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13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9:1-13 (개역개정)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를 부르시다

  1.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2.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3.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5.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와 사역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의 권세, 소외된 자를 부르시는 은혜, 그리고 종교적 형식주의를 넘어선 하나님의 긍휼을 마주하게 됩니다.


1. 본문의 구조적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며 죄 사함의 권세를 선포하신 사건(1-8절)이고, 두 번째는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사역의 목적을 밝히신 사건(9-13절)입니다.

중풍병자의 치유와 죄 사함 (1-8절)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신체적 고통보다 먼저 그의 영혼에 주목하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에 서기관들은 신성모독이라며 반발하지만, 예수님은 병자를 일으켜 걷게 하심으로써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음을 증명하십니다.

마태의 부름과 죄인의 친구 (9-13절)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받던 세리를 제자로 삼으신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이어지는 마태의 집 잔치에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이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자는 병든 자임을 천명하시고 긍휼의 제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권위와 긍휼의 교차점

죄 사함의 권세와 메시아적 자기 계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선포하신 죄 사함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유대 전통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선언은 자신이 곧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적 성격을 갖습니다. 중풍병의 치유는 그 영적인 권세가 가시적인 세계에서도 실재함을 확증하는 표적입니다.

세관에서 제자로: 부르심의 전권

마태를 부르신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 없는 자에게 임한다는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를 보여줍니다.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간주되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혈통이나 율법적 의로움에 갇혀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근거함을 시사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의 재해석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이는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결여된 형식적 종교 행위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율법은 정죄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실천하는 생명의 법으로 완성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연결되는 성경 구절들입니다.

  •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예수님이 직접 인용한 구절의 원문입니다.)

  •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치유와 죄 사함의 근거를 예언합니다.)

  •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사랑을 요약합니다.)

  • 히브리서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체휼하시는 주님을 나타냅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침상에서 일어나 잔치로

믿음의 연대와 중보의 힘

본문 2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병자 본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그를 침상째 메고 온 동료들의 간절함과 사랑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공동체의 믿음,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주님께 데려가는 통로가 되는 삶의 중요성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죄

예수님은 병자의 다리보다 그의 마음속 응어리진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치유되어도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지만, 죄 사함을 받은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결핍과 고통 속에 살아가지만, 그 근저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선언이 우리의 진정한 자유와 회복의 시작입니다.

세관이라는 삶의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순종

마태는 인생의 가장 세속적인 현장인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거룩한 성전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직장, 주방, 교실 등 가장 일상적인 자리에서 들려옵니다. 마태의 즉각적인 순종은 예수님의 권위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그리고 마태의 심령이 얼마나 주님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한 복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거룩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들을 혐오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를 건강한 자라고 착각하는 이들보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인정하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복음의 역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 안에서 바리새인처럼 타인을 정죄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 없는 건강한 자라는 교만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5. 결론 및 적용

마태복음 9장 1-13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며 정죄의 자리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며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할 것인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제사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오는 긍휼을 기대하시는 분입니다. 중풍병자를 침상에서 일으키신 그 권능이 오늘 우리의 무너진 삶을 일으키길 원하시며, 마태를 부르신 그 음성이 오늘 우리의 지친 일상에 소망이 되길 원하십니다.


6. 마무리를 위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긍휼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무거운 짐에 눌려 침상에 누운 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며 우리 영혼의 근원적인 고통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죄책감과 정죄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주님의 권능으로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또한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평범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우리의 삶의 자리로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와 물질에 매여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 않게 하시고,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마태와 같이 기쁨으로 순종하며 일어나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며 남을 판단하는 바리새인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의사가 필요한 환자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이 베푸신 그 긍휼을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와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23~34

마태복음 8장 23절에서 34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23-34 (개역개정)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니라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태복음 8장 23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위가 자연 만물과 영적 세계 모두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방대한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영적 진리를 요약, 해석, 묵상, 기도의 순서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본문의 핵심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바다의 광풍을 잔잔하게 하신 사건이며, 두 번째는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광풍 속에서도 평안히 주무십니다. 죽음의 공포에 질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자, 주님은 그들의 믿음이 적음을 책망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즉시 잔잔하게 하십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이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자연조차 순종하는가라며 경이로움에 빠집니다.

배가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도착했을 때, 무덤 사이에 거주하던 흉악한 귀신 들린 자 둘이 예수님을 가로막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즉각 알아보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을 돼지 떼 속으로 보내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허락으로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자 온 떼가 바다에 빠져 몰사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께 그 지방을 떠나달라고 간구하며 본문이 마무리됩니다.


2.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석

자연을 다스리는 창조주의 권위

유대 전통에서 바다는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시편 107편 등 구약 성경에서 바다를 꾸짖고 잔잔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행위는 그분이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심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신적 현현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의 상관관계

예수님은 제자들의 구조 요청에 응답하시기 전, 먼저 그들의 두려움을 지적하십니다. 여기서 무서워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신중한 태도를 넘어 불신앙에 기인한 비겁함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한 배에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파도에 매몰되어 함께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현존을 잊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성도의 삶에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믿음임을 시사합니다.

영적 세계의 굴복과 하나님의 아들

가다라의 귀신들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소리칩니다. 이는 제자들이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라고 질문했던 것에 대한 영적인 해답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심판하실 종말론적 권세를 가진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돼지 떼의 몰사는 사탄의 파괴적인 본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 영혼의 가치가 수천 마리의 돼지 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나타냅니다.


3. 관련 성경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관련 구절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편 107:29-30: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 89: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 누가복음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 히브리서 2:14-15: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4. 신앙을 위한 깊은 묵상

고난의 파도 속에서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 인생의 배에도 예기치 못한 광풍이 들이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이 마치 주무시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져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절규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무시는 중에도 여전히 배 안에 계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환경을 바꾸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앙의 폭풍을 먼저 잠재우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당신을 두렵게 하는 풍랑은 무엇입니까? 그 풍랑 너머에 계신 만유의 주재를 바라보십시오.

소유보다 존재를 우선시하는 삶

가다라 사람들은 귀신 들려 고통받던 이웃이 자유를 얻은 기쁨보다, 자신들의 자산인 돼지 떼를 잃은 슬픔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예수님을 밀어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편리함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님의 간섭을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나의 가치 우선순위를 완전히 재편하는 일입니다. 돼지 떼를 잃더라도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권세 있는 말씀의 능력

예수님은 장황한 의식이나 절차 없이 오직 가라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악한 영들을 제압하셨습니다. 창조 때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 삶에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우울, 불안, 중독의 사슬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권세 앞에 무너집니다. 그 말씀의 통치 아래 머물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5. 결단과 간구의 기도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주관자가 누구이신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거친 파도가 나를 삼키려 할 때, 제자들처럼 두려워 떨며 주님을 원망했던 연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환경의 소음보다 크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내 배에 함께 계신 주님으로 인해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내 마음의 의심과 공포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하시는 주님의 권세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또한 가다라 사람들처럼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주님을 떠나 가시라고 밀어내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원합니다. 나의 재물과 시간과 계획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심장을 우리에게 부어 주옵소서. 어둠의 세력이 우리 가정을 흔들고 나의 생각을 공격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말씀으로 대적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만물을 복종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나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두려움에서 건져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14~22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14-22 (개역개정)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나를 따르라 하시다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치유 권능과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따르는 단호한 결단우선순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에 이르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의 본질과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제자도의 무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육체적 회복을 넘어, 영적인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깊은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1. 본문 요약: 고치시는 손길과 부르시는 음성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14-17절)은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한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손을 만지시는 인격적인 접촉과 말씀의 권능으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적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여 인류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시는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 부분(18-22절)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과의 대화입니다. 한 서기관의 호기로운 결단에 예수님은 인자가 겪어야 할 고난과 비천함을 일깨우셨고, 아버지를 장사 지낸 후 따르겠다는 제자에게는 세속적인 도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시급성이 우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2. 신학적 해석: 질병을 짊어지신 분과 길 위의 메시아

질병과 연약함의 대속 (마태복음 8:17)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해석하며 이사야 53장 4절을 인용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대속적 치유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것은 단순히 신기한 능력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에서 담당하실 인류의 고통과 죄의 결과를 미리 짊어지시는 예표적 행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속으로 직접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인자의 머리 둘 곳 없음 (마태복음 8:20)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십니다. 이는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는 영광스러운 통치자의 이미지와 동시에, 이 땅에서 거처조차 없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서기관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아마도 영광스러운 왕이었을 것이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자기 부인과 낮아짐의 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 (마태복음 8:22)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은 유교적 전통이나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핵심은 효도를 부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그 어떤 세상의 관습이나 의무보다도 우선한다는 절대적 시급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누가복음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4. 깊이 있는 묵상: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손을 만지시는 긍휼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당시 열병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나, 주님은 사랑의 접촉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삶에 숨기고 싶은 질병이나 상처, 수치심이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 그곳에 손을 얹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만지시면 회복과 수종의 삶이 시작됩니다. 열병이 떠나간 후 여인이 즉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들었던 것처럼, 진정한 치유는 사명으로의 복귀로 이어져야 합니다.

안락함에 대한 경계

서기관은 어디든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안락한 보금자리가 보장되지 않음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의 평안과 성공이라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 앞에 멈춰 서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상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존재를 내던지는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가치와 산 소망

죽은 자를 장사하는 일은 산 자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행하는 세상의 의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혹시 아직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미련이나 세상적인 도리라는 핑계 뒤에 숨어 부르심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단호하게 명하십니다.


5. 기도문

사랑과 권능의 주님,

오늘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시어 고통받는 자들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그 크신 은혜를 묵상합니다. 우리 영혼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죄의 그늘 아래 눌려 있는 우리를 주의 손으로 만지사 참된 자유를 얻게 하옵소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안락함과 머리 둘 곳을 찾았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치와 가족의 도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선시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단순히 치유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어서서 주님을 섬기는 수종 드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죽은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생명의 길로 전진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1~13

마태복음 8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1-13 (개역개정)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권능과 그 권능을 이끌어내는 믿음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8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과 그 중심에 있는 믿음의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임하며, 인간의 믿음이 그 권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본문의 구조적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치유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나병환자의 치유이며, 둘째는 백부장 하인의 치유입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질병을 고친 사례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과 이방인이 예수님의 권능 앞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과 나병환자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한 나병환자가 나아옵니다. 당시 나병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져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했던 질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격리를 뚫고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고백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그의 부정함을 거두시고 즉각적인 치유를 선포하십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그의 하인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예수님께 한 이방인 백부장이 나아옵니다. 그는 자신의 종이 중풍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리며 도움을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답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권위를 군대의 명령 체계에 비유한 놀라운 고백이었으며, 예수님은 이를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큰 믿음이라 칭찬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과 의미

이 본문은 기독론(예수님은 누구신가)과 구원론(누가 구원을 받는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부정함을 이기시는 거룩의 전염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자는 부정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심으로 거룩함이 부정함을 압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의 조문을 넘어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시며, 죄와 질병의 근원을 제거하시는 분임을 시사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염성 있는 거룩입니다.

말씀의 권위와 원격 치유

백부장의 요청은 예수님의 말씀이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에 근거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마술사가 아니라, 온 우주와 질병을 통치하시는 주권자로 인식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요청은 말씀이 곧 사건이 되는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유대교적 혈통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반전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구원이 혈통적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모든 이방인에게 열려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는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에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함께 묵상할 구절들입니다.

  • 히브리서 11: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시편 107:20 –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 이사야 53:4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에베소서 2: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4. 깊이 있는 영적 묵상

주여 원하시면 (나병환자의 태도)

나병환자의 요청은 매우 겸손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는 조건으로 주님의 뜻을 먼저 구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원함보다 주님의 원하심을 앞세울 때 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백부장의 겸손)

백부장은 당시 지배 계층인 로마 군대의 장교였으나, 피지배 민족의 청년이었던 예수님 앞에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권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낮아진 마음은 은혜가 흐르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말씀의 통치 아래 있는 삶

백부장은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듯, 질병과 영적 세계도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굴복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까? 환경의 압박이나 감정의 파도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더 강력한 권위를 가졌음을 실제로 믿고 있습니까? 백부장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말씀의 실재를 보는 영적인 안목이었습니다.


5. 결단을 위한 기도문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과 치유의 능력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소외되고 부정한 나병환자 같았던 우리를,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손을 대어 어루만져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삶의 고통과 질병 속에서 낙심할 때,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확신 있는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고집과 정욕을 앞세우기보다 주님의 선하신 뜻에 순복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백부장과 같은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굳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주님이 내 환경 속에 직접적인 표적을 당장 보여주지 않으셔도, 기록된 말씀의 권위가 내 삶을 통치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이 고백이 우리의 매일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잔치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모든 부정한 영역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깨끗하게 씻기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우리 영혼의 중풍병이 낫게 되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참된 생명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7:13~29

마태복음 7장 13절부터 29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7:13-29 (개역개정)

두 가지 문과 길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열매로 나무를 알리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무리들이 가르치심에 놀라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는 결론 부분으로, ‘행함’과 ‘분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29절은 예수님의 위대한 설교인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는 결론부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 할 영적 분별력과 실천적 신앙의 절대적 중요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 본문 요약 및 구조 분석

본문은 크게 네 가지의 비유적 경고와 가르침을 통해 청중에게 결단과 선택을 촉구합니다.

  • 두 가지 문과 길 (13-14절):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사이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 열매로 알 수 있는 거짓 선지자 (15-20절): 외형적인 경건함이 아닌 삶의 열매를 통해 참된 신앙인을 분별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21-23절): 입술의 고백이나 은사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천국 시민의 증거임을 명시합니다.

  • 두 가지 기초 위에 지은 집 (24-27절):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이며, 그렇지 못한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자임을 강조합니다.

  • 예수님의 권위 (28-29절): 산상수훈의 끝에서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가진 신적 권위에 압도당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2. 신학적 해석과 깊이 있는 고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용기

기독교 신앙은 다수결의 원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언제나 더 편리하고, 더 빠르며, 더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길을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좁은 문이란 단순히 고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넓은 길은 자아를 비대하게 만들지만, 좁은 길은 오직 예수만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신앙의 진정성: 열매라는 성적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양의 옷을 입었으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정의하십니다. 이는 신앙의 형태는 갖추었으나 그 중심에 탐욕이 가득한 자들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참된 가치는 보이지 않는 뿌리(내면의 신앙)가 맺는 ‘아름다운 열매(삶의 태도와 사랑)’로 증명됩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듯,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성도는 반드시 거룩한 변화의 증거를 삶에서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고백의 허구성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뼈아픈 경고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그분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법(사랑과 정의)을 외면한 채 자신의 종교적 업적만을 쌓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보다 우리가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느냐에 주목하십니다.

인생의 기초: 듣고 행함의 조화

반석과 모래의 비유는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신앙의 진위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평화로울 때는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부는 시련의 때에 기초의 중요성이 증명됩니다. 여기서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말씀은 홍수를 견디지 못합니다. 오직 손과 발로 살아낸 말씀만이 영혼의 성채를 견고하게 유지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성경의 상호텍스트성)

  •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좁은 문이신 예수님)

  •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아름다운 열매의 실체)

  •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실천적 신앙의 강조)

  • 시편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두 가지 길의 대조)


4. 현대인을 위한 깊은 묵상

내 인생의 주춧돌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외벽을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스펙, 재산, 사회적 지위는 우리 인생의 집을 멋지게 꾸며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묻습니다. 당신 인생의 주추는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인생의 폭풍우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질병의 바람, 실패의 창수, 죽음의 비가 내릴 때 우리가 쌓아 올린 세상의 조건들은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만이 우리를 영원한 승리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행위인가, 관계적 순종인가?

22절에 등장하는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행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신앙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격적인 관계의 부재를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봉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목적이 나의 만족이나 사람들의 칭찬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통치에 즐거이 항복하기 위한 것인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은 좁지만 길은 생명입니다

좁은 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외로운 길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탐욕을 거절하고, 용서하기 힘든 자를 용서하며, 정직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영원한 생명과 주님과의 동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넓은 길은 시작은 화려하나 끝은 파멸입니다. 좁은 길은 시작은 고될지라도 그 과정마다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칩니다. 우리는 오늘 어느 길 위에 서 있습니까?


5. 결단을 위한 기도문

거룩하신 하늘 아버지, 오늘 산상수훈의 엄중한 경고를 통해 저의 신앙을 다시금 점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편안함에 현혹되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서성였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길이 협착하고 찾는 이가 적을지라도, 생명의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입술로는 주를 사랑한다 고백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의 뜻보다 저의 욕심을 앞세웠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겉모양만 화려한 거짓 선지자의 모습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게 하옵소서. 제 삶의 기초를 모래와 같은 세상 가치관 위에 두지 않고, 오직 변치 않는 반석이신 주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세우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거센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칠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주님께서 너를 잘 안다고 인정하시는 친밀한 관계 속에 거하게 하옵소서.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아니라, 들은 바를 삶으로 증명해 내는 진실한 행함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