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1~7

다음은 여호수아 2장 1절부터 7절까지(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2:1~7 (개역개정)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어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이름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하니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이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이미 두 사람을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으나 나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나이다.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그들을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이 본문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낸 사건을 다룹니다. 그 과정에서 기생 라합이 등장하여 정탐꾼들을 숨겨줌으로써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 속에 사용되는 믿음의 여인으로 부각됩니다.

 

여호수아 2:1~7 – 믿음의 시작, 라합의 용기

1. 본문 요약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 싯딤에서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냈다. 그들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 ‘라합’이라는 여인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녀는 성업 내에서 ‘기생’으로 알려진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하지 않은 여인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쓰이게 된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접근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정탐꾼들의 방문은 곧 여리고 왕에게 보고된다. 왕은 즉시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 정탐꾼들을 내놓으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라합은 이미 그들을 지붕 위 삼대(아마도 아마삼이나 삼베를 말리는 곳)에 숨긴 뒤, 그들이 떠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왕의 부하들은 급히 요단 나루터까지 추격하러 나가고, 그들이 나간 뒤 성문이 닫히게 된다.

이 짧은 장면 속에서 우리는 여리고의 긴장된 분위기, 그리고 한 여인의 놀라운 선택을 보게 된다. 라합은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 보면 가장 약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신비로운 믿음을 품은 인물이었다. 그녀의 결정은 단순한 인간적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응답한 ‘믿음의 행동’이었다.


2. 신학적 해석

(1) 정탐꾼의 파송 – 인간의 전략 속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진 직후, 신중하게 여리고를 정탐시킨다. 이것은 인간적인 전략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출애굽 세대의 실패를 기억한 여호수아는 두 명만을 보내 신중히 사명을 수행하게 했다. 그는 인간의 지혜를 의지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다. 믿음과 전략은 대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세밀한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여호수아의 믿음이었다.

(2) 라합의 등장 – 하나님의 은혜는 경계 밖에서도 임한다

라합은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의 여인이었다. 게다가 이방 여리고 성 사람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적대국에 속한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경계를 넘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밖의 여인, 심지어 ‘기생’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셨다.

히브리서 11장 31절은 라합을 “믿음으로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한 자”라 부른다. 또한 마태복음 1장에서는 그녀가 다윗의 조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회적 지위나 과거의 죄가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사용하신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3) 라합의 거짓말 – 도덕과 믿음의 경계에서

라합은 정탐꾼을 숨기기 위해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짓말을 한다. 이것은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으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진리의 기준’보다 ‘믿음의 동기’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했다. 그녀의 행동은 불완전했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의 중심을 보셨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함을 덮으신다는 복음의 핵심을 보여준다.

(4) 여리고 왕의 두려움 – 권력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손길

여리고는 당시 가나안 지역에서 매우 강력한 요새 도시였다. 그러나 왕과 백성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계셨던 것이다. 여리고의 성문이 닫히는 장면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영적으로는 ‘심판을 향해 닫힌 마음’을 상징한다. 반면 라합의 집은 그 닫힌 성 안에서 ‘열린 믿음’의 공간이었다.


3. 묵상

라합의 이야기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녀는 율법을 알지도 못했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 하나를 믿었다.

그 믿음은 단지 머릿속의 동의가 아니었다.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정탐꾼을 숨기고, 목숨을 걸고 그들을 보호한 것이다. 신앙은 언제나 행동으로 증명된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묻고 계신다.
“너는 세상의 압박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믿고 행동할 수 있느냐?”

신앙은 안전지대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한 현실 속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편에 서는 순간 진짜 믿음이 드러난다.

라합의 행동은 또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귀한 메시지를 준다. 교회는 ‘라합과 같은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 입고, 경멸당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더 가까이 임한다. 복음은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배제된 자를 구원의 자리로 초대한다.

라합의 집은 여리고 성 안에서 유일한 ‘믿음의 피난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세상 속에 그런 집, 그런 믿음을 찾고 계신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그 피난처가 되기를 바란다.


4. 기도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 2장의 말씀을 통하여
한 여인의 믿음 속에 감추어진 주님의 구속의 역사를 봅니다.

라합은 세상에서 낮은 자로 살았으나,
그녀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을 주님께서 보시고,
그녀와 그 가족을 구원의 역사 속에 세워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주님, 우리도 라합처럼 믿음으로 결단하게 하소서.
세상의 압력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의 편에 서는 용기를 주옵소서.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담대함을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지 않아도,
주님은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부족한 믿음이라도 주께 드릴 때,
그 믿음 위에 구원의 일을 이루소서.

오늘 우리의 집이 라합의 집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피난처가 되게 하시고,
상처 입은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여호수아 2장 1절부터 7절은 믿음이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보여준다. 라합은 이방 여인으로서, 또 죄인의 신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쓰임받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도전이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으신다. 대신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라합의 믿음은 불완전했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완전한 구속의 길을 여셨다.
우리 또한 오늘, 그 믿음의 자리에 서야 한다.


 

여호수아 1:10~18

다음은 여호수아 1장 10절부터 18절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10~18 (개역개정)

10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12 여호수아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셨나니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되
너희의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 형제들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한 후에야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이편 해 돋는 곳에서 너희에게 준 땅으로 돌아와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여호수아 1:10~18 – 순종과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의 성취

1. 본문 요약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즉시 백성의 유관자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
이것은 단순한 행정 명령이 아니라, 광야의 시대를 끝내고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명령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또한 요단 동편에 이미 땅을 받은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말을 전합니다. “너희의 가족과 가축은 이 땅에 머물러도 좋으나, 너희 용사들은 무장을 하고 형제들을 도와 약속의 땅을 차지하도록 하라.”
그들의 사명은 이미 자신들의 기업을 얻었더라도 공동체의 사명을 함께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세 지파는 한마음으로 대답합니다. “당신이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우리가 가는 곳마다 당신을 따르리이다.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은 강하고 담대한 리더십 아래, 하나 된 순종으로 약속의 성취를 향해 나아갑니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순종과 공동체적 연합을 통해 실현된다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1) 준비하는 믿음

“양식을 준비하라”는 명령은 단순히 물질적인 준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의 내적 준비를 상징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두려운 명령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준비에 나섰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준비 없는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임할 때, 준비된 자만이 그 약속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2) 공동체적 순종

요단 동편의 세 지파는 이미 기업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지파를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이익보다 공동체의 완전한 순종을 우선하는 믿음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 구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었고 기쁨으로 드려진 헌신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앙은 각자의 영역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하며 함께 싸울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3) 하나님의 임재와 리더십

세 지파의 대답 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입니다. 이는 단순한 충성의 표현이 아니라, 리더십의 본질이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에 있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여호수아의 리더십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날 모든 지도자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목회자, 가정의 부모, 사회의 리더 모두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만 참된 권위를 가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강하고 담대함의 의미

본문의 마지막에서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여호수아 1장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은 인간의 결단을 강요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주신 약속에 대한 확신 속에서 일어서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용기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3. 묵상과 적용

이 본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깊은 교훈을 줍니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은 준비된 믿음의 사람을 통해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을 이루시지만, 그 일에 동참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준비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 속에서 ‘언제나 준비된 상태’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순종의 삶을 통해 언제든 하나님이 부르실 때 즉시 응답할 수 있는 믿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둘째, 공동체적 순종의 가치를 배워야 합니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이미 안식을 얻었지만, 그들은 다른 형제 지파의 안식을 위해 함께 싸웠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함께 걷는 여정입니다. 내가 이미 평안을 얻었다면, 아직도 싸움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돕는다면, 하나님은 그 연합을 통해 놀라운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가 리더십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든, 가정의 가장이든, 사회의 책임자든, 진정한 리더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전략이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에 대한 순종이 리더십의 근원입니다.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각자에게도 ‘요단을 건너는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요단강은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문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준비하라, 건너가라.”
믿음의 여정에는 언제나 행동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기다림이 아니라 움직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때, 그분의 능력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4.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여호수아 1장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순종과 연합의 중요함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준비하는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하나님, 우리 공동체가 요단 동편의 지파들처럼 서로를 위하여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내가 이미 받은 은혜를 나누며 함께 싸우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교회가 하나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며, 우리의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또한 주님, 오늘 우리의 리더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함께하심이 그들의 힘이 되게 하시고,
모든 지도자가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두려움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발걸음마다
주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1:1~9

다음은 여호수아 1장 1절부터 9절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1~9 (개역개정)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해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여호수아 1장 1절~9절 묵상


1. 본문 요약

여호수아 1장 1절부터 9절은 모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명령과 약속의 말씀이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시며, 여호수아에게 세 번이나 반복하여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본문은 단순히 리더십의 계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이다. 모세에게 주신 약속,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여호수아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시점이 바로 이 장면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그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율법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행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형통할 것이라 약속하셨다. 즉, 성공의 비결은 전략이나 군사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리더십의 전환기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통해, 신앙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드러낸다.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중단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셨고, 그 중심에 여호수아를 세우셨다.

신학적으로 볼 때,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호수아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예호슈아’인데, 이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며, 신약의 ‘예수’(예슈아)와 같은 어근을 가진다. 모세가 율법을 대표한다면, 여호수아는 약속의 성취를 상징한다. 모세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냈다면, 여호수아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다. 이 흐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지는 구원의 완성을 예표하는 것이다.

또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심리적 격려가 아니다. 이는 신앙적 결단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한 담대함이다. 인간의 용기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담대함의 근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사명은 막대한 책임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뒤를 잇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자격이나 능력보다 ‘함께하심’의 약속을 먼저 주셨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리더십의 출발점이 인간의 역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경건생활의 권장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기준을 확립하라는 뜻이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질 때 백성은 길을 잃는다. 여호수아의 형통은 말씀 순종의 결과였으며, 이는 오늘날 신앙인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말씀을 떠나지 않는 삶, 그것이 진정한 형통의 길이다.


3. 묵상과 적용

우리의 인생에도 여호수아가 직면한 순간과 같은 전환점이 있다. 익숙한 과거가 끝나고, 새로운 책임과 미지의 길이 눈앞에 놓일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정말로 두려웠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움을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신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하셨다. 즉, 담대함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믿음의 선택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한 도전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 없이 인생의 요단강을 건널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이 약속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여호수아가 의지했던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묵상하라고 명령하신다. 현대 사회는 정보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진리보다 소리를 크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것을 삶 속에 적용할 때, 우리는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신앙의 성공은 외적인 조건보다 내적인 순종에 달려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취를 기준으로 성공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형통이라 부르신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전략이 아니라 순종의 결과였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가정, 사역의 자리에서 두려움과 불확실함이 앞을 가로막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4.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새 힘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 두려움 속에 서 있던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도 낯선 사명과 어려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인생에도 요단강과 같은 장벽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주저앉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게 하소서.
우리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그 뜻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소서.
순종의 걸음마다 주의 형통함을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길이 주님 안에서 평탄하게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잊지 않게 하소서.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본문은 신앙인의 모든 출발점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에 있음을 보여준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이다.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하고 담대하라. 그 약속의 하나님이 오늘도 당신과 함께하신다.

디모데후서 4:9~22

다음은 디모데후서 4장 9절부터 22절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디모데후서 4:9~22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대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하게 하시매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라 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라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유블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구절은 바울의 마지막 인사와 유언적인 권면으로, 그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동시에 끝까지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매우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9~22절 묵상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문 믿음의 여정”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4장 9절부터 22절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 담긴 단락이다. 그는 로마 감옥에서 사형을 앞둔 상태에서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바울은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고 말하며 디모데의 방문을 간절히 바란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신앙의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곁에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다른 지역으로 갔다. 오직 누가만이 바울 곁을 지켰다.

그는 또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다. 이전에 마가는 선교 사역 중 바울과의 의견 충돌로 잠시 멀어졌던 인물이었지만, 이제 바울은 그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부르며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보인다.

또한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고, 디모데에게 드로아의 가보 집에 두고 온 겉옷과 책,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당부한다. 그는 육체의 추위를 느끼면서도 영적인 양식을 끝까지 탐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14절 이후에는 바울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바울을 대적했음을 언급하며, 디모데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첫 재판 때 자신을 변호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주께서 자신 곁에 서 계셨다고 고백한다.

그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지막이 죽음이 아니라 영광의 완성임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의 집, 여러 동역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인사를 나눈 뒤,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축도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단락은 바울의 사역의 완성믿음의 지속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달려갈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다(4:7절). 이제는 외롭고, 많은 동역자들이 떠났지만, 바울의 신앙은 변함없이 견고하다.

먼저, 바울의 태도는 복음 사역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는 디모데, 마가, 누가, 두기고 등 여러 인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복음의 사명은 개인의 고립된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적 순종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알렉산더의 대적과 동역자들의 외면에도 그는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라고 고백한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하신 말씀과 맞닿아 있다.

셋째, 바울의 신앙의 중심에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하게 하시매”라는 고백은 그의 현실적 외로움 속에서도 주님의 동행을 확신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사람은 떠날 수 있지만 주님은 끝까지 함께하신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그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며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노래한다. 바울의 시선은 이 땅의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향해 있었다.


3. 묵상

이 본문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종종 바울처럼 외로움과 오해 속에 사역하거나, 신앙의 길에서 동역자들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바울의 고백처럼 “주께서 내 곁에 서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바울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세상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유로웠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진정한 자유이다.

또한 바울이 마가를 다시 받아들이는 장면은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보여준다. 한때 사역의 실패자였던 마가가 다시 복음의 유익한 동역자로 회복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한계를 넘어 역사한다는 증거다. 우리도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버리지 않고, 회복의 가능성을 믿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 순간에도 책과 가죽종이를 찾았다. 이는 그가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 열정을 상징한다. 신앙은 단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성장하고자 하는 갈망을 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으나 주께서 내 곁에 서셨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만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는다.


4.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완성을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떠나가고, 외로움이 밀려올 때에도 주님께서 곁에 서 계심을 믿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 주님의 임재가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며, 주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 바울처럼 용서하게 하시고,
마가를 다시 품었던 그의 마음처럼, 우리도 회복과 화해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사역 중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께서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도 바울처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이 땅의 끝자락에서조차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눈을 허락하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께 드려진 믿음의 향기로 마무리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론

디모데후서 4장 9절부터 22절은 바울의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따뜻한 유언이자, 믿음의 승리 선언이다. 그는 버려졌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고, 감옥에 있었지만 자유로웠으며, 죽음을 앞두었지만 영생을 확신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기를 바란다.
삶의 끝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하게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이미 하나님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무는 믿음, 그것이 진정한 승리의 삶이다.


 

디모데후서 4:1~8

 

디모데후서 4:1~8 (개역개정)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유언처럼 디모데에게 남긴 말씀으로, 복음 사역자의 자세와 신앙의 완주를 강조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 – 디모데후서 4장 1~8절 묵상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4장 1절부터 8절은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남긴 마지막 권면이자 유언과 같은 말씀이다.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곧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 앞에서 엄숙히 명령한다. 그 명령의 핵심은 단 하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그는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하며,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권면하라고 말한다.
이는 복음 사역자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진리를 전해야 함을 뜻한다.

이어 바울은 장차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기 싫어하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 귀가 가려워 스승을 많이 두며, 진리를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을 경고한다.
그런 시대가 올수록, 디모데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감내하고, 전도자의 일을 하며, 맡은 직무를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제물로 여기며,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태도이다.
그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그 면류관은 바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질 상이라 밝힌다.

결국 이 본문은 복음의 마지막 세대 속에서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며, 끝까지 믿음을 붙드는 삶의 소명을 일깨워준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복음 선포의 사명이다.
1~2절에서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표현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적절한 때와 부적절한 때가 따로 없음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눈으로 판단되는 타이밍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언제나 진리를 말해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바울은 말씀 선포를 단순한 직업이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명령’으로 제시한다.
이는 교회의 본질이 곧 말씀에 있다는 신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둘째, 진리와 거짓의 대조이다.
3~4절에서 바울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자기 욕망에 맞는 가르침만을 찾아다니는 시대를 예언한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타락이 아니라 ‘진리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더 신뢰할 때, 그 신앙은 이미 중심을 잃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 경고는 유효하다.
교회 안에서도 진리보다 인기 있는 말, 편안한 설교, 성공을 약속하는 메시지가 더 환영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불편한 진리를 말하며, 죄를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한다.

셋째, 믿음의 완주와 상급이다.
6~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전제처럼 부어진 삶’으로 비유한다.
‘전제(奠祭)’는 구약의 제사에서 포도주를 제단에 붓는 의식으로, 생명을 헌신의 상징으로 드리는 행위였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복음의 제물로 드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다.
그의 삶은 고난과 박해의 연속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그는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이 상급은 단순히 순교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즉,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는 동일한 상을 받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공로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에 근거한 약속이다.


3. 묵상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오늘날의 신앙인에게 깊은 도전을 준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후회나 두려움이 아닌 ‘완주의 기쁨’을 고백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는 바울이 경고한 그대로, 진리를 떠나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만을 찾는 풍조가 만연하다.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위로와 축복만을 얻고자 하며, 십자가의 고난과 순종의 삶은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고 명령했다.
그 말은 세상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복음의 본질을 붙들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도 ‘선한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가치와 싸우며 진리 안에 서는 결단이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의의 면류관’을 보았다.
그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또한 완벽한 신앙을 가질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않는 신앙을 가질 수는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세상이 흔들어도 주님을 붙드는 자가 바로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라는 구절은 믿음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참된 신앙은 과거의 영광이나 현재의 만족이 아니라, 장차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데 있다.
우리가 그날을 사모하며 살 때, 세상의 유혹이나 고난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바울처럼 주님 앞에 설 날을 기대하며 매일의 삶을 제물로 드리는 태도가 신앙의 완성이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느냐? 달려갈 길을 포기하지 않았느냐? 믿음을 지키고 있느냐?”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우리는 매일의 선택 속에서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바로 의의 면류관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4. 기도문

사랑의 주님,
바울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주님을 찬양한 것처럼
우리도 끝까지 복음을 붙드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진리를 거부하고, 귀가 가려워 허탄한 말을 따르는 시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말씀을 전파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환경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으로 굳건히 서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전제처럼 주님께 부어지게 하시고,
작은 일에서도 신실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맡은 직무를 다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인생의 끝에 이르러 바울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
그날에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시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 말씀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눈을 주님의 재림에 고정하게 하시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로 날마다 살게 하소서.
세상의 가치보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도 말씀 안에서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바울의 마지막 서신이자, 신앙의 완주를 향한 하나님의 초대이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 주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