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유혹 – 이효석

 

이효석 『도시와 유혹』 깊이 읽기

도시가 품은 욕망과 인간 내면의 균열을 바라보며

이효석은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상징적 표현, 도시와 농촌 사이의 갈등 구조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해 온 문인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져 있으나 의미 깊은 소설 **『도시와 유혹』**은 근대 도시의 팽창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블로그 독자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작품의 줄거리, 주제의식, 인물 분석, 역사적 배경, 그리고 개인 감상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작품 줄거리 요약

『도시와 유혹』의 중심에는 급격히 근대화되는 도시를 배경으로, 도시가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쾌락·자유에 마음을 빼앗기고 흔들리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리합니다.

주인공 민우는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동경을 품고 서울로 올라온 인물입니다. 그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고 새로운 인맥을 만들며 빠르게 도시문화에 적응해 갑니다. 하지만 도시의 화려함은 동시에 민우에게 끝없는 비교와 경쟁, 욕망의 반복을 요구합니다.

민우는 직장 동료이자 세련된 도시 여성인 선미에게 끌리게 됩니다. 선미는 도시적 세련미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닌 인물로, 민우에게는 그 자체로 도시의 매력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선미의 삶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달리 불안한 정서와 정착하지 못하는 공허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민우의 고향에서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 온 순박한 여성 정혜는 민우가 도시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졸입니다. 정혜는 민우에게 고향의 안정과 진정성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결국 민우는 도시의 유혹과 고향의 안정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도시의 화려한 삶이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작품의 핵심 갈등 구조를 형성합니다.

작품은 민우가 도시적 욕망과 인간적 진정성 사이에서 어떤 결말을 선택하는지 직접적으로 단정짓기보다는, 도시가 한 인간에게 던지는 불안과 매혹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여지를 남기며 끝을 맺습니다.


주제의식 분석

『도시와 유혹』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 중심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도시 문명에 대한 매혹과 불안

이효석은 도시를 단순히 공간적 배경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도시 자체가 유혹의 주체, 즉 등장인물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힘으로 등장합니다.
도시는 화려함과 기회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끝없는 욕망과 피로, 고립과 상실을 제공하는 양가적 존재입니다. 작품 제목이 직접적으로 말하듯, 도시는 곧 유혹이며, 유혹은 인간 내부의 결핍을 자극하는 힘입니다.

2. 근대화가 가져온 정체성의 혼란

193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와 근대 문명의 유입을 경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공동체적 가치와 전통적 관계망은 흔들렸고, 개인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다시 설정해야 했습니다.
민우의 혼란과 갈등은 바로 근대적 개인이 겪는 정체성 위기를 대변합니다.

3. 인간 본질의 회복 가능성

이효석은 도시적 유혹의 세계를 관찰하면서도, 인간이 결국 회귀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성, 안정, 관계의 본래적 의미라고 말합니다. 정혜의 존재는 단순한 순박한 여성상을 넘어서, 근원적 인간성과 순수의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작가는 도시의 유혹이 인간을 끊임없이 흔들지만, 인간은 결국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인물 분석

민우 – 도시적 욕망과 인간적 진정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

민우는 도시문명 속 개인의 흔들림을 체현한 인물입니다.
그는 야망과 자유를 좇아 도시로 향하지만, 도시가 요구하는 경쟁과 소비적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공허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민우는 도시가 품은 가능성과 유혹, 그리고 인간 내부의 욕망을 동시에 담아낸 복합적 캐릭터입니다.

선미 – 도시의 화려함과 불안함을 함께 지닌 인물

선미는 도시를 상징하는 여성입니다. 세련되고 매력적이며, 속도와 변화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정착을 하지 못하고 불안한 감정을 내면에 품고 있습니다.
그녀는 민우에게 강렬한 유혹이자, 도시가 제공하는 쾌락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민우가 마주한 도시적 공허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혜 – 고향과 진정성의 표상

정혜는 전통적이고 안정된 삶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존재는 독자가 도시와 농촌, 유혹과 안정 중 무엇이 인간에게 더 본질적인 가치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민우가 잃어버릴 뻔한 인간적 순수와 관계의 의미를 정혜가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역사·사회적 배경

『도시와 유혹』은 1930년대 조선의 근대화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1. 급격한 도시화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 인구가 증가하며 근대적 상점, 극장, 카페 등이 등장하던 시기입니다.
도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양식을 제공했고, 젊은 세대에게는 기회의 장소로 보였습니다.

2. 전통적 가치의 흔들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공동체 중심의 삶이 해체되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대두했습니다.
이는 인간관계와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문학 역시 이런 갈등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3. 식민지 시대의 억압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시기는 식민지 현실이 일상 곳곳에 영향을 미치던 시대입니다.
민우와 같은 인물이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하지만 끝내 불안과 공허에 부딪히는 모습은, 식민지 근대가 지닌 모순을 암시적으로 드러냅니다.


작품 감상과 해석

『도시와 유혹』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껴지는 점은 이효석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상징적 장치입니다.
도시는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흔드는 거대한 상징적 존재로 등장합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빠른 속도, 세련된 사람들, 소비문화 등이 한꺼번에 민우를 압도합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도시는 정말로 나에게 기회를 주는 곳인가?
아니면 끝없는 비교, 소비, 불안만을 가져오는 공간인가?
나는 도시가 던지는 유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특히 선미라는 캐릭터는 도시의 양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로 인상 깊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불안한 그녀의 모습은 도시가 사람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항상 피상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반면 정혜는 도시의 유혹과는 반대축에 서 있는 존재로서, 인간이 결국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삶의 본질, 관계의 진정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날의 독자가 이 작품을 읽을 때, 90년 전의 도시가 아니라 지금의 초연결·초경쟁·과몰입적 도시문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이효석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도시는 달라졌지만, 도시가 인간에게 던지는 유혹과 흔들림은 그대로다.
바로 이것이 작품이 지닌 현대적 가치입니다.


맺음말

『도시와 유혹』은 화려함의 뒤편에 숨은 도시의 진짜 얼굴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효석은 도시라는 무대를 통해 인간의 욕망, 공허, 갈등, 그리고 진정성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한 인간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명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독자는 도시가 주는 유혹이 결코 단순한 외적 현상이 아니라, 내면의 결핍을 반영하는 거울임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도시와 유혹』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의 독자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유적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이효석 작가 소개

한국 단편문학의 미학을 완성한 작가

한국 근대문학을 논할 때, 이효석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가입니다. 그는 자연을 향한 예민한 감수성과 도시 문명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을 동시에 지닌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히 작품 속에 흐르는 서정성과 상징성은 한국문학의 미적 지평을 한 단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생애와 문학적 출발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며 풍부한 감수성을 키웠고, 이러한 배경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깊이 반영됩니다. 경성제대 예과에서 문학적 영향력을 넓히던 그는 1928년 동아일보에 단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이 돋보였던 그는 도시의 변화, 관능적 묘사, 인간 내면의 갈등,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기록해 한국문학의 신선한 감수성을 이끌어냈습니다.


문학의 특징

이효석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1. 서정성과 관능미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감각적 묘사가 뛰어나며, 때로는 관능적 분위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각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 찬미를 넘어 인간 심리와 욕망을 자연에 비추어 표현하는 독자적 미학을 세워줍니다.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은 이러한 서정적 특징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2. 도시와 농촌의 대비

이효석은 도시 문명의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감정과 삶을 예리하게 포착했습니다. 도시의 화려함과 공허함, 농촌의 편안함과 고립을 대비하며 인간이 느끼는 갈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냈습니다.
『도시와 유혹』, 『화분』 등 여러 작품이 도시적 감수성을 탐구하며 시대의 변화를 문학적으로 해석합니다.

3. 상징과 세밀한 심리 묘사

그의 문장은 종종 상징적 구조를 띠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이미지와 분위기를 통해 암시하는 방식이 많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문학적 매력입니다.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서정적 묘사와 아련한 감정선, 선형적이면서도 상징적 구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도시와 유혹

근대 도시가 가져온 변화와 유혹을 심리적으로 탐색한 작품으로, 도시적 감수성이 두드러집니다. 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인간의 공허함을 섬세하게 드러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강원도의 풍광과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인간 관계를 예민하게 관찰한 작품입니다.

이름처럼 농촌과 자연의 세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문학사적 위치와 평가

이효석은 한국문학에서 서정적 단편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자연 묘사와 심리묘사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문학적 깊이뿐 아니라 감각적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국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합니다.

  • 자연과 감각적 이미지의 결합
  • 근대 도시문명에 대한 예리한 탐구
  • 인간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는 능력
  • 한국 단편문학의 미학적 정립

그의 비교적 짧은 생애는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짧은 기간 동안 남긴 작품의 영향력은 지금도 건재합니다.


맺음말

이효석은 단순히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한 작가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 현대성과 전통, 욕망과 순수성 같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섬세하게 탐구한 사유적 작가입니다. 그의 문학은 시간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고, 오히려 현대인의 삶 속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3:15~33

아래는 여호수아 13장 15절~33절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13장 15절~33절 (개역개정)

15 여호수아가 루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들의 가족을 따라 기업을 주었으니
16 그들의 지역은 아르논 골짜기 가의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미드바에 있는 메데바까지며
17 헤스본과 그 들에 속한 모든 성읍과 디본과 바못바알과 벧바알므온과
18 야하스와 그데못과 메바앗과
19 기랴다임과 십마와 골짜기 가운데의 세렛산과
20 벧브올과 비스가 산 기슭과 벧여시못이며
21 평지의 모든 성읍과 헤스본의 왕 시혼의 온 나라라. 모세가 시혼을 쳐 죽인 사람의 방백들 곧 미디안의 방백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르바와 시혼과 함께 거기에 살던 그 족속의 고관들을 죽였었더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죽일 때에 부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로 죽였었더라.
23 루벤 자손의 서쪽 경계는 요단과 그 가였으니 이는 루벤 자손이 가족을 따라 받은 기업으로 성읍들과 그 들이었더라.

24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들의 가족을 따라 기업을 주었으니
25 그들의 지역은 야셀과 길르앗의 모든 성읍과 암몬 자손의 땅 절반과 라바의 앞 바아롯까지와
26 헤스본에서부터 라맛미스베와 브드님까지와 마하나임에서부터 릿봇으로 가는 데벨까지와
27 골짜기 가운데의 벧하람과 벧니므라와 숙곳과 사본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요단 건너편 동쪽 긴네렛 바다 가까지이니
28 이는 갓 자손이 가족을 따라 받은 기업으로 그 성읍들과 그 들이었더라.

29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기업을 주었으니 므낫세 반 지파가 그들의 가족을 따라 받은 것이 이러하니라.
30 그 지역은 마하나임에서부터 온 바산 곧 바산 왕 옥의 온 나라와 야일의 모든 촌락, 곧 바산에 있는 육십 성읍이며
31 길르앗 절반과 바산 왕 옥의 나라 성읍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라. 이는 므낫세의 아들 마길 자손의 것이 되었고 마길 자손은 그들의 가족을 따라 이것을 받았더라.

32 이것은 모세가 요단 저편 여리고 맞은편 동쪽 모압 평지에서 분배한 기업이었더라.
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라.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 같았더라.


 

 

여호수아 13장 15절~33절 묵상

요단 동편의 기업과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업


1. 본문 요약

여호수아 13장 15절부터 33절까지는 요단 동편 지역을 기업으로 받은 세 지파, 즉 루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된 땅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이 부분은 다소 지리적 설명이 많아 단순한 땅 분배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실제로 누리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과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먼저 루벤 지파는 아르논 골짜기에서 메데바까지 이르는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으며, 헤스본과 평지의 여러 성읍이 포함된다. 특히 이 지역은 한때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던 땅으로, 모세 시대에 이미 정복된 지역이었다. 본문은 루벤 지파의 기업을 설명하면서 당시 이스라엘이 시혼 왕과 함께 그를 따르던 미디안의 방백들과, 점술가 발람까지 죽였음을 언급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셨음을 상기시킨다.

이어 갓 지파에게는 야셀, 길르앗 지역, 그리고 긴네렛 바다(갈릴리 호수) 동쪽까지 이어지는 넓은 지역이 기업으로 주어졌다. 이 땅 역시 과거 시혼의 나라였고, 비옥하며 목축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므낫세 반 지파는 바산 왕 옥의 나라 전역, 곧 60개의 성읍이 포함된 바산 지역과 길르앗 절반을 기업으로 받았다. 옥은 거대한 용사로 유명했으며, 그의 나라는 매우 강성했기에 이 지역의 분배는 하나님의 크신 승리를 상기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레위 지파에는 기업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는 땅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체를 누리는 특별한 은혜였다.


2. 신학적 해석

1) 땅의 분배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

이 본문은 단순한 행정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기업이 실제 역사 속에서 성취되는 장면이다. 특히 요단 동편의 정복은 이미 모세 시절에 진행되었지만, 그 땅이 기업으로 확정되어 실제 지파들에게 분배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드러낸다.

2) 기업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싸우심으로 주어진 것

본문 중간에 시혼과 그의 방백들, 그리고 발람을 언급한 이유는 땅의 분배가 단순히 인간의 군사력으로 된 결과가 아님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에 기업이 가능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모든 축복의 궁극적 근거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 역사에 있음을 보여 준다.

3) 레위 지파의 기업이 다른 지파와 다른 이유

가장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 중 하나는 33절의 선언이다.
레위 지파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다.

이는 두 가지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 첫째,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세상의 소유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큰 기업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 둘째, 영적 리더십은 세속적 축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하나님과의 직접적 교제와 봉사 그 자체가 복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가시적 성취가 아닌 하나님 자신을 가장 큰 기업으로 삼아야 한다.

4) 요단 동편의 기업을 선택한 지파들의 특징

민수기 32장에 따르면 루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목축에 적합한 요단 동편을 스스로 요청했다. 이 선택은 하나님이 허락하셨지만, 동시에 이들이 약속의 땅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를 선택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는 곧 하나님의 가장 온전한 뜻보다 눈앞의 유익을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요청 속에서도 은혜로 그들의 기업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훗날 역사 속에서 요단 동편 지파들은 외적 침략에 더 취약하게 되고, 북이스라엘 멸망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지파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과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면 영적으로도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영적 교훈이다.


3. 관련 말씀

  • 신명기 10:9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고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시니…
  • 시편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에베소서 1:18
    성도 안에서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4. 깊이 있는 묵상

여호수아 13장은 이스라엘이 아직 완전히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 이미 정복한 지역을 먼저 분배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이 과정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약속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주시는 과정과도 같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구현되는 과정은 더디고 복잡하게 느낀다. 그러나 여호수아 13장은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성취는 때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또한 루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유익이 항상 최고의 선택은 아님을 묵상하게 된다. 그들은 당장의 풍요를 보았고, 목축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요단 동편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허락하셨지만, 그 선택은 장기적으로 위협과 고립을 초래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경고가 된다. 우리는 종종 당장의 편리, 유익, 안전을 기준으로 선택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중심에 머무르는 길이 더 안전하고 더 복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레위 지파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본질을 일깨워 준다.
우리의 참된 기업은 하나님이시다.
집, 직장, 재산, 성공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기업이 우리의 존재를 붙들어 준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진정한 기업인가?
무엇이 나의 삶을 구성하고,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레위 지파가 받았던 은혜로운 선언을 다시 들을 필요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 되신다.


5. 기도문

주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 13장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다시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루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받은 기업을 통해
당신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또 실제적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우심과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눈이 때때로 요단 동편의 풍요를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당장의 유익과 편리를 선택하려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 비록 좁아 보일지라도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임을 믿게 하소서.

특별히 레위 지파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십니다.
세상의 어떤 소유보다 하나님 당신을 더 갈망하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우리의 안정과 기쁨과 희망이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기업 되심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