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9:1~11

다음은 에스겔 9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KRV) 기준으로 제공해 드립니다:


에스겔 9:1-11 (개역개정)

  1.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을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하라” 하시고
  5. 내가 들으니 그 남은 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따라 성읍 중에 순행하며 치되 너희 눈이 아끼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도 말고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히며 죽인 자로 뜰에 채우라.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치는 동안에 내가 홀로 남았으므로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아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려 하시나이까?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크며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성읍에 부패가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눈이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나이다” 하더라.

 

아래는 에스겔 9장 1절부터 11절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구절, 묵상, 그리고 기도문입니다.


에스겔 9장 1~11절 묵상: “표 있는 자와 없는 자, 하나님의 공의의 칼이 지나가다”


1. 본문 요약

에스겔 9장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 성에 임하는 장면을 생생한 환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귀에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을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오게 하라.” 이에 여섯 명의 사람이 나타나며, 그중 하나는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자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룹에서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갑니다. 하나님은 베 옷 입은 사람에게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돌면서 “가증한 일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하십니다. 이 표는 곧 구원의 징표입니다.

그 다음에는 죽이는 자들에게 명령이 주어집니다. 표가 없는 모든 자를 아끼지 말고 죽이라는 것입니다. 늙은 자, 젊은 자, 여자와 아이까지 예외 없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 심판은 성소에서 시작되며, 에스겔은 이 모든 장면을 보며 충격 속에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이 극에 달하였고, 피로 땅이 가득하며 부패가 성읍을 덮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의로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마지막 절에서 베 옷 입은 자가 말합니다. “내가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나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대로 집행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2. 신학적 해석

1) 하나님의 공의와 분리의 심판

에스겔 9장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의인을 구별하십니다. 여기서 “이마에 표를 받은 자”는 단순한 도덕적 선인이 아니라, “가증한 일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자”입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의 악에 대해 애통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 사건과도 연관됩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이마에 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보호받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계시록 7장, 14장 등에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로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2) 성소에서 시작되는 심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6절) 이는 하나님의 백성, 특히 종교적 권위자들이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종교적 형식은 있었지만, 그 안에 죄악과 타락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17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심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깊은 반성을 요구합니다.

3) 하나님은 죄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9절)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나는 눈이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않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며, 그분의 인내가 끝났을 때는 반드시 정의롭게 심판하십니다.

4)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탄식하는 자들에게

여기서 보호의 대상은 눈에 띄는 의인이나 강한 자가 아니라, **‘탄식하는 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바와 통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죄를 두고 함께 슬퍼하는 자입니다. 세상에 동화되기보다, 그 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출애굽기 12:13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의 표가 있는 자를 보호하시는 원리는 유월절에도 나타난다.

  • 요한계시록 7:3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 이마에 인침 받은 자에 대한 보호는 종말의 때에도 반복된다.

  •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 교회가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탄식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는 신약에서도 일관된다.


4. 묵상: 나는 ‘표 있는 자’인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드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이마에 표가 있는 자인가?”
하나님은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나 이름만의 믿음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세상의 죄를 애통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악과 타락, 무관심과 불의의 한가운데를 살아갑니다. 뉴스 속 범죄, 주변의 부조리, 내 안의 죄된 습성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무뎌지고, 습관이 되고, 타협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은 지금도 표를 찾고 계십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세상의 죄악 앞에 마음 아파하며 무릎 꿇는 자에게는 그 어떤 칼날도 미치지 못합니다. 에스겔의 시대와 다르지 않은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를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도 탄식하며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5. 기도문

[기도문]

주 여호와 하나님,
오늘 에스겔을 통해 들려주신 말씀 앞에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섭니다.
당신의 공의는 완전하며, 죄악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는 주의 성품을 다시금 배웁니다.

주님,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죄악 앞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가증한 일에 대해 더 이상 탄식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살아온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주의 눈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 앞에서 숨길 것이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죄에 대해 애통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울 수 있는 영혼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표 있는 자로 이 땅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교회와 주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형식만 남은 신앙, 타락한 마음, 자기중심의 예배가 아닌,
참된 회개와 순결한 예배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공의는 무섭지만, 주의 긍휼은 더욱 크십니다.
그 긍휼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오늘도 나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줄 묵상:
“하나님은 지금도 ‘탄식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에스겔 8:1~18

다음은 에스겔 8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 기준):


에스겔 8장

1절 여섯째 해 여섯째 달 다섯째 날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시기로
2절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는데 그의 허리 아래는 불 같고 그의 허리 위에는 빛난 광채가 나서 단쇠 같이 보이며
3절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움큼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사 땅과 하늘 사이로 들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절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5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 문 어귀 북쪽에 질투의 우상이 그 있더라
6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여기에서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는 것이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담에 구멍이 나더라
8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담을 뚫어 보라 하시기로 내가 담을 뚫으니 한 문이 있더라
9절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10절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11절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가졌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12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기 그 우상의 방 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3절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4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북문에 이르시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6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17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이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작은 일인가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자꾸 나를 격노하게 하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절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게 큰 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아래는 에스겔 8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작성한 내용입니다.


에스겔 8장 1~18절 묵상 블로그: 하나님의 성전, 우상과 영광 사이

1. 본문 요약

에스겔 8장은 선지자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상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여섯째 해 여섯째 달 다섯째 날, 에스겔은 유다 장로들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에 사로잡혀 환상 중 예루살렘으로 이끌려 갑니다(1-3절). 그곳은 하나님의 성전 북문 앞, 바로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이 자리잡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네 가지의 가증한 행위를 차례로 보게 됩니다.

첫째, 성전 안뜰 북쪽 문에 있는 우상숭배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히 성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 앞에는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이 놓여 있었습니다(5절). 이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과 도전이었습니다.

둘째, 성전 벽 안에 그려진 각종 우상들과 그 앞에서 분향하는 장로들의 모습입니다. 에스겔은 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들이 그려진 벽화를 보며, 장로들이 어둠 속에서 분향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합니다(7-11절).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하며 우상 숭배를 정당화합니다.

셋째,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여인들의 모습입니다(14절). 담무스는 바벨론 신화의 죽은 신이며, 그를 위하여 여인들이 성전 북문에서 애곡하는 모습은 종교적 혼합주의와 이교 숭배를 보여줍니다.

넷째, 성전 안뜰에서 동쪽을 향해 태양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16절).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동쪽을 향해 태양신을 숭배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배신과 반역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증한 행위들을 보고 분노하시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18절). 이들의 부르짖음조차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1) 하나님의 성전과 인간의 불경

에스겔 8장은 성전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백성 간의 언약적 관계를 상징하는 거룩한 공간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이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더 이상 그곳을 거룩한 장소로 간주하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제도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거룩해지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그 임재를 모독하는 행위는 곧 언약의 파기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근원이 됩니다.

2) 죄의 내면화와 공동체의 타락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표현은 “그들이 어두운 가운데서”, “몰래”, “자기 방에서”라는 표현들입니다. 이는 우상숭배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라기보다는, 백성들의 내면과 인식 속 깊숙이 스며든 영적 타락을 뜻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내면적 죄악이 공동체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부패는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요소임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3)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의 병존

본문에는 두 가지 상반된 요소가 공존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영광의 현존(4절), 다른 하나는 백성들의 가증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히 성전에 머물고 계시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났고, 그 중심에는 타락한 예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중성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시며, 결국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에스겔 10장에서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장면이 나옴).


3. 관련 말씀 구절

  • 출애굽기 20:3-5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 로마서 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고린도전서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4. 묵상: 우리의 마음이 성전이라면

에스겔 8장은 수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진 일 같지만, 오늘날 우리의 영적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돌로 지어진 성전이 아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내 마음의 성전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원하시는 그 마음 한가운데에,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우상들이 앉아 있지는 않은가요?

  • 질투의 우상처럼, 나의 성공과 자존심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던 여인들처럼, 헛된 사랑과 상실의 감정에 내 삶을 내어주고 있지는 않은가?

  • 동쪽을 향해 태양을 예배하던 이들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의 빛과 유혹 앞에 무릎 꿇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교회에 나아가 예배드리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된 예배와 혼합주의 신앙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 때, 하나님은 심판을 유보하지 않으십니다.


5. 기도문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소서]

주 여호와 하나님,
오늘 에스겔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한 실상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 마음도 성전이라 하셨는데, 이 성전 안에 자리 잡은 수많은 우상들을 봅니다.
세상의 인정, 나의 욕망, 쾌락과 성공의 집착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심지어 그것을 감추고,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포장하려는 위선도 있습니다.

주님, 담을 뚫게 하시고 벽 속의 실상을 보게 하소서.
제가 숨겨놓은 죄악의 방들, 감추어 둔 우상들을 낱낱이 드러내 주소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제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른 것에 절하고 있다면 그 죄를 회개합니다.

영광의 하나님,
주님의 임재가 제 삶에서 떠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상은 태워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지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다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백성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7:14~27

다음은 에스겔 7장 14절부터 27절까지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 기준):


에스겔 7:14–27 (개역개정)

  1.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아무도 전쟁에 나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
  2. 밖에는 칼,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으니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고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망할 것이며
  3.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각기 자기 죄로 말미암아 다 산에서 죽음을 슬피 울며 통곡하리라
  4.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5. 그들이 굵은 베로 동이고 떨림이 그들을 덮을 것이며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되리라
  6. 그들이 은을 거리에 던지며 금을 오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그들의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능히 구원하지 못하며 그들의 심령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며 그들의 배를 채우지 못함이라 이것이 그들의 죄악의 걸림돌이 됨이로다
  7.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만들었은즉 내가 그것을 그들에게 오물 같이 여기리니
  8. 내가 그것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 노력하게 하며 세상의 악인에게 넘겨 약탈하게 하여 그들이 그것을 더럽히게 하리라
  9.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도가 거기 들어가서 그것을 더럽히리라
  10.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며 그 성읍에 포악이 찼음이라
  11.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끌어다가 그들의 집을 점령하게 하고 강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며 그들의 성소들이 더럽힘을 당하게 하리라
  12.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13. 재앙에 재앙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지고 장로에게는 책략이 없어질 것이며
  14.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입으며 백성의 손은 떨릴 것이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으며 그 죄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그들이 알리라

 

아래는 에스겔 7장 14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묵상, 기도문을 포함한 글입니다.


심판의 불가피성과 하나님의 공의 – 에스겔 7:14~27 묵상

1. 본문 요약

에스겔 7장 14절부터 27절은 하나님의 최종적이고도 철저한 심판을 선언하는 말씀이다. 유다 백성은 나팔을 불며 전쟁을 준비했으나, 아무도 싸우러 나서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14절). 성 밖에는 칼이, 성 안에는 기근과 전염병이 가득하여 도피처조차 없었다(15절). 살아남은 자들은 산 위로 피하나 죄의 무게로 인해 슬퍼하며 통곡하게 된다(16절).

그들의 손은 힘이 빠지고 무릎은 물처럼 풀리며,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수치와 대머리로 슬픔을 표현한다(17–18절). 한때 의지하던 은과 금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오히려 죄의 걸림돌이 된다(19절). 그들은 우상으로 자신들의 금은을 오염시켰고, 하나님은 그 장식들을 오물처럼 버리신다(20절). 결국 그 모든 것은 이방인에게 넘겨져 약탈당하고, 성소조차 더럽힘을 당한다(21–22절).

하나님은 쇠사슬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그들은 피를 흘렸고, 폭력이 성 안을 가득 채웠다(23절).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불러들여 유다의 집을 점령하게 하고, 교만한 자들의 영광을 꺾으신다(24절). 평안을 구해도 얻지 못하고, 묵시, 율법, 책략이 다 사라진다(25–26절). 왕과 방백은 두려워하고 백성은 떨며,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27절). 이로써 그들은 비로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2. 신학적 해석

에스겔 7장 후반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피할 수 없음을 강력히 선언하는 본문이다. 이 말씀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심판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만, 단지 과거 역사적 사건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신앙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 준다.

1) 하나님의 인내의 끝

하나님은 오랜 시간 유다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에스겔 전체 구조 속에서, 본문은 “끝이 왔다”(7:2–6)는 선언의 정점에서 이스라엘의 전적인 파멸을 선포한다. 인간의 죄악이 계속 쌓이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심판이라는 공의가 실현된다.

2) 헛된 의지: 군사력, 재물, 종교

본문은 인간이 의지하는 것들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전쟁을 준비했으나 아무도 나가지 않았고(14절), 은과 금은 오히려 죄악의 도구가 되었으며(19절), 성소마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다(21–22절). 이는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구원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말해 준다.

3) 하나님 임재의 철수

22절은 충격적인 말씀이다.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성소에서 떠났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며, 은혜의 통로가 닫혔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아무리 종교 행위를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4) 종교, 정치, 사회적 리더십의 몰락

26절은 세 부류의 리더들을 언급한다: 선지자, 제사장, 장로. 이들은 각각 계시, 율법, 지혜를 담당하지만, 심판의 때에는 모두 무력해진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의 제도와 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들며, 참된 리더십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한다.


3. 관련 성경 구절

  • 잠언 14:12 –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 호세아 8:7 –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 스바냐 1:18 –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며…”

  • 로마서 2:5–6 –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4. 묵상: 나의 성소는 진정한 예배의 장소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된다. 유다는 외형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신앙의 상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우상으로 가득했고, 금은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보다 자신을 위한 장식과 교만의 상징이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임재는 떠났고, 성소는 더럽혀졌다.

나는 오늘 얼마나 하나님 앞에 진실한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돈인가, 경험인가, 사회적 지위인가? 본문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의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냐, 너의 욕망을 가리는 가면이냐?”

또한 본문은 하나님이 심판 가운데서도 여전히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27절)*는 목적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심판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의 아픔과 무너짐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찾고 계신다. 그렇기에 절망 중에도 은혜의 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5. 기도문

[회개의 기도]

주 하나님, 오늘 에스겔을 통해 주시는 말씀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아갑니다. 유다 백성이 전쟁을 준비했으나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처럼, 저 또한 하나님을 떠난 채 무엇을 준비한다 해도 헛됨을 깨닫습니다.

주여, 저의 은과 금이 죄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소서. 물질이 저를 교만하게 하지 않게 하시고, 명예나 성공이 제 안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소서. 진정한 성소는 외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경외의 마음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회복과 은혜를 구하는 기도]

주님, 심판 중에도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신 말씀처럼,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을 다시 인정합니다. 제 마음의 성소를 깨끗하게 하소서. 더럽혀진 예배의 자리, 무너진 신앙의 중심을 다시 세워 주소서.

주여, 제가 은밀히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종교적 형식에 갇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하소서. 내 손이 피곤하고, 무릎이 물처럼 약해질 때,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주의 얼굴을 구하게 하소서.

오늘도 다시금 외칩니다. 주여, 당신만이 나의 구원이십니다. 당신만이 나의 참된 성소이십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에스겔 7장의 심판 메시지는 무겁고 절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인내하시고 오래 참으시지만, 죄에 대해 침묵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것이야말로 참된 복입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그들이 알리라.”
이 말씀이 오늘 나의 삶에서도 성취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아래는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 대한 내용을 작성한 글입니다.


마지막 날의 계시, 그 안에 담긴 소망 – 요한계시록 깊이 읽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 1:1)

세상의 끝, 하나님의 심판, 천상의 예배, 어린양의 승리, 새 하늘과 새 땅.
이 모든 이미지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수많은 신자들에게 경외심과 경탄, 때로는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성경의 마지막 책이죠.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 메시지와 더불어, 고난받는 교회에게 주는 강력한 위로의 말씀이자 승리의 확신입니다. 오늘은 이 깊고 넓은 계시록의 세계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되새겨보려 합니다.


요한계시록, 누구를 위해 기록되었나?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 안에서 본 환상을 기록한 책입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 고통받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단순한 예언서나 종말 시나리오가 아닌, 박해 가운데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라는 강력한 촉구의 말씀입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압적인 통치 아래 “예수를 주라” 고백한 죄로 숱한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를 보여주심으로써 믿음을 굳게 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구조로 보는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크게 다음과 같은 구조로 나뉩니다.

  1. 서문과 인사 (1:1-8)
  2.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1:9–3:22)
  3. 하늘의 보좌와 어린양의 권세 (4:1–5:14)
  4. 일곱 인, 나팔, 대접 심판 (6:1–16:21)
  5.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과 그리스도의 재림 (17:1–20:15)
  6.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21:1–22:5)
  7. 맺는 말씀 (22:6–21)

계시록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풍성하며 상징과 반복, 대조와 환상이 교차하며 펼쳐지는 독특한 장르입니다. 독자들은 문자적 해석에만 얽매이기보다는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

계시록의 초반(2–3장)은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 소아시아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권면입니다.

  • 에베소: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
  • 서머나: 환난 중에도 충성된 교회
  • 버가모: 이단의 가르침에 흔들린 교회
  • 두아디라: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
  • 사데: 살았으나 죽은 교회
  • 빌라델비아: 적은 힘에도 주의 말씀을 지킨 교회
  • 라오디게아: 미지근한 믿음, 자기 만족의 교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중 어떤 모습에 가장 가까울까요? 요한계시록은 단호하게 외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2:7 등)


어린양과 그 보좌 – 찬양과 영광의 중심

요한은 하늘 문이 열리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 보좌 앞의 장엄한 예배 장면을 보게 됩니다(4장). 그리고 그 보좌 앞에서 한 어린양이 등장합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오직 이 어린양만이 하나님의 책, 곧 역사의 주권을 담은 두루마리를 펼 자격이 있습니다(5장).

모든 피조물은 어린양을 향해 외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계 5:12)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예배의 본질을 상기시킵니다. 예배는 하늘에서 이미 드려지고 있는 것에 우리가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늘 보좌 앞에서 드려지는 이 거룩한 찬양에 우리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심판과 구원, 혼돈 속에 빛나는 하나님의 뜻

요한계시록은 일곱 인과 나팔, 대접의 순차적인 심판을 통해 인간의 죄악, 세상의 부패, 악의 세력의 종말을 선포합니다. 동시에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많은 이들이 계시록의 심판 장면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정의의 회복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정화의 과정입니다. 악한 바벨론, 거짓 선지자, 짐승과 같은 존재들은 결국 불못에 던져지고,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성취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 진정한 소망의 약속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은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시록 21~22장은 성경 전체가 지향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제시합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5)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계 21:3–4)

하나님은 그 백성과 함께 거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아버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결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 그리고 완전한 구원의 완성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예언하는 책이지만, 단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록만은 아닙니다. 오늘, 여기,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 핍박과 혼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라는 부르심
  • 어린양을 따르는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음을 확신시키는 약속
  • 세상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 나라의 승리가 확정되었음을 선포하는 외침
  • 회개하고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간절한 음성

결론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이 고백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확신 있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무질서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선언이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회복의 시작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날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어둡고 혼란스러울지라도, 어린양이 이미 승리하셨고, 우리는 그 승리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의 책이 아닙니다. 소망의 책입니다. 성도 여러분, 끝은 시작이며, 고난은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입술과 삶으로 고백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에스겔 7:1~13

다음은 에스겔 7:1~13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KRV)을 기준으로 제공합니다:


에스겔 7:1~13 (개역개정)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끝났도다 끝났도다 네 땅 사방에 끝이 이르렀도다
  3.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 위에 내리고 네 행위를 심판하며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되
  4.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를 네 위에 보응하며 네 가증한 일이 네 가운데 나타나게 하리니 그제서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리라
  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재앙이로다 전무후무한 재앙이로다 보라 임하도다
  6.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이르렀도다 보라 임하도다
  7. 이 땅 주민아 너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혼란의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8. 내가 속히 분을 네 위에 쏟으며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며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리라
  9.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네게 보응하리라 네 가증한 일이 네 가운데 나타나리니 그제서야 내가 여호와를 치는 자인 줄 알리라
  10. 보라 그 날이로다 보라 임하였도다 끝이 일어났으니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
  11. 포학이 몽둥이가 되어 악을 징벌하나니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며 그 중에 아름다운 것도 없으리로다
  12.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도다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슬퍼하지 말지니 이는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13. 파는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리니 이는 모든 무리에 대한 진노로 말미암아 돌아가려 하지 아니하고 각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 하지 아니함이로다

 

아래는 에스겔 7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성경 구절, 묵상, 기도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에스겔 7:1–13 묵상과 신학적 해석

1. 본문 요약

에스겔 7장 1절부터 1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시는 경고의 말씀이다. 이 장은 “끝났다”는 반복적인 표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땅에 닥칠 재앙의 확실성과 긴급함을 강조한다.

1–4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왜 불가피한지,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가증한 행위와 죄악 때문임을 선언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며, 행위에 따라 보응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5–9절에서는 전무후무한 재앙이 임박했음을 더욱 심각하게 선포하신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나 불행이 아닌 하나님의 분노가 응축된 심판이다. “끝이 왔다”는 반복은 하나님의 인내가 이제 끝났다는 선언이자, 남은 기회가 없다는 경고이다.

10–13절에서는 그 심판의 성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몽둥이(심판의 도구)가 자라났고, 교만과 폭력이 그 열매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물건을 파는 자도, 사는 자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경제적 활동도 무의미해진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직접 치시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끌어가시는 종말적 심판임을 선포한다.


2. 신학적 해석

①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

이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강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은 죄를 방관하지 않으시며, 오랜 인내 후에도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공의로 갚으신다.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고”라는 반복적인 표현은 하나님의 인내가 무한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② 종말론적 경고

“끝이 왔다”는 선언은 단순한 바벨론의 침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더 넓은 의미에서 인류 역사 속에 반복되는 하나님의 심판의 모형이며, 최종적 종말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재앙과 심판처럼, 이 본문은 인류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③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

10절에서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라는 표현은, 인간의 죄악과 교만이 자라나 심판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며, 그것이 결국 멸망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드러내신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심판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④ 물질의 무의미함

12절에서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슬퍼하지 말지니”라는 표현은 경제적 활동의 무가치함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이 붙들고 의지하던 재물과 거래, 소유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3. 관련 성경 구절

  • 로마서 2:5–6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이 말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 요한계시록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이사야 13: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이 모든 구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인간의 교만에 대한 경고, 그리고 심판에 앞서 회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4. 깊이 있는 묵상

이 본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날카로운 경고로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 “끝이 왔다”는 말씀 앞에 서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이스라엘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죄에 대한 경고이며,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이 겸손히 회개하며 돌아와야 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에스겔 시대 이스라엘은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 숭배와 불의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 심판의 이유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진리보다 인간의 이익을 좇고, 물질주의와 자기 의로 가득 찬 모습은 당시와 무엇이 다른가?

또한 이 본문은 하나님의 인내가 무한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회개의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끝이 왔다”는 이 선포는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아직도 은혜의 날이 끝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세상의 모든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함을 드러낸다. 재물, 거래, 권력 등 인간이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


5. 기도문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회개와 경외의 기도]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에스겔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무게와 경고를 듣습니다.
“끝이 왔다”는 선포가 단지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향한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의 인내를 당연히 여기고,
죄에 대해 무감각해졌습니다.
말씀보다는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고,
기도보다는 자기 만족과 편안함을 구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행위대로 보응하시겠다는 말씀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단지 감정으로 그치지 않게 하시고,
회개의 열매로 이어지게 하소서.

교만이 자라나 심판의 몽둥이가 된다는 사실 앞에
우리의 마음을 겸손케 하시고,
무너진 재단을 다시 쌓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때때로 재물과 명예, 안전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날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오직 주만 의지하며 사는 믿음의 삶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하나님, 지금 이 세대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사,
진노가 아니라 자비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깨우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다시 서게 하시며,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비추는 성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여호와를 치는 자인 줄 알리라” 하신 말씀처럼
주의 주권과 거룩하심을 인정하며,
경외함으로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