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7:1~13

여호수아 17:1~13 (개역개정)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를 뽑았으니 그는 요셉의 맏아들이라
2 므낫세의 아들들 곧 길르앗의 아비 마길의 아들들에게도 제비가 뽑혔으니 마길은 용사이므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며
3 므낫세의 남은 자손은 아비에셀과 헬렉과 아스리엘과 세겜과 헤벨과 스미다이니 이들은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남자들이라
4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 뿐이라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에게 나아와 말하되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고 명령하셨나이다” 하므로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6 므낫세에게서 열 제비가 난 것과 같았으니 그 외에 길르앗과 바산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음이라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계맘까지 이르고 세계맘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야민 사람의 경계에 이르나니
8 다프부아 사람이 사는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의 경계는 다프부아에서부터 강까지 이르고 그 강은 그 경계의 끝이 되며
9 그 강 남쪽에는 에브라임 성읍들 중 므낫세에게 속한 성읍들이 있고 므낫세의 경계는 강 북쪽에 있으며 그 끝은 바다라
10 그 남쪽은 에브라임에게 속하고 북쪽은 므낫세에게 속하며 바다를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아셀, 동쪽으로는 잇사갈이 접하였으며
11 므낫세가 잇사갈과 아셀 안에 이낙과 도르와 마겟과 엠드르와 다아낫과 벧스안과 그 마을들을 가졌으니 곧 세 높은 곳들과 그 마을들이며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므로 가나안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하여지매 가나안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수아 17장 1~13절 묵상

므낫세의 기업과 순종의 책임


1. 본문 요약

여호수아 17장 1절부터 13절은 요셉의 장자 므낫세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히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 문제, 그리고 므낫세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현실이 함께 등장한다.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로서 기업을 받았으며, 그의 후손들 중 일부는 용사였기 때문에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지역을 이미 차지한 바 있다.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은 서편에서도 다시 기업을 나누어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아버지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딸들은 모세가 명령한 율례를 근거로 기업을 요구한다.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기업을 허락한다.

므낫세의 기업 경계는 에브라임과 서로 뒤섞여 있으며, 북쪽으로는 아셀, 동쪽으로는 잇사갈을 접한다. 또한 므낫세는 잇사갈과 아셀의 지역 안에 여러 거점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가나안 주민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강해졌을 때 가나안 사람들을 노역시키기는 했으나 끝까지 몰아내지는 않았다. 이러한 미완의 순종은 이후 이스라엘의 영적·역사적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2. 신학적 해석

1) 기업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따라 주어진다

므낫세가 받은 기업은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다. 요셉에게 주신 약속, 그리고 족장들에게 주신 언약이 실제 땅 분배로 이어진 것이다. 기업은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주어진 선물임을 본문은 강조한다.

2) 슬로브핫의 딸들: 공동체 안의 정의와 순종

여호수아 17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공동체적 정의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요구한 것은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규정하신 명령이었다(민수기 27장).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의 실천이었다. 또한 여호수아와 제사장, 지도자들이 그 요청을 존중한 것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을 잘 보여준다.

3) 가나안 족속을 내쫓지 못함: 미완의 순종

본문의 핵심 신학적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므낫세는 강한 지파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실패했다. 이는 단순히 전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남겨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나, 이스라엘은 현실적 편의와 타협하며 그들을 노역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결국 훗날 사사기와 열왕기에서 보듯이 영적 타락, 우상숭배, 동화, 영적 혼합주의로 이어졌다.
순종은 부분적일 수 없다. 부분적 순종은 결국 불순종이다.
므낫세지파의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을 ‘현실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인간의 경향을 잘 드러낸다.

4) 하나님은 믿음의 순종을 통해 약속을 완성하신다

므낫세는 땅을 받았지만, 그 기업을 완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순종을 통한 완전한 정복이 필요했다. 기업은 주어졌지만, 그 기업을 유지하고 풍성하게 누리는 것은 그들의 믿음의 실천에 달려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신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되, 그 구원을 누리는 삶은 순종과 거룩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신약적 진리와도 연결된다(빌립보서 2:12).


3. 관련 말씀 구절

  1. 민수기 27:7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 슬로브핫 딸들의 기업 문제는 이미 하나님이 승인하신 명령이었다.

  2. 신명기 7:2
    “…그들을 진멸하라 너는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 가나안 족속을 남겨두지 말라는 명령의 근거.

  3. 사사기 1:27–28
    므낫세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역사적 후속 기록.
    → 여호수아 17장의 미완의 순종이 실제 문제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4.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 순종이 신앙의 열매임을 강조.

  5. 빌립보서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받은 은혜를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진리.


4. 깊이 있는 묵상

여호수아 17장을 묵상하며 마음에 깊이 남는 두 장면이 있다. 첫째는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는 믿음, 둘째는 므낫세 지파의 부분적 순종의 문제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본을 준다. 그들은 단순히 유산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자신에게도 유효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근거해 담대하게 나아갔고,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셨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환경이나 관습보다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함을 일깨운다.

반면 므낫세 지파의 연약함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경고를 준다.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군사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강해졌고, 결국 가나안 주민들을 노역시키기도 했다.
즉 ‘몰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군사적 무능이 아니라 영적 타협이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현실의 편의 때문에 남겨두는 죄, 미루는 순종, 타협하는 결단…
결국 그것이 훗날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영적 뿌리’가 되기도 한다.

여호수아 17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온전하게 누리고 있는가?

  • 혹은 순종하지 못해 남겨둔 ‘가나안 족속’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말씀을 붙드는가, 아니면 므낫세처럼 편한 길을 선택하는가?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철저한 순종을 돌아보게 한다.


5. 기도문

사랑과 신실하심이 풍성하신 주님,
오늘 여호수아 17장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다시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기업은 은혜이며, 그 은혜는 순종을 통해 누려짐을 깨닫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고,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용기를 제 안에 부어 주옵소서.

또한 므낫세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남겨두었던 것처럼
제 마음과 삶 속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편의와 타협으로 남겨 놓은 죄의 자리, 습관, 미뤄두었던 순종의 영역이 있다면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다시 일어나 순종의 걸음을 걷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영적 싸움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기업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소서.
제 삶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가 드러나며,
순종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16:1~10

다음은 여호수아 16장 1절부터 10절까지 (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6:1~10 (개역개정)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곁 요단에서부터 여리고 물 동쪽 광야에서 올라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르기 족속의 경계 아다롯에 이르고
3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가 되더라

4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 산업을 받았더라

5 에브라임 자손의 경계는 그 가족들대로 이러하니라 그 산업의 경계가 동쪽으로는 아다롯아달에서부터 위 벧호론에 이르고
6 그 경계가 서쪽으로는 믹므다에서 바다까지 이르며 또 북쪽에서는 바다에서부터 믹므다까지 이르고 그 경계가 동쪽으로 돌아가 다아낫실로에 이르고 또 야노아 동쪽으로 지나서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지나 요단에 이르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가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가 되더라 이가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들대로 받은 산업이라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성읍들이 있으니 각 성읍과 그 촌락이라

10 그러나 에브라임 자손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었더라


 

 

여호수아 16:1~10

약속의 땅을 받았으나 온전히 차지하지 못한 기업

1. 서론 – 기업의 경계는 명확했으나, 순종은 미완이었다

여호수아서 16장은 요셉의 후손, 특히 에브라임 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를 상세히 기록한다. 이 본문은 단순한 지리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정착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그러나 본문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한 문장이 등장한다. 에브라임 자손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기업과,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인간의 불완전한 순종 사이의 간극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2. 본문 요약 –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과 한계

여호수아 16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요셉 자손 전체의 기업이 여리고 근처 요단강에서 시작하여 벧엘과 루스를 지나 서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음을 서술한다. 이는 가나안 중앙 산지를 관통하는 매우 전략적인 지역으로, 정치적·군사적 요충지였다.

4절에서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가 각자의 산업을 받았음을 밝히고, 5절부터는 에브라임 지파가 받은 구체적인 경계가 자세히 설명된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의 경계가 매우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의 몫을 분명히 정해 주셨음을 보여준다.

8절과 9절에서는 에브라임 지파가 받은 독립된 기업 외에도 므낫세 지파의 영역 안에 속한 성읍들 중 일부를 함께 분배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된다. 이는 형제 지파 간의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나타내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10절에서 상황은 달라진다. 에브라임 자손은 게셀에 거주하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 결과 가나안 족속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었고, 이 상태는 여호수아서 기록 시점까지 지속되었다고 말한다.


3. 신학적 해석 – 약속은 성취되었으나 순종은 완결되지 않았다

이 본문의 핵심 신학적 메시지는 하나님 편에서의 신실함과 인간 편에서의 불완전함의 대비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에게 분명하고 실제적인 기업을 주셨다. 땅의 경계는 흐릿하지 않았고, 명확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모호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그 기업을 온전히 차지하지 않았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현실적인 이유와 계산 앞에서 그들은 타협했다.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노역하는 종으로 삼는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선택은 이스라엘에게 지속적인 영적 위협과 신앙의 혼합을 가져오는 씨앗이 된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동적으로 열매 맺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약속은 이미 주어졌지만, 그 약속을 누리는 과정에는 인간의 믿음과 순종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4. 관련 성경 말씀 – 불완전한 정복의 반복되는 경고

사사기 1장에서도 여러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을 온전히 몰아내지 못한 사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는 여호수아 시대 이후 이스라엘이 겪게 될 신앙적 혼란의 배경이 된다.

민수기에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면 그들이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또한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온전한 순종이 없는 제자는 결국 두 마음을 품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에브라임의 선택은 단지 한 지파의 실패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신앙인이 반복해서 범하는 타협의 문제를 상징한다.


5. 깊이 있는 묵상 – 이미 받은 기업을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기업은 무엇인가. 신앙, 가정, 사명, 공동체, 은사 등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편의와 두려움 때문에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에브라임 지파는 싸울 수 있었지만 싸우지 않았고, 쫓아낼 수 있었지만 남겨 두었다. 우리 역시 분명히 정리해야 할 삶의 영역들을 노역이라는 이름의 타협 아래 남겨두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된다. 하나님께서 제거하라고 하신 죄의 습관, 미루어 둔 결단, 회피하고 있는 순종의 자리들이 결국 우리 안에 거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흐리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게 된다.

온전히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족속이 훗날 우상이 되었듯, 오늘의 작은 타협은 내일의 큰 시험이 될 수 있다.


6. 결론 – 하나님은 기업을 주셨고, 우리는 책임을 맡았다

여호수아 16장은 땅의 분배라는 평범해 보이는 기록 속에 깊은 영적 교훈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기업을 주시는 분이시며,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업을 실제 삶의 자리에서 누리는 책임은 인간에게 맡기신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받은 은혜를 점검하게 하며, 부분적 순종이 아닌 전인격적 순종으로 나아가도록 도전한다. 하나님은 모호하지 않으시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의 선택과 결단이다.


7. 기도문 – 타협 대신 온전한 순종을 선택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기업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우리는 종종 그 기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두려움과 계산 앞에서 타협하며 살아왔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었듯,
우리도 마음속에 정리하지 않은 죄와 미루어 둔 순종을 남겨두고 살았습니다.
주님, 우리 안에 거하는 타협의 흔적들을 드러내 주시고
결단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미 주신 은혜를 반쪽만 붙드는 자가 아니라
온전히 누리는 믿음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순종을 통해 약속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업이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며,
삶의 모든 경계선 위에 주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에브라임 지파의 신학적 의미

중심에 서 있었으나 끝까지 중심을 지키지는 못한 지파

1.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이 품은 약속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지만, 야곱의 축복에서 형 므낫세를 제치고 오른손의 축복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 나를 고난의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을 지닌다. 이 이름 속에는 고난을 넘어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담겨 있다.

따라서 에브라임 지파는 출발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지파였다.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가 강조된 지파였다. 여호수아 16장에서 에브라임이 가나안 중앙 산지라는 핵심 지역을 기업으로 받은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2.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심이 된 에브라임

사사기와 사무엘서를 지나며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의 정치적·영적 중심으로 기능한다. 실로에 성막이 위치했고, 회중의 중요한 결정들이 에브라임 땅에서 이루어졌다. 북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진 이후에는 ‘에브라임’이 곧 북왕국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에브라임이 단순한 한 지파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중심 지파였음을 의미한다. 중심에 있다는 것은 특권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동반한다.


3. 그러나 반복되는 문제 – 교만과 미완의 순종

에브라임 지파는 여러 차례 불평과 갈등의 주체로 등장한다. 사사기 8장과 12장에서는 다른 지파들과의 분쟁이 기록되어 있으며, 자신들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분노와 폭력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의 뿌리는 여호수아 16장 10절에 이미 암시되어 있다. 에브라임은 가나안 족속을 온전히 쫓아낼 수 있었음에도, 완전한 순종 대신 부분적 해결을 선택했다. 이 작은 미완이 시간이 지나며 교만과 영적 둔감함으로 발전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에브라임을 향해 반복적으로 책망한다. 우상숭배, 형식적인 제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상실은 결국 에브라임의 대표적 이미지가 된다. 이는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자일수록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4. 사사기와의 연결 – 남겨둔 것이 신앙을 잠식할 때

사사기서는 여호수아서와 달리 승리보다 반복되는 실패를 기록한다. 그 공통된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했다는 점이다. 에브라임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었던 선택은, 사사기 시대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된다.

남겨둔 가나안 족속은 곧 우상의 통로가 되었고, 신앙의 순수성을 흐렸다. 이는 신앙이 단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타협과 방치 속에서 서서히 변질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5. 오늘의 신앙인을 향한 질문 – 나는 어떤 에브라임인가

에브라임 지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신앙의 중심에 있는 사람,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 말씀과 사역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이미 받은 은혜에 안주하며, 더 이상 철저히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분명히 정리해야 할 삶의 영역을 ‘이 정도면 괜찮다’며 남겨두고 있지는 않은가.

에브라임은 약속을 받은 지파였고, 중심에 있었으며, 많은 것을 누렸다. 그러나 끝까지 깨어 있지 못했을 때, 그 중심성은 오히려 타락의 통로가 되었다. 이는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경고이자 교훈이다.


6. 결론 – 중심에 설수록 더욱 온전해야 한다

여호수아 16장과 에브라임 지파의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위치가 클수록, 요구하시는 순종 또한 깊고 철저하다.

부분적 순종은 결국 불순종으로 이어진다. 남겨둔 가나안 족속은 언젠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반대로, 온전한 순종은 약속의 땅을 진정한 안식의 장소로 바꾼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가. 에브라임처럼 중심에 있으나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맡겨진 자리에서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설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각자의 믿음은 시험을 받는다.


 

여호수아 15:20~63

아래는 여호수아 15장 20절부터 63절까지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5:20~63 (개역개정)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쪽 끝은 에돔 경계까지이니 남쪽 끝은 신 광야 곧 가데스바네아 남쪽이요
22 또 가비롯과 아달과 야글룻과
23 긴과 디모나와 아다다와
24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5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6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7 아맛과 세마와 몰라다와
28 하살갓달과 헤스몬과 벧벨렛과
29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30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1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2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33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34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5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6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7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 곧 열네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38 드나와 네봇과 글일라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람맘과 기딜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이니 모두 열여섯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이니 모두 아홉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45 에그론과 그 촌락들과 마을들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47 아스돗과 그 촌락들과 마을들, 가사와 그 촌락들과 마을들 곧 애굽 시내와 대해 곧 지중해까지이었더라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아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이니 모두 열한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다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이니 모두 열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랍바이니 모두 두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61 광야에는 벧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소금 성읍과 엔게디이니 모두 여섯 성읍과 그 촌락이었더라

63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유다 지파의 기업 목록이 말해 주는 약속의 신실함

여호수아 15장 20절–63절 묵상과 해석

1. 본문으로 들어가며

여호수아 15장 20절부터 63절까지의 말씀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명과 숫자, 지역 구분은 얼핏 보면 단순한 행정 기록이나 고대 지리 문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한 땅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신앙의 기록이다.

특히 본문은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 전체를 정리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이 더 이상 추상적인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터전으로 주어졌음을 증언한다. 동시에, 마지막 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와 미완의 순종은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중요한 성찰의 지점을 제공한다.


2. 본문 요약: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땅

여호수아 15장 20절은 선언으로 시작한다.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이 한 문장은 이후 이어지는 방대한 지명 목록의 신학적 성격을 분명히 한다. 이 땅은 정복의 결과물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기업이다.

본문은 유다 지파의 영토를 네 가지 주요 지역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남방 지역이다. 에돔 경계와 신 광야를 포함한 남쪽 땅은 척박하고 거친 지역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서 농경 사회로 전환되는 경계선이었다. 이곳에는 브엘세바, 시글락과 같은 중요한 거점들이 포함된다.

둘째, 평지 지역이다. 이 지역은 블레셋 세력과 맞닿은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아둘람, 라기스, 마레사와 같은 도시들이 등장한다. 이는 유다 지파가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군사적·정치적 긴장을 예고한다.

셋째, 산지 지역이다. 헤브론과 드빌이 속한 이 지역은 유다 지파의 중심부로, 신앙적·정체성적 핵심 공간이다. 특히 헤브론은 아브라함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약속의 장소로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넷째, 광야 지역이다. 엔게디와 소금 성읍이 포함된 이 지역은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 또한 기업으로 주셨다. 이는 약속의 땅이 항상 풍요로운 땅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3. 신학적 해석: 땅은 소유가 아니라 은혜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읽어야 할 신학적 메시지는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다. 유다 지파는 전쟁을 통해 땅을 차지했지만, 본문은 단 한 번도 인간의 공로나 전략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성읍과 촌락이 언급되며, 이는 하나님께서 빠짐없이 기억하시고 나누어 주셨음을 암시한다.

지명 하나하나는 그저 행정 단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세부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큰 틀의 약속만 이루시는 분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작은 성읍과 마을까지도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다.

또한 각 지역의 특성은 하나님의 기업이 각 사람의 삶의 조건에 맞게 다르게 주어짐을 상징한다. 어떤 땅은 비옥하고, 어떤 땅은 거칠며, 어떤 땅은 늘 전쟁의 위협 속에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땅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차별은 없다.


4. 구조적 이해: 목록 속에 숨은 질서

본문의 구조를 보면 결코 무질서하지 않다. 남방, 평지, 산지, 광야라는 지역 구분은 질서의 하나님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혼란 가운데 임의로 땅을 나누지 않으셨고, 지파의 삶과 사명을 고려하여 기업을 분배하셨다.

특히 유다 지파는 정치적·영적 중심 지파로서 넓은 영토와 다양한 지형을 함께 받았다. 이는 훗날 다윗 왕조와 메시아적 전통으로 이어지는 유다 지파의 역할을 미리 보여 준다. 기업의 크기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을 의미한다.


5. 여호수아 15장 63절: 미완의 순종

본문의 마지막 절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이 말씀은 승리와 분배의 기록 한가운데 던져진 불편한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주셨지만, 유다는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여부스 족속은 오늘까지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고 기록된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한 순종이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어떻게 지연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 미완의 정복은 훗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6. 오늘을 위한 묵상

이 말씀을 오늘의 삶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직업일 수도 있고, 가정일 수도 있으며, 신앙 공동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업이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리라는 인식이다.

또한 여호수아 15장 63절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앞에서 끝까지 순종하고 있는가, 아니면 적당한 타협 속에 머물러 있는가.

우리 삶의 예루살렘, 곧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기 원하시는 영역에 아직 쫓아내지 못한 여부스 족속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7.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 15장의 말씀을 통해
제가 받은 삶의 자리가 우연이 아니라
주의 약속에서 비롯된 기업임을 다시 고백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성읍 하나까지도
잊지 않으시고 기록하신 주님처럼
제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주께서 붙들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그러나 유다 지파처럼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모습이
제 안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타협 속에 남겨 둔 죄와 두려움,
쫓아내지 못한 습관들을
주님의 능력으로 정리하게 하소서.

저에게 주어진 기업을
소유가 아닌 책임으로 여기며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요 지명들의 상징적 의미

성읍 이름들은 단순한 지리가 아니라 영적 메시지의 저장고와 같다.

브엘세바

뜻: 맹세의 우물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앙 유산이 남아 있는 장소로, 언약의 기억이 삶의 터전이 되는 지점을 상징한다.

헤브론

뜻: 연합, 교제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이자 갈렙이 기업으로 받은 땅이다. 믿음의 인내가 결국 약속의 실체를 얻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드빌

뜻: 말씀의 장소
원래 이름은 기럇 산나(책의 성읍). 말씀과 정복이 분리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기준임을 상징한다.

엔게디

뜻: 샘의 염소
광야 한복판의 오아시스. 다윗이 피난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광야 속에서도 하나님은 생명의 샘을 예비하신다는 은혜의 상징이다.

예루살렘

완전히 정복되지 못한 성
하나님의 도성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완전한 순종으로 인해 남겨진 과제의 공간이다. 이는 믿음의 중심일수록 더 철저한 순종이 요구됨을 보여 준다.


♥. 유다 지파와 메시아 신학의 연결

유다 지파는 단순한 열두 지파 중 하나가 아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이미 야곱은 말한다.
왕권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15장에서 유다 지파가 가장 넓고 다양한 기업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메시아의 계보가 시작될 땅을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고, 예루살렘이 수도가 되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신다. 따라서 유다의 기업은 단순한 영토가 아니라 구속사의 무대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메시아의 계보가 시작될 유다 지파조차 완전한 순종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완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여호수아 15:13~19

여호수아 15장 13절에서 19절까지의 개역개정 성경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5:13–19 (개역개정)

 

갈렙에게 주어진 헤브론과 드빌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이 본문은 갈렙이 믿음으로 헤브론을 차지하고, 그의 딸 악사와 사위 옷니엘에게 기업이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여호수아 15:13–19절 말씀 묵상: 믿음의 유업을 쟁취하라

여호수아 15장 13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 중, 갈렙이 믿음으로 자신의 분깃을 쟁취하고 그 유업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확장시키는 중요한 서사적 전환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 원리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용기, 지혜, 그리고 신앙적인 순종의 모습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1. 본문 요약 (Summary of the Text)

이 구절은 유다 지파에게 기업이 분배되는 과정에서 특별히 갈렙에게 주어진 기업에 대한 기록입니다.

1.1. 헤브론의 획득 (13–14절)

  • 분깃의 수여 (13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는 기럇 아르바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분깃으로 줍니다. 이 땅은 과거 아낙의 아버지였던 아르바의 이름을 딴 곳이며, 거인족인 아낙 자손이 거주하던 곳입니다.

  • 아낙 자손의 축출 (14절): 갈렙은 그곳에서 강력한 거인족인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세새, 아히만, 달매)을 쫓아냅니다. 이는 45년 전 모세 앞에서 했던 믿음의 고백(“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을 실현한 것입니다.

1.2. 드빌의 정복과 악사의 결혼 (15–17절)

  • 드빌 정복 명령 (15절): 갈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남쪽 산지로 진군하여 드빌 주민을 칩니다. 드빌의 본래 이름은 기럇 세벨입니다.

  • 사위 모집 (16절): 갈렙은 이 드빌 정복을 위해 공개적인 제안을 합니다.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 옷니엘의 승리 (17절):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이 도전에 응하여 드빌을 점령하였고, 갈렙은 약속대로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이 옷니엘은 후에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가 됩니다.

1.3. 샘물의 청원과 응답 (18–19절)

  • 밭과 샘물의 청원 (18–19a절): 악사가 옷니엘에게 시집갈 때, 악사는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고 청하며 나귀에서 내려 청원합니다. 갈렙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악사는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라고 간청합니다. 네겝 땅은 건조한 남쪽 지역을 의미합니다.

  • 갈렙의 응답 (19b절): 갈렙은 악사의 요청에 응하여 윗샘과 아랫샘을 모두 주었습니다. 이는 갈렙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이고 풍요로운 유산을 베푼 것입니다.


2. 신학적 해석 (Theological Interpretation)

이 구절은 단순히 한 지파의 영토 확장을 넘어, 구원론하나님 나라의 기업에 대한 깊은 신학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2.1. 언약 성취의 모범

갈렙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인간의 믿음이 어떻게 언약의 성취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모범입니다.

  • 45년 전의 약속 성취: 민수기 14장에서 갈렙은 다른 10명의 정탐꾼과 달리 “온전히 여호와를 좇았”기에 (민 32:12), 하나님은 그에게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신 1:36). 여호수아 15장 13절은 이 약속이 정확히 성취되었음을 선언합니다.

  • 은혜와 책임의 조화: 갈렙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은혜), 그는 스스로 나아가 그 땅의 거인족 아낙 자손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인간의 책임/순종).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지만, 그 은혜를 누리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2.2. 믿음으로 쟁취하는 영적 전투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두려워했던 땅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만든 근원지였습니다. 갈렙이 그곳을 정복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 믿음의 용기: 아낙 자손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과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갈렙의 정복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거대한 불의나 개인적인 두려움(아낙 자손)에 직면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히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의 원리를 확증합니다.

  • 신앙의 계승: 갈렙은 드빌 정복이라는 도전을 통해 자신의 영적 투지를 사위인 옷니엘에게 전수합니다. 옷니엘은 이 도전을 통해 믿음과 용기를 증명했고, 이스라엘의 첫 사사라는 중요한 리더십을 맡게 됩니다. 이는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뿐 아니라 삶의 도전을 통해 후대를 훈련시켜야 함을 시사합니다.

2.3. 샘물의 축복: 충만한 공급

악사가 요구한 샘물과 갈렙이 준 윗샘과 아랫샘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 성령의 상징: 건조하고 메마른 네겝 땅에서 생명과 번영을 약속하는 샘물은 성령님의 충만한 공급을 상징합니다. 밭(기업)을 받았을지라도 샘물(성령)이 없으면 그 밭은 황폐해집니다.

  • 충만한 은혜: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모두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주시는 은혜를 반영합니다 (엡 3:20). ‘윗샘’은 하늘에서 오는 영적인 은혜와 지혜를, ‘아랫샘’은 땅에서 누리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축복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 둘의 조화로운 공급을 의미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Related Scriptures)

갈렙의 이야기는 그의 신앙적 궤적을 보여주는 다른 구절들과 연결되어 깊은 이해를 돕습니다.

구절 내용 신학적 연결고리
민수기 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이 약속의 기업을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온전한 순종을 밝힙니다.
여호수아 14:8–12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하며,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45년 동안 변치 않은 갈렙의 믿음의 담대함노년의 영적 패기를 보여줍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갈렙의 아낙 자손 축출이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상징임을 깨닫게 합니다.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악사의 샘물 요구가 상징하는 성령의 충만함영적 생명의 근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습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In-depth Meditation)

이 본문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분깃’**과 **’샘물’**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심오한 묵상거리를 제공합니다.

4.1. 멈추지 않는 믿음의 전진 (정복하는 신앙)

갈렙의 삶은 멈추지 않는 믿음의 전진을 상징합니다. 그는 나이 85세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렵고 위험한 땅인 헤브론을 요구했으며, 아낙 자손을 쫓아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정복지인 드빌로 나아갑니다.

  • 현대적 아낙 자손: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아낙 자손’**이 존재합니다. 이는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죄의 유혹, 극복하기 힘든 정서적 상처, 또는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는 세상의 거대한 불신과 타협일 수 있습니다. 갈렙은 이 ‘아낙 자손’을 쫓아내기 위해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직접 나섰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이 ‘아낙 자손’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영적 책임을 묵상해야 합니다.

  • 리더십의 전수: 갈렙은 드빌 정복을 사위 옷니엘에게 맡김으로써, 자신의 비전과 믿음을 다음 세대에게 행동으로 전수했습니다. 진정한 영적 리더십은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그보다 더 큰 믿음의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기회와 동기를 부여하는 데 있음을 깨닫습니다.

4.2. 간절한 청원과 풍성한 응답 (악사의 청원)

악사의 요청은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지혜로운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밭(땅)을 받았으나, 그 땅을 비옥하게 할 샘물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본질을 구하라: 악사는 밭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그 밭에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원적인 요소인 샘물을 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축복이나 사회적 성공(밭)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속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샘물)**을 더욱 간절히 구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 윗샘과 아랫샘: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모두 주었다는 것은 완전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흔히 영적인 축복(윗샘)과 세상적인 축복(아랫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뜻 안에서 이 두 가지 축복을 조화롭게, 그리고 풍성하게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윗샘” 곧 영적 충만함을 먼저 구하고, 그 위에서 “아랫샘” 곧 현실적인 필요를 구하는 균형 잡힌 기도가 되어야 함을 묵상합니다.


5. 기도문 (Prayer)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여호수아 15장 13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용기와 유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갈렙이 85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가장 어렵고 견고한 땅, 헤브론의 아낙 자손을 쫓아냈던 것처럼, 저희도 삶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영적 아낙 자손, 곧 저희의 게으름, 불신, 불안, 그리고 오래된 죄의 습관을 담대히 쫓아낼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이미 주신 믿음의 기업을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순종과 전진을 통해 그 유업을 온전히 쟁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옷니엘이 갈렙의 도전에 응하여 드빌을 정복하고 믿음의 계보를 이었듯이, 저희도 다음 세대에게 말씀과 삶의 모범을 통해 믿음의 용기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전수하는 신앙의 리더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사가 네겝 땅의 밭을 받았을 때 샘물을 간절히 구했던 것처럼, 저희가 세상의 그 어떤 좋은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충만함 없이는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임을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윗샘을 주셔서 하늘의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을 더하여 주시고, 또한 아랫샘을 주셔서 저희의 일상과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셔서, 저희의 삶이 메마른 네겝 땅이 아니라 생수가 흘러넘치는 에덴의 동산과 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저희에게 맡겨진 분깃을 믿음으로 완성하는 순종의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수아 5:1~12

여호수아 5장 1절부터 12절까지 본문 (개역개정)

1 요단 서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모든 왕들과 바닷가에 있는 가나안 족속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마르게 하사 이스라엘 자손이 건너게 하심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녹아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다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날카로운 칼들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날카로운 칼들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였으니

4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나온 모든 백성은 할례를 받았으나 나온 후 광야 길에서는 태어난 모든 백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방황하였으므로 그 군사 곧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한 모든 백성은 다 멸망하였으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 하신 그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신지라

7 그들의 대를 이어 대신하게 하신 이들 곧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대신 세운 이 자손들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무할례자였음이더라

8 또 온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기를 마치매 그들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러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오늘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시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여리고 평지에서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그 날에 먹었더라

12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었더라

 

여호수아 15장 1절~12절 말씀 묵상
유다 지파의 경계, 약속의 땅을 구체적으로 받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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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본문 요약

여호수아 15장 1절부터 12절은 가나안 땅 분배 과정 가운데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의 경계를 상세하게 기록한 본문이다. 이 구절은 단순히 지리적 정보를 나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현실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은 유다 자손이 제비를 뽑아 받은 땅이 에돔 경계 곧 신 광야에 이르러 남쪽 끝에 닿았음을 밝히며 시작한다. 남쪽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과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를 통과하여 헤스론, 앗달, 갈가, 아스몬을 거쳐 애굽 시내에 이르고 바다에 닿는다. 이어 동쪽 경계는 소금 바다 끝, 즉 사해이며 북쪽 경계는 요단 하구에서 시작해 벧호글라, 벧아라바, 르우벤 자손의 보한의 돌을 지나 아골 골짜기, 데빌, 아둠밈 비탈, 엔세메스와 엔로겔에 이른다. 서쪽 경계는 큰 바다와 그 해변으로 정해진다.

이 본문은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이 광범위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유다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암시한다.

Ⅱ. 신학적 해석

이 본문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 매우 구체적으로 경계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막연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분이 아니라, 어느 골짜기, 어느 비탈, 어느 바다까지인지를 분명히 정해 주시는 분이시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을 말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성취하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유다 지파의 땅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유다는 야곱의 축복 가운데서도 왕권의 약속을 받은 지파였으며, 훗날 다윗 왕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혈통이다. 하나님은 이미 땅 분배 단계에서 유다를 중심 지파로 세우고 계신다. 이는 인간의 역사 너머에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을 보여준다.

또한 이 경계의 서술은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땅까지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이 땅은 이미 주어졌지만 동시에 앞으로 믿음으로 정복해 나가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게 “이만큼이 네 땅이다”라고 선포하시지만, 실제로 그 땅을 누리기 위해서는 순종과 믿음의 싸움이 필요했다. 이 점에서 본문은 신자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이미 확정된 약속이지만, 그것을 누리는 과정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한다. 이것이 여호수아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 중 하나이다.

Ⅲ. 관련 말씀 구절

이 본문과 깊이 연결되는 말씀들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12장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 유다 지파의 땅 분배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이다.

창세기 49장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 유다는 통치와 구속사의 중심 지파로 선택되었다.

여호수아 1장 3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 땅은 이미 주어졌으나 실제로 밟고 살아가야 할 책임이 따른다.

히브리서 11장 9절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 약속의 땅은 믿음으로 살아내는 삶의 자리이다.

Ⅳ. 깊이 있는 묵상

이 본문을 묵상하다 보면, 우리는 흔히 성경 속 “땅”을 너무 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여호수아 15장은 하나님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자리까지 관여하시는 분인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경계, 책임의 자리까지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에게도 유다 지파처럼 각자의 “경계”가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자리, 직업, 가정, 관계, 사명의 범위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기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다의 땅은 넓었지만, 그 안에는 광야도 있었고 험한 비탈도 있었다. 약속의 땅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 주신 땅이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고된 환경 속에서도 “이곳이 하나님이 주신 자리”라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해석하고 견뎌내는 힘이다.

또한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은 책임도 분명하다는 뜻이다. 내게 허락된 땅을 지키고 가꾸는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사명이 있다.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은 훗날 다윗의 왕국으로, 또 메시아의 길로 이어진다. 오늘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큰 이야기 속에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Ⅴ.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 15장의 말씀을 통해
주께서 약속하신 기업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분명한 경계와 자리 속에서
저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남과 비교하며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서 있는 이 땅, 이 시간, 이 삶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업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소서.

광야 같아 보이는 자리에서도
주님의 약속이 이미 주어졌음을 믿게 하시고,
순종으로 한 걸음씩 그 땅을 밟아가게 하소서.

유다 지파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제 삶 또한 주님의 큰 뜻 안에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제 삶의 경계를 정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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