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1~19

마태복음 11장 1절에서 19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요청하신 대로 별도의 기호 없이 중요한 문구만 굵게 강조하여 정리해 드립니다.


마태복음 11:1-19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항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절에서 19절에 이르는 본문은 메시아의 정체성과 그분을 대하는 세대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1. 본문 요약 및 구조 분석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1-6절), 둘째는 세례 요한의 정체성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7-15절), 셋째는 복음을 거부하는 이 세대에 대한 비유와 책망(16-19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신 후 친히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셨습니다. 이때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시며 요한의 의심을 불식시키십니다. 이후 무리에게 요한이 누구인지 설명하시며 그가 엘리야의 사명을 띤 자임을 선포하시지만, 정작 이 세대는 요한도 예수님도 거부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2. 상세한 신학적 해석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간극

세례 요한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그가 가졌던 메시아상과 예수님의 사역 방식 사이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불로 세례를 주실 강력한 심판주를 기다렸으나,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며 긍휼과 자비의 사역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예언을 인용하시며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걷는 등의 표적이 곧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증거임을 확증하십니다. 이는 메시아의 사역이 파괴와 심판 이전에 회복과 구원에 있음을 신학적으로 명시합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자의 역설

12절의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라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의 공격을 의미하고, 둘째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의 역동성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면서, 혈통이나 율법의 준수보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적극적으로 그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세대의 영적 무감각

예수님은 장터의 아이들 비유를 통해 영적 반응성이 결여된 세대를 비판하십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모습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기쁨)과 회개의 요청(슬픔) 모두에 무관심한 인간의 완악함을 상징합니다. 이는 복음이 전파되어도 자신의 고정관념에 갇혀 진리를 판단의 대상으로만 삼는 태도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Cross-Reference)

  • 이사야 35:5-6: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예수님이 답변하신 사역의 구약적 근거)

  •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세례 요한의 사명을 예언한 말씀)

  • 누가복음 7:18-35: 마태복음의 본문과 평행 구절로, 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이 더욱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전파의 핵심 사명)


4. 깊이 있는 묵상: 흔들리는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진리

질문하는 믿음, 세례 요한의 고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던 세례 요한조차 옥이라는 고난의 상황 속에서는 믿음의 흔들림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위대한 선지자라도 환경의 제약을 받을 때 의심이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의심을 품고 혼자 고민하지 않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의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심이 생길 때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하나님의 일하심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요한이 불의 심판을 기대했듯, 우리도 당장의 문제 해결과 악인의 심판을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치유와 회복의 낮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내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동시에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반응하는 영성: 피리와 애곡

오늘날의 우리도 장터의 아이들과 같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선포되어도 감동이 없고, 죄에 대한 지적에도 애통함이 없다면 그것은 영적 질병의 상태입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라면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삶의 열매로 그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5. 결론 및 적용 기도문

본문은 우리에게 편견 없는 믿음즉각적인 영적 반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침노하는 자, 즉 간절히 주님을 찾는 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연약한 믿음과 완악한 마음을 되돌아봅니다. 세례 요한처럼 인생의 어두운 감옥에 갇혀 주님의 일하심을 의심할 때에도, 우리가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주님께 답을 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자들을 돌보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좁은 메시아관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주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게 하시고,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역이 나의 삶 속에 온전히 이루어질 때 그것을 기쁨으로 수용하는 넓은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춤추며 반응하게 하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실 때 가슴을 치며 자복하는 살아있는 영성을 허락하옵소서.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하며 침노하는 열정을 주시옵고, 우리의 모든 행실이 하나님의 지혜를 증명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친구 되시며 참된 지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10:34~42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42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10:34-42 (개역개정)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들은 신앙의 우선순위와 그에 따르는 헌신, 그리고 제자를 영접하는 자가 받을 상급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42절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며 주신 길고 엄중한 강화의 결론부입니다. 이 말씀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왜 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제자의 길을 걷는 자들이 직면할 갈등과 그 끝에 약속된 영광스러운 보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1. 본문 요약: 제자의 길과 영광스러운 보상

본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34-36절)는 신앙으로 인한 불가피한 갈등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기존의 가치관과 새로운 하늘나라의 가치관이 충돌하며 가족 간에도 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여기서 검은 파괴를 위한 무기가 아니라, 진리와 비진리를 가르는 영적 분별과 분리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37-39절)는 제자도의 우선순위와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은 부모나 자녀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것을 명령하시며, 주를 위해 목숨을 잃는 자가 참된 생명을 얻으리라는 역설을 선포하십니다.

세 번째(40-42절)는 제자를 영접하는 자에 대한 약속입니다.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냉수 한 그릇의 선행조차 결코 하늘의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로 말씀은 마무리됩니다.


2. 신학적 해석: 화평의 왕과 검의 역설

💡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

성경은 분명 예수를 평강의 왕이라 부르지만, 본문에서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평화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인 거짓 평화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참된 평화를 세우기 위해서는 죄와 어둠으로부터의 단절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빛과 어둠이 갈라지듯, 진리를 택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가정적 불화는 제자가 감당해야 할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 합당한 자의 기준: 최고의 사랑

예수께서 가족 관계를 부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사랑의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적인 애착보다 앞서야 한다는 신명기의 정신을 계승합니다.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은 우상숭배와 다름없기에, 제자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 십자가와 생명의 역설

자기 십자가는 단순히 삶의 고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당하는 수치와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완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죽어야 사는 기독교의 신비는 여기서 완성됩니다. 자신의 자아와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성경 전체로 보는 제자도

  • 누가복음 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미가 7: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본문 36절의 구약적 배경)

  •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4. 깊이 있는 묵상: 냉수 한 그릇의 무게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에서 거창한 헌신이나 순교적인 삶만을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의 마지막에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사소한 행위를 언급하십니다. 이는 제자의 길에 따르는 보상이 특별한 능력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끊어내는 결단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앙의 이유로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아픔을 아시며, 우리가 주를 위해 포기한 것들보다 더 크고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주님을 대하듯 영접하고 있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를 돕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계산적인 행위가 아니라, 주를 향한 순전한 사랑에서 나오는 작은 친절에서 시작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제자가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타협하며 얻는 거짓 평화에 안주하지 않게 하옵소서. 진리를 위해 기꺼이 영적 검을 드는 용기를 허락하시고, 가족이나 그 어떤 소중한 관계보다 주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를 위해 목숨을 잃는 결단이 있게 하셔서, 주님이 약속하신 참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특히 소외되고 작은 자들을 주님처럼 영접하며, 그들에게 전하는 냉수 한 그릇 속에 주님의 사랑이 담기게 하옵소서.

오늘도 묵묵히 제자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 하늘의 상급을 소망하게 하시며,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하게 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10:16~33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33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10:16~33 (개역개정)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33절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 여행으로 파송하시며 주신 파송 설교의 핵심부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마주할 실질적인 위협과 박해를 예고하는 동시에,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 하나님의 세밀한 보호하심을 강조합니다.


1. 본문 요약: 박해 속의 제자도

본문은 크게 세 가지 단락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현실적인 위협과 대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는 상황을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비유하시며,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요구하십니다. 제자들은 공회와 회당,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고초를 겪을 것이지만, 그때 무엇을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의 지혜가 아닌 성령께서 친히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박해의 심화와 인내입니다. 복음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파괴되고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상황이 올지라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소망을 주십니다. 박해를 피해 이동하되, 인자가 다시 오실 날을 기대하며 복음 전파를 멈추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확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어찌할 수 없으므로, 오직 몸과 영혼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된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돌보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예수를 시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세상의 미움과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충돌

제자들이 겪는 박해는 단순히 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뱀의 지혜는 세상의 악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통찰을 의미하며, 비둘기의 순결은 악한 세상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정체성을 뜻합니다.

성령의 현존과 내주

박해의 현장에서 제자들은 홀로 남겨지지 않습니다. 19절과 20절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약속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자신의 설득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여 증언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전도와 증언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성령 하나님임을 분명히 하는 대목입니다.

영혼의 불멸과 하나님의 심판

28절은 인간의 실존적 두려움의 대상을 재정의합니다. 인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육체의 죽음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형벌인 지옥을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는 잠시뿐인 세상 권력보다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더 경외해야 합니다. 이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현재의 고난을 해석하게 하는 힘을 줍니다.

섭리적 돌보심 (Providence)

참새와 머리털의 비유는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가장 미천한 피조물의 생사까지 관장하시는 자애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제자들은 이 섭리를 믿기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평안과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고난과 위로의 약속

  • 요한복음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로마서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4. 깊이 있는 묵상: 두려움을 이기는 신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우리는 종종 신앙 생활이 평탄한 길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험한 곳으로 보내셨음을 명시하십니다. 신앙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그곳의 어둠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이리 같은 세상 속에서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우리는 완벽하게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유능함보다 우리의 순종을 원하십니다. 가장 극심한 시련의 순간, 내 안의 성령께서 말하게 하실 것을 신뢰하십시오.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납니다.

몸과 영혼을 멸하시는 이

현대인은 사람의 시선과 세상의 평가를 가장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사람의 미움은 한시적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된 사랑

나 자신도 모르는 나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알고 계신 하나님은, 내가 겪는 고통의 무게와 마음의 신음 소리를 결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내가 당하는 부당한 대우와 눈물을 하나님은 모두 계산하고 계십니다. 가장 귀한 존재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발견합니다.


5. 기도문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세상 속으로 보내시며 제자의 길을 걷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세상이 이리처럼 거칠고 무서워 주눅이 들 때도 있고,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당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할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복잡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 분별하게 하시고, 어떤 유혹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순수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어려움이 닥칠 때 제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옵소서.

세상 권력과 사람의 미움을 두려워하기보다, 오직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세밀한 손길이 저와 제 가족의 삶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당당히 시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저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지키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10:1~15

마태복음 10장 1절에서 15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10:1-15 (개역개정)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보내시다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태복음 10장 1절에서 15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하여 세상 속으로 파송하시는 선교의 대위임령의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매뉴얼입니다.


1. 본문 요약: 하나님 나라 대사들의 파송

이 단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열두 제자의 선출과 권능 부여이며, 둘째는 사역의 대상과 핵심 메시지, 셋째는 사역자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르심과 동시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권자로서 세상에 나갑니다. 명단에 언급된 이들은 베드로를 시작으로 가룟 유다에 이르기까지 출신과 성격이 제각각이었지만, 예수 안에서 하나의 선교 공동체로 묶였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우선순위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두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신학적 순서입니다. 그들이 전할 메시지는 단호하고 명료합니다. 바로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입니다. 이 선포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실천적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소유의 영성을 가르치십니다. 전대에 금이나 은을 가지지 말고, 여벌 옷조차 챙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사역자의 생계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라는 전폭적인 신뢰의 훈련입니다. 또한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평안을 빌되,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림으로써 그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라는 단호한 지침을 주십니다.


2. 신학적 해석: 권능과 비움의 역설

권능의 기원과 목적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엑수시아(Exousia), 즉 합법적인 권위입니다. 이 권능의 목적은 제자들의 명성을 높이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현존함을 보여주는 표적(Sign)에 있습니다. 질병과 귀신은 타락한 세상의 증거들이며, 이를 치유하고 쫓아내는 행위는 사탄의 통치가 종식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는 정치적이고 영적인 행위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이 구절은 기독교 윤리의 핵심입니다. 제자들이 행하는 기적과 전하는 복음은 그들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따라서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어떤 대가나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복음의 순수성과 공공성을 유지하는 안전장치이며, 사역자가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라는 의식을 잊지 않게 합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는 행위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 지역을 여행하고 유대로 돌아올 때 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 부정한 이방의 먼지를 거룩한 땅에 묻혀오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를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은 선민이라 할지라도 심판 아래 있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거부하는 자에게는 최종적인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성경의 맥락으로 읽기

  • 이사야 61:1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의 사역이 갖는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 누가복음 10:1-3 :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선교의 긴박함과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 사도행전 3:6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마태복음 10장의 지침이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났는지 보여줍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오늘을 사는 제자의 길

부르심은 보내심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종종 부르심(Calling)에만 집중합니다. 내가 위로받고, 내가 복을 받고, 내가 구원받는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직후 곧바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교회 건물 안에 머물 때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았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나는 지금 나의 가정, 직장, 공동체 속에서 보냄 받은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핍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공급

예수님은 전대에 돈을 넣지 말고 여행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무책임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생존의 근거를 소유에 두지 말고 관계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복음을 영접하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라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주저하는 이유는 종종 준비가 부족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주님의 공급하심을 믿지 못하는 신뢰의 결핍 때문일 수 있습니다.

평안을 비는 마음

제자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어야 했습니다. 비록 그 집이 복음을 거절할지라도, 사역자의 첫 마음은 항상 축복과 평안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정죄의 칼을 먼저 휘두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을 유통하는 평화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평안이 상대에게 머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축복은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이 복음 전파자가 누리는 영적 안전망입니다.


5. 기도문: 파송된 자의 고백

사랑과 권능의 주님,

자격 없는 저희를 택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하늘의 권능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어둠의 권세 앞에 무릎 꿇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곳을 치유하며 상처 입은 영혼들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의 손에 쥔 금과 은을 의지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역의 성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하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공급하심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비워진 전대만큼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발을 딛는 곳마다 하나님의 평강을 심게 하옵소서. 거절과 외면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잃어버린 양들을 향해 나아가는 지치지 않는 사랑을 허락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세상 속으로 파송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9:27~38

마태복음 9장 27절에서 38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9:27~34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심)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마태복음 9:35~38 (무리를 불쌍히 여기심)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더불어 세상을 향한 그분의 긍휼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9장 27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이 정점에 달하는 동시에, 그 사역의 동기가 되는 긍휼의 마음과 선교적 비전이 선포되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 본문 요약: 치유를 넘어선 천국 복음의 확장

마태복음 9장 후반부는 크게 세 가지 사건과 하나의 선언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27절에서 31절은 두 맹인이 눈을 뜨게 된 사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자비를 구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후 눈을 밝혀 주셨습니다.

둘째, 32절에서 34절은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말문이 터지자 무리는 경탄했으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귀신의 왕을 빌린 것이라며 비방하기 시작합니다.

셋째, 35절은 예수님의 3대 사역인 가르침, 전파, 고침을 요약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지향하는 핵심적인 활동을 보여줍니다.

넷째, 36절에서 38절은 무리를 향한 긍휼의 마음과 추수할 일꾼에 대한 요청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백성들을 보며 아파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제목을 맡기십니다.


2. 신학적 해석: 하나님 나라의 현존과 갈등

이 본문을 신학적으로 조명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적 칭호와 고백의 의미

두 맹인이 예수님을 부를 때 사용한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이는 구약 예언서(이사야 35:5 등)에서 약속된 메시아가 오면 맹인의 눈이 밝아질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를 믿는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지식적 동의를 넘어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인격적인 신뢰를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충돌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이 이 땅에 임했음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입니다. 그들은 기적의 현상을 부정할 수 없자, 그 기적의 근원을 사탄에게 돌림으로써 메시아를 거부합니다. 이는 빛이 세상에 왔으되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는 영적 전쟁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목자 없는 양과 목자 되신 그리스도

36절에서 사용된 불쌍히 여기다의 헬라어 원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취하시는 하나님의 본체적 사랑을 나타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목자로 비유되었으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방치했기에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선한 목자로서 그들 앞에 서신 것입니다.


3. 관련 성경 구절: 말씀의 맥락 잇기

본문의 의미를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연결하여 읽으면 좋은 말씀들입니다.

  • 이사야 35:5-6: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메시아 사역에 대한 구약의 예언)

  • 에스겔 34:5-6: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목자 없는 이스라엘의 영적 실태)

  • 누가복음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추수 비유의 병행 구절)

  •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성품)


4. 깊이 있는 묵상: 우리 삶의 현장에 적용하기

믿음의 시력: 보지 못하나 보는 자

두 맹인은 눈이 멀어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영적인 눈은 열려 그분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반면 눈이 멀쩡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그분을 귀신의 왕이라 비하하며 영적 소경의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환경의 어려움에 가려 주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우선순위: 일꾼을 보내 주소서

우리는 흔히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주인에게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는 선교와 복음 전파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임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일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그 추수 현장으로 보냄을 받는 사명자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개인의 안위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동역자들을 세우는 일로 넓어져야 합니다.

긍휼의 시선: 고생하며 기진한 영혼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셨을 때 가장 먼저 느끼신 감정은 분노나 비판이 아니라 불쌍히 여김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합니까? 도덕적 잣대로 정죄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긍휼이 우리 마음에 부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안쓰럽게 여기고 복음의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역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5. 기도문: 주님의 긍휼을 덧입는 간구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과 치유의 능력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눈은 뜨고 있으나 영적인 진리에는 어두웠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두 맹인이 가졌던 그 간절한 고백,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가 우리의 매일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이 행하실 능력을 의심 없이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우리의 막힌 귀와 닫힌 입이 열려 주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님, 이 땅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바라보며 눈물 지으셨던 그 긍휼의 마음을 우리에게도 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며 고생하고 기진한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복음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선교사님들과 사역자들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 또한 부르신 그 자리에서 충성스러운 추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