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1~15-영적 어린아이, 시기와 분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지혜로운 건축자, 예수 그리스도의 터, 공적의 시험

고린도전서 3장 1절 ~ 15절 (개역개정)

영적 어린아이, 시기와 분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지혜로운 건축자, 예수 그리스도의 터, 공적의 시험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가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신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한줄 묵상

사람을 내세우는 분파주의적 미련함을 버리고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불타지 않을 거룩한 공적을 쌓아갑시다.


본문 요약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여전히 시기와 분쟁 가운데 머물며 영적으로 장성하지 못한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들과 같다고 책망합니다. 사역자는 복음의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도구일 뿐,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더불어 사역자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하고 견고한 기초 위에 각자의 공적을 세워가는 건축자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할 것이며, 타지 않고 남은 자만이 참된 상급을 얻게 됩니다.


신학적 해석

1. 영적 미성숙과 육신에 속한 자의 지표

바울은 신자를 성령을 따르는 신령한 자와 타락한 본성을 따르는 육신에 속한 자로 분류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수많은 은사와 지식을 자랑했으나, 그들 내면에 자리 잡은 시기와 분쟁은 그들이 영적 비대증에 걸린 어린아이에 불과함을 폭로합니다. 신학적으로 성숙이란 교리의 지식적 습득이나 은사의 화려함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현하는 관계적 성결함으로 증명됩니다.

2. 구속사적 협력과 신적 주권론

6절의 구조는 사역의 인간적 책임과 신적 주권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심고 물 주는 인간의 수고는 필수적이지만, 생명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자라나게 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영역입니다. 이는 교회의 모든 성장과 영적 열매의 기원이 인간 지도자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만 있음을 천명하는 강력한 신본주의 선언입니다.

3. 기독교적 공적론과 종말론적 심판

11절에서 15절은 그리스도인의 행위와 사역이 맞이할 종말론적 검증을 다룹니다. 신앙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일한 기초 위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 위에 세워지는 공적은 재료에 따라 금, 은, 보석(영원하고 변함없는 복음적 가치)과 나무, 풀, 짚(세속적이고 일시적인 인본주의적 성과)으로 나뉩니다. 하나님의 불은 사역의 외적 규모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의 동기와 순전함을 시험합니다. 여기서 불 가운데서 받는 구원은 행위 언약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사역의 책임을 소홀히 한 자가 마주할 부끄러운 구원의 실재를 경고합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마태복음 7장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 피터전서 1장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깊이 있는 묵상

1. 은사의 화려함에 가려진 영적 어린아이의 실상

고린도 교회는 겉보기에 모든 은사가 부족함이 없고 말과 지식에 풍족한 교회였습니다.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대형 교회이자 수많은 인재가 모인 역동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영적 진단은 매우 냉혹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젖을 먹어야 하는 단단한 음식을 씹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어린아이로 규정한 결정적 증거는 그들의 은사나 지식의 부족함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존재하는 시기와 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연수, 직분, 혹은 교회 안에서 맡은 사역의 크기가 곧 나의 영적 성숙도라고 착각합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방언을 말하며 신학적인 지식을 유창하게 설명하면 스스로를 신령한 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참된 영적 성숙은 철저하게 관계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내 마음에 여전히 지체를 향한 시기심이 불일듯 일어나고, 내 의견과 다른 자들을 용납하지 못해 편을 가르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무리 높은 직분을 가졌을지라도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아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믿기에 타인을 배려하거나 전체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할 능력이 없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뉘어 싸운 것은 그들이 추종하는 지도자의 신학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지도자의 권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영적 우월감을 증명하려 했던 어린아이 같은 이기심의 발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장성한 자의 풍모를 풍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 자존심과 유익만을 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머물러 있습니까? 겉포장을 벗겨내고 내면의 성결함을 대면해야 합니다.

2. 도구의 한계를 인식할 때 흐르는 신적 평강

바울은 분쟁의 중심에 선 자신과 아볼로의 정체성을 단호하게 정리합니다.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단지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일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사역자라는 단어는 식탁에서 음식을 나르는 종이나 먼지투성이의 길에서 심부름을 하는 일꾼을 의미합니다. 종은 주인의 영광을 가로챌 수 없으며, 손님들에게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씨앗을 심었고, 아볼로는 그 씨앗이 자라도록 물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역의 기능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인간의 철저한 한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밤낮으로 수고하여 씨를 뿌리고 정성껏 물을 줄지라도, 흙 속에서 생명의 싹을 틔우고 그것을 푸른 나무로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인간의 기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가정과 일터, 사역의 현장에 놀라운 영적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심었으니 내 뜻대로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깊은 불안과 좌절에 빠집니다. 자녀를 내 방식대로 교육하여 완벽한 열매를 맺으려 하고, 교회 사역을 내 열심으로 부흥시키려다 지치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내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서 묵묵히 심고 물을 주는 충성입니다. 결과의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할 때, 우리는 실패 앞에서도 낭망하지 않고 성공 앞에서도 교만하여 넘어지지 않는 단단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은 도구일 뿐이며, 모든 찬양과 영광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3. 유일한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인생을 설계하십시오

바울은 이제 농유의 비유에서 건축의 비유로 전환하며, 우리 인생과 교회가 반드시 서야 할 토대를 명시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입니다. 기초가 뒤틀리면 그 위에 아무리 화려하고 정교한 대리석 건물을 지어 올릴지라도 결국 작은 지진과 풍파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뿐입니다.

우리는 매일 인생이라는 건물을 짓는 건축가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이 아닌, 세상의 모래 위에 인생의 주추를 놓으려 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의 평판과 인정, 통장 잔고의 넉넉함, 세상적인 스펙과 인맥, 혹은 내가 가진 도덕적 결백함을 기초 삼아 인생의 성을 쌓아 올립니다. 이러한 것들은 평온한 날에는 꽤 단단해 보이지만, 영혼의 밤이 찾아오고 고난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아무런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터를 닦는다는 것은 내 모든 삶의 기준과 가치관, 그리고 생명의 근거를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위에 고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완벽함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환경이 뒤바뀔지라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의탁하십시오. 그 터 위에 세워진 인생만이 영원을 견뎌내는 거룩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4. 불의 시험을 통과할 영원한 재료를 준비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집을 짓는 건축가들에게 바울은 엄중한 경고와 조언을 덧붙입니다. 그 터 위에 건물을 세우되, 재료를 극도로 조심하여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료는 불에 타지 않는 금, 은, 보석과 불에 타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무, 풀, 짚으로 대조됩니다.

마지막 종말의 날에 하나님은 불로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이 시험은 구원의 여부를 가리는 시험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쌓아 올린 삶과 사역의 질적인 가치를 판별하는 심판입니다. 세상적인 방법, 인본주의적인 수단,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 거룩한 동기가 결여된 종교적 열심은 당장은 나무와 짚처럼 빠르게 타올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는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릴 공허한 것들입니다.

반면,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오직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흘린 눈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던 정직함,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은밀하게 섬겼던 그 거룩한 흔적들은 불의 연단을 통과하여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금과 보석이 됩니다.

바울은 공적이 다 타버리고 겨우 몸만 빠져나오는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이 실재함을 경고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재료로 인생의 하루를 채우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과에 급급하여 짚으로 집을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의 시선은 항상 장차 올 영원의 날, 하나님의 심판대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타서 없어질 세상의 가치를 과감히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불 앞에서도 영원히 보존될 진실한 믿음의 공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문

만물의 창조주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내 영혼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처럼 겉으로는 은사와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내면에는 여전히 시기와 분쟁을 버리지 못했던 나의 영적 미성숙함을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합니다. 사람의 평가에 일희일비하고 내 자존심을 증명하려 했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십자가 앞에 못 박사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내 인생의 밭에 부지런히 사랑의 씨앗을 심고 복음의 물을 주되, 내 힘으로 결과를 좌우하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오직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하오니, 결과에 대한 모든 염려와 집착을 주님의 선하신 손길에 온전히 위탁하게 하옵소서. 내가 드러나기보다 오직 일꾼을 사용하시는 주인의 영광만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인생이라는 집을 지을 때, 세상의 썩어 없어질 모래 위에 터를 닦지 않게 하시고, 오직 나의 유일한 구원이시며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만 내 삶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게 하옵소서. 당장 짓기 편하고 눈에 화려해 보이는 나무와 풀과 짚의 재료를 과감히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순전한 사랑이라는 금과 보석의 재료로 매일의 삶을 채워가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에 주님의 거룩한 불이 내 삶을 시험할 때, 모든 가식과 외식은 타서 사라지고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한 공적만 남아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구원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매순간 종말론적인 거룩한 긴장감을 가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내게 주신 사명의 길을 완성해 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의 건축자가 되셔서 나를 조율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2:10~16 성령의 계시, 하나님의 깊은 것, 영적인 분별, 그리스도의 마음, 오직 성령으로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한줄 묵상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깨닫고 누리는 하루가 됩시다.


본문 요약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인간의 눈과 귀로 알 수 없는 신비한 지혜를 계시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기에, 성령을 받은 성도만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복음을 미련하게 여기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분별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신학적 해석

  1. 성령의 통달하심(Pneuma Erannai): 성령은 하나님의 신적 자아와 동일한 깊이를 공유하십니다. 10절의 ‘통달’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령 없이는 구원 계획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2. 은혜의 인지적 수용: 12절은 구원이 객관적으로 주어졌을지라도, 그것을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누리는 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복음은 지적 습득이 아니라 영적 수용의 영역입니다.
  3. 영적 분별력(Anakrinei): 바울은 인류를 ‘육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로 구분합니다. 이는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영적 소속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주님의 관점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유하게 되는 신비적 지위를 얻습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로마서 8장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에베소서 1장 17절: “그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깊이 있는 묵상: 성령과 함께 걷는 하나님의 깊은 세계

1. 성령, 하나님의 심장을 읽는 분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 오해하거나 답답해합니다. 사람의 일도 그 속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심장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고민과 사랑, 그리고 우리를 향한 절절한 계획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서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단순히 내 소원을 아뢰는 단계를 넘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 속에 갇혀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곳으로 항해하고 있습니까?

2. 은혜를 은혜로 알아보는 눈

세상은 성공을 노력의 결과로 보지만, 성도는 성공뿐만 아니라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임을 깨닫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옵니까? 바로 성령의 조명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의 가치를 망각하고, 일상의 작은 축복들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며, 고난 앞에서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뿌려놓으신 은혜의 흔적들을 발견해냅니다. “아,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이었구나”라는 고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오늘 하루, 내 삶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은혜의 보물들을 성령의 눈으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3. 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령한 분별

똑똑한 지식인들이 복음을 들으면서도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느냐”,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이 되느냐”며 비웃는 이유는 그들이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진리는 영적인 도구로만 해석이 가능합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맞아야 소리가 들리듯, 성령이라는 주파수가 맞아야 하나님의 일들이 미련해 보이지 않고 생명의 지혜로 다가옵니다. 성도는 세상의 가치판단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판단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기준, 즉 주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비난이나 판단에 위축되지 마십시오. 당신 안에는 세상을 이긴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습니다.

4.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선언은 놀라운 축복이자 막중한 책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시는 곳을 보고, 예수님이 아파하시는 것을 아파하며,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본성은 미워하고 싶고, 내 이성은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하지만, 내 안의 그리스도의 마음은 용서와 희생을 촉구합니다. 이 마음을 품는 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을 따를 때 가능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내 기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해보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진정한 신령한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기도문

사랑과 진리의 성령 하나님,

세상의 영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살아갔던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셔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진리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안의 지혜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과 계획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 매일 더 깊이 알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일상의 작은 호흡부터 십자가의 대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임을 성령 안에서 깨닫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육의 생각에 갇혀 복음을 미련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좇게 하옵소서.

특별히 간구하옵기는, 오늘 제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좁은 생각과 이기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며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주시고, 오직 주 안에서만 발견되는 참된 지혜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나를 하나님의 깊은 은혜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2:1~9 : 십자가의 전달자, 성령의 권능, 감추어진 지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 오직 성령으로

1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기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한줄 묵상

사람의 설득력이 아닌 오직 성령의 권능과 십자가의 복음만이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을 보게 합니다.


본문 요약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화려한 수사학이나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기로 작정했으며, 자신의 약함 속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복음은 세상 통치자들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혜이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만세 전에 예비하신 영원한 영광의 길입니다.


신학적 해석

  1. 십자가의 배타적 유일성: 바울이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집중의 결단입니다. 모든 신학적 체계와 신앙의 실천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2. 성령의 현현(Apodeixis): 4절의 나타나심은 법정에서 증거를 제시한다는 뜻의 용어입니다. 복음 전파는 인간의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그 진리됨을 증명하시는 초자연적 사건입니다.

  3. 종말론적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나 지혜자들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눈, 귀)이나 이성(마음)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감추어진 신비입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스가랴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이사야 64: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적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 로마서 16:25~2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깊이 있는 묵상: 사람의 수사학을 넘어 성령의 권능으로

1. 작정된 단순함의 위력

바울은 당대 최고의 학문을 섭렵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화려한 말과 논리(아름다운 것)로 청중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단순함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현란한 지혜가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사역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종종 세련된 프로그램, 화려한 언변, 논리적인 설득에 목을 맵니다. 하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유능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리입니다.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기로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 심히 떠는 자의 강함

바울의 고백 중 놀라운 것은 그가 사역의 현장에서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사도답지 않은 모습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바로 영적 권능의 비결입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처절하게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떨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약함과 두려움을 숨기려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빈 공간이야말로 성령께서 당신을 통해 일하실 수 있는 가장 넓은 자리가 됩니다. 내가 떨 때 주님은 일하십니다.

3. 세상 통치자들이 보지 못한 신비

세상의 권력자들과 지혜자들은 십자가를 실패와 수치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힘과 즉각적인 승리만을 가치 있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가 가장 영광스러운 보좌가 되고, 죽음이 생명의 문이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지 말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우리를 위해 정하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4.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의 은혜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혹은 앞길이 막막해 보입니까?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최고의 것을 이미 준비해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예비하신 은혜는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아집니다. 오늘 하루, 내 눈과 귀에 들리는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내 안에서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집중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평강과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복음의 참된 원리를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화려한 지혜와 사람의 칭찬을 갈망하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앞세우기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높이기로 결단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주님의 일을 할 때 나의 유능함 때문에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나의 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바울처럼 주님 앞에서 거룩한 떨림을 회복하게 하시고, 나의 연약한 입술과 삶을 통해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증명되게 하옵소서. 사람의 설득력이 아닌 하나님의 권능이 내 삶을 다스려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그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이미 승리하신 영광의 주를 신뢰하며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26~31 – 낮은 자의 선택, 전적인 은혜, 자랑의 대상, 예수 안의 지혜, 거룩의 근거

낮은 자의 선택, 전적인 은혜, 자랑의 대상, 예수 안의 지혜, 거룩의 근거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한줄 묵상

세상의 화려한 조건이 아닌 나의 낮고 약함을 택해 구원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높이는 삶을 삽시다.


본문 요약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의 부르심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에서 지혜롭거나 강하거나 문벌 좋은 자들이 아닌, 오히려 미련하고 약하며 천한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육체적 조건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을 누리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유일한 자랑은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학적 해석

  1. 신적 반전의 원리: 하나님은 세상의 가치 체계를 뒤엎으시는 분입니다. ‘지혜 있는 자’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미련한 것’과 ‘약한 것’을 택하신 것은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자격에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역설적 은혜입니다.

  2. 그리스도 중심적 지혜: 30절은 성도의 모든 영적 자산(지혜, 의, 거룩, 구원)의 기원이 인간 내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명시합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시사하며, 모든 신앙적 덕목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3.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 비판: 바울은 자신의 배경이나 능력을 자랑하는 고린도 교회의 분파 주의를 경계하며, 십자가를 통과한 겸손한 자랑만이 참된 신앙의 표지임을 천명합니다. 이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의 신학적 근거가 됩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사무엘상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마태복음 11:25: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깊이 있는 묵상: 나의 없음이 주님의 있음이 되는 신비

1. 부르심의 거울 앞에 서기

바울은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고 도전합니다. 여기서 ‘보라’는 명령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자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도덕적이거나, 지혜롭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세상이 ‘버린 카드’와 같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부족한 스펙, 연약한 건강, 평범한 배경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신 이유이며, 당신을 통해 세상을 부끄럽게 하실 통로가 됩니다.

2. 자랑의 뿌리를 뽑는 십자가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자랑하려 합니다. 지식, 자녀, 재산, 심지어는 자신의 신앙 경력까지도 자랑의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못 박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자랑은 구원의 빛을 가리는 어둠일 뿐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자랑이 죽는 곳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만 사시는 삶이 시작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의 나 된 것’이 전적인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나의 삶에서 ‘나’라는 주어를 삭제하고 ‘주님’이라는 주어를 세우는 훈련을 하십시오.

3.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이 되신 분

우리는 스스로 거룩해지려고 고군분투하지만 늘 실패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의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 때 그분의 의로움이 우리를 덮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주님 안에 깊이 거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4. 주 안에서 하는 거룩한 자랑

자랑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랑의 방향과 내용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는 자랑은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솜씨를 높이는 것입니다. 나의 실패를 통해 일하신 주님을 자랑하고, 나의 연약함을 덮으신 주님의 사랑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랑은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소망을 줍니다. 당신의 삶의 화두가 ‘나의 성공’에서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기도문

나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도저히 사랑받을 자격 없는 미련하고 약한 저를 택하여 주시고, 존귀한 자녀 삼아 주신 그 크신 은혜에 압도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위축되었던 마음을 이 시간 회개하오니, 오직 하나님의 선택이 나의 유일한 자부심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내 안에 남아 있는 끈질긴 자기 자랑의 뿌리를 십자가의 능력으로 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이룬 작은 성취조차 나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영광을 오직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오늘도 그분 안에 거하는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세상이 부러워하는 가치를 좇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의 가치를 좇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유능함을 뽐내기보다,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자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18~25

고린도전서 1장 18절 ~ 25절 (개역개정)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한줄 묵상

세상이 미련하다고 치부하는 십자가의 복음이야말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 요약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날카롭게 대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실패와 수치로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미련해 보이는 방식을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유대인은 기적적인 표적을 원하고 헬라인은 논리적인 철학을 찾지만, 복음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선포합니다. 결국 인간의 가장 뛰어난 지혜도 하나님의 가장 낮은 어리석음보다 못하며, 오직 십자가만이 참된 구원의 길임을 확증합니다.


신학적 해석

본문은 기독교 신학의 정수인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천명합니다. 바울은 인간의 이성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1. 역설의 신학: 하나님은 세상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약함’과 ‘미련함’을 통해 일하십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흉악한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저주의 상징이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생명의 통로로 바꾸셨습니다.

  2. 세상 지혜의 심판: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지능과 논리는 복음을 거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오만을 꺾으시기 위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3. 그리스도론적 집중: 바울에게 있어 지혜와 능력의 실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입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음이 곧 하나님의 살아있는 지혜입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29:14: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깊이 있는 묵상: 세상의 지혜를 압도하는 십자가의 역설

1. 미련함의 가면을 쓴 구원의 능력

우리는 효율과 성과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이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강한 힘을 소유하며, 더 논리적인 지식을 쌓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의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완벽한 실패이며 비논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무력해 보이는 죽음이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세상의 효율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의 역설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2. 표적과 지혜 너머의 그리스도

유대인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이성적으로 납득할 만한 철학 체계를 가져오면 수긍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믿겠습니다”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면 믿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내겁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의 모든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만든 상자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찾던 모든 기적과 지혜가 그분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약함이 가진 강함

인간은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사실 우리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격차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지혜를 내려놓고 영적인 파산 상태임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비로소 우리 삶에 침투합니다. 복음은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도문

사랑과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화려한 지혜와 논리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때때로 세상이 복음을 미련하다고 조롱하고, 믿음의 삶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 감추어진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나의 지식과 경험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 앞에 순종하게 하시고, 나의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강함이 증명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십자가를 자랑하며, 그 복음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진정한 지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