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35~49 – 몸의 부활, 신령한 몸, 마지막 아담, 흙에 속한 자, 하늘에 속한 이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매일 큐티
검색어 최적화 키워드
몸의 부활, 신령한 몸, 마지막 아담, 흙에 속한 자, 하늘에 속한 이, 개역개정 성경 텍스트, 아침 묵상
부활에 대한 세상의 의심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재창조 법칙
개역개정 고린도전서 15장 35절부터 49절
35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절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뿐이로되
38절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절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절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절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절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절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절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한 줄 묵상
우리는 이 땅에서 쇠잔하고 흙으로 돌아갈 연약한 육의 몸을 입고 살아가나 장차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에 속한 이의 찬란하고 신령한 부활의 형상을 영원히 입게 될 하늘의 소망자들입니다.
본문 말씀의 구조적 핵심 요약
사도 바울은 부활의 신체적 실재성에 대해 회의론적 질문을 던지는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을 향해 자연 만물과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바탕으로 변증을 전개합니다. 농부가 뿌리는 작은 씨앗이 땅에 묻혀 죽음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밀이나 식물로 피어나는 것처럼, 인간의 죽음 또한 장래의 영광스러운 몸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자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지닌 신비로운 사건임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짐승들과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에게 각기 다른 형체와 고유한 영광을 부여하셨듯이, 부활의 때에 신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몸을 주실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썩을 것이고 욕된 것이며 연약한 육의 몸에 불과하지만, 부활의 날에는 썩지 아니할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그리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신령한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은 인류의 두 대표인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원리에 기인합니다. 흙에서 비롯된 첫 사람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우리는 모두 쇠하여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의 형상을 입었으나, 하늘에서 나시어 살려 주는 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장차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썩지 않는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온전히 옷 입게 될 것입니다.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석과 배경 강해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장벽과 바울의 신체적 부활 변증
고린도 교회가 직면했던 심각한 신학적 오류 중 하나는 부활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단순히 영적인 영혼의 해방으로만 치부했던 헬라식 이원론이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을 지배하던 플라톤주의나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는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자 악의 근원이며, 죽음이란 이 초라한 육체적 감옥을 깨뜨리고 고결한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로 날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몸의 부활 교리는 미개하고 기괴하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롱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5절에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고 묻는 자들의 이면에는 인간의 몸이 썩어 한 줌의 흙으로 변하고 우주의 원소로 분해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되살아나겠느냐는 과학적, 합리적 회의주의가 깔려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헬라적 인간론과 세계관을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일갈합니다. 바울이 이토록 강한 어조를 사용한 이유는 그들이 가시적인 우주와 자연 법칙 속에 이미 심겨 있는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과 초자연적 능력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은 썩어 냄새 나는 시체가 단순히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는 소생이 아닙니다. 부활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흙의 차원에 갇혀 있던 인간을 하늘의 차원으로 격상시키시는 우주적 재창조 사건입니다. 바울은 이 논증을 전개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이 매일 눈으로 목도하는 농업의 원리와 생물학적 다양성, 그리고 천체 물리학적 영광의 차이를 신학적 도구로 삼아 그들의 지적 교만을 깨뜨립니다.
씨앗의 해체와 연속성 그리고 불연속성의 기적
사도 바울이 제시한 씨앗의 비유는 부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기독교적 지평을 제공합니다. 밭에 뿌려지는 씨앗은 그 자체로 볼품없고 작은 알갱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씨앗이 땅속에 묻혀 습기를 머금고 겉껍질이 완전히 썩어 해체될 때, 그 안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푸른 싹이 돋아나고 마침내 풍성한 밀 이삭이나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게 됩니다. 만약 씨앗이 자신의 형태를 고집하며 죽기를 거부한다면 영원히 하나의 알맹이로 남아 썩어 없어질 뿐이지만, 하나님의 창조 법칙 안에서 기꺼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할 때 장래의 찬란한 형체로 태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몸이 가지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신비를 발견합니다. 땅에 심긴 씨앗과 거기서 자라난 식물은 외형과 영광의 측면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씨앗의 분자 구조와 거대한 나무의 형상 사이에는 엄청난 불연속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나무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그 씨앗에서 비롯되었다는 엄연한 생명적 연속성을 가집니다. 우리의 죽음과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묘지에 묻는 육체는 부활할 몸의 완성형이 아니라 한 알의 씨앗을 심는 행위입니다. 죽음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영원한 파멸이 아니라 신령한 몸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형체를 입기 위한 축복의 통로이자 해체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각 종자에게 그 뜻대로 고유한 형체를 주시며,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심겨진 세포와 인격을 영광스러운 상태로 다시 끄집어내십니다.
피조 세계의 다양성과 천체들의 차별화된 영광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한 차원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환기시킵니다.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새의 육체, 물고기의 육체는 성격과 생존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하나님은 물고기에게는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최적의 육체를 주셨고, 새에게는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볍고 강인한 육체적 형체를 부여하셨습니다. 이처럼 가시적인 지구 생태계 안에서도 육체의 한계와 기능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형되어 존재합니다.
이 다양성의 원리는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의 대조로 이어집니다. 땅 위에 기어 다니는 생물들의 형체가 있는 반면, 우주 공간에 빛나는 해와 달과 별의 형체가 있습니다. 해는 스스로 엄청난 열과 빛을 발하는 영광을 가졌고, 달은 그 빛을 받아 밤을 밝히는 은은한 영광을 가졌으며, 수많은 별들은 제각기 다른 광도와 색깔로 우주를 수놓는 독특한 영광을 발산합니다. 이 방대한 천체들의 영광을 언급하며 바울이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제한된 물리적 법칙에 속한 몸만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온 우주 공간에 초자연적이고 찬란한 차원의 형체들을 가득 채워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녀들이 죽음을 통과할 때, 이 땅의 약하고 추한 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우주적인 광채와 신령한 기능을 가진 부활의 몸을 입히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 안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확실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구속사적 거대한 두 기둥 아담적 인류와 그리스도적 인류
본문의 마지막 단락인 45절부터 49절은 개인의 부활 소망을 창조와 구속이라는 거대한 우주적 대서사시 속으로 편입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인류의 역사를 두 개의 거대한 대표성 아래 둡니다. 바로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을 주해하면서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부여받아 생령, 즉 살아 있는 자연적 존재가 되었다고 정의합니다. 아담은 생명을 스스로 자아내거나 타인에게 분배할 능력이 없는 제한적인 존재였으며, 범죄 이후에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죽음과 수치의 운명을 온 인류에게 물려준 실패한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생명을 얻은 자가 아니라 살려 주는 영이십니다. 헬라어 조오포이운은 죽은 자들에게 신성한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나게 만드는 원천적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망의 법을 철폐하시고, 자신에게 접붙여진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주시는 주권적 공급자가 되셨습니다. 구속사의 순서상 우리는 먼저 육의 사람인 아담의 태에서 태어나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질병과 노화와 슬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하늘에서 나신 둘째 사람의 혈통으로 재창조됩니다. 우리가 지금 비록 아담의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몸을 입고 씨름하고 있으나, 마지막 날 주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는 둘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신령하고 찬란한 부활의 형상을 온전히 입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존재론적 운명이자 성경이 보증하는 절대적인 부활의 확실성입니다.
본문과 맥을 같이 하는 약속의 성경 구절
빌립보서 3장 21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로마서 8장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요한일서 3장 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 이기 때문이니
고린도후서 5장 1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오늘을 변화시키는 깊은 묵상 묶음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묻히는 죽음의 참된 가치
현대 사회는 죽음을 철저히 은폐하고 두려워하며 인생의 모든 즐거움과 가치가 소멸하는 절대적인 절망의 사건으로 규정합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육체의 노화와 쇠잔함을 막아보려 수많은 물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농부의 밭을 바라보라고 요청합니다. 농부가 가을의 황금빛 들판과 풍성한 이삭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봄날에 그 단단하고 작은 씨앗을 차가운 땅속 어둠에 파묻어야 합니다. 땅에 묻힌 씨앗은 본래의 아름다움이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습기와 박테리아 속에서 철저히 썩어 해체됩니다. 만약 씨앗이 자신의 외형을 유지하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결코 생명의 역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세의 육체라는 씨앗을 주셨습니다. 이 몸은 영원히 머무를 초소가 아니라 장차 입게 될 영광스러운 몸을 위한 신성한 씨앗입니다. 성도가 나이가 들고, 몸에 질병이 찾아오며, 육신의 기능이 기력을 잃어가는 과정은 인생이 파멸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곳간에 심겨지기 위해 겉껍질이 부드러워지고 해체되는 성스러운 과정입니다. 우리가 임종의 순간에 사랑하는 성도의 육신을 차가운 대지에 묻으며 눈물 흘리지만, 그것은 성도의 영원한 멸망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확실하고 풍성한 하늘의 형체를 거두기 위해 하나님의 밭에 신실하게 생명의 씨앗을 심는 행위입니다. 죽음을 소멸이 아닌 심음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일어날 때, 우리의 삶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비로소 자유해지며 매일의 삶을 영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네 가지 위대한 대조가 주는 육체의 위로와 소망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제시한 네 가지 대조 즉 썩을 것과 썩지 않을 것, 욕된 것과 영광스러운 것, 약한 것과 강한 것,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의 대조는 오늘날 이 땅에서 육체의 한계와 고통으로 인해 눈물 흘리는 모든 신자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장애나 불치병으로 평생을 고통받는 이들이 있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관절이 아프고 눈이 어두워지며 기억력이 흐려지는 노화의 슬픔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암이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해 병상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인간의 모든 존엄성과 품격을 잃어버리는 수치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인생의 비참함을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이라는 단어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위대함은 우리의 현실이 이 비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 때,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재창조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가 장차 입게 될 부활의 몸은 더 이상 바이러스나 세포의 변형으로 인해 암에 걸리지 않는 완벽한 썩지 아니할 몸입니다. 인간의 죄와 실패로 인해 장례식장에서 마주했던 그 초라하고 욕된 시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광채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찬란한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계단을 오르기조차 힘겨워하던 그 약한 무릎은 우주적 에너지를 공급받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강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며, 이 땅의 거친 물리적 법칙과 정욕에 지배받던 육의 몸은 성령의 호흡과 통치에 완벽하게 순종하는 신령한 영의 몸으로 변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육신이 연약해질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연약함이 깊을수록 장차 우리가 입게 될 강함과 영광의 크기는 더욱 선명하고 대조적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의 혈통으로서 하늘의 형상을 미리 살아내는 성화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첫 사람 아담의 혈통에 속하여 흙의 형상을 입었습니다. 아담의 형상이란 하나님을 거역하는 부패한 성품,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땅의 일에만 전전긍긍하는 삶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는 평생 흙에서 와서 흙의 일만 생각하다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허무하게 사라질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살려 주는 영으로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의 소속을 땅에서 하늘로 완전히 이주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를 믿어 하늘에 속한 자의 법적 신분을 얻은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던 것처럼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미래의 약속인 동시에 오늘을 향한 엄중한 영적 명령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여전히 아담의 연약한 껍데기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과 가치관은 이미 하늘에서 나신 둘째 사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날마다 내 안에서 고개를 드는 흙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살려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내어주시는 사랑과 희생과 용서의 하늘 도덕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땅의 소유와 물질적 안락만을 위해 인생을 낭비할 때, 부활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썩지 아니할 하늘의 보화를 가슴에 품고 이 땅의 나그네이자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당당하고 거룩하게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내일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믿는 자만이 오늘이라는 가벼운 환난을 전심으로 인내하며 거룩한 씨앗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문을 여는 간절한 기도문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확증하며 올리는 공동체 기도
생명의 근원이시며 온 우주 만물을 당신의 주권적인 뜻대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통해 깨어지기 쉽고 썩어 없어질 이 땅의 육체에 갇혀 살던 저희의 영적 시선을 넓혀 주시고, 장차 다가올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และ 하늘의 형상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무지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노화와 질병, 경제적 결핍과 세상의 환난 앞에 쉽게 낙심하고 죽음의 공포 앞에 떨며 땅의 일만을 염려하던 어리석은 자들이었음을 이 시간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농부가 밭에 심는 작은 알맹이 씨앗이 땅속에서 철저히 죽고 해체됨으로써 마침내 풍성한 밀 이삭으로 피어나듯, 저희가 이 땅에서 겪는 육체의 쇠잔함과 임종의 순간이 결코 허무한 소멸이 아니라 영원하고 신령한 몸을 입기 위한 축복의 심음임을 굳게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새와 물고기와 짐승에게 각기 다른 육체를 주시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에게 차원이 다른 찬란한 영광을 부여하셨듯이, 부활의 아침에 고통받던 주님의 자녀들에게 눈부신 하늘의 형체를 입혀주실 그 전능하신 주권적 능력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주님, 간절히 기도하옵기는 우리 가운데 육신의 연약함과 고칠 수 없는 불치병, 혹은 깊어가는 노화로 인해 밤낮으로 고통받으며 눈물 흘리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비록 썩을 것과 욕된 것과 약한 육의 몸을 입고 질그릇처럼 깨어지고 상처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장차 주님 다시 오시는 그 영광의 날에 썩지 아니할 것과 가장 찬란한 영광과 어떠한 사탄의 권세도 흔들 수 없는 강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복된 위로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상의 고통이 깊을수록 장차 다가올 부활의 광채가 더욱 눈부실 것을 확신하며 오늘이라는 시련의 터널을 믿음과 인내로 넉넉히 통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첫 사람 아담의 혈통에서 태어나 죄의 정욕과 사망의 법 아래 신음하던 저희를, 살려 주는 영이 되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 주시고 하늘의 새 인류로 재창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미 하늘에 속한 자의 신분을 얻었사오니, 더 이상 땅의 썩어질 물질과 영예를 위해 인생을 낭비하는 음부의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살려 주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날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베푸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울을 보며 후패해가는 가시적 육신 때문에 절망하기보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기뻐하며 부활 소망의 산증인으로 세상 속에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영광스러운 하늘의 형상으로 변모시키실 마지막 아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