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14~21

로마서 10장 14절부터 21절까지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0:14~21 (개역개정)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다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의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말하되 내가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1.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복음의 본질과 믿음의 근원을 설명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믿음이 어떻게 사람에게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14~15절에서 바울은 믿음의 과정이 “부름 – 믿음 – 들음 – 전파 – 보냄”이라는 단계적 구조를 갖고 있음을 말합니다. 즉,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르려면 먼저 그분을 믿어야 하고, 믿으려면 들어야 하며, 들으려면 누군가 전해야 하고, 전하려면 하나님께서 보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복음 전파의 필수성과 사명을 강조합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며,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이 순종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합니다. 17절에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는 중요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18~21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변명을 배제하며, 그들은 충분히 들었으나 불순종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게 되었음을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미셨음에도 그들이 거부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 신학적 해석

(1) 복음 전파의 필연성

바울은 구원의 과정에서 복음 전파가 필수적임을 명확히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이 듣게 하십니다. 이는 교회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2) 믿음과 들음의 관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7절)는 구절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실 때 비로소 생기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3)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이방인의 선택

바울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며, 이스라엘이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이사야와 모세의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확장시키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내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동일한 은혜 안에서 구원에 참여할 수 있음을 선언합니다.

(4) 하나님의 끊임없는 인내와 사랑

21절에서 하나님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종일 내 손을 벌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손을 내미셨습니다.


3. 관련 성경 구절

  •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이사야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신명기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내 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의 질투를 일으키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 호세아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4. 묵상

이 본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도전을 줍니다.

첫째,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사명입니다.

둘째, 말씀과 믿음의 관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성령을 통해 마음에 역사할 때 생깁니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삶은 믿음을 성장시키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선지자의 경고와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손을 내미셨습니다. 우리 역시 자주 하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돌아오라” 하시며 기다리십니다.

넷째, 구원의 보편성입니다. 구원은 특정 민족이나 배경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롬 10:13). 이 은혜 안에서 우리는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오늘 로마서 10장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복음 전파가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누군가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며, 그 복음을 듣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입술을 사용하시고, 우리의 삶을 복음의 증거로 삼아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이 자주 불순종하며 주님의 손길을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손을 내미시는 인내와 사랑을 기억합니다. 다시금 주님께 돌아오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또한, 구원이 모든 이방인과 열방에 열려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이 시대 가운데도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자라나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순종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로마서 10:1~13

로마서 10장 1절~13절 개역개정 본문을 적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0:1~13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 본문 요약

로마서 10장 1~13절은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며 시작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들이 구원을 얻기를 원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으면서도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세우려 했기에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고 선포합니다. 곧 율법을 완성하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으로 본문은 마무리됩니다. 즉,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과 고백을 통해 주어지며, 이는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복음임을 선포합니다.

2. 신학적 해석

(1)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마음 (1~3절)

바울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며, 그들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으면서도 “올바른 지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올바른 지식”이란 단순한 지적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아는 신앙적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기 의를 세우려 했으나, 결국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4절)

“마침”(τέλος, telos)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완성을 뜻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지하신 분이 아니라 율법이 지향해 온 궁극적 목적이십니다. 따라서 율법의 요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으며, 이제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주어집니다.

(3) 믿음의 의와 율법의 의 (5~8절)

모세의 율법은 “행하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했지만, 인간은 그 요구를 온전히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는 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신명기 30:12~14을 인용하여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과 마음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결코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4) 믿음과 고백의 결합 (9~10절)

바울은 구원의 핵심 조건을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것”

이 두 요소가 함께할 때 구원이 임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믿음은 내적 확신이고, 입의 시인은 외적 고백입니다. 이는 개인적 차원의 신앙 고백이자 공동체적 신앙 고백을 포함합니다.

(5) 보편적 구원 (11~13절)

구원은 유대인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시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이는 구약의 선지자 요엘서 2:32의 성취이며, 복음의 보편성과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요엘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4. 깊이 있는 묵상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행위나 도덕적 수준과 혼동하기 쉽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봉사하고, 선행을 하면 구원받겠지”라는 생각이 우리의 마음 깊숙이 자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거부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우리에게도 주는 경고입니다. 단순히 종교적 열심이나 신앙적 활동이 구원의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부활을 믿는 믿음”입니다.

또한, 이 본문은 복음의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헬라인, 즉 민족과 신분을 가리지 않으시고 모든 자를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현대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의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데, 복음은 그러한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선포합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있는가?

내 마음은 진정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교리적 확인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지배하는 신앙적 고백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로마서 10장의 말씀을 통해 구원의 길이 얼마나 분명하고 가까운지를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열심은 있었으나 올바른 지식에 이르지 못한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저의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은혜가 제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시며, 제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열심에 그치지 않고 참된 믿음의 고백으로 드러나게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 주께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 또한 차별과 벽을 세우지 않고,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처럼, 저와 제 가정,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로마서 9:25~33

 

로마서 9:25~33 묵상

1. 본문 요약

로마서 9장 25절부터 33절은 사도 바울이 구약의 말씀, 특히 호세아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바울은 먼저 호세아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즉,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사랑받지 못하던 자들이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25-26절).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비록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 해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27-29절). 이는 민족적 혈통만으로는 구원이 보장되지 않음을 뜻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 안에 있는 ‘남은 자’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상황을 대조한다. 의를 구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의를 얻었지만, 의의 법을 따르려 했던 이스라엘은 행위에 집착하다가 결국 의에 이르지 못했다(30-32절). 그 이유는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부딪힐 돌”,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걸려 넘어졌다. 그러나 시온에 두신 반석, 곧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으며 본문은 마무리된다(33절).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며, 구원은 혈통이나 율법적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한다.

  1.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은혜 (25-26절)
    바울이 호세아를 인용한 것은 구약의 맥락을 넘어선 신학적 확장이다. 본래 호세아에서 “내 백성 아님”은 배교한 이스라엘을 가리켰지만, 바울은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 뜻에 따라 누구든지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삼으실 수 있음을 드러낸다. 구원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문제이다.
  2. 남은 자 사상 (27-29절)
    이사야가 말한 “남은 자”는 이스라엘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바울이 말하는 “영적 이스라엘”의 개념과 연결된다(롬 9:6).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3. 믿음과 행위의 대조 (30-32절)
    이방인들은 율법도, 언약도, 선민의 배경도 없었지만 오히려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 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아닌 행위”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점을 통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는 구약의 핵심 진리를 다시 확인한다.
  4. 걸림 돌이신 그리스도 (33절)
    바울은 이사야 28:16과 8:14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의 반석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림 돌이 된다고 말한다. 이는 구원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본문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신학적 핵심을 드러내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선포한다.


3. 관련 말씀 구절

  • 호세아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 이사야 10:22-23: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 이사야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하박국 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베드로전서 2:6-8: 베드로 또한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언급하며, 믿는 자에게는 존귀하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림 돌이 됨을 말한다.

4. 깊이 있는 묵상

이 본문은 오늘날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준다.

첫째, 신앙의 중심은 혈통이나 배경이 아니라 믿음이다.
이스라엘이 구원에서 실패한 이유는 율법과 전통에 의지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믿음 관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본질을 잊고 종교적 행위나 형식에 매달릴 때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나는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믿음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신앙 습관에 안주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에게도, 모든 민족에게도 열려 있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이방인들이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 자격이 없음을 상기시킨다.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이며, 그 은혜에 대한 응답은 믿음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자랑은 전혀 있을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는 반석이자 걸림 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반석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걸림 돌이 된다. 이는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긴박성을 일깨운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담대히 복음을 증거해야 하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서야 한다.

넷째, 남은 자 신앙의 중요성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만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믿음을 지키는 소수가 언제나 존재함을 말한다. 오늘날 교회와 세상 속에서 진리와 믿음을 지키는 자가 과연 누구인지 질문하게 된다. 내가 그 ‘남은 자’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가? 믿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가 성찰해야 한다.

결국 이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의 본질, 은혜의 주권,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다시금 선명하게 보여준다. 신앙은 내가 쌓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를 믿음으로 붙드는 순전한 의탁이다.


5.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이 나의 혈통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와 믿음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종종 신앙의 본질을 잊고, 행위와 형식에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의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이 제 구원의 근거임을 고백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남은 자만이 구원받았듯, 오늘 이 시대에도 참된 믿음을 가진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형식적 신앙 속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붙잡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또한 저를 걸림 돌 대신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님께 굳건히 세워 주시고, 그 은혜를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주님, 사랑받지 못하던 이방인인 저를 하나님의 자녀라 불러 주셨듯, 저도 이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제 삶이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믿음을 증거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로마서 9:14~24

로마서 9장 14절부터 24절까지 개역개정 성경 본문을 아래에 적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9:14~24 (개역개정)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 쓰는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쓰는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본문 요약

로마서 9:14–24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선택(택하심)에 대해 논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하고 질문할 수 있으나 바울은 단호히 부인합니다(14절). 그는 모세와의 대화를 인용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사람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며(15–16절), 하나님은 자기의 뜻과 목적에 따라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바로(Pharaoh)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악한 자도 사용하시는지를 지적(17절)하고, 하나님은 어떤 자는 긍휼히 여기시고 어떤 자는 ‘완악하게 하신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합니다(18절). 이어서 바울은 인간의 불평을 예상하고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토기장이가 한 진흙으로 여러 그릇을 만듦)를 들어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합니다(19–21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이 진노를 보이시고 멸하기로 준비된 그릇들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을 보이시며, 동시에 긍휼의 그릇들에게는 영광을 예비하셨다는 점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이 결국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 함임을 밝힙니다(22–24절). 결론적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이 인간의 의문을 넘어서는 신비이며,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그의 영광과 긍휼을 드러내는 데 있음을 말합니다.

신학적 해석 (핵심 주제와 해석적 쟁점)

  1.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병존
    바울은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14절)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합니다. 동시에 그는 긍휼(misercordia)이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강조합니다(15–16절). 즉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는 구원론적 선언입니다.
  2. 택하심(선택)과 하나님의 주권
    바울은 하나님이 누구를 긍휼히 여기실지 선택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선택은 인간의 행위(원하는 자나 달음박질하는 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때문입니다(16절). 이는 ‘예정’·‘택하심’ 논쟁의 핵심인데, 바울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과 함께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합니다.
  3. “완악하게 하심”의 의미
    18절의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hardening’으로 이해됩니다. 바울은 바로의 사례(17절)를 통해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때로 인간의 반항을 포함한 상황을 사용하신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신학적 포인트는 이것이 하나님의 불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과 경고의 결과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간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은 상호작용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토기장이 비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20–21절의 토기장이와 진흙 비유는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작품(피조물)에 대해 주권적 권한을 가지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비유는 인간의 질문(“어찌하여 그렇게 만드셨나?”)이 창조주 앞에서 제한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또한 하나님이 임의적·독단적이라는 뜻만은 아니며, 바울은 곧이어 하나님의 목적(관용과 긍휼, 영광)을 설명합니다.
  5. 목적론적 신학 — 하나님의 영광
    22–2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인내(진노의 그릇에 대한 오래 참음)와 긍휼(영광 받기로 예비된 그릇)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드러내려 함을 말합니다. 즉 역사의 사건은 하나님의 속성(공의·진노·긍휼·영광)을 계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집니다.
  6. 신정론(神正論)과 인간의 질문
    19–21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질문(하나님께 반문함)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질문을 되돌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돌립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불확정·불가해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공의와 긍휼)은 계시됩니다.

관련 말씀(묵상과 신학적 연결에 유익한 구절)

  • 출애굽기 33:19 —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리라” (로마서 9:15 인용의 출처)
  • 출애굽기 9:16 — 바로에 관한 말씀 (로마서 9:17 인용의 출처)
  • 예레미야 18:1–6 — 토기장이의 비유 (로마서 9:21과 연결)
  • 이사야 45:9 — “도기장이 토기를 어찌하랴”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말함)
  • 로마서 8:28–30 —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에 관해 (구속사적 연결)
  • 에베소서 1:4–6 —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은혜와 목적 (택하심의 신학적 연결)
  • 시편 115:3 / 시편 135:6 —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

(위 성구들은 묵상과 해석에서 자주 연결되는 본문들입니다. 본문 간의 상호연결을 통해 로마서 9장의 메시지를 더 풍성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묵상 (내적 적용과 실천적 함의)

  1. 겸손의 자리로 초청받음
    이 본문은 질문하는 자에게 먼저 겸손을 요구합니다.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반문하느냐”(20절)라는 도전은, 우리의 한계와 피조물의 자리로 회복하라는 초대입니다. 우리의 의문과 불평은 때로 하나님을 협소하게 규정하려는 시도입니다. 묵상할 때, 나는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길을 판단하려 했는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
  2. 은혜의 주체를 바로 보기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감사와 경외로 나아갑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16절). 나의 안전, 성장, 소명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명확히 드러나는지 돌아보십시오. 이는 감사와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3.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하기
    때로 우리는 고난과 불의, 악의 승리를 보며 하나님의 부재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긴 인내)을 보이신다고 말합니다(22절). 하나님의 시간표와 목적은 우리가 보는 즉각성과 다릅니다. 이 사실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붙들게 합니다.
  4. 복음사역과 겸손한 설득
    택하심의 신비는 우리가 전도의 손을 놓아야 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부르시는 수단으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24절: “부르신 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배제하기보다 복음을 전하는 겸손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이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는 것’임을 말합니다(23절). 우리의 삶도 개인적 성공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재정렬되어야 합니다. 일상에서—가정, 직장, 공동체—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 곧 로마서 9장의 실천적 응답입니다.

기도문 (묵상 후 드리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의 주권과 긍휼을 찬양합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 앞에서 먼저 반문하고 불평하기보다, 주님의 크심과 지혜를 인정하게 하소서.
제가 스스로의 공로로 주님을 얻었다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서 있음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때로는 주님의 길이 제게 불공평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의 의심과 질문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드리되, 교만이 아니라 겸손으로 돌아가 진흙과 토기장이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께서 악과 불의도 사용하시어 결국 주의 영광을 드러내심을 신뢰하게 하시고, 제가 그 신비 앞에서 감사하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 긍휼을 베푸시는 분께서 제 형제와 이웃을 긍휼히 여기시고, 복음의 소식이 각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주시옵소서.
저를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사, 내가 만나는 이들을 향해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전하게 하시며, 그 결과를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주의 영광이 모든 만물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고, 저의 삶이 그 영광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로마서 9:1~13

로마서 9장 1절부터 13절까지 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로마서 9:1~13 (개역개정)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2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으니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로마서 9:1–13 — 본문 요약 · 신학적 해석 · 관련 구절 · 깊은 묵상 · 기도문


본문 요약

로마서 9장 1절에서 13절은 바울이 이스라엘을 향한 깊은 마음과 하나님의 선택(택하심)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진심과 큰 고통을 고백합니다(1–3절). 그는 동족인 이스라엘을 향한 슬픔과 구원을 바라는 마음 때문에, 심지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라도 기꺼이 원할 정도의 간절함을 말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단순히 혈통적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받은 민족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4–5절). 그러나 곧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떻게 이루시는가는 육신적 혈통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6–9절). 아브라함의 씨가 모두 ‘이스라엘’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으로 난 자가 참된 씨라는 사실을 이삭의 후손 사례(이삭과의 약속)를 들어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리브가의 태중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를 향해 택하심을 선포하셨음을 지적하며(10–12절), 성경(구약)의 선언을 인용하여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상기합니다(13절). 전체적으로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약속의 성취’가 인간의 혈통이나 행위에 의해 좌우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신학적 해석 (핵심 포인트와 주해)

1) 바울의 감정(1–3절) : 사도적 심정과 중보적 사랑

바울의 고백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라 실제적 영적 고통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노라”는 표현은 바울의 중보적 사랑과 기독교적 연대감을 드러냅니다. 이 구절은 복음의 열정이 ‘옳음을 증명하는 논증’을 넘어서 ‘사람을 위한 고통’으로 나타나야 함을 가르칩니다. 또한 바울이 개인 구원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민족적 책임을 얼마나 무겁게 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2) 이스라엘의 특권(4–5절) : 언약적 맥락

바울은 이스라엘이 받은 특권—양자 됨(상속자적 신분), 영광(영적 역사와 예배), 언약, 율법, 예배, 약속—을 열거합니다. 이는 바울이 유대 전통과 역사적 신앙을 인정하고 존중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의 논점은 ‘특권의 존재’와 ‘특권의 효력’(실제 구원)을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3) 약속의 자녀 대 육신의 자녀(6–9절) : 표적적 해석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단순 혈통주의를 거부합니다. 그는 이삭에게 주어진 약속(‘네 씨라 불리리라’)을 통해 ‘언약에 기초한 후손’—곧 약속의 자녀—의 우선성을 주장합니다. 이 논리는 ‘믿음에 근거한 공동체’(언약적 공동체)를 강조하는 신학적 틀과 맞닿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은 혈통적 계보보다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의 성격에 달려 있습니다.

4) 택하심의 주권과 언약의 방식(10–13절)

리브가의 태중에서의 하나님의 작정(선택)은 택하심이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의해 진행됨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라며 은혜의 우선성을 주장합니다. 이어 인용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은 구약의 언어적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미움’(히브리적·고대 근동적 표현)은 절대적 적의가 아니라 ‘선택의 우선성’ 혹은 ‘상대적 애호(愛好) 차이’를 표현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어떤 사람의 도덕적 결함에서 먼저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서 기인합니다.

5)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책임 — 긴장 관계

로마서 9장은 종종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긴장으로 읽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로마서 전체 맥락(예: 로마서 10–11장)에서는 인간에게 복음을 전파할 책임, 믿음으로 응답할 책임 역시 강조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인간의 책임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련 말씀(선별) 및 간단한 연결 설명

  • 창세기 25:23 — 리브가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두 민족이 네 태 안에 있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 로마서 9장 10–12와 직접 연결.

  • 말라기 1:2–3 —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구절의 원문 배경으로, 구약에서의 선택과 하나님의 뜻을 보여줌.

  • 로마서 8:28–30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구절은 선택의 과정(예지·부르심·칭의·영화)을 제시.

  • 로마서 11:1–6 — 바울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신실함과 제한적 배치(선택과 남은 자)를 설명.

  • 에베소서 1:4–5 —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신학적 선언과 연관.

  • 이사야 55:8–9 —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의 생각과 다름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주권을 수긍하게 함.

  • 요한복음 6:44 — “아버지께서 이끄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 사이의 긴장.


깊이 있는 묵상 포인트 (개인·공동체 적용)

  1. 바울의 심정을 나의 심정과 비교하라.

    • 내가 소속된 공동체나 가족, 나라를 위해 바울처럼 간절히 기도하고 중보하고 있는가?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가?

  2. 특권과 책임을 분별하라.

    • 신앙의 전통이나 배경(가정, 교회 역사)이 나를 구원으로 자동 연결시키지 않는다. 은혜에 대한 겸손과 책임 있는 응답이 함께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되,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

    • 하나님의 선택을 신뢰함이 우리가 복음 전파와 사랑의 실천을 게을리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택하심을 알게 된 자의 응답은 더 큰 복음 사역으로 이어져야 한다.

  4. 언어의 함의를 묵상하라.

    • “사랑”과 “미움” 같은 단어들이 고대의 관용으로 사용될 때의 의미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하나님의 목적성)을 생각해 보라.

  5. 중보 기도의 자리

    • 바울처럼 ‘내가 저주를 받더라도’라는 과격한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는 기도의 삶, 더불어 타인의 영적 상태를 내 문제로 여기는 마음을 다시 세우게 한다.


기도문 (기도—중보와 성찰)

사랑과 주권의 하나님,
당신 앞에 낮아집니다. 당신의 크심에 비하면 우리의 지혜는 좁고, 우리의 길은 불완전합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당신의 마음과 선택의 신비를 조금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동족을 위하여 흘린 아픈 눈물과 같은 마음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자만이나 혈통, 또는 외형적 종교적 특권에 기대지 않게 하시고, 참된 약속의 자녀로서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회와 가정이 당신의 약속을 붙들고 겸손히 부르심에 응답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당신의 선택과 섭리를 신뢰하되, 우리가 전해야 할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옵소서. 복음을 듣지 못한 이웃과 멀어진 형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고, 필요한 곳에 사랑의 손과 발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바울의 중보적 사랑을 본받아, 위험을 감수하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여,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읽을 때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질문들 앞에 당신의 지혜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뜻은 공의와 자비가 함께하심을 믿사오며, 우리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자리에서라도 당신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이해 대신 당신의 큰 섭리를 붙들게 하시고, 당신의 계획이 온 세상에 선포되게 하옵소서.
구원받지 못한 우리 동족과 친구, 이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울이 흘린 눈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불붙이사, 우리가 전하는 말과 삶을 통해 당신의 은혜가 흘러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 각자가 받은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찬양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주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