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2:1~14

다음은 스가랴 12장 1절부터 14절까지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스가랴 12장 1절~14절 (개역개정)

  1.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하리니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까지 이르리라
  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5. 유다의 우두머리들이 마음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거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
  6. 그 날에 내가 유다의 우두머리들을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 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둘러 있는 모든 백성을 불사를 것이라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
  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 집의 영화와 예루살렘 주민의 영화가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그들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이방 나라들을 멸하기를 힘쓰리라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서 있었던 애통과 같으리라
  12. 온 땅 각 족속이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 족속이 따로,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 족속이 따로,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이 본문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한 회복과 회개의 영을 예언하는 매우 중요한 예언 말씀입니다.

스가랴 12장 1절~14절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묵상, 기도문


1. 본문 요약

스가랴 12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계획이 절정으로 드러나는 장으로,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가 중심 주제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선포하며 말씀을 시작한다.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의 심령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와 약속을 말씀하신다.

2절부터 9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며 이방 민족들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다. 예루살렘은 그 사면의 민족들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고, 하나님은 그 도성을 ‘무거운 돌’로 만드셔서 그것을 치려는 자마다 상하게 하신다.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모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치고, 그 탄 자를 혼미하게 만드신다. 반면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불처럼 강력해지고, 다윗의 집은 하나님과 같을 정도의 영적 권세를 가지게 된다.

10절부터 14절까지는 예루살렘의 회개와 애통의 장면이 펼쳐진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며, 그들은 ‘그들이 찌른 자’를 바라보고 깊은 통회를 경험한다. 그 애통은 마치 독자나 장자를 잃은 슬픔과 같다고 묘사된다. 이 애통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일어나며, 각 족속과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따로 슬퍼한다. 이는 회개가 진심으로 각자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내면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적 회복을 넘어,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구속의 사건을 예언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들의 죄를 위해 찔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회개의 장면은 신약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된다.


2. 신학적 해석

스가랴 12장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구원의 완성 단계로 나아가는 예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1절의 선언은,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스가랴는 인간의 능력이나 군사력, 혹은 정치적 동맹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강조한다.

2절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취하게 하는 잔”으로 삼으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이방 민족들이 결국 자신들의 오만과 폭력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마치 술에 취한 자가 비틀거리며 자멸하듯,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3절의 “무거운 돌”은 예루살렘의 신적 보호를 상징한다. 이방 민족들이 아무리 예루살렘을 들어올리고 짓밟으려 해도, 오히려 그 무게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치려는 자는 결국 자신이 상하게 된다는 심판의 원리를 나타낸다.

5절과 6절에서 유다의 우두머리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도우심을 보고 담대해진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불같은 힘을 주셔서 좌우로 둘러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르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영적 전투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8절의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라는 구절은 놀라운 은혜의 선언이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무력한 자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는데, 하나님은 그와 같은 영적 능력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주신다. 이는 신약 시대의 성령 강림과 교회의 권능을 상징한다.

10절 이후의 장면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19장 3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직접 연결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로마 군병이 그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사건은 바로 이 예언의 성취였다. 스가랴의 예언은 단순한 감정적 슬픔이 아니라, 구속의 주를 바라보는 회개의 눈물을 의미한다.

그 애통은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 다윗의 집, 나단의 족속, 레위 족속, 시므이 족속, 그리고 모든 남은 족속들이 각자 따로 슬퍼한다. 이는 죄의 문제와 구속의 은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회개는 집단적 행사로서의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내밀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임을 강조한다.

결국 스가랴 12장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그리고 메시야를 통한 은혜의 회복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구속사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음을 드러낸다.


3. 관련 말씀 구절

  • 요한복음 19장 37절: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 요한계시록 1장 7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 스가랴 13장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시편 34편 18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 로마서 11장 26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구절들은 스가랴 12장의 예언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눈이 그를 보고 회개하게 될 것이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 12장은 신앙의 본질이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위에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인간의 심령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그의 백성을 직접 지키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우리 삶의 예루살렘,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향해 세상의 수많은 세력들이 도전해 올 때가 있다. 염려, 불신, 죄, 세속의 유혹들이 우리를 둘러싸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보호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불길 같은 능력으로 감싸시며, 우리의 약함을 다윗의 용기로 바꾸신다.

또한 본문 후반부의 애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의 열매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분이 나의 죄 때문에 찔리셨음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이 눈물로 이어지고, 그 눈물이 영혼을 정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이 말씀은 신앙의 여정에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하나님은 먼저 은총과 간구의 심령을 부어주신다. 즉,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설 수 없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마음이 깨어지고, 죄를 슬퍼하게 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이 말씀은 십자가 앞에서의 겸손한 눈물로 초대한다. 교만과 자만, 자기 의를 내려놓고,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며 통회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의 심령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5.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우리의 심령을 만드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스가랴의 말씀을 통하여 주의 크신 권능과 은혜를 다시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두려움과 교만으로 가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지키신 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시며,
우리의 약함을 다윗의 용기로 바꾸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주님,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저희에게도 부어주옵소서.
우리의 죄로 찔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분 앞에 진정한 눈물과 회개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회개하지 못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녹이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소서.

주님,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불같은 빛을 내게 하시고,
모든 민족 가운데 주의 이름이 영화롭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변화되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세상에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의 애통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옵소서.
죄로 인해 울게 하시고, 은혜로 인해 기뻐하게 하시며,
눈물 속에서 구원의 확신을 얻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 속에서 새 생명을 허락하신다. 스가랴 12장은 단순한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오늘의 신앙을 새롭게 일깨우는 살아 있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스가랴 11:1~17

 

스가랴 11:1~17 (개역개정)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잣나무야 울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울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니 이는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라 젊은 사자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니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그들을 사는 자들은 죽여도 죄가 없다고 하며 그들을 파는 자들은 이르기를 내가 부자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그의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난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둘지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내 언약을 폐하려 함이었더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가난한 양 중에서 나를 주목하던 자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아느니라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면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면 말라 그들이 곧 내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달아서 주었는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값진 값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연합을 끊으려 함이었더라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를 취하라 하시니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지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 눈에 임하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 눈이 아주 멀게 되리라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목자들(지도자들)의 부패와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의 대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11:1~17

서문 — 전체 맥락 안내
스가랴 11장은 상징적 예언의 형식을 취하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히 목자 같은 역할을 맡은 자들의 실패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냅니다. 말씀은 레바논과 바산의 큰 나무들이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해 목자의 울음과 사자의 부르짖음을 언급하고, 선지자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돌보는 인물로서 두 개의 막대기를 사용해 은총과 연합을 상징적으로 꺾습니다. 동시에 선지자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먹이되 결국 세 목자를 제거하는 행동을 통해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만을 보여주며, 끝으로 ‘못된 목자’에게 임할 저주를 선포합니다. 이 장은 표면적으로는 당시 정치적·종교적 현실을 반영하지만 더 깊게는 참된 목자의 부재와 그로 인한 백성의 상처, 그리고 궁극적인 심판과 회복의 필요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본문 요약
    레바논의 문들이 열려 백향목과 잣나무, 상수리나무 같은 견고한 나무들이 불에 타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이러한 자연의 파괴는 이스라엘의 영광과 자랑이 무너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고 명령하시며, 이 양들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선지자는 두 개의 막대기를 취하는데 하나는 ‘은총’, 다른 하나는 ‘연합’이라 칭합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세 목자를 제거하고, 막대기 은총을 꺾어 언약을 폐하는 행위를 합니다. 백성은 선지자에게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주고, 선지자는 그 은을 토기장이에게 던집니다. 둘째 막대기 연합을 꺾음으로써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합이 끊어짐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악한 목자, 즉 백성을 버리고 오히려 자신을 배불리는 지도자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 경고합니다. 그의 팔은 마르고 오른 눈은 멀어지는 심각한 형벌이 예고됩니다.
  2. 신학적 해석과 신학적 의미
    (1) 상징과 실상
    스가랴의 행동 예언은 상징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지자적 전형을 보여줍니다. 레바논의 큰 나무들이 불에 타는 이미지는 단순한 자연 재앙이 아니라 국가적·영적 가치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백향목과 잣나무, 상수리나무는 권세와 번영, 자랑을 상징하고, 그것들의 파괴는 사람이 의지해 온 안전망들이 무너지는 심판을 말합니다.

(2) 목자 비유의 신학적 무게
목자는 성경 전반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자들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입니다.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 지도자들이 목자 이미지로 번안되며, 하나님은 참된 목자이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스가랴는 목자들을 통해 당시 지도자들의 무능과 잔혹함, 그리고 그들이 백성을 돌보지 않는 실태를 폭로합니다. 선지자가 ‘잡혀 죽을 양’을 돌보는 장면은 공동체의 연약한 자들이 어떻게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목자의 제거와 막대기 꺾기는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가 깨어졌음을 보여 주며, 이는 공동체적 관계의 붕괴와 그에 따르는 영적 결과를 의미합니다.

(3) 은 삼십 개와 토기장이에게 던짐의 의미
은 삼십 개는 여호수아의 경우나 예언에서 배신과 값싼 거래를 상징하는 숫자로 사용됩니다. 예수 시대에 유다의 배반 대금과 연결되어 신약적 예표로도 읽힙니다. 선지자가 그 은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는 행위는 이스라엘의 값진 것들이 더럽혀지고, 영적·도덕적 가치가 깨어져 토기에 비유되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락함을 가리킵니다. 토기장이이라는 상징은 흔히 민중적이고 연약한 수공업자를 가리키며, 종종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미지입니다. 여기서는 배상금처럼 취급된 은이 토기장이에게 던져짐으로써 공동체의 상처가 회복되는 대신 더 큰 수치로 돌아오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4) 연합의 붕괴와 역사적 맥락
연합이라 명명된 막대기의 꺾임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열을 가리키며, 정치적·영적 단절이 하나님의 계획과 백성의 안전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바벨론 포로기와 포로 귀환 이후의 정치적 혼란, 지도력의 부재와 외교적 위협 속에서 공동체의 회복이 지연되는 문제를 반영합니다. 영적으로는 백성이 의지하던 외형적 종교적 행위나 인간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유일한 길이 드러남을 시사합니다.

(5) 참된 목자에 대한 암시와 메시아적 기대
비록 본문은 직접적으로 메시아를 언급하지 않지만, 목자 이미지의 실패는 독자들로 하여금 참된 목자에 대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목자로 묘사하며, 예수의 헌신적 사역과 자기희생을 통해 잘못된 목자들을 대체함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스가랴의 비극적 묘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참된 목자의 오심을 기대하게 하는 신학적 맥락을 제공합니다.

  1. 관련 말씀 구절과 연관성 설명
  • 예레미야 23:1-4 — 거짓 목자들을 책망하고 참된 목자인 여호와께서 참된 목자를 세우실 것을 선포합니다. 스가랴와 마찬가지로 목자의 실패와 하나님의 회복 계획을 대비시킵니다.
  • 에스겔 34장 — 목자들의 무능과 악행을 강력히 비판하고, 하나님 자신이 목자가 되어 양들을 먹이고 회복시키겠다고 선언합니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스가랴 본문과 주제적으로 매우 가깝습니다.
  • 마태복음 26:14-16, 요한복음 10장 —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목자됨을 통해 은 삼십 개와 목자 비유의 신약적 성취를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 스가랴의 은 삼십 개 이미지는 신약의 사건과 신학적으로 연결됩니다.
  • 시편 23편 — 참된 목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은 스가랴가 지적한 목자 실패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영적 이상을 보여 줍니다.
  • 학개·스가랴의 다른 장들 — 포로 귀환 후의 건축과 회복,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적 메시지와 함께 읽으면 본문의 의미가 더 풍부해집니다.
  1. 깊이 있는 묵상 (영적 적용과 질문들)
    (1) 나의 의지처는 누구인가
    스가랴는 사람들이 의지하던 권력과 번영의 상징들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나의 삶에서 ‘레바논의 큰 나무’처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것이 재물인지, 인간적 권력인지, 혹은 외형적 종교 활동인지 돌아보고, 그것들이 무너지면 나의 신앙과 삶은 어떻게 될지 솔직히 묵상해 보십시오.

(2) 목자로서의 책임은 무엇인가
가정과 공동체, 교회에서 목자의 역할을 맡은 자들에게 이 본문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진정한 목자는 약한 자를 돌보고, 상한 자를 치유하며, 흩어진 자를 찾아 돌아오는 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이타심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우지는 않는가? 나의 돌봄은 희생과 책임을 동반하는가, 아니면 편리와 계산에 따른 선택인가를 묵상해 보십시오.

(3) 언약과 연합의 소중함
‘은총’과 ‘연합’이라는 막대기가 꺾이는 장면은 언약과 공동체적 연대가 얼마나 연약한지 보여 줍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화목과 연합을 깨뜨리는 요소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4) 회개와 회복의 길
하나님의 심판적 경고는 종말론적 절망이 아니라 회복을 향한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목자들이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목자가 되심을 신뢰하고, 개인적·공동체적 회개를 통해 회복을 구하는 기도로 나아가십시오. 또한 회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정하고 인내와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함을 기억하십시오.

  1. 기도문 — 본문을 따라 드리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때로 우리는 외형의 번영과 사람의 권력에 의지하며 참된 소망을 잃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레바논의 큰 나무들 같은 허망한 의지처들을 끊어 주시고, 오직 당신만을 신뢰하게 하소서.

주님,
지도자와 목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와 가정과 사회의 목자들이 약한 자를 돌보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겼다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참된 돌봄의 마음을 새롭게 부어 주소서. 우리도 주변의 약하고 상한 자를 돌아보는 섬김의 손길이 되게 하시고, 편함과 계산이 아닌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

주님,
연합이 꺾인 곳에 화해와 회복을 허락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분열로 인해 상처받았다면 진실한 회개의 용기를 주시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연합을 이루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지며 당신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참된 목자 되신 예수님,
당신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흩어진 자를 찾아오시고 상한 자를 고치시며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주 되심을 의지하며,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게 하소서. 당신의 인도를 따라 나아갈 때 우리는 안전함을 누리게 하시고, 삶의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얻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주님,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과 회복을 향한 믿음을 허락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말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우리를 사용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맺음말
스가랴 11장은 잔혹하고 암울한 이미지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와 백성의 책임을 환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좌절과 심판의 말씀이 우리를 참된 목자, 즉 하나님께로 이끌어 회개와 회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 본문을 묵상할 때 개인적·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 참된 목자의 심정을 닮아가려는 겸손한 결단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스가랴 10:1~12

다음은 스가랴 10장 1절부터 12절까지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스가랴 10:1~12 (개역개정)

1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늦은 비 때에 여호와께서 번개를 만드사 그들에게 소낙비를 내리시리니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2 드라빔들이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들이 거짓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하며 헛된 위로를 함으로 백성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였도다
3 내가 목자들에게 진노하며 순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물의 양 떼를 권고하리니 그들이 전쟁의 말 같이 영화롭게 하리라
4 모퉁잇돌, 못, 싸우는 활, 모든 통치자가 그에게서 나오리라
5 그들이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하므로 말 타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김으로 그들을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떠난 일이 없었던 것 같이 되리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어 그들을 들으리라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이 되어 마음이 포도주로 인하여 기쁨에 취함 같을 것이며 그들의 자손이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이 즐거우리라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9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 가운데 흩었으나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살아 돌아오리라
10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데려오리니 그 곳이 부족할 만큼 많아지리라
11 그가 환난의 바다를 통과할 것이며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데가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12 내가 그들을 여호와로 강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행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10장 1절~12절 본문 묵상

주제: 회복의 하나님,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 주


1. 본문 요약

스가랴 10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그들의 마음에 새 힘을 주시는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절은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이는 농사의 풍요로움을 상징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라는 영적 요청으로 해석된다. 이어지는 2절은 거짓 예언자들과 점술가들이 백성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게 만든 상황을 지적하며, 그 결과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게 되었음을 고발한다.

3절에서 하나님은 이러한 거짓된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다. 동시에 진정한 목자로서 자신이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을 전쟁의 말처럼 강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4절은 이 회복의 중심에 있는 지도자, 즉 ‘모퉁잇돌’과 ‘못’과 ‘싸우는 활’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이는 메시아적 예언으로, 장차 올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5절부터 7절에서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백성이 용사처럼 싸워 승리하고, 다시 기쁨과 평안을 되찾을 것을 묘사한다. 8절에서 하나님은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잃어버린 양을 불러 모으시는 목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에, 다시 그들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 약속하신다.

9절부터 12절까지는 이스라엘의 흩어진 백성이 먼 곳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애굽과 앗수르 같은 강대국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오게 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강하게 하시며, 마침내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신다고 선언하신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스가랴서 전체의 흐름 속에서 ‘회복’과 ‘구속’이라는 중심 주제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단순히 땅의 회복이나 국가의 부흥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다시 신앙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첫째, 하나님은 참된 공급자이시다.
1절의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는 말씀은 인간의 생존과 풍요가 자연이나 우상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당시 사람들은 농경 사회 속에서 비가 하늘의 신이나 점술의 힘으로 온다고 믿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오직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신앙은 바로 이 ‘의존의 방향’을 바로잡는 데서 출발한다.

둘째, 거짓 목자와 진정한 목자의 대비가 중심적인 신학 주제이다.
2절과 3절은 하나님께서 거짓된 지도자들에게 진노하시고, 자신이 직접 백성을 돌보겠다고 하신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영적 목양의 회복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 것과 연결된다. 스가랴서에서의 목자는 메시아의 상징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하나로 모여 구원을 얻게 됨을 예표한다.

셋째, 하나님의 구속과 회복의 주권이 드러난다.
8절과 9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신다. 구속은 인간의 공로나 자격에 근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먼저이며, 그로 인해 백성은 비로소 응답할 수 있다. 또한 10절에서 애굽과 앗수르로부터의 귀환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죄와 포로의 상태에서 해방되는 영적 회복을 의미한다.

넷째,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게 된다.
12절의 “내가 그들을 여호와로 강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행하리라”는 말씀은 성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인간은 스스로 강해질 수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강해질 때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게 된다.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한 말씀과 맞닿아 있다.


3. 관련 말씀 구절

  1. 요한복음 10장 11절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스가랴 10장의 참된 목자 이미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된다.

  2. 시편 23편 1절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스가랴의 회복 예언은 시편의 목자 신앙을 계승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3. 예레미야 23장 3절 –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자를 그 몰린 모든 나라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며.”
    → 스가랴 10장의 귀환 예언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4. 에베소서 2장 13절 –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 스가랴 10장의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돌아오리라”는 예언이 신약에서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확장된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 10장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인간의 현실은 종종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밭과 같다.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점쟁이나 세속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참된 비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다. 신앙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신다. 양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으며, 오직 목자의 음성을 따라야만 안전하다. 하나님께서는 길 잃은 양들을 향해 휘파람을 부신다. 이 휘파람은 사랑의 부르심이며, 회개의 초대이다. 그 부르심을 듣는 자만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다.

또한 이 본문은 개인적인 회복뿐 아니라 공동체적인 회복을 강조한다.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은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다시 서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번성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교회의 회복도, 가정의 회복도, 국가의 회복도 모두 하나님이 중심이 될 때 가능하다.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행하리라”라고 하신다. 이는 단지 신앙 고백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거짓된 소리들, 허탄한 말, 헛된 위로에 흔들린다. 그러나 진정한 위로와 힘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분은 흩어진 인생의 조각들을 다시 모으시고,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신다.


5. 기도문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오늘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참된 회복의 길이 오직 주께 있음을 깨닫습니다.
비를 구하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삶의 메마른 밭에 주의 은혜의 비를 내려주소서.
세상의 헛된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주의 음성만을 따르게 하소서.

거짓된 목자들을 심판하시고,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주님,
그분의 인도하심 아래 우리의 삶을 맡깁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주의 휘파람 소리로 우리를 다시 불러주시고,
잃어버린 양을 찾듯이 우리를 품에 안아주소서.

주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상한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땅을 주의 은혜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다시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게 하시고,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강하게 하시고, 주의 힘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길에서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며,
세상 속에서 주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단순한 역사적 예언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삶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백성을 부르고 계시며, 회복의 길로 이끄신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주님이 부르시는 휘파람 소리를 기억하자. 그분이 바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참된 목자이시다.

스가랴 9:9~17

 


스가랴 9:9-17 (개역개정)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갇혀 있는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오늘도 내가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13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살로 삼아
시온아 내가 네 자손들을 일으켜
헬라 자손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14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의 화살을 번개같이 쏘리니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돌들을 밟으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들을 쳐서 마시고 떠들며
피를 포도주처럼 마시며
잔에 가득한 것처럼 피에 잠기리라

16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그 날에
자기 백성의 양 떼처럼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그의 땅에 빛나리로다

17 그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크며
그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지
곡식이 청년을, 새 포도주가
소년을 강건하게 하리라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입성(9절)과 메시아 왕국의 평화와 회복(10~17절)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스가랴서 전체 중에서도 가장 명확하게 메시아적 구원의 약속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1. 본문 요약

스가랴 9장 9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는 장엄한 구절이다. 9절에서 예언자는 시온의 딸, 곧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외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왕이 임하기 때문이다. 그 왕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여 나귀,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이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달리 겸손하고 온유한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말씀이다.

10절에서는 이 왕이 전쟁의 도구들을 끊고, 이방 나라들 사이에 화평을 전하실 것을 예언한다.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른다. 이 구절은 메시아 왕국의 보편적 통치를 보여준다.

11절과 12절은 언약의 피로 인해 포로된 자들이 해방되고, 소망을 품은 자들이 요새로 돌아올 것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갑절의 회복을 약속하신다.

13절에서 1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유다와 에브라임을 무기로 삼아 헬라의 자손들을 대적하게 하시며, 전쟁 중에도 그들을 보호하실 것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악과 대적하여 싸우는 영적 싸움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16절과 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날에 자기 백성을 양 떼처럼 구원하시고, 그들이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들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청년과 소년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로 강건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는 메시아 왕국의 축복과 생명의 충만함을 상징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대표적인 예언으로 이해된다. 마태복음 21장과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신 사건은 바로 이 스가랴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스가랴 9장은 단순히 한 시대의 정치적 해방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보여준다.

첫째, 이 본문은 겸손한 왕의 초상을 제시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고, 메시아를 정치적 해방자로 기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은 칼과 병거로 싸우는 전쟁의 왕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신 평화의 왕이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승리하셨다. 십자가는 인간적으로 보면 패배의 상징이지만, 하나님께는 죄와 사망을 이기신 완전한 승리였다.

둘째, 본문은 언약의 피의 의미를 드러낸다. 11절에서 하나님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갇혀 있는 자들을 놓았다”고 하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죄의 포로가 된 인간이 자유함을 얻는 복음을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새로운 언약의 피로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구덩이에서 구원하신 은혜의 증거이다.

셋째,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과 승리를 약속한다. 하나님은 유다와 에브라임을 ‘활’과 ‘살’로 삼아 이방의 세력과 대적하게 하신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악한 세력, 불의, 거짓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의미한다. 신약의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백성을 세워 진리의 무기로 사용하신다.

넷째,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풍요를 보여준다. 16절과 17절의 언어는 마치 시편의 찬양처럼 아름답다.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그의 땅에 빛나리라.” 이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존재가 될 것임을 뜻한다. 구원은 단순한 위기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으로 이어진다.


3. 관련 말씀 구절

  • 마태복음 21장 4~5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온유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 요한복음 12장 14~15절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네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 이사야 9장 6~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 에베소서 2장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요한계시록 19장 16절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이 말씀들은 스가랴의 예언이 어떻게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의 예언 속 왕은 세상 왕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겸손하며, 나귀를 타고, 전쟁 대신 평화를 선포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이 겸손한 왕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세상의 방식으로 승리를 추구하고, 힘과 명예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예수께서는 그런 인간의 욕망과 반대되는 길을 걸으셨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죄인을 용서하며,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셨다.

오늘날 우리도 이 겸손한 왕의 길을 따라야 한다. 겸손은 단순히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분의 방법을 신뢰하며, 세상의 권력이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에 마음을 두는 것이 참된 제자도의 길이다.

또한, “언약의 피로 갇힌 자를 해방하신다”는 말씀은 우리 각자의 삶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때로 죄와 두려움, 절망의 구덩이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 모든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 진리를 붙잡을 때, 우리는 새로운 자유와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포로된 자들에게 “요새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요새는 하나님 자신을 뜻한다. 우리의 피난처는 세상의 안전장치나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분께 돌아올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영광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빛을 반사하는 존재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 겸손과 평화를 실천할 때 그 빛은 더욱 찬란히 드러난다.


5. 기도문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오늘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겸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봅니다.
세상은 여전히 힘과 성공으로 가득하지만,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오셔서 온유함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그 겸손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주님, 언약의 피로 우리를 구덩이에서 건지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죄와 절망 속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다시 요새 되신 하나님께 돌아와
그 안에서 참된 소망과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게 하시되,
그 빛이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어둠과 불의 속에서도 진리의 깃발을 들고 담대히 서게 하소서.

오늘도 겸손의 왕을 따르는 제자로 살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세상 가운데 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단순한 고대의 예언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복음의 메시지이다. 세상은 여전히 힘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신다. 스가랴의 예언이 말하는 평화의 왕은 지금도 우리 마음에 임하시며, 그분의 통치는 세상의 끝까지 미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나라를 기다리며, 이미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스가랴 9:1~8

 

스가랴 9:1~8 (개역개정)

  1.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리니 다메섹에 머물리라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보미라
  2. 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은 매우 지혜로우나
  3. 두로가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도다
  4.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5.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는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부끄러워서 그러하리로다
    가사에는 왕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사람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6. 잡족이 아스돗에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7. 그 입에서 그의 피를, 그 이 사이에서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8.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으로 말미암아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압박하는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보았음이라

 

 

1. 본문 요약

스가랴 9장 1절부터 8절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호의 메시지가 교차되는 예언의 말씀이다. 본문은 북쪽의 하드락과 다메섹으로부터 시작하여 두로, 시돈, 블레셋의 주요 성읍들로 이어지는 지역적 흐름을 따라, 하나님께서 이방 열국을 심판하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 예언은 단순히 지리적 정복의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 가운데 주권적으로 다스리심을 보여주는 신학적 선언이다.

첫 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리니 다메섹에 머물리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주변의 강대한 도시들까지도 주의 심판 아래 두고 계심을 보여준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보미라”라는 구절은 이 심판이 단순한 파괴의 목적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임을 시사한다.

두로와 시돈은 고대 세계에서 부와 지혜로 유명한 해상 도시였다. 그러나 그들의 경제적 번영과 인간적 지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두로가 자신을 요새화하고 금과 은을 쌓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4절)라고 하셨다. 인간의 성취가 하나님 없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어지는 5절부터 7절은 블레셋의 주요 도시들, 즉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아스돗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의 원수로 존재했지만, 결국 그들의 교만과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심판 속에서도 은혜의 흔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입에서 피를 제거하며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7절)라고 하신다. 심판의 목적이 단순한 멸망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8절에서 하나님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으로 말미암아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압박하는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보았음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단지 멀리서 세상을 관찰하는 분이 아니라, 친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다. 이 말씀은 앞으로 이어질 메시야의 평화로운 통치(9장 9절 이후)에 대한 서곡이기도 하다.


2. 신학적 해석

스가랴 9장 1절부터 8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 그리고 은혜가 함께 드러나는 본문이다. 먼저 하나님의 주권은 열방을 향한 심판의 선언 속에 나타난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군사력과 부로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뜻으로 열방의 운명을 결정하신다. 하드락, 다메섹, 두로, 시돈, 블레셋 모두 하나님 앞에 무력하다.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압제받는 자를 구원하시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두로와 시돈은 세상적 지혜와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면 이스라엘처럼 연약한 백성은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신다. 이 대조는 신약의 복음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서 4:6)는 말씀처럼, 스가랴의 예언도 하나님의 공평한 정의를 선포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심판 가운데서도 회복을 허락하신다는 점에 있다. 7절에서 블레셋 사람들 중 일부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라는 표현은, 이방인들도 결국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너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창세기 12:3)의 성취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속자이시다.

넷째로, 8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의 약속을 드러낸다.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명령만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백성을 둘러 지키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약속이다. 예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요한복음 10:11)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끝까지 보호하신다.


3. 관련 말씀 구절

  • 시편 2편 1~4절: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가…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 하나님께 대항하는 열방의 교만이 헛됨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 이사야 23장 1~9절: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 예언.
    → 스가랴의 예언이 이사야의 경고와 연결되며, 동일한 하나님의 뜻을 계승한다.

  • 스가랴 2장 5절: “내가 그 성 사방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의 상징으로, 9장 8절과 직접 연결된다.

  • 요한계시록 21장 3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리라.”
    →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와 함께하심의 궁극적 성취를 보여준다.


4. 깊이 있는 묵상

이 본문은 오늘날 신앙인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세상은 여전히 두로와 시돈처럼 부와 지혜를 신뢰하며 살아간다. 현대 사회의 “요새”는 군사력이 아니라 기술력과 자본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인간적 안전망을 무너뜨리실 수 있는 주권자이시다. 진정한 안전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신앙인의 시선을 바로잡는다. 1절의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보미라”는 선언은, 우리 삶의 중심을 세상 권세나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라는 초대이다. 하나님을 우러러본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의존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신앙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7절의 말씀은 복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심판받을 자들 중에서도 회복의 은혜가 주어진다. 이것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도 결국 은혜의 손길 안에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문을 열어 두신다.

마지막으로 8절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하나님은 “내가 눈으로 친히 보았음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고통, 억울함, 불안함을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주의 백성을 눈으로 지켜보신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단순한 감시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살피시며 보호하신다.


5.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주의 크신 주권과 공의를 다시 바라봅니다. 세상은 여전히 두로와 시돈처럼 부와 지혜를 의지하며, 인간의 힘으로 요새를 쌓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주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의 뜻만이 서며, 주의 말씀이 역사를 움직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마음 속에도 세상의 요새를 쌓으려는 교만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안전을 돈과 명예에서 찾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보호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즉 “여호와를 우러러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또한 심판 중에서도 구원의 길을 여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도 회복의 기회를 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자비의 손을 내미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죄와 불순종을 제거하시고, 주께로 돌아와 진정한 예배자로 서게 하소서.

하나님, 주의 집을 둘러 진을 치시며 우리를 지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은 불안하고 전쟁과 혼란이 계속되지만, 우리는 주의 눈으로 지켜보시는 보호 안에서 안식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시고, 주님의 영광이 그 안에 거하게 하소서.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친히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때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주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심판 속에서도 여전히 흐르는 구원의 은혜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세상의 강대국들조차도 자신의 뜻 안에서 다스리시며, 동시에 자신의 백성을 친히 지키신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말씀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그분의 보호와 은혜 안에서 평안을 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