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7:25~34 – #왕의재산관리자 #밭과포도원과감람나무 #소떼와양떼와낙타 #충성된청지기 #아히도벨과후새 #여호나단과여히엘 #왕의측근모사들 #각자의은사와청지기신앙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역대상 27:25~34

 

25 아스마웹의 아들 아스마스벳은 왕의 곳간을 맡았고 웃시야의 아들 요나단은 밭과 성읍과 마을과 망대의 곳간을 맡았고
26 글룹의 아들 에스리는 밭 가는 농민을 거느렸고
27 라마 사람 시므이는 포도원을 맡았고 스밤 사람 삽디는 포도원의 소산 포도주 곳간을 맡았고
28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
29 사론 사람 시드래는 사론에서 먹이는 소 떼를 맡았고 아들래의 아들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 떼를 맡았고
30 이스마엘 사람 오빌은 낙타를 맡았고 메로놋 사람 예드야는 나귀를 맡았고 하갈 사람 야시스는 양 떼를 맡았으니
31 다윗 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32 다윗의삼촌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 서기관도 되었고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은 왕자들의 수탁자가 되었고
33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아비아달은 아히도벨의 뒤를 이었고 요압은 왕의 군대 지휘관이 되었더라

 

한 줄 묵상

 

왕궁의 화려한 보좌 뒤편에서 밭과 가축과 기름을 묵묵히 돌보던 청지기들과 지혜로 곁을 지킨 모사들처럼, 각자에게 맡겨진 고유한 삶의 터전에서 성실을 다할 때 하나님 나라의 견고한 기틀이 세워집니다.

 

본문 요약

 

다윗은 왕국의 국고와 산업 자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경영하기 위해 각 분야의 재산 관리 책임자들을 세웁니다. 왕궁과 지방 곳간을 담당하는 아스마스벳과 요나단, 밭갈이를 지휘하는 에스리, 포도원과 포도주 저장고를 맡은 시므이와 삽디, 평야의 올리브나무와 뽕나무 및 기름 창고를 관리하는 바알하난과 요아스를 임명합니다. 또한 사론 평야와 골짜기의 소 떼를 비롯해 낙타와 나귀, 양 떼를 돌보는 목축 책임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데, 이스마엘 사람 오빌과 하갈 사람 야시스 등 이방 출신의 전문가들도 포함됩니다. 이어 다윗의 내각을 구성하는 핵심 참모들의 명단이 소개됩니다. 지혜로운 삼촌 요나단은 모사이자 서기관으로, 여히엘은 왕자들의 교육과 양육을 맡았으며, 아히도벨은 탁월한 책략가로, 후새는 진실한 왕의 벗으로 섬깁니다. 이후 브나야와 아비아달이 조력자로 섰고 요압이 군대 총사령관으로 다윗의 통치를 뒷받침합니다.

 

신학적 해석

 

첫째, 일상적 노동의 거룩성과 ‘청지기 직분의 성별’입니다.
본문 25~31절은 포도원, 올리브 밭, 기름 창고, 소 떼, 낙타, 나귀 등 매우 구체적이고 세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물질과 산업의 관리자들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역대기 기자가 성전 제의와 군사 조직에 이어 왕실 산업의 청지기들을 나란히 배치한 것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종교적 영역과 들판에서 흙을 만지고 가축을 돌보는 일상적 노동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선언하는 신학적 통찰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물질과 자연 만물을 신실하게 관리하는 경제 활동 자체가 거룩한 예배의 연장선이자 청지기적 소명입니다.

 

둘째, 출신과 혈통을 뛰어넘는 ‘포용적 인재 등용과 보편성’입니다.
30~31절에 언급된 오빌(이스마엘 사람)과 야시스(하갈 사람)의 등장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언약 백성의 주류 혈통이 아닌 이스마엘과 하갈 계통의 이방인이었으나, 낙타와 양 떼를 다루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다윗 왕실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이는 다윗의 신정 왕국이 폐쇄적인 혈통주의에 갇히지 않고, 각 사람의 은사와 능력을 존중하여 하나님 나라의 번영을 위해 폭넓게 연대했음을 보여줍니다. 만민을 품으시는 메시아 왕국의 보편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미리 예표합니다.

 

셋째, 공동체를 지탱하는 ‘지혜의 협력과 동행(왕의 벗)’입니다.
32~34절은 왕의 곁에서 영적·정치적 분별력을 제공했던 지혜자들의 역할을 조명합니다. 삼촌 요나단과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은 다음 세대 왕자들을 영적으로 훈육하고 양육하는 지혜의 스승이었습니다. 특히 아렉 사람 후새를 단순히 직책이 아닌 “왕의 벗(레아 하멜렉)”으로 명시한 것은 깊은 신앙적 의미를 지닙니다. 지도자에게는 날카로운 전략을 제공하는 모사(아히도벨)도 필요하지만, 위기의 순간 목숨을 걸고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참된 영적 친구(후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시며(요 15:15) 친히 곁을 지켜주신 것처럼, 진실한 동역자의 연합이 하나님 나라를 굳건히 지탱합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잠언 27:23~24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 고린도전서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요한복음 15:14~15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깊이 있는 묵상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위대함은 화려한 정복 전쟁과 웅장한 찬양의 성전뿐만 아니라, 거친 들판과 외딴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하나님의 질서를 심어 놓은 데서 드러납니다.

 

본문에 나열된 사람들의 사역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떤 사람은 먼지 날리는 밭에서 쟁기를 잡았고, 어떤 사람은 뙤약볕 아래서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의 가지를 쳤습니다. 또 어떤 이는 하루 종일 가축의 배설물 냄새를 맡으며 소와 양 떼와 낙타의 뒤를 쫓았습니다. 화려한 왕궁의 보좌나 제사장의 거룩한 옷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투박하고 땀 냄새 나는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다윗 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이 이러하였더라”(31절).
하나님의 눈에는 제단에서 찬송을 부르는 레위인이나, 들판에서 말없이 양 떼에게 꼴을 먹이는 야시스나 똑같이 존귀한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직장의 업무와 가사 노동, 사업장의 거친 일상들을 ‘어쩔 수 없이 먹고살기 위해 하는 세속적인 일’로 낮추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거룩하지 않은 일이란 없습니다. 흙 묻은 손으로 정직하게 밭을 갈고, 내게 맡겨진 가족과 일터의 자산을 성실히 돌보는 그 모든 과정이 곧 하나님 나라를 지탱하는 거룩한 제단입니다.

 

또한 다윗 곁을 지켰던 참모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참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지략이 뛰어나 승리를 돕는 브레인도 중요하지만, 성경은 후새를 가리켜 “왕의 벗”(33절)이라는 가장 따뜻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훗날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눈물로 기드론 시내를 건널 때,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무릅쓴 채 다윗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이 바로 후새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필요할 때만 찾고 이익이 다하면 돌아서는 냉정한 거래의 관계입니까, 아니면 곤경에 처했을 때 기꺼이 곁을 지키며 함께 울어주는 그리스도 안의 참된 ‘벗’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삶의 터전에서 작은 일 하나에도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되고, 내 곁의 지체들에게는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진실한 영적 벗으로 서는 복된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문

 

온 땅의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거룩한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아버지,

 

화려한 보좌 뒤편 들판과 과수원과 목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왕의 소유를 관리했던 청지기들과 다윗의 곁을 지켰던 지혜로운 벗들의 신실함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살아가는 일터와 가정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밭을 갈고 가축을 돌보듯 매일 마주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신전의식을 품게 하시고, 세상의 물질과 맡겨주신 자산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돌보는 선한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

 

다윗 왕국이 각 사람의 은사를 귀히 여기며 이방의 전문성까지 품어 안았듯이, 오늘 우리 교회와 공동체가 편견의 담을 허물고 서로의 다름과 은사를 존중하며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게 하옵소서.

 

또한 세상의 성공을 좇는 메마른 인간관계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으로 함께 곁을 지켜주었던 후새처럼 지체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의 벗’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거룩한 주일,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감격이 내일의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성실의 열매로 이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전 생애가 하나님 나라를 영화롭게 세워가는 거룩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친구라 부르시며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역대상 27:1~24 – #열두반장의군사조직 #이만사천명 #열두달순번복무 #야소브암 #도대 #브나야 #아사헬 #이스라엘열두지파지도자 #이십세이하의계수생략 #하늘의별과같은약속 #인구조사의경고

매일큐티 오늘의 본문 말씀 (개역개정)

 

역대상 27:1~24

 

1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가문의 우두머리와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관원들이 그들의 숫자대로 반이 나누이니 각 반열이 이만 사천 명씩이라 일 년 동안 달마다 들어가며 나왔으니
2 첫째 달 반의 반장은 삽디엘의 아들 야소브암이요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라
3 그는 베레스의 자손으로서 첫째 달 반의 모든 지휘관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4 둘째 달 반의 반장은 아호아 사람 도대요 또 미글롯이 그의 반의 주관자가 되었으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5 셋째 달 군대의 셋째 지휘관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요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라
6 이 브나야는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 위에 있으며 그의 반 중에 그의 아들 암미사밧이 있으며
7 넷째 달 넷째 지휘관은 요압의 아우 아사헬이요 그 다음은 그의 아들 스바댜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8 다섯째 달 다섯째 지휘관은 이스라 사람 삼훗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9 여섯째 달 여섯째 지휘관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0 일곱째 달 일곱째 지휘관은 에브라임 자손에 속한 발론 사람 헬레스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1 여덟째 달 여덟째 지휘관은 세라 족속 후사 사람 십배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2 아홉째 달 아홉째 지휘관은 베냐민 자손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3 열째 달 열째 지휘관은 세라 족속 느도바 사람 마하래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4 열한째 달 열한째 지휘관은 에브라임 자손에 속한 비라돈 사람 브나야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5 열두째 달 열두째 지휘관은 옷니엘 자손에 속한 느도바 사람 헬대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16 이스라엘 지파를 관할하는 자는 이러하니라 르우벤 사람의 지도자는 시그리의 아들 엘리에셀이요 시므온 사람의 지도자는 마아가의 아들 스바댜요
17 레위 사람의 지도자는 그무엘의 아들 하사뱌요 아론 자손의 지도자는 사독이요
18 유다의 지도자는 다윗의 형 엘리후요 잇사갈의 지도자는 미가엘의 아들 오므리요
19 스불론의 지도자는 오바디야의 아들 이스마야요 납달리의 지도자는 아스리엘의 아들 여레못이요
20 에브라임 자손의 지도자는 아사시야의 아들 호세아요 므낫세 반 지파의 지도자는 브다야의 아들 요엘이요
21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의 지도자는 스가리야의 아들 잇도요 베냐민의 지도자는 아브넬의 아들 야아시엘이요
22 단은 여로함의 아들 아사렐이니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지휘관이었더라
23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 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계수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
24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조사하기를 시작하고 끝내지 못하여 그 일로 말미암아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지라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

 

한 줄 묵상

 

조직과 군대의 효율적인 준비 속에서도 백성을 지키는 참된 힘은 인간의 통계가 아니라 하늘의 별처럼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본문 요약

 

다윗은 왕국을 방어하고 통치하기 위해 군사 조직과 각 지파의 행정 지도자 체계를 정비합니다. 상비군은 열두 반으로 나누어 한 반에 이만 사천 명씩, 일 년 열두 달 동안 한 달씩 교대로 복무하도록 제도화합니다(총 이십팔만 팔천 명). 첫째 달 야소브암, 둘째 달 도대, 셋째 달 제사장 출신의 용사 브나야, 넷째 달 일찍 전사했던 아사헬의 가문(스바댜), 그리고 헬대까지 다윗의 신실한 용사들이 각 달의 군사 지휘관으로 세워집니다(1~15절). 이어 르우벤부터 단 지파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각 지파를 관할하는 지파별 지도자들의 명단이 확정됩니다(16~22절). 이때 다윗은 이십 세 이하의 인구는 계수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요압이 끝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렀던 인구 조사의 실패를 뼈아프게 기억하며 그 조사 결과는 왕의 공식 연대기에 기록하지 않습니다(23~24절).

 

신학적 해석

 

첫째, 지속 가능하고 조화로운 ‘순환 군사 제도’의 지혜입니다.
1~15절에 나타난 12반열의 군사 편성은 백성들의 생업과 국방의 균형을 맞춘 탁월한 신정 왕국의 제도입니다. 만약 28만 명이 넘는 군대를 상시 징집해 둔다면 농경 중심 사회에서 백성들의 경제적 부담과 피로도는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한 달에 이만 사천 명씩 1년에 단 한 달만 군역을 감당하게 하고 나머지 열한 달은 일상과 생업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국가 안보를 견고히 지키는 동시에 백성들의 삶을 평안하게 보호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폭력적 징집이나 군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상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배려와 지혜의 질서 위에 세워집니다.

 

둘째, 언약적 회복과 ’20세 이하 계수 제외’의 신학입니다.
23절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 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계수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 앞선 21장의 인구 조사는 군사력을 파악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던 사탄의 충동이자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징계와 회개를 거친 다윗은 이제 인간적인 통계의 유혹을 내려놓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무조건적인 번성의 언약(창 15:5)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고유 영역인 번성의 섭리를 인간의 잣대로 감히 통제하거나 측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통해 언약의 본질로 돌아간 성숙한 신앙의 증거입니다.

 

셋째, 역사의 기록과 ‘거룩한 경각심(역대지략 제외)’입니다.
24절은 요압이 계수를 끝내지 못해 진노가 임했던 과거의 사건을 상기시키며, 그 숫자가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다”고 밝힙니다. 실패와 죄악으로 얼룩진 숫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포로에서 귀환하여 공동체를 재건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이 의지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군사적 숫자나 물리적 강대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긍휼뿐임을 분명하게 각인시킵니다.

 

관련 말씀 구절

 

  • 창세기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시편 33:16~17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 스가랴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로마서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깊이 있는 묵상

 

국가를 경영하고 공동체를 다스림에 있어 치밀한 계획과 질서를 갖추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윗은 이만 사천 명씩 열두 반으로 나누어 한 달씩 나라를 지키게 함으로써, 국방의 공백을 없애면서도 백성들이 일상에서 농사를 짓고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질서와 체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와 안식을 누리도록 돕는 거룩한 섬김의 방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대목은 군대의 편성 자체가 아니라, ‘계수하지 않고 남겨둔 이십 세 이하의 숫자’입니다(23절).
다윗은 한때 전국의 칼을 뺄 만한 군사의 숫자를 모조리 세어보고 싶어 안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자신의 힘이고 방패라 믿었던 뼈아픈 교만의 대가로 칠만 명의 백성을 전염병으로 잃는 참극을 겪었습니다.
그 징계의 풀무불을 통과한 후, 다윗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손을 멈추었습니다. “이십 세 이하는 세지 마라.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숫자를 세는 것을 멈추는 행위는 곧 내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넘겨드리는 ‘믿음의 멈춤’입니다.
우리는 매일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 내 소유와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하며, 눈앞에 확실하게 계산되어 떨어지는 데이터와 통계가 있어야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이만큼 있으니 괜찮겠지, 이 정도 수치가 확보되었으니 안전하겠지”라며 눈에 보이는 것에 목을 맵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계산기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여주시며 약속하셨던 그 신실한 언약의 말씀 위에 서는 인생입니다.

 

또한 다윗은 뼈아픈 불순종의 산물이었던 인구 조사의 결과를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실 실록(역대지략)에 올리지 않았습니다(24절).
세상의 군주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치적과 군세의 거대함을 후대에 자랑하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렀던 인간의 교만을 결코 자랑의 기념비로 삼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룬 성과나 세상적인 크기를 자랑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나를 용서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만을 자랑하는 것이 참된 회개자의 자세입니다.

 

내 손으로 통제하고 계산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가 모든 것을 일일이 세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의 손에 맡겨드릴 때, 하나님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한 은혜로 우리의 삶과 가정을 친히 채워가실 것입니다.

 

기도문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언약 백성을 신실하게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군사와 행정의 질서를 지혜롭게 세우면서도, 눈에 보이는 숫자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앞에 겸손히 멈추어 섰던 다윗의 성숙한 믿음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내 삶을 내 힘과 통계로 계산하고 통제하려 했던 영적 조급함과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통장의 숫자나 세상의 조건들이 내 안전과 미래를 보장하는 방패가 될 수 없음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숫자를 세느라 하나님의 크심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만을 굳게 붙드는 참된 믿음을 주옵소서.

 

다윗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지혜로운 순환 제도를 세웠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일터 속에서도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거룩한 질서를 세워가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

 

내 공로와 세상적 업적을 과시하려던 마음을 십자가 앞에 완전히 묻어버리게 하시고, 오직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되시며 연약한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이름만을 영원히 자랑하게 하옵소서.

 

하늘의 모든 풍요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영원한 구원의 언약을 완성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