 종말의 날에 부끄러움과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 내 삶에 가득했던 말뿐인 신앙, 감상주의적인 껍데기 신앙을 십자가 앞에 내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헛된 기득권과 매너리즘을 허물고, 오늘 내게 주신 주님의 작은 말씀 하나라도 직장과 가정, 일상의 관계 속에서 정직하게 행동으로 옮깁니다. 입술의 고백을 넘어 내 손과 발의 순종으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입증하며, 마침내 온 삶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신실하고 거룩한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역사의 모든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의 함락이라는 엄중한 역사적 성취를 바라보며,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깊이 회개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모습으로 말씀의 자리에 나아와 귀를 기울이고 감동을 받으면서도, 정작 예배당 문을 나설 때에는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순종의 결단 없이 내 이익과 세상 탐욕만을 좇았던 우리의 무서운 감상주의적 신앙을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말씀을 하나님의 거룩한 경고와 삶의 지침으로 받지 않고, 그저 고운 음성의 노래나 아름다운 음악처럼 즐기고 소비했던 우리의 영적 자만과 만성이 된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과거의 신앙적 경험이나 가문의 기득권에 안주하려 했던 어리석은 착각을 허물어 주시고, 오늘 지금 이 순간 말씀의 거울 앞에 나를 비추어 정직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진정한 실천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피째 고기를 먹고 우상을 의지하며 이웃을 더럽히던 예루살렘 잔류 백성들의 완악함을 닮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명하신 작은 말씀 하나에도 순종하며 내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사랑, 공의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내 손과 발이 움직여 이웃을 섬기고 주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진실한 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들은 말씀이 내 삶의 거룩한 변화로 열매 맺어, 마침내 나를 통해 온 세상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는 복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스승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에스겔 33:10~20 – 공의와 정의, 회개와 돌이킴, 하나님의 공평하심, 생명의 길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에스겔 33장 10절에서 20절

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맥마르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1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3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14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15 저물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16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17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니라

18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가 그 가운데에서 죽을 것이고

19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한 줄 묵상

하나님은 악인의 파멸이 아닌 영혼의 진정한 돌이킴과 생명을 원하시므로, 과거의 의나 죄에 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말씀 앞에 정의와 공의로 삶을 고치는 자만이 참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본문 요약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허물과 죄로 인해 자포자기하며 “어찌 능히 살리요”라고 낙심할 때,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과 공의로운 심판의 기준을 명확히 선포하시는 에스겔 33장 10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시며, 악인이 죽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니 “돌이키고 돌이키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안타깝게 부르짖으십니다(10~11절).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적 책임과 현재성을 강조하십니다. 과거에 의인이었을지라도 스스로의 공의를 믿고 현재 죄악을 행하면 그 과거의 의는 기억되지 않고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반대로 과거에 악인이었을지라도 자기 죄에서 돌이켜 저물물을 돌려주고 강탈한 물건을 돌려주며 생명의 율례를 지켜 실천적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과거의 죄는 기억되지 않고 반드시 살 것입니다(12~16절).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백성들의 길이 공평하지 못함을 지적하시며 각 사람이 현재 행하는 바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십니다(17~20절).

신학적 해석

에스겔 33장 10~20절은 구약 신학 전체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Hesed)과 공의(Mishpat)가 어떻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신학적 본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신성한 맹세(Divine Oath)와 생명 지향성’입니다(11절). 하나님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가장 강력한 맹세 형식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인간의 파멸이나 복수가 아니라 ‘살림(Life)’에 있습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 선언은 심판이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회개로 이끄시기 위한 사랑의 도구임을 증명합니다. 히브리어 “돌이키라(슈브, Shuv)”의 거듭된 명령은 내면의 마음뿐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하나님께로 완전히 전향하라는 강렬한 구속사적 초대입니다.

둘째, ‘공의의 현재성과 행함이 있는 회개’의 원리입니다(13~16절). 성경은 과거의 신앙적 업적이나 가문의 혈통이 현재의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재적 신앙의 책임성’을 강조합니다. 의인이 자신의 공의를 ‘스스로 믿는 순간’ 이는 공의가 아니라 교만과 우상이 되어 파멸에 이릅니다. 반면 참된 회개는 관념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15절의 “저물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라는 표현은, 죄에 대한 고백이 이웃에 대한 피해보상과 사회적 공의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구원받은 자의 삶에 반드시 정직한 열매가 따라야 함을 규명하는 대목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평하심(Teken)과 자아 중심적 변명의 해체’입니다(17, 20절).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한 고난을 바라보며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라고 하나님을 탓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패역한 길이야말로 불공평하다고 반박하십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각 사람이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보여주는 중심과 삶의 행위대로 진실하게 대하시는 데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죄를 유전이나 하나님의 가혹함으로 핑계 대려 하는 인간의 교만한 자기변명을 철저히 해체하는 공의의 선언입니다.

관련 말씀 구절

  • 디모데전서 2장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베드로후서 3장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이사야 55장 7절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넓게 용서하시리라

  •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요한1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깊이 있는 묵상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깝고 뜨거운 어버이의 심정을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은 지난 날의 허물과 죄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가 이 죄 가운데서 맥이 빠지고 타들어 가고 있으니, 어찌 능히 살 수 있겠는가”라며 자포자기와 낙심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죄의 대가는 너무나 중하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구원의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책과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향해 당신의 거룩한 삶을 두고 맹세하시며 선언하십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나님의 본심은 죄인을 심판하여 멸망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죄에서 돌이켜 생명의 삶을 얻는 데 있습니다. 죄의 깊이가 아무리 깊고 무거울지라도, 참된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용서와 생명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회개는 단지 입술로만 죄를 뉘우치거나 감정적인 눈물을 흘리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의 돌이킴을 요구하십니다. 남의 것을 강탈하고 억울하게 빼앗았던 저물물을 도로 돌려주듯, 과거의 잘못된 삶의 습관과 불의한 관계를 바로잡고 하나님의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는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내가 지은 불의를 청산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정직과 사랑을 회복할 때, 하나님은 그 과거의 모든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본문은 과거의 신앙적 공로나 익숙한 종교적 매너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영적 자만을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과거에 내가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을지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스스로를 의롭다 믿으며 은밀한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과거의 의는 나를 구원해 내지 못합니다. 신앙은 어제의 추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 말씀 앞에 겸손히 나를 비추며 공의와 정의의 길을 걸어가는 현재형의 순종입니다.

오늘 하루,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며 내 삶의 고난과 한계를 하나님이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려 했던 불신앙의 불평을 내어 버립시다. 내 지나온 삶의 죄악이 아무리 무겁다 할지라도, 나를 향해 “돌이키고 돌이키라”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로운 음성에 기쁨으로 응답합시다. 과거의 죄책감이나 은밀한 영적 자만에서 벗어나,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사랑, 공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생명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신실한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의 주재이시며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말씀을 통해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안타깝고 뜨거운 사랑의 본심을 깊이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내 지나온 허물과 죄악의 무게 때문에 낙심하고 자포자기하여 “어찌 능히 살리요” 절망했던 우리에게 “돌이키고 돌이키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은혜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나이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신앙적 열심이나 공로를 스스로 믿으며 은밀한 죄악을 정당화하려 했던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과거의 자랑에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는 현재의 신앙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회개가 입술의 고백에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삶의 현장에서 강탈한 저물물을 돌려주듯 불의한 습관을 끊어내고 이웃에게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거룩한 변화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내 삶의 어려움을 바라보며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했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고,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나를 비추어 성결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를 살리시는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온 삶으로 주님의 정의와 공의를 나타내는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에스겔 33:1~9 – 민족의 파수꾼, 나팔을 불어 경고하라, 피 값을 찾으리라, 회개와 생명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에스겔 33장 1절에서 9절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받아 파수꾼을 삼은

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존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한 줄 묵상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으로 부르셨으므로, 세상과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의 나팔을 신실하게 불어 생명을 건져내야 할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본문 요약

본문은 에스겔서의 거대한 전환점으로, 이방 열방을 향한 심판 예언(25~32장)이 끝나고 이제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영적 재생을 선포하기 직전, 선지자 에스겔의 ‘파수꾼(Watchman)’ 사명을 재확인하시는 에스겔 33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일상의 비유를 들어 파수꾼의 역할과 책임을 설명하십니다. 백성이 세운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경고했을 때,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아 죽으면 그 책임(피 값)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아 백성이 죽으면, 그 백성은 죄악으로 죽을지라도 그 피 값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입니다(1~6절).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영적 파수꾼으로 삼으셨음을 선언하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듣고 전해야 합니다. 악인에게 죽음을 경고하여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의 피 값을 에스겔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나, 에스겔이 신실하게 경고했음에도 악인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악인은 자기 죄로 죽고 에스겔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7~9절).

신학적 해석

에스겔 33장 1~9절은 에스겔 3장 16~21절의 파수꾼 사명을 다시 한번 확장하고 깊이 있게 재확인하는 구속사적·개인적 윤리의 핵심 텍스트입니다.

첫째, ‘파수꾼(Tsopheh)의 사명과 중보적 연대성’입니다(2~6절). 고대 근동의 성읍에서 파수꾼은 성벽 위에 서서 대적의 침입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성안 백성들에게 나팔을 불어 생명을 보존케 하는 절대적인 직무를 담당했습니다. 신학적으로 파수꾼의 핵심 가치는 ‘나팔을 부는 신실함’에 있습니다. 파수꾼은 승리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경고를 전달하는 사자(Messenger)입니다. 파수꾼이 침묵하거나 사명을 게을리할 때 공동체 전체가 파멸에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은 파수꾼의 태만에 대해 “그 죄(피)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라며 엄중한 연대적 도덕적 책임을 물으십니다.

둘째, ‘복음 선포의 공동 책임과 개인적 인격성(Personal Responsibility)’의 대조입니다(4, 8~9절). 본문은 죄와 심판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합니다.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는 자”는 자기 죄로 인해 파멸하며, 경고를 받고 돌이키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에스겔 18장에서 다루었던 ‘개인적 책임주의’가 파수꾼의 사명과 결합한 것입니다. 이 신학적 구도는 심판이 하나님의 가혹한 보복이 아니라,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미리 나팔을 불어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경고(Warning of Grace)’임을 역설합니다.

셋째, ‘나를 대신하여 경고하라(Re-presentation of God)’는 대언적 기독론입니다(7절). 7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라고 명령하십니다. 선지자는 자기 생각이나 정치적 아첨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수신하고 그분의 마음을 그대로 대언하는 자입니다. 신약 시대에 이 파수꾼의 역할은 십자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로 확장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나팔을 불어야 하는 생명적 직무이자 영적 파수꾼의 거룩한 의무입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에스겔 3장 17~18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경고하지 아니하거나 가리켜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 사도행전 20장 26~27절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 고린도전서 9장 16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불가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파수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계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히브리서 13장 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깊이 있는 묵상

오늘 본문은 성벽 위에서 사방을 두루 살피며 대적의 칼날이 몰려오는지를 감시하는 ‘파수꾼’의 엄중하고도 거룩한 사명을 우리에게 비추어 줍니다. 고대 성읍의 안전은 성벽의 높이나 군대의 숫자보다, 성루에 서 있는 파수꾼의 깨어 있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밤 깊은 시각, 성안의 백성들이 모두 안심하고 잠들어 있을 때, 파수꾼은 홀로 눈을 밝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주시해야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대적의 칼날이 빛나는 것을 보는 순간, 파수꾼이 해야 할 단 하나의 절대적인 의무는 온 힘을 다해 나팔을 불어 쉼 없이 경고의 소리를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바로 이 ‘이스라엘의 영적 파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운 칼이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헛된 평안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엄중한 심판과 회개의 말씀이라는 나팔을 쥐어 주시며,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느냐는 ‘성공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파수꾼에게 원하시는 단 하나의 조건은, 대적의 위협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핑계 대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나팔을 불었는가’ 하는 ‘충성스러움’이었습니다. 파수꾼이 침묵하여 나팔을 불지 않는다면, 피할 기회를 얻지 못한 백성들은 자기 죄로 망하겠지만, 그 억울하고 비참한 피 값을 하나님께서 침묵한 파수꾼의 손에서 도로 찾으시겠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파수꾼의 나팔 소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이 땅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죄악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영적인 대적의 칼날이 온 인류를 향해 밀려오고 있는 긴박한 환난의 때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영적 죄악의 잠에 빠져 비참한 멸망을 향해 가면서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알지 못한 채 안일함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의 성도인 우리들을 세상을 향한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내 가족, 내 일터의 동료들, 내 이웃들을 향해 주님의 생명의 복음과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나팔을 쥐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비난이나 거절이 두려워, 혹은 내 일상의 바쁨과 무관심에 빠져 영적 파수꾼으로서의 침묵을 지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이웃과 가족이 영적인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에도, “나만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그만이다”라는 이기적인 안일함 속에서 나팔을 내팽개쳐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복음을 전하고 영적 경고를 발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파수꾼인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적인 직무입니다. 내가 신실하게 복음의 나팔을 불 때, 듣는 이가 돌이키든 돌이키지 않든 우리는 주님 앞에서 피 값에 대한 책임을 면하고 생명을 보존하게 됩니다. 나팔 소리를 듣고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적 파수꾼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기쁜 구원의 열매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둔감해졌던 우리의 영적 감각을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깨웁시다. 내 가족과 이웃,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눈물을 품고, 담대히 십자가와 회개의 복음 나팔을 불어 세상을 살려내는 신실한 영적 파수꾼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의 주재이시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이 시대의 거룩한 영적 파수꾼으로 불러주셨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죄악과 어둠이 짙어지고 영적인 대적의 위협이 엄습해 오는 이때에,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나팔을 불지 않고 침묵했던 우리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내 가족과 일터의 동료들, 이웃들이 영적인 파멸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에도, 핍박이 두려워 복음의 입술을 닫고 있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으리라” 하신 주님의 엄위하신 경고를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세상의 눈치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와 회개의 복음 나팔을 담대히 불어대는 신실한 파수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채워 주시고, 우리 마음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안타까운 눈물을 부어 주시옵소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나를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성벽 위에 서서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어, 주님의 사랑과 공의를 세상에 온전히 선포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파수꾼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에스겔 32:17~32 – 스올에 던져진 열방,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죽음,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 영원한 안식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에스겔 32장 17절에서 32절

17 열둘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위하여 슬피 울고 그와 대국 나라의 딸들을 땅 밑으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내려보내라

19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어떤 사람들보다 뛰어난가 너는 내려가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와 함께 누울지어다

20 그들이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는 칼에 넘겨진 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어갈지어다

21 용사 중에 힘센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스올 가운데에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22 거기 앗수르와 그 온 무리가 있음이여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라 그 무덤이 그 사방에 있도다

23 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두려움을 주던 자로다

24 거기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칼에 맞고 엎드러져 할례를 받지 못하고 땅 아래로 내려간 자라 그들이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두려움을 주었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25 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무덤을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베풀었고 그 모든 무리는 그 무덤 사방에 있으니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멸망을 당한 자라 그들이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두려움을 주었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웠도다

26 거기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음이여 그 무덤이 사방에 있도다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라 그들이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두려움을 주었었도다

27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중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를 함께 누운 것이 부당하냐 이 용사들은 손에 무기를 잡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머리 밑에 베었으니 그 골수가 자기 죄악을 짊어졌음이여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용사들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28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이며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29 거기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30 거기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려움을 주었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갔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누웠도다

31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 내가 바로로 하여금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두려움을 주게 하였으나 이제는 그가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 줄 묵상

한때 세상을 위협하며 두려움을 주던 세상의 모든 강대국들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스올 깊은 곳에 수치스럽게 누울 뿐이므로, 성도는 세속의 거짓된 권력에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요약

본문은 에스겔 25장부터 시작된 열방을 향한 심판 예언의 가장 마지막 단락으로, 애굽을 비롯하여 세계를 호령하던 거대 제국들이 스올(음부)이라는 죽음의 세계에서 어떻게 수치스럽게 매장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에스겔 32장 17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애굽과 여러 강대국들을 위해 슬피 울고 그들을 땅 밑 구덩이로 내려보내라고 명하십니다. 아무리 아름다움과 영화를 자랑하던 애굽일지라도 결국 칼에 죽임을 당해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과 함께 스올에 눕게 될 것입니다(17~21절).

이어 스올의 어두운 무덤가에 먼저 내려가 자리를 잡고 있는 옛 제국들의 장례 목록이 나열됩니다. 한때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막강한 무력으로 사방에 두려움을 주었던 앗수르,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북쪽 방백들과 시돈 사람들이 모두 칼에 엎드러져 할례 받지 못한 수치를 품고 구덩이 깊은 곳에 누워 있습니다(22~30절). 애굽의 바로 왕 역시 자신의 군대와 함께 그 수치스러운 무덤가로 던져질 것이며, 자신이 홀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세등등하던 모든 열방이 다 함께 망해 있는 모습을 보며 역설적인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이 거대한 죽음의 묘지 풍경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주름잡던 인간 권력의 허무한 종말을 최종 선포하십니다(31~32절).

신학적 해석

에스겔 32장 17~32절은 성경 전체에서 ‘스올(Sheol)’과 음부의 구조를 가장 입체적이고도 장엄하게 묘사하는 묵시적·신학적 텍스트로, 세상 제국주의의 본질적 유한성과 하나님의 우주적 재판권을 명확히 규명합니다.

첫째, ‘스올의 종말론적 평준화와 수치(Shame)의 신학’입니다(18~21절). 본문은 죽음의 세계인 스올을 거대한 지하시설이나 공동묘지의 형태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거듭 강조되는 핵심 표현은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 “칼에 죽임을 당한 자”, “수치를 당하고”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신학에서 할례는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 안에 속해 있다는 표식이었으며, 할례 받지 못한 채 칼에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은 언약의 은혜에서 완전히 배제된 영원한 버림받음과 수치를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왕이나 용사로 섬김을 받으며 군림했던 자들이, 스올에서는 무기도 빼앗긴 채 피투성이가 되어 다른 시신들과 엉켜 눕는 철저한 영적·신분적 평준화와 수치를 맞이하게 됩니다.

둘째,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Land of the Living)의 대조적 재정의’입니다(23, 27, 32절). 본문에서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관용구가 6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이 땅은 제국들이 무력과 폭력으로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을 위협하고 “두려움을 주던” 이 세상 역사의 무대를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칼과 무력으로 타인의 생명을 억압하며 살아간 자들이 거했던 그 땅은 참된 생명의 땅이 아닌 ‘죽음과 폭력의 터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폭력의 주범들을 지하시설 깊은 구덩이로 끌어내리심으로, 더 이상 세속의 악인들이 의인들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세상 역사의 판도를 정화하십니다.

셋째, ‘거짓된 위로(False Comfort)와 메시아적 종말론’입니다(31절). 31절에서 바로 왕이 스올에 내려가 먼저 죽은 여러 나라와 군대들을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표현은 강렬한 신학적 비꼼과 역설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교만으로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도 똑같이 망해 있는 비참한 모습을 보며 얻는 위로는 참된 구원이 아닌 파멸의 위로에 불과합니다. 세속 제국들은 서로를 찌르고 무너뜨리며 함께 구덩이로 내려가지만, 신약 구속사의 관점에서 성도는 스스로 죽음의 스올 깊은 곳까지 내려가사 그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수치가 아닌 영원한 부활과 생명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됨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14장 9~11절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심을 맞이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구웅을 너로 말미암아 요동하게 하며 길국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처럼 유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처럼 되었느냐 하리로다

  • 시편 27편 13절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신하였도다

  • 누가복음 16장 22~23절

    이에 그 거지 가 죽어 천사들에게 들리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 고린도전서 15장 55~57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요한계시록 20장 13~14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깊이 있는 묵상

오늘 본문은 세상을 호령하던 찬란한 제국들과 강력한 권력자들이 도달하게 되는 최종 목적지, 즉 거대하고 어두운 지하의 묘지인 ‘스올’의 풍경을 거대한 장례의 서사시로 보여줍니다. 한때 온 세상을 지배하던 앗수르,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시돈, 그리고 애굽에 이르기까지, 이 열방들의 공통점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강력한 무력과 자본을 휘두르며 “생명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사방에 두려움을 주던 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나라들이 요동쳤고, 그들의 칼날 아래 수많은 약자들이 떨며 눈물 흘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영원할 줄 알았고, 내 손에 쥐어진 무기가 스스로의 안전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자, 천하를 호령하던 용사들과 왕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지하 구덩이 깊은 곳 스올로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생전처럼 머리 밑에 고이 베고 누운 무기들과 칼은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해 내지 못했고, 도리어 그들의 뼈와 골수 속에 새겨진 죄악의 무게가 되어 그들을 스올 바닥으로 깊이 눌러버렸습니다. 스스로를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신이라 칭하던 자들이, 언약의 표식조차 없는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수치를 입은 채 어두운 무덤가에서 서로의 비참한 시신을 바라보며 쓸쓸히 누워 있는 것입니다.

이 스올의 진풍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적 시선을 고스란히 교정해 줍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여전히 ‘세속의 힘과 돈, 스펙과 권력’이라는 무기를 쥔 자들이 소리 높이며 사방에 두려움을 뿌리는 곳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힘을 키워라, 남들을 두렵게 할 만한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어라, 그래야 네가 살아남는다”라고 부추깁니다. 때로는 세상의 거대한 힘과 악인들의 형통함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들의 위협적인 권세 앞에 위축되어 두려움과 불안 속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세상의 권력이 가진 본질적인 유한함과 허무함을 똑똑히 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강력함은 종말의 날에 스올의 구덩이로 수치스럽게 내던져질 찰나의 안개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힘으로 타인에게 두려움을 주며 세운 모든 바벨탑은,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철저하게 해체되어 영원한 수치의 옷을 입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진짜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땅은, 힘 있는 자들이 칼을 휘두르며 두려움을 주는 세속의 땅이 아닙니다. 오직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자들이 거하는 ‘영원한 생명의 땅’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위협하고 눌러오는 세상의 거대한 소리와 힘의 크기에 두려워 떨지 맙시다. 손에 칼을 쥐고 세상을 두렵게 하려던 교만한 삶을 버리고, 나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스올의 권세를 깨뜨리사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내 인생의 피난처로 삼읍시다. 세상의 모든 영광과 무기가 스올의 먼지로 전락할 때에도, 주님의 말씀 위에 겸손히 무릎 꿇는 성도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평안과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세상의 모든 역사를 공의로 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말씀을 통해 세상의 거대한 권력과 강대국들이 맞이하는 스올의 수치스럽고 비참한 종말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돈과 권력, 스펙이라는 무기를 쥐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며 높이 서려 했던 세속의 교만함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 껍데기인가를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힘을 자랑하며 악인들이 형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워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강함에 마음을 빼앗겨 나 역시 세속의 무기를 손에 쥐려 애쓰지 않게 하시고, 오직 내 영혼의 참된 피난처가 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담대히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오는 하늘의 참된 평강과 담대함을 우리 심령에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스올과 사망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사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찬양합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한 무기와 위엄이 스올의 먼지로 전락할 때에도, 주님의 언약 안에 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함을 믿사오니, 오늘 하루도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마침내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에스겔 32:1~16 – 애굽을 위한 애가, 큰 악어의 비극, 빛의 어두워짐, 여호와의 심판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에스겔 32장 1절에서 16절

1 열둘째 해 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악어라 강에서 뛰어 놀아 발로 물을 어지럽히고 그 강을 더럽혔도다

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4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이 네 위에 앉게 할 것이며 온 땅의 짐승이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5 내가 네 살점을 여러 산들에 두며 네 시체를 골짜기에 채울 것이며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대어 산에까지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울을 채우리로다

7 내가 너를 불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네 멸망의 소문이 여러 나라 곧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도달하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하게 할 것이며

10 내가 그 많은 백성을 너로 말미암아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을 그 왕들 앞에서 휘두를 때에 그 왕이 너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하여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기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임하리로다

12 내가 네 무리를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뜨릴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짓밟으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할 것이라

13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 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어지럽히지 못할 것이며

14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5 내가 애굽 땅이 황폐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거주하는 백성이 없게 하리니 내가 그 가운데의 모든 주민을 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6 이는 슬피 부를 애가니 여러 나라의 딸들이 이것을 부름이여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 줄 묵상

자신이 온 세상을 호령하는 사자인 줄 착각하며 강물을 어지럽히던 교만한 권력은, 하나님의 그물과 칼 앞에 비참하게 해체되어 멸망의 애가를 부르는 탄식의 주인공이 될 뿐입니다.

본문 요약

본문은 유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지 열둘째 해 둘째 달 초하루(B.C. 585년경)에 선지자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으로, 애굽의 바로 왕과 그 제국을 향해 부르는 슬픈 장례의 노래인 에스겔 32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바로 왕은 스스로를 열방의 사자로 여겼으나 실상은 강물과 바다를 더럽히는 폭력적인 ‘큰 악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백성의 무리를 동원해 그 위에 그물을 치고 끌어내어 들판과 산들에 그 시체를 흩어 버리사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1~6절).

하나님은 애굽의 멸망을 우주적 묵시 현상으로 묘사하십니다. 애굽을 불 끄듯 꺼버리실 때 하늘의 해와 달, 별들의 빛이 어두워지고 땅에 깜깜한 흑암이 베풀어질 것입니다. 이 멸망의 소문은 열방의 왕들과 백성들을 심히 두렵게 만들고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7~10절). 하나님이 쥐어 주신 바벨론 왕의 칼에 의해 애굽의 교만이 짓밟히고 물을 어지럽히던 악한 짐승들이 멸절될 때, 비로소 강물이 기름처럼 맑게 흐르고 온 땅이 여호와의 주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 나라의 딸들이 슬피 부를 이 애가는 애굽의 종말이 필연적임을 선포합니다(11~16절).

신학적 해석

에스겔 32장 1~16절은 애굽 심판 예언(에스겔 29~32장)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서사시이자, 세속적 제국주의의 본질을 ‘우주적 탈창조(De-creation)’와 ‘공의로운 정화’의 관점에서 해부하는 깊은 신학적 텍스트입니다.

첫째, ‘사자(Lion)와 악어(Monster)의 착각과 실체’입니다(2절). 바로 왕은 스스로를 세상의 으뜸가는 포식자이자 위엄 있는 ‘젊은 사자’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비친 그의 참모습은 “바다 가운데의 악어”였습니다. 그가 행한 일은 강물에서 뛰어놀며 발로 물을 젓고 강을 더럽힌 것, 즉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질서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강대국의 무력으로 약소국들을 짓밟은 피조물의 오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그물(Hermesh)’을 던져 이 거대한 악어를 뭍으로 끌어내어 산과 골짜기에 흩어버리십니다.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교만한 세력은 결국 창조주의 공의로운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빛의 소멸과 우주적 묵시 심판(Cosmic Judgment)’의 원리입니다(7~8절). 하나님은 애굽의 몰락을 가리켜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시절 애굽 전역을 덮었던 9번째 재앙인 ‘흑암 재앙’의 재현이자 확대입니다. 성경 신학에서 애굽의 왕(파라오)은 태양신 ‘라(Ra)’의 아들로 숭배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의 광명체들을 어둡게 하시고 흑암을 베푸시는 것은, 애굽의 우상 종교가 얼마나 무력한 허상인지를 폭로하시는 신학적 행위입니다. 세상의 가짜 빛을 끄시고 참된 빛의 주권자가 여호와 한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셋째, ‘혼돈의 정화와 생수의 회복’입니다(13~14절). 13절과 14절은 애굽의 멸망 뒤에 찾아오는 영적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강물을 어지럽히던 교만한 악어와 짐승들이 제거되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라는 놀라운 선언이 주어집니다. 악인의 강포함과 세속적 탐욕이 짓밟고 더럽혔던 세상의 터전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거친 후 비로소 원래의 정결하고 생명력 넘치는 샬롬의 상태로 정화되는 것입니다. 이는 죄악으로 더러워진 세상을 십자가의 공의로 정화하시고 생명의 강물을 흐르게 하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합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시편 74편 13~14절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악어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악어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들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 출애굽기 10장 21~2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어두움이 있게 하라 곧 만질 만한 어두움이리라… 온 애굽 땅에 캄캄한 어두움이 사흘 동안 있어서

  • 이사야 13장 10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 요한계시록 8장 12절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빛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깊이 있는 묵상

오늘 본문은 세상의 거대한 힘을 자랑하던 애굽 제국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 어떻게 허물어지고, 소리 높여 부르던 영광의 노래가 비통한 장례의 애가로 바뀌는지를 참담할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온 세상을 호령하는 위엄 있는 사자라 자부했습니다. 자신이 쥔 권력과 무력,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풍요를 배경 삼아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그의 실체는, 강물을 뛰어놀며 발로 물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더럽히는 추악한 ‘큰 악어’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강대국의 힘으로 약자들을 짓밟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강을 죄악과 이기심으로 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던 바로 왕이었지만,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물을 던져 그를 뭍으로 끌어내시자, 산과 골짜기에 시체가 널브러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가련하고 비참한 피조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애굽의 몰락과 함께 그들이 태양신이라 섬기며 자랑하던 세상의 모든 빛을 꺼버리십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고 온 땅에 캄캄한 흑암이 덮일 때, 애굽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의지했던 열방의 왕들과 백성들은 거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자칭 빛이라 주장하며 영원할 것 같았던 세상의 화려한 세력도, 하나님의 공의의 손길이 한번 지나가면 불 꺼진 잿더미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는 진리를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애굽의 비극적인 종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내면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만듭니다. 오늘 나는 내 삶의 자리에서 내 힘과 스펙을 의지하며 남들 위에 군림하는 ‘사자’인 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가진 작은 기득권과 물질을 가지고 내 주변의 관계와 일터의 강물을 탁하게 어지럽히는 ‘악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영광과 빛은 머지않아 꺼져 버릴 가짜 빛이며, 세속의 힘을 자랑하는 자의 결말은 슬픈 애가의 주인공이 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본문 14절의 위대한 반전을 바라보십시오. 강물을 어지럽히던 불의한 악어와 짐승들이 심판을 받아 제거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강물은 더러움을 씻어내고 “기름 같이 맑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 삶에 도사리고 있던 세속적 교만과 이기심이라는 악어가 하나님의 십자가 앞에서 깨어지고 주님의 그물에 붙들릴 때, 내 영혼과 삶의 자리에 다시금 정결하고 신선한 생수의 강물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삶을 어지럽히던 세속의 교만과 거짓된 사자의 가면을 십자가 앞에 겸손히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화려하지만 곧 꺼져 버릴 가짜 빛을 좇지 말고,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웁시다. 나를 통해 내 가정과 일터의 탁했던 강물이 정결하게 씻겨 나가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온전한 평강의 생수가 기름 같이 맑게 흘러넘치는 복되고 거룩한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문

온 우주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역사의 모든 어두움과 빛을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겔 말씀을 통해 세상의 거대한 제국과 자랑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한순간에 무너져 애가의 탄식으로 바뀌는 엄중한 현장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내게 주어진 작은 능력과 소유를 가지고 세상에서 사자라도 된 양 착각하며, 내 이기심과 교만으로 내 주변의 깨끗한 강물을 어지럽히고 더럽혔던 우리 안의 ‘악어’ 같은 죄악을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그물을 치시고 불을 끄시면 세상의 어떠한 부귀영화와 권력도 캄캄한 흑암 속에 갇힐 수밖에 없는 유한한 피조물임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아니할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내 인생의 영원한 소망으로 삼게 하시고, 세상의 화려하지만 곧 스러질 가짜 빛에 내 마음과 시선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강대함이 허물어지는 심판의 날에도 오직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내 영혼의 피난처로 삼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도사린 교만의 악어가 십자가 앞에 내어 쫓김으로, 더럽혀졌던 내 삶의 강물이 정결하게 씻겨 나가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나를 통해 내 가정과 일터,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사랑으로 채워지게 하시고, 기름 같이 맑은 생수의 강물이 흘러넘치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오직 겸손히 주님의 다스리심에 무릎 꿇고 주님과 함께 빛의 길을 걸어가는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빛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