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1~8

다음은 디모데후서 1장 1절부터 8절까지(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1~8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며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부릴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 본문은 바울이 옥중에서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서두 부분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서고, 주어진 사명을 두려워하지 말며, 복음을 위해 고난받기를 권면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1절~8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믿음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1장 1절부터 8절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 부분이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그는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그에게 임하기를 기원한다.

바울은 디모데를 위해 늘 감사하며, 그가 가진 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을 기억한다. 그 믿음은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이어진 신앙의 유산이며, 이제 디모데의 내면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바울은 이 믿음을 근거로 디모데가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타오르게 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임을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나 자신이 갇혀 있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제자에게 주어진 사명의 무게를 자각시키는 신앙적 격려이다.

2. 신학적 해석

디모데후서 1:1~8은 사도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편지로서, 바울의 사역적 신념과 신앙적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먼저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선택이나 노력으로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도직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감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2절에서 바울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세 가지 축복을 기도한다. 은혜는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며, 긍휼은 연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따뜻한 자비를 의미한다. 그리고 평강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영적 안정과 내면의 평화를 뜻한다. 바울은 이 세 가지가 디모데의 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공급임을 알고 있었다.

3절부터 5절은 바울이 디모데와의 깊은 영적 관계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그는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한다”고 말하며, 제자에 대한 사랑과 신앙적 관심을 드러낸다. 또한 디모데의 가정적 배경, 즉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언급함으로써 신앙의 세대적 전수를 강조한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자라난 복음의 계승임을 인정한다.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6절과 7절은 본문의 핵심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부릴 듯하게 하라”고 명한다. ‘부릴 듯하다’는 말은 꺼져가는 불길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디모데가 사역 중에 위축되거나 열정이 식어 있는 상태일 수 있음을 전제한다. 바울은 그에게 안수로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다시 활성화시키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 사랑, 절제의 영이다. 두려움은 사역자의 마음을 위축시키지만,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한다.

8절에서 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명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언제나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감당해야 할 소명으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옥중 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한 영광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당시 로마의 박해 속에서 복음을 전하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용기와 도전을 주는 말씀이었다.

3. 묵상

이 본문은 오늘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도전을 던진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자주 두려움과 낙심을 경험한다. 세상의 가치관이 신앙을 조롱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 우리는 디모데처럼 마음이 약해지기 쉽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하나님은 두려움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

능력의 영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한다. 사랑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미움 대신 용서와 헌신을 선택하게 한다. 절제의 영은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하는 영적 분별력이다. 이 세 가지는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능력은 사랑을 통해 나타나고, 사랑은 절제를 통해 유지된다. 결국 성령이 주시는 이 세 가지 은혜는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하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는 힘이 된다.

또한 디모데의 믿음이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이어졌다는 사실은, 신앙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전수되는지를 보여 준다. 오늘날 믿음의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교회 출석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살아 있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일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그런 믿음을 보았고, 그 믿음이 거짓 없는 진정한 신앙이라고 칭찬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다시 불태워야 한다. 신앙의 열정이 식고 기도의 불이 꺼질 때, 우리는 다시 성령의 바람을 간구해야 한다. 사역이 어렵고 세상에서 복음을 말하기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단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는 삶을 의미한다.

4. 기도문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디모데에게 주신 권면이 제 마음에도 새겨지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가 있다면 그것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소서.

나태와 두려움으로 인해 식어버린 신앙의 불씨를 성령의 바람으로 되살려 주소서.

주님, 세상은 때로 복음을 부끄럽게 만들지만, 바울처럼 담대히 복음을 증언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께서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 가정에도 대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유산이 있게 하소서.

믿음이 가정의 중심이 되고, 사랑이 그 토대가 되어

세대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집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제 안의 두려움을 제거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저를 새롭게 하소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며,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소서.

바울이 디모데를 격려하던 그 사랑과 열정이 오늘 저의 삶에도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주님 오실 그날까지 꺼지지 않는 믿음으로 서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시대적 메시지와도 같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믿음을 지켰고, 제자에게 신앙의 불씨를 이어주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동일하게 울린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다시 부릴 듯하게 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자의 참된 길이다.

스가랴 14:16~21

 

스가랴 14:16~21 (개역개정)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여러 나라 사람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없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리니

19 애굽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모든 나라에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솥들이 제단 앞의 대접과 다름이 없을 것이며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드리는 자가 와서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스가랴 14장 16절-21절 말씀 해설과 묵상

 


 

1. 본문 요약: 만국이 경배하고 온 땅이 성결해지는 날 (스가랴 14:16-21)

 

스가랴 14장 16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여호와의 날’에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궁극적인 승리와 회복을 묘사하며,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만국의 경배 (16-19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 살아남은 자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에게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이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배하게 됨을 상징합니다. 만약 어느 나라든지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를 내리지 않으시는 재앙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비는 생명의 공급과 축복을 상징하므로, 예배를 거부하는 것은 생명의 축복을 잃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애굽 족속에게도 동일한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언급하며, 이는 모든 이방 민족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칙임을 강조합니다.
  • 온전한 성결 (20-21절): 그 날에는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이었던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가 새겨질 것입니다. 또한, 성전 안에 있는 거룩한 제사용 그릇들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솥까지도 여호와의 성물이 되어 제사 드리는 데 사용될 정도로 거룩해집니다. 이는 거룩함이 성전 안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어 충만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날에는 여호와의 전(성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공동체와 예배의 장소에 더 이상 속된 것이나 불결한 것이 존재하지 않을, 온전한 정결함을 예언합니다.

 

2. 신학적 해석: 그리스도의 통치와 우주적 성결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종말론적 구원의 핵심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A.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

 

스가랴 14장의 ‘여호와의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종적인 통치 시대를 예표합니다. 이방 나라들까지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다는 것은,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여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실 것을 신학적으로 보여줍니다.

  • 초막절의 의미: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주했음을 기억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절기이자, 장차 메시아 시대에 모든 민족이 누릴 영원한 안식과 구원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이방인들이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은 구원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확장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신약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교회를 통해 성취되는 구원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예표합니다.
  • 예배 거부의 심판: 비를 내리지 않으시는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에게 임하는 영적인 단절생명의 결핍을 상징합니다. 이는 복음이 선포된 후에도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지 않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영원한 심판의 그림자입니다.

 

B.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성결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선언은 가장 심오하고 강력한 신학적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 성결의 보편화: 구약 시대의 거룩함은 성전과 제사장, 제물 등 특정 영역에 한정되었으나, 여호와의 날에는 가장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말 방울과 일상적인 솥단지까지도 지성소의 거룩함으로 충만해집니다. 이는 성결이 더 이상 장소적, 물질적 구별에 머물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위한 구별된 목적을 가지게 됨을 상징합니다. 신약적으로는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 가나안 사람의 부재: “가나안 사람”은 본문에서 ‘상인’ 또는 ‘불결하고 속된 자’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순수한 예배온전한 공동체가 회복되어, 더 이상 세속적인 거래나 죄악된 요소가 하나님의 임재를 더럽힐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최종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통치와 거룩함을 신학적으로 확증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스가랴 14장 16-21절의 종말론적 비전은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될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

  • 만국의 경배와 구원:
    • 이사야 2장 2-4절: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국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 만국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될 예언.
    • 미가 4장 1-3절: 이사야 2장과 유사하게 만국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고 평화를 이룰 것을 예언.
    • 요한계시록 7장 9-10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종말에 모든 민족이 구원받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
  • 성결의 확장:
    • 출애굽기 28장 36절: 대제사장 아론의 관에 새겨진 “여호와께 성결” 문구. 스가랴는 이 지성소의 거룩함이 말 방울까지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 로마서 12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신약에서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로 성결이 실현됨.
  • 가나안 사람의 제거:
    • 요한계시록 21장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새 예루살렘에는 불결하고 속된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

 

4. 깊이 있는 묵상: 일상의 성화와 종말론적 소망

 

스가랴 14장 16-21절은 성도들에게 종말론적 소망현재적 성결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묵상 거리를 제공합니다.

 

종말론적 소망: 확실한 승리와 영원한 예배

 

우리는 여전히 죄와 악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 말씀은 여호와의 날이 반드시 오고, 그 날에는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결론을 보여줍니다. 이방 민족의 생존자가 예배하러 올라온다는 것은, 아무리 강력한 하나님의 대적이라도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주권을 인정하게 될 것임을 확증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현세의 고난과 불의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게 하는 영원한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이 왕이신 나라가 완성될 것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이 비전이 우리의 삶의 초점을 영원한 것에 맞추도록 인도합니다.

 

현재적 성결: 말 방울의 영성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에 성결의 혁명을 요구합니다. 과거에는 성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거룩함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를 통해 일상의 모든 영역이 거룩함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 직업과 노동: 내가 하는 일, 가장 세속적으로 보이는 직업 현장, 심지어 경제 활동을 상징하는 ‘솥’이나 ‘말 방울’까지도 하나님께 구별되어 사용되어야 합니다. 나의 노동과 재물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거룩한 목적을 부여해야 합니다.
  • 관계와 언어: 우리의 대화, 인간관계, 여가 활동 등 모든 일상적인 행위가 마치 제단 앞의 주발처럼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에 ‘가나안 사람’, 즉 불결한 동기나 세속적인 타협이 발붙일 틈이 없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부로서, 매일의 삶을 통해 천국의 거룩함을 연습하고 구현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작은 순종과 거룩한 구별이 바로 “여호와께 성결”이 됩니다.


 

5. 기도문: 통치와 성결을 구하며

 

존귀하신 만왕의 왕,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오늘 스가랴 14장 말씀을 통해 주님의 궁극적인 승리완전한 통치의 날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통해 온 세상을 다스리실 그 날, 만국이 주님께 경배하며 기쁨의 초막절을 지키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희가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확고한 소망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의 통치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바라옵기는, 주님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고 예배를 거부하는 모든 어둠의 세력과 영혼들에게 긍휼의 빛을 비추사, 그들도 주님께 돌아와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하옵소서.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우리의 일상이 성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직업, 노동, 인간관계, 작은 취미와 생각까지도 마치 제단 앞의 성물처럼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가나안 사람’처럼 속된 욕망이나 불결한 동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모든 생각과 행동에 거룩한 목적을 부여하여, 우리의 삶의 모든 솥단지에서 주님께 올려 드리는 영적 예배의 향기가 끊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부끄러움 없이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함을 훈련하며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스가랴 14장의 종말론적 승리와 예배의 회복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다음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스가랴 14장 16-21절 | 제3성전, 지어야 하나? 지어질 것인가?. 이 영상은 스가랴 14장 16-21절을 중심으로 제3성전 건축에 대한 관점을 신학적으로 다룹니다.

 

스가랴 14:9~15

 

스가랴 14:9~15 (개역개정)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째 문 자리와 코너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틀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12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그들이 서 있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13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큰 요란을 일으키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사방 모든 나라의 보화 곧 금, 은, 의복이 힘이 많아 모일 것이요

15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짐승에게도 그 재앙이 그 재앙과 같으리라


 

 

스가랴 14장 9절~15절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통치와 마지막 심판의 빛


1. 본문 요약

스가랴 14장 9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은 종말의 날, 즉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날의 장엄한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본문은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회복과 예루살렘의 평화,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던 열방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다.

9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라 선포한다. 이 날에는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하나님으로 인정받으며, 그 이름만이 거룩히 여겨진다. 이어지는 10절과 11절은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복원되고, 더 이상 저주나 파괴가 없는 완전한 평화의 도시가 될 것을 예언한다.

12절부터 15절은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방의 군대들에게 내릴 심판을 묘사한다. 여호와의 재앙은 무섭고 초자연적이다. 사람들의 살과 눈, 혀가 썩으며, 그들 사이에는 혼란과 공포가 일어나 서로를 공격하게 된다. 심지어 그들이 의지하던 말, 낙타, 나귀 같은 짐승들도 같은 재앙을 피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이 쌓아왔던 금과 은과 의복 같은 세상의 보화가 모두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된다.

이 본문은 단순히 한 시대의 전쟁 예언이 아니라, 세상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 드러나고 악이 심판받는 종말론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 신학적 해석

스가랴 14장은 성경 전체의 종말론적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여호와의 통치는 단지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 모든 민족과 열방 위에 임하는 보편적 통치를 뜻한다.

9절에서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는 구절은, 다신적 세계관을 넘어선 절대적 신 주권의 선언이다. 세상의 왕들이나 신격화된 권세자들이 사라지고 오직 여호와만이 경배의 대상이 되는 날, 즉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10절과 11절의 예루살렘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공동체, 곧 신앙 공동체의 상징이다.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영적 부흥과 회복을 의미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라는 말씀은 죄와 죽음의 저주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화(샬롬)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종말의 축복을 나타낸다.

반면 12절부터 15절에 묘사된 재앙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상징이다. 육체가 서 있는 중에 썩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물리적 재앙이라기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영적 붕괴를 의미한다. 그들의 교만과 불의, 폭력으로 세운 모든 문명은 여호와의 날 앞에서 무너지고 소멸될 것이다.

또한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13절)는 인간 사회의 내적 붕괴를 상징한다. 악의 세력은 스스로 분열하여 자멸하게 된다. 이는 바벨탑의 심판이나 사사기의 내분과 같은 패턴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 없이 세워진 힘의 연합은 결국 자기 파괴로 끝난다.

마지막으로 14절과 15절은 하나님 백성의 승리와 회복을 상징한다. 유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싸워 이기며, 세상의 재물들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아온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불의한 세력이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3. 관련 성경 구절

  1. 시편 22편 28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 여호와의 통치가 모든 나라 위에 있음을 선포한다.
  2. 이사야 2장 2~4절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 스가랴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가 높이 들리고 모든 민족이 그에게 나아옴을 보여준다.
  3. 요한계시록 11장 15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 스가랴 14장 9절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왕으로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4. 빌립보서 2장 10~11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여호와의 이름이 홀로 하나가 되는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세상에 드러나는 날과 같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 14장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영적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임할 그 날에 대한 소망, 둘째는 그날을 대비하는 현재의 삶에 대한 경각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구원의 통치를 선포하셨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불의와 전쟁, 탐욕과 폭력으로 물들어 있다. 우리는 스가랴의 예언을 통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는 그 날, 모든 무릎이 굴복하고 모든 이름이 사라지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빛날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예루살렘이 높이 들리고 평안히 서게 되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회복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영적 부흥을 상징한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그 예루살렘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세상이 혼란과 불안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하며, 다시는 저주가 없는 평화의 도시처럼 거룩함과 사랑으로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

한편, 열방에 내린 재앙의 모습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 인간의 교만과 자만, 물질과 권력에 대한 우상 숭배는 결국 자기 파멸로 끝난다. 스가랴가 묘사한 “서 있을 때에 살이 썩고 눈이 썩는” 재앙은 단지 육체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된 영혼이 느끼는 영적 부패를 상징한다. 신앙 없는 인간은 살아 있어도 썩어 가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여호와의 이름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세상 권력은 사라지고, 인간의 업적은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만은 영원히 선다. 이 믿음이 오늘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는 소망이 된다.


5.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스가랴의 예언을 통해 주의 날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날에는 온 세상이 주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나라가 주의 통치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주여, 우리 마음속에서도 그날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의 주권을 거부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오직 주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영적으로 썩어 가는 세상 가운데,
우리를 거룩한 예루살렘처럼 높이 세우시고,
다시는 저주가 없는 평화와 생명의 도시로 살게 하소서.

주님, 마지막 날의 심판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날이 두려움이 아닌 소망의 날이 되도록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세워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통치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 준다. 스가랴의 예언은 단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 속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분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영원한 통치 안에서 평안과 생명을 누리는 백성으로 부름받았다.

스가랴 14:1~8

 

스가랴 14:1~8 (개역개정)

1 보라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2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치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여자가 욕을 당하리라 그 성읍 백성의 절반이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서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에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겨질 것이며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장 1절부터 8절 말씀 묵상

여호와의 날과 생명의 샘이 흐르는 예루살렘


1. 본문 요약

스가랴 14장 1절부터 8절은 마지막 때, 곧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심판과 회복의 사건을 보여준다. 본문은 두 가지 대조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먼저 예루살렘은 이방 나라들에 의해 공격받고, 약탈과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고, 감람산 위에 서셔서 그 땅을 갈라 놓으시며,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결국 예루살렘에서는 생수가 솟아나 동쪽의 사해와 서쪽의 지중해로 흘러가며, 그 생명수는 여름과 겨울에도 끊이지 않는다.

이 본문은 종말론적인 예언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날을 가리킨다. 스가랴는 그날을 여호와의 날이라 부르며, 심판과 회복이 동시에 일어나는 역설적인 시간을 보여준다.


2. 신학적 해석

스가랴 14장은 단순한 전쟁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를 선포하는 종말론적 선언이다. 본문의 중심 주제는 “여호와께서 나가서 싸우시리라”는 구절에 담겨 있다. 이는 인간의 힘이나 군사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세상의 악과 불의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첫째, 1절과 2절은 심판의 현실을 말한다. 예루살렘은 이방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고, 재물은 약탈되며, 백성의 절반이 포로로 잡혀간다. 이는 죄와 불순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포함된 사건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되, 완전히 멸하지 않으신다. 남은 백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둘째, 3절에서 하나님은 전쟁의 주체로 등장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초월적인 전쟁을 치르신다. “이왕에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는 말씀은 출애굽 사건이나 여호수아의 전쟁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적 구원행위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단순히 관망자가 아니라,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싸우시는 왕이시다.

셋째, 4절과 5절에서 감람산의 지리적 변화는 단순한 지형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하며, 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이기도 하다. 감람산이 둘로 갈라져 골짜기가 생기고, 백성이 그곳을 통해 피하는 장면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열리는 사건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친히 오심으로 인해 피난처가 열리고, 백성은 그분의 임재 속에서 보호를 받는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는 선언은 장차 있을 종말의 영광스러운 광경을 묘사한다.

넷째, 6절과 7절은 빛에 관한 묘사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드러낸다. 그날은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닌, 하나님만이 아시는 특별한 날이다. 이는 세상의 시간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질서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는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이 그 성의 등불이 되신다”는 말씀과 연결된다. 즉, 하나님 자신이 빛이 되어 어둠을 몰아내신다.

마지막으로 8절에서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가 전 세계로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수는 계절의 제약을 받지 않고 끊임없이 흐른다. 이는 에스겔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수의 강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고, 생명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예시한다.

결국 스가랴 14장 1절부터 8절은 종말의 심판과 구원을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고, 동시에 자기 백성을 새롭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이끄신다.


3. 관련 말씀 구절

  • 요엘 3장 16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고 예루살렘에서 그의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 에스겔 47장 1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 문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더라.”
  • 요한계시록 22장 1절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 스가랴 9장 16절
    “그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이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이 생명의 물로 표현되고, 하나님이 친히 보호자이자 피난처로 임하신다는 공통된 주제를 공유한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 14장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공포와 혼란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성들은 끌려가며,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셔서 세상의 질서를 뒤바꾸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종종 이러한 경험을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때로는 심판을 통해, 때로는 기다림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다. 감람산이 갈라지는 것은 단순히 자연의 기적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는 은혜의 상징이다.

또한 8절에서 나오는 생수는 복음의 은혜를 상징한다.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장소에 머물지 않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감을 뜻한다. 이 생수는 우리 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역사한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7장에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신 말씀은 스가랴의 예언이 영적으로 성취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 세상은 여전히 어둠과 혼란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 우리의 현실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너지지 않는다.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는 말씀처럼, 신앙인은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생수가 흘러나오는 예루살렘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심령을 상징한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하며, 신앙인은 그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매일 나아가야 한다.

결국 스가랴 14장은 절망 속의 소망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지만,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어둠과 빛, 심판과 회복,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날에,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가 완성된다.


5.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날을 묵상합니다.
세상이 혼란과 어둠 속에 있을 때, 주님은 여전히 왕으로 서 계심을 믿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질지라도, 주님의 구원의 계획은 결코 무너지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 삶에도 감람산이 갈라지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막힌 길이 열리고, 두려움의 골짜기 속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소서.
우리가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하소서.

주님,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하옵소서.
마른 영혼을 적시고, 냉랭한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흘려보내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자로, 심판 속에서도 구원을 소망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주님께서 친히 싸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승리하시는 그날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통치가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지고, 모든 열방이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오늘도 그 생수의 강가에 서서, 당신의 영광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시대를 넘어 하나님의 통치와 생명의 은혜를 바라보게 한다. 스가랴 14장은 단순한 종말의 예언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소망을 다시 새기게 하는 위로의 말씀이다.

스가랴 13:1~9

 

스가랴 13:1~9 (개역개정)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3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그 낳은 부모가 예언할 때에 그를 찌르리라
4 그 날에는 각기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6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돌리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3분의 2는 멸절하고 3분의 1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3분의 1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스가랴 13장 1절~9절 말씀 묵상

죄를 씻는 샘과 정결의 연단


1. 본문 요약

스가랴 13장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정결의 회복과 심판의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1절은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죄를 씻어주실 은혜의 날을 의미한다. 이 정결의 샘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메시아를 통한 구속의 은혜를 예표하는 표현이다.

2절부터 6절은 그 정결의 결과로 나타날 변화들을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우상과 거짓 선지자, 그리고 더러운 영을 땅에서 제거하실 것이며, 사람들 스스로도 거짓된 예언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거짓 선지자의 부모조차 그를 용납하지 않고 징계할 정도로, 공동체 전체가 진리의 하나님께 돌아서게 된다.

7절부터 9절은 한층 더 깊은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고 명하신다. 이 구절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직접 연결되는 예언으로 이해된다. 목자가 치임을 당함으로써 양들이 흩어지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불로 연단하여 참된 백성으로 세우신다. 마지막 9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은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회복된 언약 관계의 완성을 의미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장의 중심 주제는 ‘정결함과 언약의 회복’이다. 스가랴 13장은 단순히 죄의 용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불의가 제거되고 참된 신앙이 회복되는 과정을 그린다.

먼저 1절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상징한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온 장면은 바로 이 스가랴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는 유일한 샘, 곧 구속의 근원은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비롯된다.

2절과 3절은 정결의 은혜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우상의 이름을 끊으시고, 거짓 선지자들을 제거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개혁을 넘어 영적 질서의 회복을 뜻한다. 거짓 예언과 속임수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부패하게 만드는 요소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완전히 뿌리 뽑으신다. 심지어 가족 관계보다 하나님의 진리가 더 우선되는 모습은 신앙의 순수성을 상징한다.

4절부터 6절은 회개의 구체적 결과를 묘사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선지자라 부르지 않고, 부끄러워하며 평범한 농부로 살겠다고 말한다. 그들의 상처가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답하는 대목은, 거짓된 종교의 허위와 위선을 폭로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즉, 진정한 회개는 스스로의 허물을 인정하고, 과거의 잘못된 신앙을 부끄러워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7절 이후는 메시아적 예언의 절정이다.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시는 사건을 예표한다. 예수께서 체포되시던 날 제자들이 모두 흩어진 사건은 이 예언의 직접적인 성취로서 마태복음 26장 31절에서 인용된다. 하나님의 공의가 목자를 치는 사건 속에서 동시에 은혜의 계획이 이루어진다. 목자가 상함으로써 양들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8절과 9절에서 남은 자, 즉 ‘삼분의 일’은 구원받을 자들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 속에 던져 은처럼 연단하신다고 하신다. 이는 고난과 시험을 통한 정결의 과정이다. 참된 신앙은 어려움 속에서 증명되고, 불순물이 제거될 때 순수한 믿음이 드러난다. 그 결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가 새롭게 회복된다. 하나님은 “이는 내 백성이라” 말씀하시며, 백성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며, 신앙의 목적이다.


3. 관련 말씀

  1. 요한복음 19장 34절: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2. 에스겔 36장 25절: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3. 마태복음 26장 31절: “목자를 치리니 양의 무리가 흩어지리라.”
  4. 말라기 3장 3절: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듯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여 의로운 제물을 드리게 하리라.”
  5. 요한일서 1장 7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구절들은 스가랴 13장의 예언이 어떻게 신약의 복음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정결의 샘은 십자가의 보혈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더러움이 사라지고 새로운 언약이 세워진다.


4. 깊이 있는 묵상

스가랴 13장은 죄의 사함과 정결, 그리고 연단의 과정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의 죄를 덮어두는 분이 아니라, 그 죄의 뿌리를 뽑고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종종 용서를 받는 것에만 안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우상적 요소와 거짓된 마음까지 제거하기를 원하신다.

삶의 고난은 이 연단의 과정과 같다. 하나님께서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지시겠다” 하신 말씀은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정금같은 믿음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믿음의 사람은 불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난 중에서도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또한 7절의 말씀은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희생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한다. 목자가 치임을 당할 때 양들이 흩어진다는 예언은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흩어진 양들을 다시 모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상함으로 우리는 치유받고,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이 주는 도전은, 정결의 샘으로 나아가라는 초청이다.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죄의 먼지가 남아 있고, 때로는 거짓된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 샘을 열어 두셨다. 회개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물로 씻김을 받으며 새롭게 될 수 있다.


5. 기도문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오늘도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려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의 마음에도 그 샘의 물이 흘러들어와 모든 불의와 거짓을 깨끗이 씻어주시옵소서.

저는 때로 세상의 우상과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고, 진리를 외면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거짓된 영을 떠나게 하시고 제 안에 진실한 믿음의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저의 입술이 주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주의 진리를 담대히 증거하게 하소서.

주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함을 통해 저의 영혼이 새 생명을 얻었음을 기억합니다. 그 은혜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그 보혈의 능력으로 오늘도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겪는 모든 고난과 연단이 저를 더 순결하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습니다. 불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정금같은 믿음으로 주 앞에 서게 하소서.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이는 내 백성이라” 말씀하실 때, 저 또한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고백하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은 단순히 옛 예언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신앙의 방향을 보여주는 영적 지도와 같다. 하나님께서 여신 정결의 샘은 지금도 흐르고 있으며, 그 물로 씻긴 자만이 참된 회복과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스가랴 13장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회개하라, 정결케 되라, 그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