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14~26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26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9:14-26 (개역개정)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이 본문은 금식에 대한 논쟁새 포도주 비유, 그리고 혈루증 여인의 치유관리의 딸을 살리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금식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하여, 열두 해를 앓던 여인의 치유, 그리고 죽은 소녀를 살리시는 기적으로 이어지며 믿음과 회복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본문 요약: 옛 관습을 넘어선 생명의 역사

본문은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금식 논쟁과 새 포도주 비유입니다(14-17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을 혼인집 신랑에 비유하시며,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잔치의 때이지 슬퍼할 때가 아님을 선포하십니다. 이어지는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비유는 복음의 역동성이 유대교의 낡은 형식에 갇힐 수 없음을 강조하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둘째, 혈루증 여인의 치유입니다(20-22절). 한 관리의 집으로 가시던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집니다. 그녀는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간절한 믿음을 가졌고,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며 즉각적인 치유와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셋째,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입니다(18-19, 23-26절). 한 관리가 죽은 딸을 살려달라며 예수님께 절합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무리들을 뒤로하고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며, 소녀의 손을 잡으심으로 그녀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질병뿐 아니라 죽음까지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2. 신학적 해석: 복음의 역동성과 하나님의 나라

새 시대의 도래와 메시아적 잔치

예수님이 자신을 신랑으로 묘사하신 것은 구약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적 잔치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대교의 금식은 애통과 회개의 상징이었으나,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의 삶은 기쁨과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도덕적 규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을 통한 기쁨의 삶임을 시사합니다.

낡은 부대와 새 부대

낡은 부대는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매몰된 유대교의 전통을 상징합니다. 반면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파되는 복음의 생명력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행위나 전통적인 틀 안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며, 우리가 과거의 습관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 성령의 역동적인 인도를 따라야 함을 교훈합니다.

믿음과 접촉의 신학

혈루증 여인과 관리는 모두 예수님과의 접촉을 갈망했습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혈루증 환자나 시신을 만지는 것은 부정해지는 일이었으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손을 대심으로 부정을 거룩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거룩함이 세상의 어떤 부정함보다 강력하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그 거룩함과 생명이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연결된 성경의 진리

  • 누가복음 5:37-38: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공관복음의 평행 구절)

  •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4. 깊이 있는 묵상: 우리 삶의 새 부대는 준비되었는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변화를 촉구합니다.

금식보다 중요한 신랑과의 동행

우리는 때때로 신앙의 형식을 지키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놓치곤 합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신앙생활에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습니까? 만약 신앙이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진다면, 당신은 혹시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정한 인생을 만지시는 예수님

혈루증 여인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부정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댔을 때, 예수님은 그녀를 꾸짖지 않으시고 딸아라고 부르시며 가족의 관계로 영접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죄로 인해 부정하고 세상의 시선으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 삶의 모든 부정을 씻어내십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선포되는 잠

사람들은 소녀의 죽음을 보고 통곡하며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끝이라고 말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은 희망과 생명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삶에서 이미 죽어버린 것 같은 소망, 끊어진 관계, 포기한 꿈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손이 닿으면 그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절망을 으로 규정하시고 우리를 깨워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5. 기도문: 생명의 주님을 향한 고백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새 시대의 소망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낡은 가죽 부대와 같은 옛 습관에 머물지 않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새로운 생명력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참된 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혈루증 여인처럼 연약하고 부정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더 깊은 상처만 남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그 간절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고, 우리를 향해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삶의 죽어 있는 영역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사람들이 비웃고 끝났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 주님 찾아와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며,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회복된 삶이 온 땅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중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9:1~13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9:1-13 (개역개정)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태를 부르시다

  1.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2.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3.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5.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와 사역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의 권세, 소외된 자를 부르시는 은혜, 그리고 종교적 형식주의를 넘어선 하나님의 긍휼을 마주하게 됩니다.


1. 본문의 구조적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며 죄 사함의 권세를 선포하신 사건(1-8절)이고, 두 번째는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사역의 목적을 밝히신 사건(9-13절)입니다.

중풍병자의 치유와 죄 사함 (1-8절)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신체적 고통보다 먼저 그의 영혼에 주목하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에 서기관들은 신성모독이라며 반발하지만, 예수님은 병자를 일으켜 걷게 하심으로써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음을 증명하십니다.

마태의 부름과 죄인의 친구 (9-13절)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받던 세리를 제자로 삼으신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이어지는 마태의 집 잔치에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이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자는 병든 자임을 천명하시고 긍휼의 제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 권위와 긍휼의 교차점

죄 사함의 권세와 메시아적 자기 계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선포하신 죄 사함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유대 전통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선언은 자신이 곧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적 성격을 갖습니다. 중풍병의 치유는 그 영적인 권세가 가시적인 세계에서도 실재함을 확증하는 표적입니다.

세관에서 제자로: 부르심의 전권

마태를 부르신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 없는 자에게 임한다는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를 보여줍니다.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간주되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혈통이나 율법적 의로움에 갇혀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근거함을 시사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의 재해석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이는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결여된 형식적 종교 행위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율법은 정죄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실천하는 생명의 법으로 완성됩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연결되는 성경 구절들입니다.

  •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예수님이 직접 인용한 구절의 원문입니다.)

  •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치유와 죄 사함의 근거를 예언합니다.)

  •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사랑을 요약합니다.)

  • 히브리서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체휼하시는 주님을 나타냅니다.)


4. 깊이 있는 묵상: 침상에서 일어나 잔치로

믿음의 연대와 중보의 힘

본문 2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병자 본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그를 침상째 메고 온 동료들의 간절함과 사랑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공동체의 믿음,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주님께 데려가는 통로가 되는 삶의 중요성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죄

예수님은 병자의 다리보다 그의 마음속 응어리진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치유되어도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지만, 죄 사함을 받은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결핍과 고통 속에 살아가지만, 그 근저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선언이 우리의 진정한 자유와 회복의 시작입니다.

세관이라는 삶의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순종

마태는 인생의 가장 세속적인 현장인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거룩한 성전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직장, 주방, 교실 등 가장 일상적인 자리에서 들려옵니다. 마태의 즉각적인 순종은 예수님의 권위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그리고 마태의 심령이 얼마나 주님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한 복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거룩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들을 혐오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를 건강한 자라고 착각하는 이들보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인정하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복음의 역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 안에서 바리새인처럼 타인을 정죄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 없는 건강한 자라는 교만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5. 결론 및 적용

마태복음 9장 1-13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며 정죄의 자리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며 예수님의 식탁에 참여할 것인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제사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오는 긍휼을 기대하시는 분입니다. 중풍병자를 침상에서 일으키신 그 권능이 오늘 우리의 무너진 삶을 일으키길 원하시며, 마태를 부르신 그 음성이 오늘 우리의 지친 일상에 소망이 되길 원하십니다.


6. 마무리를 위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긍휼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무거운 짐에 눌려 침상에 누운 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며 우리 영혼의 근원적인 고통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죄책감과 정죄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주님의 권능으로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또한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평범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우리의 삶의 자리로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와 물질에 매여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 않게 하시고,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마태와 같이 기쁨으로 순종하며 일어나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며 남을 판단하는 바리새인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의사가 필요한 환자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이 베푸신 그 긍휼을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와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23~34

마태복음 8장 23절에서 34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23-34 (개역개정)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니라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태복음 8장 23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위가 자연 만물과 영적 세계 모두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방대한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영적 진리를 요약, 해석, 묵상, 기도의 순서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본문의 핵심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바다의 광풍을 잔잔하게 하신 사건이며, 두 번째는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광풍 속에서도 평안히 주무십니다. 죽음의 공포에 질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자, 주님은 그들의 믿음이 적음을 책망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즉시 잔잔하게 하십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이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자연조차 순종하는가라며 경이로움에 빠집니다.

배가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도착했을 때, 무덤 사이에 거주하던 흉악한 귀신 들린 자 둘이 예수님을 가로막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즉각 알아보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을 돼지 떼 속으로 보내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허락으로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자 온 떼가 바다에 빠져 몰사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께 그 지방을 떠나달라고 간구하며 본문이 마무리됩니다.


2.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석

자연을 다스리는 창조주의 권위

유대 전통에서 바다는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시편 107편 등 구약 성경에서 바다를 꾸짖고 잔잔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행위는 그분이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심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신적 현현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의 상관관계

예수님은 제자들의 구조 요청에 응답하시기 전, 먼저 그들의 두려움을 지적하십니다. 여기서 무서워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신중한 태도를 넘어 불신앙에 기인한 비겁함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한 배에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파도에 매몰되어 함께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현존을 잊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성도의 삶에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믿음임을 시사합니다.

영적 세계의 굴복과 하나님의 아들

가다라의 귀신들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소리칩니다. 이는 제자들이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라고 질문했던 것에 대한 영적인 해답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심판하실 종말론적 권세를 가진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돼지 떼의 몰사는 사탄의 파괴적인 본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 영혼의 가치가 수천 마리의 돼지 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나타냅니다.


3. 관련 성경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관련 구절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편 107:29-30: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 89: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 누가복음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 히브리서 2:14-15: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4. 신앙을 위한 깊은 묵상

고난의 파도 속에서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 인생의 배에도 예기치 못한 광풍이 들이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이 마치 주무시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져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절규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주무시는 중에도 여전히 배 안에 계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환경을 바꾸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앙의 폭풍을 먼저 잠재우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당신을 두렵게 하는 풍랑은 무엇입니까? 그 풍랑 너머에 계신 만유의 주재를 바라보십시오.

소유보다 존재를 우선시하는 삶

가다라 사람들은 귀신 들려 고통받던 이웃이 자유를 얻은 기쁨보다, 자신들의 자산인 돼지 떼를 잃은 슬픔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예수님을 밀어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편리함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님의 간섭을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나의 가치 우선순위를 완전히 재편하는 일입니다. 돼지 떼를 잃더라도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권세 있는 말씀의 능력

예수님은 장황한 의식이나 절차 없이 오직 가라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악한 영들을 제압하셨습니다. 창조 때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 삶에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우울, 불안, 중독의 사슬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권세 앞에 무너집니다. 그 말씀의 통치 아래 머물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5. 결단과 간구의 기도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주관자가 누구이신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거친 파도가 나를 삼키려 할 때, 제자들처럼 두려워 떨며 주님을 원망했던 연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환경의 소음보다 크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내 배에 함께 계신 주님으로 인해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내 마음의 의심과 공포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하시는 주님의 권세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또한 가다라 사람들처럼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주님을 떠나 가시라고 밀어내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원합니다. 나의 재물과 시간과 계획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심장을 우리에게 부어 주옵소서. 어둠의 세력이 우리 가정을 흔들고 나의 생각을 공격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말씀으로 대적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만물을 복종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나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두려움에서 건져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14~22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14-22 (개역개정)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나를 따르라 하시다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치유 권능과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따르는 단호한 결단우선순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에 이르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의 본질과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제자도의 무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육체적 회복을 넘어, 영적인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깊은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1. 본문 요약: 고치시는 손길과 부르시는 음성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14-17절)은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한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손을 만지시는 인격적인 접촉과 말씀의 권능으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적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여 인류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시는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 부분(18-22절)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과의 대화입니다. 한 서기관의 호기로운 결단에 예수님은 인자가 겪어야 할 고난과 비천함을 일깨우셨고, 아버지를 장사 지낸 후 따르겠다는 제자에게는 세속적인 도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시급성이 우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2. 신학적 해석: 질병을 짊어지신 분과 길 위의 메시아

질병과 연약함의 대속 (마태복음 8:17)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해석하며 이사야 53장 4절을 인용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대속적 치유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것은 단순히 신기한 능력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장차 십자가에서 담당하실 인류의 고통과 죄의 결과를 미리 짊어지시는 예표적 행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속으로 직접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인자의 머리 둘 곳 없음 (마태복음 8:20)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십니다. 이는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는 영광스러운 통치자의 이미지와 동시에, 이 땅에서 거처조차 없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서기관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아마도 영광스러운 왕이었을 것이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자기 부인과 낮아짐의 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 (마태복음 8:22)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은 유교적 전통이나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핵심은 효도를 부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그 어떤 세상의 관습이나 의무보다도 우선한다는 절대적 시급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누가복음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4. 깊이 있는 묵상: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손을 만지시는 긍휼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당시 열병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나, 주님은 사랑의 접촉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삶에 숨기고 싶은 질병이나 상처, 수치심이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 그곳에 손을 얹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만지시면 회복과 수종의 삶이 시작됩니다. 열병이 떠나간 후 여인이 즉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들었던 것처럼, 진정한 치유는 사명으로의 복귀로 이어져야 합니다.

안락함에 대한 경계

서기관은 어디든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안락한 보금자리가 보장되지 않음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의 평안과 성공이라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 앞에 멈춰 서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상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존재를 내던지는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가치와 산 소망

죽은 자를 장사하는 일은 산 자의 가장 큰 의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행하는 세상의 의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혹시 아직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미련이나 세상적인 도리라는 핑계 뒤에 숨어 부르심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단호하게 명하십니다.


5. 기도문

사랑과 권능의 주님,

오늘 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시어 고통받는 자들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그 크신 은혜를 묵상합니다. 우리 영혼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죄의 그늘 아래 눌려 있는 우리를 주의 손으로 만지사 참된 자유를 얻게 하옵소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안락함과 머리 둘 곳을 찾았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치와 가족의 도리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선시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단순히 치유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어서서 주님을 섬기는 수종 드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죽은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생명의 길로 전진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1~13

마태복음 8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개역개정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8:1-13 (개역개정)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이 본문은 예수님의 권능과 그 권능을 이끌어내는 믿음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8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과 그 중심에 있는 믿음의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임하며, 인간의 믿음이 그 권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본문의 구조적 요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치유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나병환자의 치유이며, 둘째는 백부장 하인의 치유입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질병을 고친 사례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계층과 이방인이 예수님의 권능 앞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과 나병환자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한 나병환자가 나아옵니다. 당시 나병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져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했던 질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격리를 뚫고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고백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그의 부정함을 거두시고 즉각적인 치유를 선포하십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그의 하인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예수님께 한 이방인 백부장이 나아옵니다. 그는 자신의 종이 중풍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리며 도움을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답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권위를 군대의 명령 체계에 비유한 놀라운 고백이었으며, 예수님은 이를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큰 믿음이라 칭찬하십니다.


2. 신학적 해석과 의미

이 본문은 기독론(예수님은 누구신가)과 구원론(누가 구원을 받는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부정함을 이기시는 거룩의 전염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자는 부정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심으로 거룩함이 부정함을 압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의 조문을 넘어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시며, 죄와 질병의 근원을 제거하시는 분임을 시사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염성 있는 거룩입니다.

말씀의 권위와 원격 치유

백부장의 요청은 예수님의 말씀이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에 근거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마술사가 아니라, 온 우주와 질병을 통치하시는 주권자로 인식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요청은 말씀이 곧 사건이 되는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유대교적 혈통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반전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구원이 혈통적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모든 이방인에게 열려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는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에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3. 관련 말씀 구절

본문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함께 묵상할 구절들입니다.

  • 히브리서 11: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시편 107:20 –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 이사야 53:4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에베소서 2: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4. 깊이 있는 영적 묵상

주여 원하시면 (나병환자의 태도)

나병환자의 요청은 매우 겸손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는 조건으로 주님의 뜻을 먼저 구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원함보다 주님의 원하심을 앞세울 때 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백부장의 겸손)

백부장은 당시 지배 계층인 로마 군대의 장교였으나, 피지배 민족의 청년이었던 예수님 앞에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권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낮아진 마음은 은혜가 흐르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말씀의 통치 아래 있는 삶

백부장은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듯, 질병과 영적 세계도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굴복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까? 환경의 압박이나 감정의 파도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더 강력한 권위를 가졌음을 실제로 믿고 있습니까? 백부장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말씀의 실재를 보는 영적인 안목이었습니다.


5. 결단을 위한 기도문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과 치유의 능력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소외되고 부정한 나병환자 같았던 우리를,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손을 대어 어루만져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삶의 고통과 질병 속에서 낙심할 때,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확신 있는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고집과 정욕을 앞세우기보다 주님의 선하신 뜻에 순복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백부장과 같은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굳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주님이 내 환경 속에 직접적인 표적을 당장 보여주지 않으셔도, 기록된 말씀의 권위가 내 삶을 통치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이 고백이 우리의 매일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잔치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모든 부정한 영역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깨끗하게 씻기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우리 영혼의 중풍병이 낫게 되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참된 생명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