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2:1~16

다음은 에스겔 12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KRV)을 기준으로 제공합니다:


에스겔 12:1~16 (개역개정)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가 폐역한 족속 가운데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폐역한 족속임이라
3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려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포로되어 가는 자같이 꾸리고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의 목전에서 하되 그들이 혹시 보고 있을는지 모르니라
4 너는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네 짐을 밖으로 끌어내기를 포로되어 가는 짐 같이 하고 저물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사로잡혀 가는 자 같이 하라
5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따라 나가되
6 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네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지니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징조가 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7 내가 그 명령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짐을 포로의 짐같이 내어 놓고 저물 때에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나가며 내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8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폐역한 족속이 네게 묻기를 네가 무슨 일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10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온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묵시라 하라
11 너는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위한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이 잡혀 사로잡혀 갈 것이라
12 그들 가운데 있는 왕이 짐을 어깨에 메고 캄캄할 때에 나가며 성벽을 뚫고 그리로 나갈 것이나 그의 얼굴을 가리워서 눈으로 땅을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리니 그가 내 올무에 걸려 내가 그를 갈대아 사람의 땅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그가 거기서 죽을지라도 그 땅을 보지는 못하리라
14 내가 그와 그를 둘러싼 모든 자, 곧 그의 도우며 그의 군대를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뺄 때에
15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 가운데에 헤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그들이 알리라
16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말하게 하리니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아래는 에스겔 12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구절, 깊이 있는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포함한 글입니다.


에스겔 12:1~16 묵상 글

1. 본문 요약

에스겔 12장 1절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자의 모습처럼 짐을 싸서 낮에 백성들 앞에서 짐을 밖으로 내놓고, 해 질 무렵에는 성벽을 뚫고 얼굴을 가린 채 나가도록 명령하십니다. 이 행위는 예루살렘 왕과 그 주민들이 장차 포로로 끌려가게 될 운명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특히 왕은 얼굴을 가린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그곳에 이르러 죽을지라도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시드기야 왕의 운명(눈이 뽑혀 바벨론에서 죽음)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로 흩으시고, 이방 가운데 그들이 죄악을 고백하게 하시며,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알게 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멸망하지는 않고, 소수의 자가 살아남아 하나님을 증거하게 될 것이라는 자비의 약속도 함께 주십니다.


2. 신학적 해석

1) 상징행동을 통한 선지자적 메시지

에스겔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 중 하나는 ‘상징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말로만 예언하게 하지 않으시고, 선지자의 삶 자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사용하십니다. 에스겔이 포로의 행장을 싸고, 성벽을 뚫고 나가는 행위는 실제로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절망적으로 무너지게 될 상황을 드러냅니다. 이는 백성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하여 말씀만으로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을 통해 시각적 경고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예레미야에게도 나타나며(예: 예레미야 13장의 허리 띠 비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회개를 원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2) 폐역함과 영적 눈멀음

2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라고 진단하십니다. 이는 이사야 6장과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도 인용하신 구절과 맥을 같이합니다. 사람의 영적인 무감각함, 죄에 물든 완고함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의지적인 거절’이며, 그 결과로 심판이 임합니다.

3) 심판 중의 자비

비록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가고, 왕도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죽을 것이라 하셨지만, 16절에서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항상 심판 중에도 남은 자를 보존하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열방 가운데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 ‘남은 자 신학’은 구약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개념으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3. 관련 성경 구절

  • 이사야 6:9~10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 마태복음 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이르시되… 이 백성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 예레미야 39:4~7
    시드기야 왕이 도망치다가 잡히고, 그의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 후, 그의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에스겔 12장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모습입니다.

  • 로마서 11:5
    “그런즉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 남은 자의 개념이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4. 묵상: 나의 삶에도 말씀은 들리고 있는가?

에스겔이 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었음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열려 있었지만, 마음은 완고했고 진리에 무감각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매주 예배에서 듣고, 묵상하며, 심지어는 암송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요구하신 순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포로처럼 짐을 싸고, 성벽을 뚫고,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는 모습은 아마도 조롱을 받을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행동을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7절). 신실한 선지자의 자세, 곧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됩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말’뿐만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내가 짊어지는 짐, 내가 걸어가는 골짜기, 내가 감당하는 부끄러움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누구에겐가 경고의 표징으로 삼고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누군가가 회개하게 하시고, 깨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16절은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엽니다.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소수의 자들을 살려 두십니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그 ‘남은 자’라면, 오늘 우리는 세상 가운데 무엇을 말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5.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저를 일깨우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에스겔을 통해 전하신 그 경고의 말씀 앞에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저는 종종 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처럼
완악하고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민감한 심령이 되게 하소서.
영적인 눈과 귀를 열어 주시고, 주의 뜻을 깨닫는 자 되게 하소서.

에스겔처럼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더욱 민감한 자 되게 하시고,
설령 그 길이 부끄럽고, 외롭고, 고난이 따르더라도
말씀을 삶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의 세상은 예루살렘처럼 멸망 앞에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의 사회와 교회와 가정이 주님 앞에 진실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 심판 중에도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처럼
오늘 저와 저의 가정, 이 민족에게 긍휼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중 몇 사람을 남겨…”라 하신 그 말씀처럼
제가 주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가는 증인으로 세워 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의 왕이시며 구속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11:13~25

다음은 에스겔 11장 13절부터 25절까지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 기준):


에스겔 11:13~25 (개역개정)

13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5 “인자야, 예루살렘 주민 곧 네 형제 곧 네 형제와 네 친척과 온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이 말하기를 ‘그들은 여호와에게서 멀어졌고,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다’ 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16 그러므로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며 열방 가운데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17 너는 또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나라들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1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 그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니,

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서부터 올라가서 동쪽 산 위에 머무르고,

24 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 환상이 나를 떠나 올라간지라.

2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을 사로잡힌 자에게 말하니라.


 

아래는 에스겔 11장 13절부터 25절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구절, 묵상, 기도문을 포함한 글입니다.


에스겔 11장 13절~25절 묵상: 새로운 마음과 영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1. 본문 요약

에스겔 11장 13절부터 25절은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회복의 약속이 함께 나타나는 장면이다. 에스겔이 예언을 하는 도중, 블라댜가 죽자 그는 크게 놀라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린다(13절).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 남은 자들, 곧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회복될 것이며, 그들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14절).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는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돌이켜 그분을 따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에스겔은 그 환상을 본 후 영이 그를 데리고 돌아오고, 그는 본 대로 포로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25절).


2. 신학적 해석

1) 심판과 중보: 선지자의 마음

13절에서 에스겔이 “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시려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는 장면은 선지자가 단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의 아픔과 운명을 함께 짊어지는 중보자임을 보여준다. 블라댜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심판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에스겔은 그 위중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는 모세(출 32:11–14), 아브라함(창 18:23–33), 바울(롬 9:1–3)의 중보기도와도 맥을 같이한다.

2) 포로자들의 회복 약속

14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은 전혀 반전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다에 남아 있는 자들은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여호와에게서 멀어졌다”고 조롱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참된 상속자요 회복의 대상이라고 선언하신다(15절). 하나님의 시선은 외적인 성전 중심주의나 혈통 중심주의가 아닌, 순전한 믿음과 순종에 있다.

3) 새로운 마음과 영: 언약의 갱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19절)고 약속하신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개혁이 아닌, 전인격적 변화를 동반한 신적 개입이다. 예레미야 31장 33절에서도 등장하는 새 언약의 맥락이며, 이는 신약에서 성령의 역사로 연결된다(요 14:26, 고후 3:3, 롬 8:9).

4) 영광의 떠남과 새로운 방향

22~23절에서는 그룹이 날개를 펴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을 떠나 감람산에 머무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쪽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움직임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자들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뜻을 시사한다. 결국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장소가 아닌 사람의 마음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신다.


3. 관련 말씀 구절

  • 예레미야 31: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에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 히브리서 8:10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은 이것이라…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4. 깊이 있는 묵상

에스겔서 11장의 이 구절들은 신앙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겉으로는 하나님과 가까워 보이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오히려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찼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장소보다 중심을 보신다.

예배당에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과 멀 수 있고, 광야를 지날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 활동이나 신앙 행위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고 있는가, 말씀 앞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살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심판만 말씀하시지 않고, 늘 회복의 소망을 함께 주신다. 설령 징계받고 있는 자리라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회복을 준비하신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감람산으로 옮겨가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던 장소가 감람산이었다는 사실을 떠오르게 한다(행 1:12). 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심판을 넘어 구원의 완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확실한 표지다.


5. 기도문

[개인의 기도]

주 여호와 하나님,
제 안에 아직도 돌 같이 굳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제하여 주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때로는 세상 사람들의 말과 판단에 흔들리고,
예배당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작 주님의 뜻에서 멀어졌던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주님,
바벨론의 땅처럼 낯설고 외로운 이 삶의 자리에서도
주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회복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저를 향한 주님의 약속임을 다시 고백합니다.
새 영을 부어주셔서
주의 길을 걷게 하시고,
주의 율례를 따르며,
주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공동체의 기도]

은혜의 하나님,
우리는 에스겔처럼 중보자의 심정으로 오늘 이 땅의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껍데기 같은 예배가 아니라,
참된 회개와 돌이킴이 있는 예배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날 포로처럼 살아가는 이들—경제적 고난 속에 있는 자,
영적 방황 가운데 있는 자, 질병과 아픔으로 주저앉은 자들을 기억하셔서
그들에게 ‘새 영’을 부어주시고,
그들이 다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를 외형이 아닌 중심으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교만함을 꺾으시고,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게 하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묵상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 같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어디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게 합니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단지 과거의 심판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회개와 회복, 순종의 부르심입니다.

에스겔 11:1~12

다음은 에스겔 11장 1절부터 12절까지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 기준):


에스겔 11:1~12

  1. 그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문 어귀에서 백성의 방백 스무다섯 명이 있는데 그 중에는 아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도 있더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죄악을 꾀하며 이 성 중에서 악한 계교를 꾸미는 자니라.
  3. 그들이 말하기를 집을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
  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하라.
  5.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여 내게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거니와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아노라.
  6. 너희가 이 성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며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도다.
  7.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죽인 시체를 이 성 중에 두었은즉 그들이 고기요 이 성은 가마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를 그 중에서 끌어내리라.
  8.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였은즉 내가 칼을 너희에게 임하게 하고 나 주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9. 내가 너희를 그 성 중에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기고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10.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11. 이 성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심판하리니
  12.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좇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아래는 에스겔 11장 1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성구, 깊이 있는 묵상, 기도문을 포함한 글입니다.

에스겔 11:1~12 묵상: 성 안의 고기인가, 하나님의 칼 앞에 선 자인가

1. 본문 요약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에 이끌려 성전의 동문 곧 동쪽 문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백성의 지도자 25명이 보이는데, 그 중에는 야아사냐와 블라댜라는 이름이 언급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악한 계략을 꾸미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과 거짓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 성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고 하는데, 이는 예루살렘이 그들을 보호해주는 안전한 울타리라는 오만한 신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반대로, 그들이 칼에 쓰러지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마 안의 고기가 아니라, 끌어내어 도살될 자들이며, 그들이 따랐던 이방의 규례가 결국 멸망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1) 잘못된 확신과 거짓 평안

백성의 방백들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 성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라”는 은유로 자신들의 위치를 안정되었다고 여기며, 바벨론의 경고나 예언자들의 외침에 귀를 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국 거짓된 안일함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성은 더 이상 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과 율례에서 떠난 백성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에스겔의 환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단지 물리적인 멸망을 의미하는 것 이상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겉으로 평안하게 보이는 자들조차도 그들의 속내를 들추어 심판하십니다(5절). 하나님은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아노라”라고 하시며, 숨겨진 교만과 죄악도 간과하지 않으심을 드러내십니다.

(3) 거짓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

하나님은 야아사냐와 블라댜를 비롯한 지도자들을 지목하시며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십니다. 이들은 공동체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자들이었지만, 오히려 죄악을 꾀하고 거짓된 평안을 선포하며 백성들을 멸망으로 인도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였으며, 이는 결국 공동체 전체의 파멸로 이어졌습니다.

(4) 율례와 규례를 떠난 삶의 결과

1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방의 관습을 따랐다는 점을 심판의 근거로 삼으십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을 하나님의 방식보다 앞세운다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동일한 무너짐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관련 성경 구절

신명기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를 것이니.”

예레미야 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히브리서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이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마태복음 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느니라.”

4. 깊이 있는 묵상: “나는 어떤 지도자인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가장 날카롭게 와닿는 것은 2절의 말씀입니다.

> “이 사람들은 죄악을 꾀하며 이 성 중에서 악한 계교를 꾸미는 자니라.”

하나님은 단지 행동만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계획’과 ‘동기’, 즉 속 마음까지도 들여다보시는 분입니다. 이는 곧, 겉으로 아무리 경건하고 교회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된 삶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에스겔은 당시 유다의 현실 속에서 외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백성에게 “지금은 괜찮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식의 거짓 평안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실상은 곪아버린 죄악과 타락뿐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혹은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서 있는가? 내 안의 두려움이나 이기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은가? 이 말씀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진정한 회개”와 “성찰”을 요구합니다.

가마 안에 있는 고기처럼 안전한 듯 살아가는 이들은 결국 칼날 아래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보실 때, 나는 참된 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이방의 규례를 따르며 자기중심적 안일함 속에 빠져 있는가?

이 말씀은 내게도 물으십니다.

> “너는 누구의 규례를 따라 살아가고 있느냐?”

5.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에스겔을 통해 들려주신 심판의 말씀은 내 마음을 두렵게 합니다.

당시의 방백들과 백성들처럼, 저도 눈에 보이는 안정과 안전을 더 의지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세상의 관습과 흐름에 편승하며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제 마음 중심을 아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인처럼 보이나, 제 안의 탐심과 자기중심성,

두려움과 교만을 주께서 깨뜨려 주시고,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거짓된 평안을 따르지 않게 하시고,

참된 평안이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에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이 결코 피난처가 될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난 어떤 안전장치도 제게 생명을 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주여, 오늘도 제 안의 야아사냐와 블라댜 같은 교만과 위선을 끌어내시고,

주님 앞에서 온전한 회개로 나아가게 하소서.

내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도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따르며,

거룩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바른 길을 걷게 하소서.

무너질 것 같던 성전 문 앞에서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주님,

오늘도 제 심령에 임하여 말씀해 주옵소서.

주께서 말씀하시면, 내가 듣겠나이다.

그 말씀 앞에 살겠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스겔 10:9~22

다음은 에스겔 10:9~22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 기준):


에스겔 10:9–22 (개역개정)

9 내가 보니 그룹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한 그룹 곁에 한 바퀴요 다른 그룹 곁에 한 바퀴라 그 바퀴의 모양은 황옥 같으며
10 네 바퀴의 모양은 다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11 그들이 갈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가며 머리 향한 곳으로 따라 가고 돌이키지 아니하며
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들과 바퀴들은 그 네 그룹의 바퀴에 둘린 대로 다 눈이 가득하며
13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회전이라 부르며
14 각 생물은 네 얼굴을 가졌으며 첫째는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는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라
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16 그룹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어 땅에서 올라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며
17 그들이 서면 이것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것들도 함께 올라가나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앞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20 그것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본 이스라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이라 내가 보기에 그들이 그룹이라
21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22 그 얼굴의 모양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얼굴들이라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


 

아래는 에스겔 10:9–22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말씀 구절, 깊이 있는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포함한 묵상글입니다.


에스겔 10:9–22 말씀 묵상

1. 본문 요약

에스겔 10장 9절부터 22절은 하나님 영광의 떠남과 더불어, 스랍과 그룹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 심판의 임재를 드러냅니다. 본문은 에스겔이 본 환상의 자세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네 그룹 각각 옆에 바퀴가 있고, 그 바퀴는 번쩍이며 매우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9–10절). 바퀴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그룹의 영이 바퀴 안에 있어 함께 움직입니다(11–13절). 그룹들의 몸과 바퀴들은 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전지성(全知性)을 상징합니다.

그룹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이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 위로 이동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움직입니다(18절). 이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이 점차 성전을 떠나는 과정 중 하나로,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이 그룹들이 에스겔 1장에서 본 생물과 동일하다는 점을 밝히며, 하나님 계시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20–22절).


2. 신학적 해석

1) 하나님의 영광의 이동

이 본문은 하나님의 임재, 즉 쉐키나 영광(Shekinah Glory)이 성전을 떠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서 9장에서 시작된 심판의 과정이 점점 더 가시화되며, 10장에서는 그 결정적인 장면으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시지 않겠다는 선언이 시각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하나님이 더 이상 불의한 백성과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2) 그룹과 바퀴: 하나님의 통치와 전능하심

그룹은 고대 근동 문화에서도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으며, 성경에서는 하나님 보좌를 지키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그룹들과 바퀴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권과 임재를 운반하는 상징물입니다. 바퀴 안에 있는 ‘영’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신 존재임을 암시하며,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을 떠나 움직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바퀴가 전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눈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은 하나님 통치의 무한성, 전지성, 전능성을 상징합니다.

3) 하나님의 철수는 끝이 아닌 회복의 서곡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장면은 무섭고 슬프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단지 파괴를 위한 철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와 회복을 준비하시기 위해 임재를 거두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후반부(43~44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그려지며, 이 떠남은 단절이 아니라 정결케 하려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에스겔 1:4–28

    에스겔이 처음 본 생물과 바퀴의 환상으로, 10장의 그룹들과 바퀴가 동일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줍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속성에 대한 최초의 계시입니다.

  • 에스겔 11:22–23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바퀴들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덮이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서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예루살렘을 떠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 요한계시록 4:6–8

    “그 보좌 앞에 수정같이 맑은 유리 바다가 있고… 네 생물은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에스겔의 환상이 요한계시록의 환상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를 묘사합니다.

  • 시편 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심을 고백하며, 바퀴 안에 영이 함께 움직이는 에스겔서의 메시지와 공명합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의 부패한 예배와 불의한 삶을 참지 않으신다는 준엄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죄악이 가득한 곳에 그분의 영광은 머물 수 없습니다. 에스겔이 본 그룹과 바퀴, 그리고 떠나는 영광의 모습은 마치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서도 질서 있게, 권위 있게 움직이심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장면은 우리 개인의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형식적인 종교행위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진실된 회개와 순종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조용히 떠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심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철저한 무너짐 속에서 회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고 회개할 때, 그분은 다시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이 환상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바퀴 가득한 눈은 하나님께서 나의 말, 행위, 마음의 동기까지 모두 보고 계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숨을 곳은 없으며, 은혜 외에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떨며, 동시에 회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5.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에스겔을 통해 보여주신 당신의 거룩한 영광 앞에 나아갑니다. 번쩍이는 바퀴와 그 안에 있는 영, 눈으로 가득한 그룹의 날개를 바라보며, 당신의 전지전능하심과 위엄 앞에 두려움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 저의 삶 가운데 당신의 영광이 거하시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내 안의 죄와 타협은 회개하지 않은 채 방치해왔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영광이 내 삶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형식적인 신앙이 아닌, 진실하고 깨어있는 믿음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거룩함을 잊고 우상과 불의를 행했듯, 나 역시 세상의 가치에 이끌려 주님의 뜻을 외면하며 살아온 날들이 많았습니다. 주님, 제 마음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임재를 가로막는 모든 우상과 교만을 제거하게 하소서.

바퀴 안에 함께하신 영처럼, 저의 모든 걸음에도 주님의 영이 함께하시길 소망합니다.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할 때, 당신의 영광이 앞서 인도하소서. 멈춰야 할 때는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머물게 하소서.

주님, 에스겔에게 다시 임하신 영광처럼, 우리 교회와 가정에도 다시 영광으로 임하셔서 회복과 소망의 새날을 열어주소서. 침묵하시는 듯 보일지라도, 주님의 계획은 결코 멈추지 않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떠나심은 끝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오니, 우리 안에 주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줄 묵상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한 자리에 머물며, 떠나심은 회복을 위한 시작이다.”


 

에스겔 10:1~8

다음은 에스겔 10:1~8의 성경 본문입니다 (개역개정판 기준):


에스겔 10:1-8

1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 위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2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그룹 사이에 들어가서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 가운데에서 두 손에 숯불을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트라 하시매 그가 내가 보는 가운데로 들어가더라
3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였으며
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음성 같더라
6 하나님이 그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에게 명령하시기를 불 가운데에서 곧 그룹들 사이에서 가져가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서 그룹 바퀴 곁에 서매
7 그룹이 그 손을 그룹들 사이의 불 가운데로 내밀어 그 가운데에서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니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더라
8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아래는 에스겔 10:1~8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문 요약, 신학적 해석, 관련 성경 구절,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포함한 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의 불 – 에스겔 10:1~8 묵상

1. 본문 요약

에스겔 10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특히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불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의 엄중함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에스겔은 먼저 그룹들(천사적 존재)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에서 남보석(사파이어) 같은 광채 속에 있는 보좌 형상을 봅니다(1절).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상징합니다. 그 후 하나님은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스겔 9장에서 예루살렘 가운데서 표를 그었던 사람)에게 명하여 그룹들 사이 불 가운데로 들어가 숯불을 움켜 성읍 위에 흩으라 명하십니다(2절). 이는 심판의 불을 통한 예루살렘의 정결과 징계를 의미합니다.

그룹들은 성전 오른편에 있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에서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지며, 성전은 구름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찹니다(3절).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아직 성전을 떠나지 않았지만 점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음성과 같으며(5절), 불이 전달되고, 그 불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의 손에 주어져 성읍 위에 흩어지게 됩니다(7절). 마지막으로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는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보입니다(8절). 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과 행동을 상징하는 이미지입니다.

2. 신학적 해석

1)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 (1절)

보좌 형상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주권자로서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심을 나타냅니다. 남보석 같은 광채는 그분의 거룩함과 순결함, 심판의 정당함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거룩한 보좌로부터 나오는 의로운 결정입니다.

2)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사명 (2절)

에스겔 9장에서 표를 그었던 가는 베 옷의 사람은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히 이행하는 중재자 같은 존재입니다. 그가 숯불을 성읍 위에 흩는 것은 심판의 도구가 거룩한 명령에 따라 정결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 위에 불이 내렸던 장면과 유사합니다.

3)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 (3~4절)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심판의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여전히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는 곧 영광의 이동, 즉 하나님의 떠남의 예고이기도 합니다(참고: 에스겔 10:18, 11:23).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성소에 영원히 머무르시지 않으며, 회개 없는 백성에게서 그 임재를 거두실 수 있습니다.

4) 그룹들의 소리와 날개 (5절)

그룹들은 천상의 존재로, 하나님의 뜻을 직접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날개 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음성과 같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5) 불의 상징성과 심판의 불 (6~7절)

불은 성경에서 정결하게 함, 심판, 하나님의 임재 등을 상징합니다. 여기서의 불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동시에 정결케 하는 불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불은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새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6) 사람의 손 같은 형상 (8절)

사람의 손은 하나님의 능동적 개입과 역사하심을 상징합니다. 이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닌, 실제로 행동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6:6-7 – “그 때에 스랍 중의 하나가 화저(불붙은 숯)를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 히브리서 12:29 –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 시편 97:2-3 –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

  • 요한계시록 4:5 –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레가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이 켜졌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4. 묵상: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나의 자리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겁고 두렵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지하게 자기 백성의 죄를 다루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분은 임재하시되, 죄 가운데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삶에 죄가 있는지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내 삶 속에서 더욱 깊어지길 바란다면, 정결함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에스겔의 환상처럼, 하나님의 불은 파괴도 하지만 정결도 이룹니다. 회개하지 않는 도시는 불태워지고, 회개하는 자는 불로 정결해집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해 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날마다 마음의 성소를 정결하게 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5.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에스겔을 통하여 보여주신 환상을 묵상하며, 저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두렵고도 무거운 것인지 깨닫습니다. 보좌 위에 앉으신 주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우시며, 죄악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다시금 느낍니다.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심판의 불을 명하신 하나님, 그 불이 성읍 위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저는 나의 죄와 연약함을 돌아봅니다. 정결하지 못한 내 마음, 타협과 변명으로 가득한 내 영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를 불로 정결하게 하시되, 자비의 불로, 회개의 불로 태워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영광이 내 삶 가운데 떠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의 가정, 교회, 일터 가운데 임하셔서 주의 임재로 충만케 하시고, 우리가 말씀을 경외함으로 주 앞에 서게 하옵소서.

그룹들의 날개 소리처럼 강력한 주님의 말씀을 오늘도 내 귀에 들려주시고, 사람의 손처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내 삶에서 체험하게 하소서. 주님의 손이 오늘도 내 삶에 닿기를 소망합니다.

성전에서 떠나시려는 주님의 영광을 붙들지 못하고 울던 에스겔처럼, 저도 오늘 나의 공동체와 교회를 위해 울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주님께 돌아가는 일에 헌신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 줄 묵상:
“하나님의 불은 심판이기도 하지만, 회개하는 자에겐 정결의 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