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4:1~14

 


스가랴 4:1~14 (개역개정)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어난 것 같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기름 그릇이 있고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잔 위에는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릇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던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 그가 내게 일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두 감람나무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14. 그가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본문 요약 — 스가랴 4:1–14

스가랴 4장은 환상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성전 재건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주신 위로와 능력의 약속을 전한다. 선지자 스가랴는 천사가 깨워 보여 준 환상에서 순금 등잔대(등불대)와 그 곁의 두 감람나무를 본다. 등잔대에는 일곱 등잔과 일곱 관이 있으며, 감람나무는 등잔대에 기름을 공급한다. 천사는 이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묻는 스가랴에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라고 설명한다. 또한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며, 스룹바벨이 머릿돌을 놓을 때 백성들이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칠 것임을 예고한다. 마지막에 이 두 감람나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로서 온 세상 앞에 서 있는 자들이라고 설명된다(4:14).

신학적 해석

  1. 하나님의 방법론: 능력의 원천은 사람의 힘이 아니다
    4:6의 선언(“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은 이 본문의 핵심 신학 진술이다. 스룹바벨과 백성들이 직면한 과제—포로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 기초를 다지고 건축을 마무리하는 일—은 인간의 지혜나 군사적 능력, 재정적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여기서는 능력으로 번역된 헬라어나 히브리어의 뉘앙스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이야말로 일을 이루는 주체다. 이는 이스라엘사의 많은 장면(출애굽, 여호수아의 전진, 사사 시대의 회복 등)과 함께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다—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2. 등잔대와 감람나무: 성전과 성령의 상징
    등잔대는 성전 안에서 영적 빛과 예배의 중심을 상징한다(출 25장, 레위기 등에서 등잔대 규례 참조). 일곱 등잔과 일곱 관은 완전함을, 여호와의 온전한 임재와 통치를 암시한다. 감람나무는 기름(성령/능력)의 공급원으로 묘사되며, 등잔대를 지속적으로 밝히는 역할을 한다. 이 이미지는 성전의 예배가 하나님의 기름 곧 성령의 공급을 통해 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성전 건축이나 봉사는 인간의 계획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성령)에 의해 지속되고 완성된다.
  3. 스룹바벨: 머릿돌과 은총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의 정무적 지도자이다(스가랴·학개서 참조). “머릿돌을 내놓을 때”라는 표현은 건축의 완성을, 나아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중심적 위치에 서는 자를 가리킨다. 백성들의 “은총” 선포는 단순히 인간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인정임을 암시한다. 나아가 신약적 관점에서 머릿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한다(시 118:22, 마 21:42, 벧전 2:6–7). 그러나 본문은 우선 스룹바벨의 사역 완성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4. 두 기름 부음 받은 자(4:14)의 의미
    본문은 마지막에 두 감람나무가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라고 밝힌다. 전통적으로 이 둘은 사제적 직분(대제사장)과 정사적 직분(스룹바벨 같은 총독)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고, 더 넓게는 예배(예배 지도자들)와 통치(정치적 지도자들)의 공동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이 둘은 메시아적 기대—왕과 제사장의 역할이 결합되는 미래적 인물을 암시—으로 읽히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두 인물이 각각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기름(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5. 작은 일의 날과 하나님의 눈(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던 자들이 스룹바벨의 다림줄을 보고 기뻐할 것이라는 예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작은 시작의 가치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큰 일은 때로 작은 시작에서 비롯되며, 하나님의 눈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닌다(즉 하나님의 주권적 감시와 섭리). 이 메시지는 겸손과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신앙을 요구한다.

관련 말씀 (참고 구절)

  • 스가랴 6장: 기름 붓는 자들과 관련된 추가 환상과 해설.
  • 학개 2장 6–9: 성전 재건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실 것이라는 선언.
  • 시편 118:22–26: “머릿돌”과 관련된 메시아적 상징.
  • 출애굽기 25장: 성막의 등대(금 등잔대)에 대한 제사 규례—등잔대는 예배의 중심적 장치.
  • 마태복음 21:42 / 사도행전 4:11 / 베드로전서 2:6: 머릿돌에 대한 신약의 해석(예수 그리스도).
  • 고린도후서 3장 / 로마서 8장: 성령의 능력과 사역에 대한 신약적 설명—모든 일은 성령으로 인함.

깊이 있는 묵상

(아래 묵상은 개인 묵상 혹은 소그룹 나눔용으로 구성했습니다. 각 항목을 읽고 잠시 묵상한 후 성경을 펴고 기도해 보십시오.)

  1.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내 삶의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종종 문제를 인간적 능력, 재정, 계획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스가랴는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큰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 당신이 떠맡고 있는 과제는 무엇인가? 그 일을 이룰 “힘”을 어디에서 기대하고 있는가? 기도로 하나님의 기름을 구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는가? 잠시 고요히 앉아,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해보라.
  2. 작은 시작을 향한 하나님 눈의 관심
    “작은 일의 날”을 멸시당하던 때에 시작된 일이 결국 큰 기쁨이 되었다. 하나님은 작은 씨앗에도 주의를 기울이신다. 오늘 당신의 작은 섬김, 작은 헌신, 보이지 않는 희생은 하나님의 눈에 기록되어 있다. 좌절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3. 등잔대와 감람나무—예배와 성령의 상관관계
    등잔대는 등불을 통해 빛을 발한다. 하지만 등불은 감람나무(기름)의 공급이 있어야 꺼지지 않는다. 우리의 예배(외적 행위)도 성령의 내적 공급이 없으면 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의 예배는 형식인가, 기름인가? 내 예배가 성령의 공급을 받도록 어떤 공간과 태도가 필요할까?
  4. 지도자의 역할—스룹바벨을 통해 본 리더십의 본질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개인 능력의 결과가 아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기름을 분별하고 그분께 의존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바르게 이끈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교회)에서 당신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 기도와 겸손으로 하나님의 기름을 구하라.
  5. 메시아적 소망—완성과 머릿돌의 의미
    본문의 머릿돌 이미지는 미래의 더 큰 완성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끝을 보시는 분이다. 우리의 현재 불완전함은 하나님의 완성으로 이어질 것을 믿자. 이 소망은 인내와 감사로 삶을 채운다.

적용과 실천 질문

  •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구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적어보라.
  • 내 예배와 사역에서 ‘기름(성령)의 공급’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실천은 무엇인가? (예: 매일 성경 10분 읽기, 묵상 시간 확보, 기도 동역자 지정 등)
  • 지금 작게 시작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멸시하는 목소리들에 맞서 어떻게 인내할 것인가? 작은 일들을 위한 구체적 감사 목록을 작성해 보라.

기도문 (5000자 분량을 목표로 한 깊이 있는 기도)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
오늘 우리는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 당신의 말씀과 그 신실하심을 다시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상황의 크기나, 사람의 힘이나, 세상의 방법으로 일을 이루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의 영으로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주여, 우리 가운데서도 스룹바벨에게 주신 것과 같은 약속을 붙들게 하소서. 우리의 삶과 섬김과 공동체 사역이 때로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의 눈에는 기록되어 있고, 당신의 때에 쓰임 받게 하심을 믿게 하소서. 우리가 쉽게 낙담하거나 다른 이의 멸시에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으로 새 힘을 주소서.

거룩하신 주님,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예배가 형식적인 불빛이 아니라 감람나무의 기름으로 활활 타오르는 진정한 찬양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와 찬양, 봉사가 당신의 기름으로 충만하여 타인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시고, 어두운 곳에서 길 잃은 자들이 주님을 보게 하소서. 성전과 같은 우리의 삶이 당신의 임재로 인해 거룩하게 세워지게 하시며, 그 영광이 우리의 말과 행위 가운데 드러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
스룹바벨과 같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있을 때, 우리가 우리의 능력만을 의지하지 않고 참된 용기와 겸손으로 주님께 의탁하게 하소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일들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나, 당신의 영이 역사하실 때 가능함을 믿게 하시고, 일하실 때까지 우리의 손을 놓지 않게 인도하소서. 우리의 계획과 노력 위에 당신의 기름을 부으시어, 당신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여,
우리가 만나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가난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당신의 은총과 돌봄을 베푸시고, 멸시와 무시로 인해 낙심한 자들에게 새 소망을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작은 섬김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시는 당신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선행들이 하늘에 아로새겨져 당신의 때에 열매 맺도록 축복하소서.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주님,
당신은 통치하시고 또한 거룩함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영적·정치적·사회적)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 가운데 겸손과 성령의 지혜를 부어 주시사, 권력을 사역으로 사용하게 하시고,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 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서로 협력하여 온 세상 앞에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듯이, 우리 사회의 리더들도 당신의 기름으로 채워져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게 하소서.

끝으로, 주님,
당신의 약속을 신뢰하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시작을 멸시하는 이들의 말보다 당신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며, 우리의 머릿돌을 세우실 때에 사람들이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치게 하실 당신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가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며, 당신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성령님, 오늘 우리의 가슴에 기름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어두운 자리들을 밝히사 주님의 빛을 더욱 크게 비추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가랴 3:1~10

 


스가랴 3:1~10 (개역개정)

  1.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이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곧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시더라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더니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명령을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지어다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둔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그 위에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시니라

 

 

스가랴 3장 1~10절

“죄를 벗기시고 새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1. 본문 요약

스가랴 3장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정결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환상 가운데 하나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고, 사단이 그의 오른편에 서서 그를 고발하는 장면을 봅니다(1절).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죄와 더러움을 대제사장 한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단은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근거로 그를 정죄하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사단을 책망하시며,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로 비유하십니다(2절). 즉, 완전히 타버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건져내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여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죄악을 제거한 뒤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씌우게 하십니다(3~5절). 이는 곧 이스라엘의 죄 사함과 회복을 상징합니다.

이후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내 도를 행하며 내 명령을 지키면, 내 집과 뜰을 다스리게 하고 천사들 가운데 왕래하게 하리라”(7절). 즉, 정결케 된 자에게는 거룩한 직분과 권위, 교제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을 “예표의 사람들”이라 하시며, 장차 오실 **‘내 종, 싹’(메시아)**를 예언하십니다(8절).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는 돌을 두시고, 그 위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하십니다(9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인류의 죄를 속하실 사건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날에 “각 사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서로 초대하리라”(10절) 하십니다. 이는 평화와 풍요, 그리고 구속의 완성 후 누리게 될 안식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2. 신학적 해석

(1) 사단의 고발과 하나님의 변호

스가랴 3장은 하늘의 법정 장면처럼 펼쳐집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은 채 서 있고, 사단은 그를 고발하며 정죄합니다. 사단은 여전히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계 12:10)**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발을 들으시되, 사단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책망하십니다.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 이 말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죄보다 크다는 선언입니다. 선택의 은혜가 죄의 현실을 덮습니다.

(2) 더러운 옷과 새 옷의 교환

여호수아가 입은 “더러운 옷”은 단지 외적 불결이 아니라 죄와 수치, 부패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것은 속죄와 의의 전가를 나타냅니다.
이는 신약의 복음적 진리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죄인이 스스로 옷을 갈아입을 수 없듯, 여호수아도 스스로 정결케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은혜로만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3) 싹(메시아)과 돌의 상징

“내 종 싹”(8절)은 히브리어로 체마흐(צֶמַח)이며, 자라나는 새순,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는 다윗의 계보에서 나실 메시아를 예언하는 표현입니다(렘 23:5, 사 4:2 참조).
또한 “한 돌에 일곱 눈”은 완전한 통찰력과 주권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9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합니다.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히 10:10~14).

(4)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의 평화

10절의 평화로운 장면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 안식을 말합니다. 미가 4:4에서도 동일한 비전이 등장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이는 종말론적 평화의 약속이며, 메시아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평화를 예시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관을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도다.”
  • 누가복음 15:22
    “아버지가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 로마서 8: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 요한계시록 7:14
    “그들이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 모든 말씀은 스가랴 3장의 진리를 확장하여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옷을 입히시는 분이십니다.


4. 묵상: “은혜로 다시 세우심을 받는 사람”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지만, 그의 옷은 더러웠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실존을 드러냅니다. 직분이나 경력이 우리의 의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서 우리는 모두 더러운 옷을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책망보다 회복의 말씀을 먼저 주십니다.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나님은 죄를 덮지 않으시고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새 옷을 입히십니다.
그 옷은 인간의 선행으로 얻은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짜인 옷입니다.
우리의 죄가 크더라도, 사단의 고발이 날카롭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보다 큽니다.

또한 여호수아가 정결케 된 후 새로운 사명을 받았듯이, 회복된 성도는 단지 용서받은 자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집을 다스리고 내 뜰을 지키라” 하십니다(7절).
즉, 정결함은 사명을 위한 준비입니다. 회개는 끝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은 놀랍습니다 —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이것은 단지 세상적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누리는 영적 평화와 교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서로 화목하게 되었고, 진정한 평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기도문

[정결케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다시금 제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저 역시 여호수아처럼 더러운 옷을 입은 자였습니다.
제 손과 마음, 생각과 말 속에 죄의 흔적이 남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단의 고발 앞에서 제 편이 되어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하십니다.
주님의 그 한마디가 저를 살립니다.

주님, 제 죄를 제거하시고 새 옷을 입히소서.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 주시고, 정결한 관으로 제 마음의 중심을 새롭게 하소서.
내가 주님의 도를 행하며 주의 명령을 지키는 자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집과 뜰을 돌보는 충성된 종이 되게 하소서.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다” 하신 말씀처럼,
주님은 모든 것을 보시며, 완전한 지혜로 저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루에 온 세상의 죄를 제거하신 그 능력이
오늘 제 삶 속에서도 역사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새 옷을 입은 자로서 다른 이들을 초대하게 하소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서로를 축복하는 평화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정죄와 두려움 대신, 은혜와 회복이 흘러넘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스가랴 3장은 죄와 정죄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예표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
그분이 바로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스가랴 2:1~13

 


스가랴 2:1~13 (개역개정)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손에 측량줄을 잡았기로
2 네가 어디로 가느냐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더니
3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성곽이 없을 만큼 사람과 가축이 그 가운데 많으리라 하라
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방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6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으로 흩었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8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열국에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9 내가 손을 그들 위에 흔들리니 그들이 자기 종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그 때에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10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니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12 여호와께서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몫으로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13 무릇 혈기 있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니 이는 그가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시니라


 

스가랴 2장 1절–13절(본문 요약·신학적 해석·관련 말씀·묵상·기도문)

 


서문 — 들어가며

스가랴 2장은 환상 가운데 나타난 예루살렘의 회복과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측량줄을 든 자의 모습에서 도시의 장래와 경계가 아닌 하나님의 보호와 영광, 그리고 열방을 향한 구원의 계획이 드러납니다. 본문을 차근차근 요약하고, 본문의 언어와 상징을 신학적으로 풀어낸 뒤 관련 구절과 실제적 묵상, 기도문을 제시합니다.


1) 본문 요약

1절–2절: 스가랴는 한 사람이 손에 측량줄을 잡고 예루살렘의 너비와 길이를 재려는 환상을 봅니다.
3절–4절: 천사들이 상호작용하며 그 측량자에게 예루살렘에 관하여 전합니다. 한 천사가 달려가 소년(측량자)에게 이르되, “예루살렘은 성곽이 필요 없을 만큼 사람과 가축이 그 가운데 많을 것”이라고 전하라 합니다.
5절: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을 사방에서 보호하는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고 선언합니다.
6절–8절: 하나님은 북방(추정: 바벨론 또는 적대 열방)에서 오는 자들에게 도피하라고 했으나, 자신은 또한 하늘 사방으로 흩었던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셨음을 알립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영광을 위하여 열방으로 보내심을 선포합니다.
9절: 하나님이 손을 흔들어 그들을 치실 것이며 그들이 포로 및 노략거리가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10절–13절: 시온에게 기쁨과 노래를 선포하고,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이 직접 그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유다는 거룩한 땅으로 여겨져 하나님 몫이 되며, 예루살렘은 다시 택함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혈기 있는 자(자기 의로움과 무력한 분주함을 드러내는 사람들)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이는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을 의미한다—고 결론짓습니다.


2) 신학적 해석 및 주해적 포인트

(1) 측량줄의 상징성

측량줄(줄자)은 구약에서 종종 땅의 경계, 회복, 새 질서의 설정을 의미합니다(참조: 이사야 34:11, 2막 환상 문학 등).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한 재산의 경계 측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회복하실 공동체의 ‘범위’와 ‘질서’를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중요한 점은 측량의 목적이 성벽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과 가축으로 가득 찰 것을 확인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도시의 안전은 인간의 성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에 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2) “성곽이 없을 만큼” — 의존의 전환

“성곽이 없을 만큼”이라는 표현은 안전의 근원이 인간의 산성(城)에서 하나님의 보호로 옮겨짐을 주장합니다. 전통적 방어수단(성벽)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돌아와 번성할 것이라는 예언적 낙관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직접 방벽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는 신뢰의 전환—인간의 노력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을 요구합니다.

(3) 불 성곽(The fire wall)과 하나님의 영광

5절의 “사방에서 불 성곽” 이미지는 보호뿐 아니라 정결과 심판의 의미도 내포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출애굽기·소돔·시나이산의 불)와 정결의 상징으로서, 외부의 위협을 소멸시키고 내부를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며 그의 영광이 공동체의 중심이 됨을 의미합니다(요한복음 1:14의 ‘임하시어’와도 연결될 수 있음).

(4) 열방과 시온 — 보편적 구원 계획

본문은 단순히 이스라엘 회복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8절과 11절은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보내어 열방까지 그분의 영광과 백성을 확장시키심을 말합니다. 이는 구약의 선민관과 열방관이 함께 교차하는 모티프—이스라엘은 구원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드러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은 이방인의 회심과 하나님의 통치 확장을 예고합니다.

(5) “혈기 있는 자는 잠잠하라” — 인간적 해결의 한계

마지막 구절(13절)은 자기 주장, 맹목적 분노, 자기 의에 호소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행동 앞에서 인간적 혈기(분방한 행동)는 무의미하며 잠잠해야 한다는 촉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겸손을 요구합니다.


3)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신학적 함의(요약)

  1. 하나님의 보호는 인간의 구조(성곽)를 넘어선다 — 신앙의 안전은 하나님의 임재에 있다.
  2. 하나님은 공동체를 회복시키시고 중심에 거하신다 — 교회는 성곽 대신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3. 하나님의 구원은 열방으로 확장된다 — 선교적 소명은 구약에서도 핵심이다.
  4. 인간의 자력과 혈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물러나야 한다 — 겸손과 신뢰가 요구된다.

4) 관련 말씀(참고 구절 및 간단한 메모)

  • 이사야 2:2–4 — 열방이 여호와께로 모이는 예언, 영적 통합의 이미지.
  • 이사야 60:1–3 — 예루살렘의 영광과 열방이 빛을 받는 장면(시온의 영광).
  • 에스겔 48장 — 땅의 분배와 새 경계에 관한 묘사(측량의 이미지 연상).
  • 스가랴 8장 3절 —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내 거처를 그 중에 삼으리라” (하나님의 거하심 반복).
  • 시편 46:7, 11 —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니…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의 보호).
  • 출애굽기 13:21–22 —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의 상징.
  • 마태복음 28:18–20 — 예수의 지상명령과 열방에 보내심(스가랴의 열방 관념과 연결).
  • 요한복음 1:14 — ‘임하심’의 성육신적 성취(“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

5) 깊이 있는 묵상(실천적 적용 질문 포함)

A. 본문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한 묵상 질문

  1. 나는 어디에 나의 ‘성곽’(안정, 방어, 기대)을 두고 있는가?
  2. 하나님이 내 삶의 ‘가운데’에 거하신다는 약속을 내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3. 내가 속한 공동체(교회·가정·직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중심이 되게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4.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에 나는 어떤 구체적 참여를 하고 있는가(기도·지원·선교 등의 방식)?
  5. 갈등이나 분노 앞에서 내가 ‘잠잠’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내 욕구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B. 묵상의 길잡이(사실적·영적)

  • 사실적 관찰: 성경 원문에서 ‘측량’, ‘불’, ‘거주’ 등의 반복 어휘를 찾아보라. 반복되는 어휘는 하나님 메시지의 핵심을 드러낸다.
  • 영적 적용: 하나님은 물리적 경계보다 ‘영적 거처’와 ‘임재’를 중요시하신다. 나의 신앙생활도 겉으로 보이는 규범보다 하나님과의 실제적 교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 공동체적 결단: 예루살렘이 성벽 없이도 번성함은 서로의 의존과 공동체의 신뢰 회복을 의미한다. 교회 안에서 ‘자치적 방어’ 대신 ‘상호 의존적 사랑’을 실천하자.

6) 기도문 (여러 상황에 맞춘 기도)

A. 회개와 겸손의 기도

주님, 제가 아직도 제 인생의 성곽을 쌓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분주함과 혈기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잠잠히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제 자랑과 자기 의를 내려놓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B.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스가랴가 본 그 하나님, 당신이 우리의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정·교회·직장)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의 중심이 되시고, 우리를 불 성곽으로 보호하사 모든 위협과 시험을 막아 주옵소서. 주님이 거하시는 곳에 참된 기쁨과 평강이 임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주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사용하여 주옵소서. 아멘.

C. 구원과 선교를 위한 기도

하나님, 만국이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우리를 단지 보호만 하시지 마시고, 당신의 구원과 영광을 열방에 전하는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로써 기도하게 하시고,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회복되는 땅과 나라들을 보게 하옵소서. 아멘.

D. 소망과 확신의 기도 (마지막 축복)

여호와여, 당신의 약속을 의지하오니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고 소망으로 채워 주옵소서. 당신이 일어나사 거룩한 처소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도 잠잠히 주의 손길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의 뜻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론 — 회복과 임재의 초대

스가랴 2장은 단순한 도시 재건 예언을 넘어,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을 보호하고 열방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위대한 약속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초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성곽’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우리의 가운데 거하시도록 초대할 때, 그분은 불 성곽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그의 영광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기와 분노 대신 잠잠함과 신뢰로 응답합시다. 그가 일어나실 때,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영광 가운데 새로워질 것입니다.


 

스가랴 1:7~21

 


스가랴 1:7~21 (개역개정)

7절 다리오 왕 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요 브레갸의 아들인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8절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말들이 있기로,

9절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이르되 이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10절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하니,

11절 그들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에게 노하신 지 이 칠십 년 동안을 어느 때까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하매,

13절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절 안일한 여러 나라를 심히 진노하노니 이는 내가 조금 진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라.

16절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측량줄이 예루살렘 위에 처지리라 하라.

17절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스가랴 1:18~21

18절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19절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것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은 뿔들이니라 하더라.

20절 또 여호와께서 내게 네 공장을 보이시기로,

21절 내가 묻되 그들이 무엇을 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것들은 유다를 흩은 뿔들을 두렵게 하고, 그들의 뿔을 들어서 유다 땅을 흩은 나라들의 뿔을 떨어뜨리려 하는 자들이니라 하시더라.


 

 


스가랴 1:7~21 묵상 —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는 회복의 뿔과 장인들”


1. 본문 요약

스가랴 1장 7절부터 21절은 선지자 스가랴가 본 두 개의 환상—‘화석류 나무 사이의 말들’과 ‘네 뿔과 네 공장(장인)’—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이 두 환상은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약속을 전하는 상징적인 메시지입니다.

먼저 첫 번째 환상(7~17절)에서, 스가랴는 붉은 말을 탄 한 사람과 그 뒤를 따르는 여러 색의 말들을 봅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땅을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로,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다고 보고합니다.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겠나이까”라고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회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시며, 성전이 재건되고, 성읍들이 번영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두 번째 환상(18~21절)에서는 네 개의 뿔과 **네 명의 공장(장인)**이 등장합니다. 뿔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흩은 열강의 세력을 상징하고, 공장들은 그 뿔들을 꺾어 버리는 하나님의 도구들, 즉 구원의 일꾼들을 뜻합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억압과 멸망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무너진 백성을 다시 세우실 것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2. 신학적 해석

스가랴의 환상은 단순한 꿈이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방식을 보여주는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붉은 말을 탄 사람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전지적 감찰을 상징합니다. “온 땅이 평안하다”는 보고는 인간의 눈에는 안정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공의가 회복되지 않은 불완전한 평화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를 주관하시며, 겉보기의 안정 속에서도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리십니다.
👉 관련 구절: “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주를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이다”(역대하 16:9).

(2)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

여호와의 사자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간구하며, 하나님은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라”(16절)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회개한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언약의 성실함을 보여줍니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은 하나님의 징계였으나, 동시에 다시 돌아올 소망의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징벌로 끝내지 않으시고, 항상 회복의 문을 열어두십니다.

👉 관련 구절: “내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예레미야 29:11).

(3)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의 실현

두 번째 환상에서 네 뿔은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은 열국의 교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공장들”을 일으켜 그 뿔들을 꺾으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복수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억압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무너지고, 그분의 손에 의해 세상은 새롭게 됩니다.

👉 관련 구절: “너희는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셨느니라”(로마서 12:19).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40:1-2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 예레미야 33:7-9
    “내가 유다의 사로잡힘과 이스라엘의 사로잡힘을 돌이키고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리라.”
  • 학개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요한계시록 19:11-14
    “하늘이 열리니 흰 말 탄 자가 있으니… 그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흰 말을 타더라.”

이 구절들은 스가랴의 환상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계획이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흐름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가 본 환상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영적 교훈을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경제는 피폐했고, 주변 민족들의 방해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까?” 하는 의문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 돌아왔고, 내 집이 세워질 것이며, 내 백성은 다시 번성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침묵이 끝났음을 알리는 희망의 선포였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여전히 그분의 백성을 주목하시고 계신 분입니다.

또한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악과 불의의 세력이 강하게 보일 때, 우리는 종종 무력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세력을 꺾을 “장인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장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되며,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곧 진리와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뿔’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세상의 유혹, 불의한 권세, 혹은 두려움과 절망의 뿔들이 우리를 누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뿔들을 꺾을 장인을 보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한 손길을 들어,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공장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라” 하신 말씀은 단지 건물의 재건이 아니라, 하나님 임재의 회복, 즉 성령의 성전으로서의 우리 안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마음의 폐허를 다시 세우고, 무너진 신앙의 돌담을 다시 일으키시려 합니다.


5. 기도문

회복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오늘 스가랴를 통하여 주신 말씀 속에서,
당신의 눈이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겉으로는 평안해 보여도
여전히 불의와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공의와 긍휼은 잠시도 멈추지 않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뿔들—
교만, 두려움, 불신, 세상의 압박—을 주님이 꺾어 주시고,
그 대신 믿음과 소망, 사랑의 장인을 보내 주옵소서.

주님,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이 성전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우리가 낙심 중에 있을 때,
“예루살렘을 위로하며 다시 택하리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는 일에
기꺼이 쓰임 받는 공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스가랴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상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땅을 살피시며, 우리를 향한 계획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무너진 곳마다 새롭게 일으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으며,
오늘도 그분의 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장인”으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스가랴 1:1~6

 


스가랴 1:1~6 (개역개정)

1 다리오 왕 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요 베레갸의 아들인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여호와가 너희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이전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 그러나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율례가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의 길과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 하신 대로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스가랴 1장 1절~6절 말씀 묵상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스가랴 1:3)


1. 본문 요약

스가랴 1장 1절부터 6절은 선지자 스가랴의 사역이 시작되는 서두로, 포로 귀환 이후 낙심과 무기력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회복의 첫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다리오 왕 제2년, 즉 주전 520년경, 페르시아 통치 아래에서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재건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거역하여 진노를 샀지만, 이제는 내게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회개’를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라, 언약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조상들의 잘못된 신앙 태도를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과거의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회개를 외쳤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결국 조상들은 “여호와께서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셨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인정하게 됩니다.

이 본문은 포로에서 돌아온 세대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고, 새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새로운 시작의 선언문과 같습니다.


2. 신학적 해석

스가랴서의 시작은 단순히 역사적 배경의 서술이 아니라, 언약 신학의 재확인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지만,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회복의 손을 내미십니다.

(1) 회복의 출발점은 ‘돌아옴’이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1:3)
이 명령은 회복의 시작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향 전환에서 비롯됨을 보여줍니다. 회개(히브리어 슈브, שׁוּב)는 단순히 ‘후회한다’는 뜻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행위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명령하시며, 동시에 ‘내가 돌아가리라’(1:3)고 약속하십니다. 인간의 회개와 하나님의 회복은 서로 맞물린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의 균형

2절은 “여호와가 너희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셨느니라”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본질이 아니라 거룩함의 표현입니다.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불순종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심판조차도 회개로 돌아오게 하려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는 파멸이 아니라 정화이며, 새로운 생명의 출발점이 됩니다.

(3) 말씀의 지속성과 역사적 성취

5절과 6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대를 넘어 지속됨을 강조합니다. “선지자들은 영원히 살겠느냐”라고 묻지만, “내 말과 내 율례는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선언합니다.
즉, 인간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역사합니다.
시간이 지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언약 신앙의 확증입니다.

(4) 신앙의 세대적 책임

스가랴는 조상들의 실패를 상기시키며, 새로운 세대가 그 전철을 밟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신앙은 단지 개인의 경건을 넘어 세대적 순종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의 길을 새롭게 걸어야 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해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 호세아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누가복음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가듯,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언제나 열린 팔로 맞아주시는 사랑의 아버지를 만납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의 첫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들립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은 여전히 이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의 외형은 유지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진정한 회개와 순종은 희미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입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죄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전체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맞이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순환, 복음의 본질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포로에서 돌아온 공동체에게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교회 역시 신앙의 본질을 잃은 과거의 모습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화려한 예배나 외적 성공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는 마음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애보다 길고, 역사를 관통합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시기 전에, 먼저 우리가 자원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은 단순히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향한 물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있습니까, 아니면 멀리 떠나 있습니까?

이 본문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단호한 부르심이자,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따뜻한 약속입니다.
회개는 심판의 종말이 아니라, 은혜의 시작입니다.


5. 기도문

기도문 – ‘돌아오는 길 위에서’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스가랴의 말씀을 통하여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자주 주님의 말씀을 흘려보내며
자기 생각과 욕심을 따랐는지 고백합니다.
그로 인해 주님의 얼굴이 가려지고
우리의 마음은 메말라갔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다시 주님의 부르심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돌아오라는 그 음성 속에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주님, 이제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 향하게 하옵소서.
형식적인 신앙을 벗어버리고,
진실한 회개와 순종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길과 행위를 따라 행하셨던 주님,
이제는 주님의 뜻과 사랑에 따라
우리의 삶을 새롭게 빚어주소서.
우리가 주께로 돌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처럼,
주님의 임재가 다시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게 하옵소서.

과거의 잘못된 습관과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로, 새로운 믿음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의 능력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스가랴 1장 1~6절은 회복의 서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돌아오는 자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 속에서 ‘돌아옴’은 결코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