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4:1~14

아래는 여호수아 4장 1절부터 14절까지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4:1~14 (개역개정)

1 온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두 개를 택하여 그것을 가지고 건너가서 오늘 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라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이미 택한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에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수대로 각각 한 돌을 취하여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수대로 요단 가운데서 돌 열두 개를 취하여 그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고의 곧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곳에 돌 열두 개를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10 궤를 멘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모든 말씀을 다 행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서 있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너갔으며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신 대로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사만 명 가량이 싸움에 대비한 군사들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모세와 함께 있던 날과 같이 여호수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1. 본문 요약

여호수아 4장 1절부터 14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사건을 기념하도록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시는 장면을 담고 있다. 백성이 요단 강을 모두 건넌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총 열두 명을 선택하여 요단 강 가운데 제사장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돌 열두 개를 가져오라고 명하신다. 이 돌들은 그날 밤 백성이 유숙할 곳에 세워져 후대에까지 전해지는 기념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 기념물이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증언하는 표징이 되기를 원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열두 명을 불러 지시를 전했고, 그들은 강 가운데로 들어가 돌을 취해 어깨에 메어 숙영지로 옮겼다. 또한 여호수아는 강 가운데 제사장들이 서 있던 자리에 별도로 돌 열두 개를 세웠다. 이는 오늘까지 남아 있는 표징이라고 기록된다.

백성은 신속하고 안전하게 요단을 건넜고, 마지막으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도 건너왔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싸움에 능한 사만 명 가량의 군사들은 약속한 대로 형제들을 돕기 위해 무장하고 앞서 건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높이셔서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그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셨다. 백성은 여호수아를 두려워하고 존중하게 되었고, 이는 하나님의 지도자 세우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 신학적 해석

여호수아 4장의 핵심은 하나님의 능력의 기억을 후대에까지 전하는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사건을 단순한 기적 체험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 기적을 기억하고 다시 마음에 새기며 다음 세대에게 전하도록 기념물을 세우라고 명하셨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신앙 고백이다.

첫째, 하나님은 기적의 순간을 기념하게 하심으로써 믿음은 잊지 않는 데서 유지되고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이스라엘은 종종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원망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불평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단 도하 사건을 돌 열두 개라는 시각적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하신다. 신앙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상기되어야 견고해진다.

둘째, 이 열두 돌은 공동체 신앙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열두 개라는 숫자는 열두 지파 전체를 대표한다. 이는 하나님이 개인에게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언약 백성 전체를 인도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공동체적이며,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백성이라는 것이다.

셋째,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하나님이 공식적으로 세우신다는 의미가 이 본문에 있다. 14절은 이날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전략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지도자를 세우신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여호수아와도 함께하시며, 지도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역의 확증을 통해 드러난다.

넷째, 요단강을 건너는 과정은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 속에서 성취되는 순간이며, 구원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장면이다. 이 사건은 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사건과 연결되며,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능력으로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신학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3. 관련 성경 말씀

  1. 시편 77편 11절
    내가 여호와의 행사를 기억하리니 주의 옛적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하나님은 기적을 기억하도록 명하신다.

  2. 신명기 6장 12절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하나님은 잊지 않는 것이 신앙의 핵심임을 가르치신다.

  3. 여호수아 1장 5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보증하시는 말씀이다.

  4. 베드로전서 2장 5절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 백성은 돌처럼 세워진 영적 공동체로 묘사된다.

  5.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그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신다.


4. 깊이 있는 묵상

요단강에 세운 돌 열두 개는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분의 능력과 은혜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나타났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앙의 증언이다.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잊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사건을 경험하고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염려와 두려움이 다시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억하게 하시고, 그 기억을 공동체적으로 나누게 하신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돌들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도 응답의 경험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 속에서 지켜주신 은혜일 수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말씀을 통해 변화된 삶의 순간일 수 있다. 이 사건들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믿음을 지탱하는 영적 기념물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주 꺼내 보아야 하며,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

또한 여호수아가 높임받는 장면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메시지를 준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는 일꾼은 인간의 평가나 조건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직접 확증하신다. 성도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순종과 충성이고, 사람 앞에서 높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요단강의 물이 끊어진 자리, 제사장들이 서 있던 장소에 세워진 돌처럼,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신 자리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자리를 잊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은혜의 흔적들이 쌓여 믿음의 집을 세운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사는가.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보고 있는가.


5.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도록 길을 여시고 그 날의 은혜를 돌 열두 개로 기억하게 하셨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 또한 주님이 제 삶 속에서 행하신 구원의 손길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이루신 은혜의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것들을 마음과 삶 속에 기념물로 세우게 하소서.
때로는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일을 잊고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요단에 세운 돌들처럼 제 삶에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증언하는 흔적을 다시 발견하게 하시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후대에게도 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여호수아를 높이시고 그의 지도력을 확증하신 하나님,
저의 삶에서도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주님이 앞서 일하심을 보게 하소서.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삶을 살게 하시며
모든 순간에 주님의 임재를 신뢰하게 하소서.

요단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도 살아 있음을 믿습니다.
제 앞에 놓인 요단강 같은 문제와 장애물 앞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3:9~17

여호수아 3:9-17 (개역개정)

 

여호수아 3장 9절부터 17절까지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수아 3:9-17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설 것이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이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쌓여 한 무더기를 이루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워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3:9-17 말씀 해설 및 적용

 

본문 요약: 기적적인 요단강 도하

 

여호수아 3장 9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장애물인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언약의 신실하심을 확증하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먼저,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나아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어 가나안 족속들을 반드시 쫓아내실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줍니다(9-10절). 이어서 그는 이 기적의 핵심이 온 땅의 주 여호와의 언약궤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져 한 곳에 쌓여 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11, 13절).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 위해 행군을 시작하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그들 앞에서 나아갑니다(14절). 이 때는 마침 곡식 거두는 시기로, 요단강물이 평소보다 훨씬 불어나 언덕에 넘치는 때였습니다(15절).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마자, 여호수아의 예언대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아담 성읍 변두리에 쌓여 큰 무더기를 이루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흘러가는 물은 완전히 끊어지면서 마른 땅이 드러납니다(16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 위에 굳게 서 있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마른 땅을 밟고 안전하게 요단강을 건너가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됩니다(17절). 이 도하는 출애굽 시 홍해를 건넌 사건을 연상시키며,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됩니다.


신학적 해석: 언약궤와 구원의 섭리

 

여호수아 3:9-17의 신학적 해석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1. 언약궤의 의미: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

 

이 사건의 중심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율법(십계명 돌판)을 담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신실성을 상징합니다. 언약궤가 백성보다 앞서 요단강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구원과 승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온 땅의 주 여호와라고 부르는데(11, 13절), 이는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절대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언약궤가 요단 물을 멈추게 한 것은, 온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역사하심을 입증합니다.

2. 믿음의 순종과 구원의 완성

 

제사장들이 범람하는 요단강에 발을 내디딘 행위는 단순한 도하가 아닌 믿음의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물이 멈추기를 기다린 후에 발을 들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발을 들이면 물이 멈출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종하여 첫 걸음을 내딛는 믿음이 구원 역사에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요단강은 광야의 삶을 마무리하고 가나안 땅(약속의 땅)으로 진입하는 경계선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가나안 땅)을 완성하시는 섭리를 상징합니다.

3. 구속사적 의미: 그리스도와 세례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요단강 도하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요단강은 홍해 도하와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특히, 요단강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장소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를 받으신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마른 땅을 밟고 새로운 약속의 땅에 들어선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강(요단강)을 건너 영원한 언약의 땅(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언약궤가 물을 멈추게 했듯이,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단강 도하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도의 세례(옛 자아의 죽음과 새 생명으로의 부활)를 예표하는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관련 말씀 구절: 성경의 연결고리

 

여호수아 3:9-17은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일관성을 보여줍니다.

1. 홍해 도하 (출애굽기 14:21-22)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 연결점: 요단강 도하는 홍해 도하의 재현이자 완성을 상징합니다. 홍해 도하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의 시작을 알렸다면, 요단강 도하는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약속의 땅에 진입하는 구원의 완성을 예고합니다. 두 사건 모두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나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자연 만물을 통치하시는 살아 계신 주권자임을 입증합니다.

2. 그리스도의 권능 (마태복음 8:26-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 연결점: 여호수아 3장에서 언약궤를 통해 요단강 물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사건은, 그분이 바로 온 땅의 주 여호와로서 자연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며, 요단강 도하 사건의 근원적인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께 있음을 증거합니다.

3. 믿음의 행진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연결점: 요단강을 건넌 기적은 제사장들의 믿음의 발걸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요단강 앞에 섰고, 제사장들은 순종하는 믿음으로 물에 발을 디뎠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 인간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요단강 도하가 바로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음을 뒷받침합니다.


깊이 있는 묵상: 삶의 요단강을 건너기

 

여호수아 3장의 요단강 도하 사건은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을 넘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여정에도 깊은 영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1. 삶의 장애물, 불어난 요단강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강물은 곡식 거두는 시기로 인해 평소보다 훨씬 불어나 언덕에 넘치는 상태였습니다(15절). 이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절망적인 장애물을 상징합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 예를 들어 경제적인 어려움, 해결되지 않는 질병, 깨진 관계, 극심한 영적 침체와 같은 **‘불어난 요단강’**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획과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오직 기적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이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요단강의 범람이 아니라 언약궤(하나님의 임재와 약속)로 돌려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2. 순종의 첫걸음과 마른 땅의 경험

 

하나님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렸다가 건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믿음으로 물에 발을 디딜 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때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순종의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단지 기적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응답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주님은 우리 앞에 **‘마른 땅’**을 내어주십니다. 이 마른 땅은 주님께서 우리의 장애물을 제거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안과 승리의 공간을 상징합니다.

3. 언약궤가 있는 곳에 안전이 있다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서 있는 동안, 모든 백성은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17절). 여기서 언약궤는 곧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주님의 임재와 주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방법이나 인간적인 지혜에 의지하여 안전을 구하지만, 진정한 안전은 오직 주님께서 굳게 서 계시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요단강 한가운데에는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굳게 서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통치 아래 머무를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약속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문: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는 주님

 

온 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여호수아 3장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와 언약의 신실하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놓인 범람하는 요단강을 주님의 능력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신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저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저희의 장애물을 제거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 제 삶에도 감당하기 힘든 ‘요단강’과 같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주님으로부터 눈을 돌리곤 합니다. 주여, 저의 나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구하오니, 저의 시선을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온 땅의 주가 되시는 주님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로 향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에 발을 담갔을 때 기적이 일어났듯이, 저 역시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종할 때 주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마른 땅 한가운데 굳게 서 있었던 것처럼, 저의 삶의 요단강 한가운데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굳게 서 계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임재 안에서만 참된 안전과 평안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광야와 같은 세상의 삶을 마감하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때까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걸어가게 하옵소서.

저희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시며,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는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3:1~8

아래는 여호수아 3장 1절부터 8절 본문(개역개정)입니다.


여호수아 3:1~8 (개역개정)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매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에 이천 규비쯤 거리를 두라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일찍이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가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 3장 1~8절 해설과 묵상

길을 여시는 하나님과 순종의 믿음

1. 본문 요약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아침 일찍 싯딤을 떠나 요단강가에 도착한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그곳에서 사흘 동안 머물며 준비한다. 관리들은 진을 돌아다니며 백성에게 명령을 전달한다.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움직이는 것을 보거든,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그러나 언약궤와 백성 사이에는 약 이천 규빗, 즉 약 900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어야 했다. 이는 백성이 언약궤를 가까이하여 범하는 일을 방지함과 동시에 언약궤를 통해 길을 인도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백성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구가 주어진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성결하게 하라고 당부한다. 이는 다음 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기이한 일, 즉 요단강을 가르시는 능력을 보여주시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요단을 건너기 위한 첫걸음을 딛도록 명령한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날부터 그를 온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하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하심을 백성들이 알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강 물가에 이르거든 물 속에 들어서라고 명령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새로운 땅을 향해 순종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무리하는 장면이다.

2. 신학적 해석

1) 순종의 시작은 하나님의 임재를 따라가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명령은 언약궤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이 앞서가신다는 증거였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본 적이 없었고, 새로운 길은 스스로 개척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런 길을 열어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따라가는 것이 첫 번째 순종이었다.

믿음의 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 새로운 결정, 두려운 상황을 만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앞서 일하시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다.

2) 성결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기 위한 준비이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기이한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기적을 경험하는 자의 마음 상태는 준비되어야 한다. 성결은 단지 죄를 멀리하는 행위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기대와 겸손한 순종의 태도를 갖추는 영적 준비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결을 요구하신다. 직장, 가정, 관계, 사역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정돈되어야 한다.

3) 지도자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세워진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여호수아가 스스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세우신다는 의미다. 모세처럼 여호수아도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하심을 통해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인정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권위는 인간의 카리스마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고 인정하시는 자리에서 나온다. 지도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한다.

4) 기적은 순종의 발걸음 위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물 속에 발을 내딛으라고 하셨다. 요단강은 추수 기간의 홍수기였으며 강물이 범람하는 시기였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적은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믿음은 안전을 확인한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먼저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의 발걸음 위에서 열린다.

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 앞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언약궤를 따라가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중심에 두라는 뜻이다. 나는 내 삶의 결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생각과 계획을 앞세우고 있는가. 내 앞으로 펼쳐진 새로운 길 앞에서 나는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2. 내 삶 속에서 성결함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가
    성결은 단순한 도덕적 정결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전환이다. 하나님 앞에 마음이 흐트러져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유혹과 염려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경외가 흐려지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3.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책임이 아니라 동행이 먼저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우실 때, 단지 리더의 자리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은 역할 속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라고 떠밀지 않으신다. 오히려 언제나 앞서 일하시고 함께 걸어가신다.
  4. 내가 내딛어야 할 믿음의 발걸음은 무엇인가
    요단강은 우리의 현실 속 장애물과 같으며, 때로는 절망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전한 상황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기반한 행동이다. 오늘 내가 내딛어야 할 작은 순종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4.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요단강 앞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삶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앞서 걸어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성결하게 하소서.
세상의 염려와 죄악 된 습관을 멀리하고, 주님 앞에서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는 상태로 준비되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 순종의 믿음을 주옵소서.
눈앞의 현실이 요단강처럼 넘실거릴지라도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발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에서 겸손하게 충성하게 하시고
주님이 함께하심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저의 길을 여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2:15~24

다음은 여호수아 2장 15절부터 24절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2:15~24】

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으로 줄을 타고 내려가게 하였으니, 이는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어서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산으로 가서 도망하라. 추격하는 자들이 너희를 만나지 않게 하라. 그들이 너희 뒤를 따라가다가 돌아오기까지 거기 숨어 있으라.
17 그 사람들은 그 여자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맹세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으리니,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네가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아 두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 밖으로 나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리라.
20 또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맹세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21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22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추격하는 자들이 돌아오기까지 사흘 동안 거기 머물며, 추격하는 자들이 길에서 두루 찾다가 만나지 못하니라.
23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 그 당한 모든 일을 고하고,
24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며, 또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이 본문은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기고 구해주는 장면의 마무리 부분으로,
라합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는 서막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2장 15절~24절 묵상

“붉은 줄과 구원의 표징”


1. 본문 요약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은 여리고 성 안에서 기생 라합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구합니다. 왕의 추격자들이 그들을 찾자, 라합은 자신의 집 창문을 통해 줄을 내려 두 사람을 성벽 아래로 피신시킵니다. 그녀는 정탐꾼들에게 “산으로 가서 추격자들이 돌아오기까지 사흘 동안 숨어 있으라”고 조언하며 그들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의 은혜에 보답하며 한 가지 약속을 맺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때, 라합이 자신과 가족을 구원받고자 한다면 그 표징으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두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그녀의 가족이 그 집 안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만 안전이 보장될 것이며, 집 밖으로 나가는 자의 생명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라합은 이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탐꾼들을 무사히 떠나보냅니다. 정탐꾼들은 사흘 동안 산속에 숨어 추격자들을 피하고, 여호수아에게 돌아가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모두 보고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며,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았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전합니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믿음을 통하여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라합의 믿음이 핵심입니다. 라합은 여리고의 이방 여인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낮은 신분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인정했고(여호수아 2:11), 그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목숨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결국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구원으로 이끕니다.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제시한 붉은 줄은 구원의 표징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12장에서 문설주에 발랐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떠올리게 합니다. 피가 발라진 집은 멸망의 사자가 지나쳤듯, 붉은 줄이 걸린 라합의 집도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보호받게 됩니다. 즉, 붉은 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의 표징이며, 신약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어진 구원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 마지막의 정탐꾼의 보고(24절)는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 속에서 성취될 준비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철옹성처럼 보이던 여리고가 이미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실의 장벽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봅니다. 여리고 정복의 승리는 이미 믿음의 단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3. 묵상

라합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여리고의 체제와 신들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겼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타협이 아니라, 진리와 생명을 향한 전향적 결단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안정과 사람의 평가를 더 의지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라합처럼 세상의 성벽을 넘어 하나님께 줄을 던지는 용기입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또한 가정의 구원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드러냅니다. 라합은 자신만이 아니라 부모와 형제, 가족 전체를 집 안에 머물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합니다. 그녀의 믿음이 가족에게까지 전염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가정 안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서야 합니다. 나 하나의 결단이, 가족의 구원을 이끌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붉은 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이자, 구원을 향한 믿음의 끈입니다. 우리는 그 줄을 결코 놓아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믿음이 보잘것없고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은 그 믿음을 붙잡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라합의 창문에 매달린 그 줄처럼, 우리의 믿음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4. 기도문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 2장의 말씀을 통해 라합의 믿음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끝에서 하나님을 향한 한 여인의 결단을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눈앞의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였고, 그 믿음이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도 라합처럼 믿음으로 결단하게 하소서.
두려움이 앞설 때, 붉은 줄을 내린 그녀의 용기를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세상과 타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창문이 되게 하소서.

또한, 우리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라합이 자기 가족을 모두 그 집 안에 모아 구원받게 한 것처럼,
우리 가정도 믿음의 울타리 안에 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집의 문설주에 발라져,
세상의 혼란과 심판이 지나갈 때에도 주님의 은혜로 보호받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눈을 잃지 않게 하소서.
여리고의 높은 성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믿음으로 이미 주어진 승리를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본문은 신앙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 약속을 신뢰하는 용기임을 보여줍니다.
라합의 붉은 줄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며,
믿음으로 구원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의 표징으로 남습니다.


 

여호수아 2:8~14

다음은 여호수아 2장 8절부터 14절(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2:8~14

8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 사람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의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으니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확실한 표를 주어서
13 내 부모와 형제와 남매와 무릇 그들에게 속한 자를 살려서 우리의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하니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하리니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 우리가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하리라


 

 

여호수아 2장 8~14절: 믿음으로 문을 연 여인, 라합의 고백

1. 본문 요약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정탐꾼 두 사람을 보냈을 때,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몸을 숨기게 되었다. 여리고 왕의 추적이 시작되자 라합은 재빨리 그들을 지붕 위 삼대에 숨겨 주었다. 밤이 깊자, 라합은 지붕 위로 올라가 정탐꾼들에게 고백을 시작한다.
그녀는 놀라운 말을 한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이방 여인이 믿음으로 한 신앙 고백이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의 행적을 들으며 두려움을 느꼈다. 애굽에서의 출애굽 사건, 홍해가 갈라진 일, 요단 동편 아모리 두 왕 시혼과 옥을 무찌른 일 등은 이미 여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녹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려움 속에 머물렀을 뿐,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라합은 달랐다. 그녀는 그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백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녀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의 중심을 담아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정탐꾼들에게 간청한다.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으니,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맹세하고 확실한 표를 달라.”
이에 정탐꾼들은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단, 그녀가 이 일을 누설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생명을 걸고 라합과 그 가족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짧은 대화 속에서, 한 이방 여인의 믿음과 구원의 서약이 이루어진다.


2. 신학적 해석

라합의 고백은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고, 약속의 땅은 그들에게 주어진다고 ‘약속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라합의 입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는 확언이 터져 나온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이미 믿음의 언어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라합은 여리고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기생으로 살던 여인이었다. 세상적, 종교적 기준으로 보면 결코 의롭거나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은 라합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한다.
히브리서 11장 31절은 이렇게 증언한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그녀의 과거를 묻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녀의 믿음과 선택을 보셨다.
라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들은 것’만으로도 믿었다. 그녀는 홍해의 사건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 소문을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들였다.
이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요한복음 20:29)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라합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하나님을 인정한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정탐꾼들을 숨기며 위험을 감수했다. 야고보서 2장 25절은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한 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즉, 믿음은 마음속의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실제적 결단과 행동으로 증명된다.
라합은 여리고 성이 멸망할 것을 알고,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택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녀의 생명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구원으로 이끌었다.


3. 묵상

라합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도전을 준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이 중요하다.
여리고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들었다. 그러나 두려움에만 사로잡혔을 뿐,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라합은 같은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듣고 살아간다. 그러나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출발이다.

둘째, 하나님은 어떤 과거를 가진 자라도 사용하신다.
라합의 직업은 ‘기생’이었다. 세상적 잣대로 보면 부끄럽고 천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여리고의 문을 여셨다.
더 나아가 라합은 나중에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으며, 결국 다윗 왕의 계보로 이어진다(마태복음 1:5).
즉, 하나님은 한 이방 여인의 믿음을 통해 메시아의 족보를 이어가셨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믿음의 현재임을 보여주는 놀라운 예다.

셋째, 믿음은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다.
라합은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녀의 믿음은 자신만의 안전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구원을 향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가정을 구원하시고, 공동체를 살리신다. 라합의 믿음이 가족을 덮은 것처럼, 우리의 믿음 또한 누군가에게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4. 기도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믿음의 본질을 배웁니다.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들은 것만으로도 믿었고,
그 믿음으로 행동하며 주의 뜻에 참여했습니다.

주님, 우리도 매일같이 수많은 하나님의 일을 듣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두려움에 머무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라합의 고백처럼,
“여호와께서 이 땅을 주셨다”는 확신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과거가 어떠하든,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믿습니다.
라합의 인생을 통해 메시아의 길이 이어졌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주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쓰임받게 하소서.

또한 우리의 믿음이 나 하나의 안전에서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이웃을 살리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순종과 용기의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 맺음말

여호수아 2장 8절부터 14절은 단순히 정탐꾼의 이야기나 여리고 정복의 서막이 아니다.
이 본문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든 한 여인의 결단을 통해 구원의 문이 열리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라합을 찾고 계신다. 세상의 두려움보다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
과거보다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자신만이 아닌 가족과 공동체를 품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라합의 지붕 위 고백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