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10~17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개역개정)

10 그러나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 받음과 고난, 곧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같은 것을 잘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에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0절~17절

말씀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사람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3장 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말세의 타락한 세상과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경고했다. 그러나 10절부터는 그 어둠 속에서도 빛처럼 살아가야 할 참된 신자의 삶을 보여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잘 따랐으며.”
디모데는 단순히 바울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본 사람이다. 그는 바울의 신앙, 고난, 인내, 그리고 복음을 위한 헌신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바울은 자신이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등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그 모든 고난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건지셨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르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참된 신앙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세상의 저항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결국 승리의 길로 나아간다.

반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해져서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자신도 속는 길을 간다. 그들은 점점 진리에서 멀어지고,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의 믿음은 단지 지적 동의가 아니라, 실제적인 확신과 삶의 중심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왔음을 상기시킨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단지 도덕적 교훈서가 아니라,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계시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성경의 본질을 강력히 선포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인간의 생각이나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말씀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결국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오직 말씀 위에 서 있을 것을 명한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한다.
먼저, 신앙은 단순한 교리적 동의나 의식적 습관이 아니라 삶의 본질적 방향성이다. 바울이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인내를 따랐다”고 한 것은, 신앙이 단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전인적 삶의 모범임을 의미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 고난이 오히려 신앙의 진정성을 증명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세상에서 신앙인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의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확신을 심어주는 말씀이다.
세상이 교회를 대적할 때, 그것은 오히려 교회의 본질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신학적으로 매우 핵심적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선언은 성경의 영감설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 아래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경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그 어떤 시대적 사상이나 이념도 성경 위에 설 수 없다.

또한 바울은 성경의 목적을 네 가지로 제시한다.

  • 교훈: 진리를 가르쳐 옳은 길로 인도함

  • 책망: 잘못된 길을 꾸짖어 돌이키게 함

  • 바르게 함: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음

  • 의로 교육함: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게 함

이 네 가지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인격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뜻한다. 결국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우는 도구이다.


3. 묵상

바울의 이 메시지는 오늘날 교회를 향한 가장 절실한 요청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말씀의 권위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성경보다 자기 경험, 감정, 혹은 사회적 가치에 더 의존한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의 지혜를 주는 유일한 근거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 한 구절은 오늘날 신앙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명령이다. 믿음은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확신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또한 바울이 말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신앙의 본질이 세상과의 대립 속에서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신앙이 편안함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를 경험하게 된다. 디모데는 바울의 삶을 통해 그것을 직접 보았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앙인은 세상 속에서 조롱받을 수 있고, 외면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4. 오늘의 적용

  1. 말씀으로 뿌리내리라
    매일의 삶 속에서 성경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라. 말씀을 통해 내 생각과 감정이 새로워진다.

  2. 신앙의 스승을 따르라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 신앙에는 본받을 만한 믿음의 선배가 필요하다. 믿음의 모범을 따르는 것은 신앙의 성장에 큰 힘이 된다.

  3.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세상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난은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 믿음의 증거다.

  4. 성경의 권위를 지키라
    시대의 사상과 여론이 아무리 변해도, 성경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절대적 기준이다.

  5. 말씀으로 온전케 되라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유일한 도구다. 매일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5.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거짓과 혼란 속에서도 말씀 위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소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듯이,
우리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굳게 거하게 하시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진리를 붙잡게 하소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박해할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리라 믿습니다.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을 보게 하소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시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빚어 주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실이 주님의 뜻을 드러내게 하시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시며,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맺음말

디모데후서 3장 10절부터 17절은 신앙의 본질을 정리한 선언과도 같다.
세상은 악해지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으로 온전케 된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바울이 남긴 이 마지막 권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울린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 믿음 위에 설 때, 우리는 어떤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


 

디모데후서 3:1~9

아래는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9절(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9 (개역개정)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인들을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인들은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를 알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 얀네와 얌브레의 그 일과 같으니라.


이 본문은 말세의 징조와 거짓 신앙인들의 특징을 경고하며,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경건의 능력을 붙잡고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9절

말세의 혼란 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붙드는 믿음


1. 본문 요약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의 말을 전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는 선언으로 본문은 시작된다. 바울이 말하는 ‘말세’란 단순히 세상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이 전파된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이어지는 시대 전체를 가리킨다. 이 기간 동안 세상은 점점 더 어둡고 혼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인간의 마음은 자기중심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당시 사회와 교회 안에 드러날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사람들의 관계가 무너지고 감정이 메말라 무정하며, 화해하지 못하고, 험담과 모함이 가득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싫어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들은 배신하고, 조급하며, 자만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명한다. 진리를 가장한 거짓 신앙, 신앙의 이름을 빌린 자기합리화, 그리고 종교적 외식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경계한다. 그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죄에 눌리고 욕심에 끌린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배우지만,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들을 모세를 대적했던 애굽의 마술사 얀네와 얌브레에 비유하며, 그들의 어리석음과 부패함이 결국 드러나 멸망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단지 바울 시대의 도덕적 타락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비추는 영적 거울이다. “자기를 사랑하며”라는 표현에서 시작되는 죄의 목록은 인간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 중심의 교만이 자리 잡은 상태를 의미한다.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경건의 모양’은 외적인 종교 행위, 즉 예배나 봉사, 헌신의 형식을 말한다. 그러나 ‘경건의 능력’은 성령 안에서 죄를 이기고, 사랑과 절제, 겸손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내적인 힘을 뜻한다. 교회는 언제나 이 두 가지 사이의 긴장 속에 서 있다. 형식적 경건은 외형적으로는 신앙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사라져 있다.

바울이 말하는 거짓 교사들은 단순한 도덕적 타락자가 아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도 그 위에 서지 못한 자들이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를 알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단지 지식의 축적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성경을 공부하고 교리를 논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 있지 않으면 그 모든 지식은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얀네와 얌브레는 출애굽기 7장에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애굽의 마술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처음에는 모세의 기적을 흉내 냈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무력해졌다. 바울은 이를 통해 거짓된 영적 세력들이 일시적으로 세력을 얻을 수 있으나, 결국 진리 앞에서 그들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진리를 결코 패배하게 두지 않으신다.


3. 묵상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직접적인 도전을 준다. 우리는 과연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경건의 능력 안에 살아가는 사람인가. 겉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이미 바울이 경고한 말세의 인간상 안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 시대는 기술과 정보의 발전으로 ‘항상 배우는’ 세상이다. 하지만 진리를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되 순종하지 않고, 듣되 실천하지 않으며, 알되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울이 말한 ‘끝내 진리를 알 수 없는 상태’와 같다.

경건의 능력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나타나는 열매이다. 성령은 우리의 욕망을 제어하고, 사랑과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충성, 온유, 절제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외적 행위보다 내적 관계를 더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서 벗어나라고 명한다. 오늘날의 거짓 교훈은 단지 교리적 오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계발’, ‘성공신앙’, ‘긍정의 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메시지들이 실제로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부활의 영광만을 말하는 신앙은 온전한 복음이 아니다.

이 본문은 결국 디모데와 모든 신자에게 “진리 위에 서라”는 초대이다. 세상의 도덕적 혼란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4. 오늘의 적용

  1. 경건의 모양보다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라
    신앙의 형식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 예배, 헌신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살아 있어야 한다.

  2.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라
    세상의 풍조는 점점 더 인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가르침을 분별해야 한다.

  3. 항상 배우되, 순종으로 마무리하라
    성경 공부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들은 말씀을 실천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다.

  4. 진리의 승리를 믿으라
    얀네와 얌브레의 예처럼, 거짓된 세력은 잠시 번성할 수 있으나 끝내 드러나 멸망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진리를 높이신다.


5.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경고하신 말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의 혼란과 유혹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겉모습의 경건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참된 믿음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 쾌락 사랑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항상 배우되 끝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배운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거짓 교훈과 세속적 가치가 교회를 흔드는 이때에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시며,
그 어떤 유혹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형식이 아닌 본질, 종교가 아닌 관계, 외적 신앙이 아닌 내적 경건을 추구하도록 이끕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9절은 말세의 경고이지만 동시에 소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진리가 여전히 능력 있으며, 경건의 사람은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14~26

【디모데후서 2장 14절~26절 | 개역개정】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 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 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것이 다툼을 일으키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2장 14절부터 26절까지는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주는 목회적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이 단락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지키고, 말다툼과 헛된 논쟁을 피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라고 권면하며,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가르치는 것이 그의 사명임을 상기시킵니다.

이어 바울은 거짓된 교훈을 퍼뜨리는 자들—특히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언급하며, 그들의 말이 악성 종양처럼 퍼져 공동체를 해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다”고 말하며, 진리의 근본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20절부터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큰 집에는 귀하게 쓰이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천하게 쓰이는 나무와 질그릇도 있듯, 사람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주의 종은 다투지 말고 온유함으로 거역하는 자를 가르쳐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시기를 소망하라고 말합니다.


2. 신학적 해석

이 본문은 참된 일꾼의 정체성과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지식이나 설교 능력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세를 갖는 것이 참된 사역자의 핵심임을 가르칩니다.

(1)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

15절의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라는 구절은 목회의 중심이 말씀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단순히 말씀을 외우거나 전하는 것을 넘어서,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많은 말과 논쟁이 존재하지만, 바울은 이런 다툼이 결코 유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말다툼은 듣는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핵심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있습니다.

(2) 깨끗한 그릇이 되라

20~21절에서 바울은 신앙인의 상태를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금과 은의 그릇이든, 나무와 질그릇이든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깨끗함입니다. 그릇이 아무리 화려해도 더럽다면 주인은 그것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평범한 질그릇이라도 깨끗하다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은 세상적 능력이나 외적 조건이 아니라, 거룩한 삶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3) 온유함으로 진리를 가르치라

24~26절에서 바울은 주의 종의 태도를 말합니다.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라는 표현은 목회의 본질이 단순한 교정이나 논쟁이 아니라 사랑과 인내임을 드러냅니다.

거역하는 자에게도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승리는 설득의 승리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 변화의 역사에서 이루어집니다.


3. 묵상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말의 다툼과 논쟁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진리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서로를 비난하거나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 다툼은 아무 유익이 없고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한다”고 단언합니다.

진리를 지키는 길은 다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말씀 앞에서 겸손한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바울의 “깨끗한 그릇” 비유는 우리 각자의 내면을 비춥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보다, 그릇의 상태, 즉 마음의 순결을 보십니다. 내 안에 세상의 욕심, 교만, 시기, 정욕이 가득하다면 주인의 손에 들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비워내고 정결하게 하면, 하나님은 그를 들어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온유함은 진리를 잃지 않는 사랑의 자세입니다. 세상은 공격적이고 단호한 목소리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통해 회개와 회복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바울이 말한 “온유함으로 훈계하라”는 권면은, 결국 진리는 사랑 안에서 전해져야 한다는 복음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4.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말이 다툼과 분열을 낳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 저희의 마음이 세상의 욕망과 불순함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시고,
깨끗한 그릇으로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소서.
겉모양이 아니라 마음의 거룩함으로 주인의 손에 들려지길 원합니다.

청년의 정욕과 세상의 유혹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순결한 신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투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하시며,
거역하는 자도 품을 수 있는 사랑과 인내를 허락하소서.

하나님, 우리의 말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말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진리를 증언하는 복음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저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디모데후서 2:1~13

아래는 디모데후서 2장 1절~13절(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1~13 (개역개정)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디모데후서 2장 1절~13절: 은혜로 강한 사람,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2장 1절부터 13절은 바울이 옥중에서 제자 디모데에게 전하는 깊은 권면의 말씀이다. 그는 젊은 제자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권하고, 복음을 맡은 일꾼으로서 충성되고 인내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구절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적 권면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계승이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영적 유언과도 같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 가지 비유를 제시한다. 병사, 경기자, 농부이다. 병사는 주를 위해 세상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경기자는 규칙을 지켜야 승리할 수 있으며, 농부는 수고를 다한 뒤에 열매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 세 비유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역자의 태도와 삶의 원리를 요약한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 때문에 매임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는 모든 고난을 감내하며, 택하신 자들이 구원과 영광을 얻도록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대교회에서 널리 불렸던 신앙 고백의 노래로 알려진 ‘미쁘다 이 말이여’(11~13절)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선언한다.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살고, 참으면 왕 노릇 하며,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시지만, 주는 언제나 신실하시다는 것이다.


2. 신학적 해석

디모데후서 2장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인 은혜, 고난, 그리고 신실함을 함께 다룬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말한다. 이 명령은 인간적 결단이나 의지의 힘으로 견디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으라는 것이다. 신앙의 강함은 내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

둘째, 복음의 계승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신앙의 책임이다. 바울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명령한다. 복음은 아무에게나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고 믿음직한 자에게 전해져야 한다. 이는 교회의 사명과 직분의 본질을 드러낸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는 복음을 단순히 ‘듣는 자’가 아니라 ‘전달하는 자’로 부름받았다.

셋째, 병사, 경기자, 농부의 비유는 각각 헌신, 절제, 인내를 상징한다. 병사는 세상적 안락보다 주의 부르심을 우선한다. 경기자는 규칙을 지키며 절제하는 삶을 산다. 농부는 즉각적인 결과가 없어도 묵묵히 땀 흘리며 기다린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신앙인이 지녀야 할 복음적 삶의 덕목이다.

넷째, 바울의 고백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는 복음의 초월성을 선언한다. 인간의 몸은 갇힐 수 있어도, 진리의 말씀은 결코 묶이지 않는다. 세상의 억압과 박해 속에서도 복음은 끊임없이 전파되었고, 지금도 살아 역사한다.

마지막으로,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신앙 고백은 구원의 확실함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함을 노래한다. 신자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며,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다. 그러나 주를 부인하는 자는 주의 인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신의 성품대로 언제나 신실하시다. 인간의 불성실함이 하나님의 진리를 흔들 수 없다는 선언이다.


3. 묵상: 은혜 안에서 강한 사람의 삶

오늘의 신앙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디모데와 같은 부르심을 받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흔들며, 믿음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바울은 “은혜 안에서 강하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정신적 위로가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 근거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만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붙들 수 있다.

또한 바울의 세 가지 비유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점검하게 만든다. 나는 복음의 병사로서 세상의 욕심과 걱정에 얽매여 있지는 않은가? 경기자처럼 법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 방식대로 신앙을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가? 농부처럼 기다림 속에서 열매를 신뢰하며 인내하고 있는가?

복음을 위한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어려움, 오해, 손해, 외로움도 복음을 위한 헌신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신자는 고난을 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존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아야 한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부인할 때조차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신다.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신앙의 여정은 우리의 완전함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 위에 세워진다.


4. 삶의 적용

  1. 복음의 계승자로서의 사명
    나의 신앙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은 말씀과 은혜는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야 한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복음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2. 고난을 통한 성장
    신앙의 성숙은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환경이나 상황이 아무리 억압적이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롭다. 내 인생이 막힌 듯 보여도 말씀은 여전히 역사한다는 사실을 믿자.
  4.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내가 흔들릴 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다. 내 신앙의 불안정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의 구원의 근거다.

5. 기도문

사랑의 주님,
오늘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통해 은혜로 강한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의 힘과 지혜로가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과 담대함을 얻게 하소서.

세상의 염려와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의 병사로서 주님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규칙을 따라 싸우는 경기자처럼 정직한 믿음의 길을 걸으며,
농부처럼 묵묵히 땀 흘리며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게 하소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음을 믿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이 자유롭게 역사하게 하시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의 빛이 전해지게 하소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믿음을 붙들게 하시며,
주를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자로 세워 주소서.
나의 연약함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디모데후서 1:9~18

아래는 디모데후서 1장 9절부터 18절까지(개역개정)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1:9-18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패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그가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일이 네가 안 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여러 번 시원하게 하고 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느니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께로부터 긍휼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이 본문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도 복음의 은혜와 사명의 확신, 그리고 충성된 동역자의 기억에 대해 말하는 매우 따뜻하면서도 깊은 구절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18절 묵상

“복음의 은혜와 충성된 믿음의 길”

1. 본문 요약

디모데후서 1장 9절부터 18절은 사도 바울이 복음의 본질과 그에 따른 부르심의 의미, 그리고 복음 사역에 충성한 자들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며,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계획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주어진 은혜라고 고백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냈다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의 죄와 사망을 패하셨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은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움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고난을 받았지만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마지막 날까지 지키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디모데에게도 자신이 가르친 바른 교훈을 믿음과 사랑으로 지키고,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라고 권면한다. 이어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음을 언급하며, 특히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지목한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달랐다. 그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러 번 찾아와 시원하게 하였으며, 로마에서도 부지런히 바울을 찾았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가 에베소에서 충성스럽게 섬겼음을 디모데에게 상기시킨다.

이 본문은 인간적인 연약함과 배신, 그리고 반대로 변치 않는 신앙과 사랑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바울은 복음의 사명을 지키는 일이 고난과 외로움을 동반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함을 경험한다고 증언한다.

2. 신학적 해석

이 구절에서 중심이 되는 단어는 은혜, 소명, 복음, 그리고 충성이다.

9절은 구원과 부르심이 인간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밝힌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라는 선언은, 신약 전체의 복음 신학을 요약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구원은 인간의 자격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은혜의 역사이며, 그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점을 바울은 분명히 한다.

10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통해 복음이 드러났음을 선포한다. 이는 단순히 예수의 성육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완전한 구원의 계시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사망을 패하시고, 인간에게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 즉 영생의 약속을 주셨다. 복음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생명 선포이며, 이 은혜 안에서 신자는 새 생명으로 부름을 받는다.

11절과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받았음을 고백한다.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라는 직분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삶 전체를 헌신하는 소명이다. 그는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받지만,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바울의 신앙적 확신 때문이다. 그는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라고 말하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신뢰 관계를 드러낸다. 그 신뢰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마지막 날까지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확장된다.

13절과 14절은 디모데에게 주는 직접적인 교훈이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는 말은 단순히 교리를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믿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살아내라는 뜻이다.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는 말은, 복음의 진리를 인간의 힘으로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함을 강조한다. 이는 신앙 공동체가 복음을 보존하는 방식이 단순한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 속에서 진리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15절부터 18절은 복음 사역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연약함과 신실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을 버린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도, 오네시보로와 같은 충성된 사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도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러 번 찾아와 위로했다. 바울은 그가 받은 은혜가 주의 날에 긍휼로 갚아지기를 기도한다.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사가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헌신을 기억하고 축복하는 신학적 의미를 드러낸다.

결국 이 본문은 신자의 삶이 고난 속에서도 변치 않는 복음의 은혜에 근거해야 하며, 그 은혜를 의지하여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가는 공동체적 신앙을 강조한다.

3. 묵상

오늘의 본문은 신앙생활의 본질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그 은혜에 대한 충성된 응답’에 있음을 일깨운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고, 많은 동역자들이 그를 떠났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은 복음의 길을 외롭고 손해 보는 길이라 말하지만, 바울은 그 안에서 오히려 가장 큰 확신과 자유를 얻었다.

그가 말한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라는 고백은 신앙의 핵심이다. 신앙은 단순히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아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확신이다. 그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고난과 배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을 붙들 수 있다.

또한 디모데에게 주어진 권면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가 받은 바른 말씀, 곧 복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신앙을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시키려 한다. 그러나 복음은 세상의 중심을 바꾸는 생명의 진리이며,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그것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오네시보로의 이야기는 신앙의 관계성에 대한 귀한 교훈을 준다. 바울이 고난을 받을 때, 그는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찾아와 시원하게 했다. 신앙은 홀로 견디는 싸움이 아니라, 함께 짐을 지고 서로 위로하는 공동체의 여정이다. 우리도 신앙의 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형제자매를 찾아가 위로하고, 그들의 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결국 바울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복음의 은혜를 잊지 말라. 너를 부르신 이는 신실하시며, 네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너를 지키신다. 그러므로 끝까지 담대히 복음을 붙들고, 사랑으로 동역자들을 세워라.”

4. 기도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우리를 행위로가 아니라 은혜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구원의 뜻을 우리에게 이루시고,

죽음과 썩음을 이기신 생명의 복음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바울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세상의 조롱과 외로움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주께서 나를 끝까지 지키실 것을 확신하게 하소서.

성령님, 우리 안에 거하시며 복음의 진리를 지키게 하소서.

믿음과 사랑으로 바른 말씀을 붙들고,

오네시보로처럼 고난받는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종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맡기신 아름다운 것을 잘 지키게 하시고,

그날에 주님 앞에서 긍휼과 칭찬을 받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복음의 향기가 되어 세상 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묵상은 복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상기시키며, 그 은혜에 대한 ‘신실한 응답’으로서의 믿음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